# 265
지각의 대가 (11)
“리버스 그래비티.”
그러나 헨리의 검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헨리는 다시 한번 리버스 그래비티를 외웠다.
두 동강 난 거슬렁거의 시체가 다시 한번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쏟아지는 핏물과 함께.
이에 헨리는 폭발하는 오러와 함께 양손으로 검을 잡고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놈의 몸뚱이가 잘게, 아주 잘게 갈려 나가도록 말이다.
헨리의 두 눈엔 독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분노와 분노, 그리고 그 분노들을 몽땅 집어삼키고도 모든 것들을 불태울 만한 엄청난 분노가 독이 되어서 말이다.
“으아아아아악!”
검을 휘두르는 속도에 박차가 가해질수록 헨리는 그동안 참아 왔던 분노를 고함으로 내질렀다.
피로와 분노가 결집된, 악에 받친 고함을 말이다.
쾅! 쾅! 쾅!
리버스 그래비티의 효과가 떨어질 때쯤이면 헨리는 다시 바닥을 찼다.
그리고 분노에 찬 헨리가 바닥을 찰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탓에 헨리가 발을 내딛은 곳에는 깊은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퍼어엉-!
그리고 마침내, 헨리는 터질 듯한 근육에 제동을 걸기 위해 두 손으로 검을 바로 잡고 위에서 아래로 그것을 내리그었다.
엄청난 풍압.
쏘아진 풍압은 제멋대로 뭉친 자신의 몸뚱이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곧 거대한 폭발음을 낳았다.
“허억 허억……!”
검무를 끝냈을 때, 헨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턱선 끝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전신에 뭉쳐 있던 스트레스와 악이 조금이나마 분출된 것만 같았다.
“윈드.”
후우웅-!
헨리는 눈앞에 자욱해진 모래먼지를 신경질적으로 거두어 냈다.
그러자 헨리의 발 앞에, ‘거슬렁거였던 것’이 고기 완자의 부스러기처럼 끔찍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후우…….”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헨리는 죽은 거슬렁거에게 환멸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분을 풀기 위해 그것들을 발로 짓밟았다.
‘이럴 때가 아니야……!’
거슬렁거의 잔해를 짓밟던 헨리는, 문득 떠오른 이성에 의해 냉정함을 되찾았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
그리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숱한 문제들.
헨리는 그제야 이곳에서 노닥거릴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할!”
욕지거리와 함께 헨리는 다시 한번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
그러나 이미 헨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한참이나 늦어 버린 뒤였다.
앙켈만.
아마리스.
샤하트라.
소레국.
제방.
눈앞에 나타났던 무수한 호출 요청에 따라 그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샤하트라의 왕궁처럼 절멸해 있거나, 혹은 앙켈만처럼 시민들이 좀비 떼로 뒤바뀐 뒤였다.
헨리는 무슈로 돌아갔다.
로어에게 말해 두길, 혹시라도 호출 요청이 있던 곳에 생존자가 있다면 어떻게든 신변을 확보해 무슈로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슈의 병원은 때 아닌 환자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곳곳에 고통에 찬 신음이 흘렀다.
침대가 모자라 어떤 환자는 급하게 만든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무슈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투입됐고 그마저도 일손이 부족해 온갖 공방의 장인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병원 안은 고통에 찬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환자는 사람인지 좀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행동들을 선보였다.
피비린내와 약품 냄새가 뒤섞여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이에 헨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러한 풍경은 헨리에게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흡사 지옥을 연상케 하는, 환자들의 피비린내 짙은 신음들은 언제 들어도 사람의 신경을 조약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그 순간.
“으와라라아악!”
“붙잡아! 붙잡으라고!”
병동의 한쪽에서, 목구멍에서 핏물이 들끓는 소리와 함께 소동이 벌어졌다.
헨리는 소리가 들린 병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그곳에는, 두 눈이 시뻘개진 한 남자가 앙켈만에서 보았던 좀비가 된 시민 한 명이 진찰 중이던 의사를 물어뜯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묶어! 묶으라고!”
환자는 힘이 장사였다.
분명히 무슈의 남자들 또한 엄청난 장사일진데 그런 무슈인들이 몇 명이나 달라붙어서야 겨우 환자를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환자는 결국 침대와 함께 쇠사슬에 포박되었다.
남자가 포박된 이후, 의사와 관계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대체……!”
특히나 남자를 진찰하던 의사의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마법사님! 이 남자는 미쳤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가리 없이 죽어 가던 남자가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아니, 짐승처럼 돌변해서 날 물어뜯으려 하는데 도통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철컹! 철컹!
의사의 말대로, 남자는 시뻘개진 두 눈을 하고서 침을 흘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쇠사슬에 쓸려 피부가 찢어지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다.
마치 광견병에 걸린 투견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헨리는 이 남자와 같은 증상의 사람들을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여기서도?’
앙켈만의 시민들과 똑같은 증상.
마치 하급 마물, 언데드과에 속하는 좀비와 같은 행동.
그 순간, 헨리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설마?’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엄습했다.
그리고 헨리의 직감은 곧 악마의 장난처럼 시작되었다.
“크라라라악!”
“뭐, 뭐야!”
“피해!”
“끄아아악!”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그리고 울음.
헨리는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헨리가 소리쳤다.
“주저하지 마! 모두 죽여!”
“예, 예!”
헨리의 외침에, 피로한 기색으로 대기하고 있던 아크 메이지들과 무슈의 장인들이 각자의 주특기를 살려 난동을 피우는 환자들을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악!”
“사, 살려 줘!”
그러나 너무 급박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앙켈만에서 그랬던 것처럼 급속 냉각과 같은 보호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곳에는 너무나도 많은 환자들과 민간인들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착검.”
좀비 떼의 진압에, 헨리 또한 서둘러 검을 소환해 좀비들을 베어 넘겼다.
베고, 찢고, 관통하고…… 놈들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했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환자들의 좀비화는, 아무 피해 없이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기랄!’
헨리는 병원의 유리창을 깨뜨려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 다음 병원 전체를 감싸 안을 철의 장벽을 소환했다.
혹시 모를 좀비들의 탈출에 의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아이언 월!”
쿠구구구!
거대한 철의 장벽이 병원을 감싸 안았다.
덕분에 병원 내부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헨리는 이어서 광범위한 라이트 마법을 시전했다.
“하아, 하아……!”
한참 후, 헨리는 마지막 좀비의 목을 베어 버린 후에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완벽한 탈진이었다.
그리고 탈진해 바닥에 주저앉자마자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스스로의 무능에 자책했다.
‘제기랄…….’
다행스럽게도 좀비에 물린 이들은 언데드 좀비의 그것처럼, 똑같은 좀비화를 이루지 않았다.
그렇기에 좀비화가 진행된 환자들만 죽이면 되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헨리는 꼬일 대로 꼬여 버린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대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엔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가 멍청했어!’
자책하는 헨리.
헨리는 스스로의 욕심이 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나타난 호출 요청은 많았고 몸은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로어와 같은 다른 이들의 도움도 절실했지만 샤하트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든 생존자 또한 확보하고 싶어 잘못된 명령을 내리고 만 것이었다.
‘만약 생존자가 있다면 확보해라.’
이미 앙켈만에서 그러한 경험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헨리의 잘못이었다.
탈진해 주저앉은 헨리에게, 로어를 비롯한 아크 메이지들과 불카누스, 그리고 도시의 장인들이 몰려들었다.
“헨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겠나?”
그들의 얼굴엔 약간의 분노와 허탈감,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황당함이 뒤섞여 있었다.
민망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렇기에 헨리는 이 개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하면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헨리의 눈 앞에 새로운 빛의 고리들이 생성되었다.
그것은 순서대로 비발디 타운과 하이랜더, 그리고 페이실링의 좌표 값이 적힌 호출 요청들이었다.
* * *
“위대하신 아서스 님을 뵙습니다.”
여덟 명의 사도들이 피의 목욕을 즐기고 있는 아서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아서스는 사도들의 등장에 반가움을 표하며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드라칸이 건네는 가운을 걸치며 근처에 마련된 왕좌를 닮은 의자에 앉았다.
아서스가 말했다.
“흐음, 다들 내가 시킨 것들을 잘 처리한 모양이네.”
“그렇습니다. 아서스 님.”
“근데 왜 여덟 명뿐이지? 원래 아홉 명이지 않나?”
아서스의 물음에 사도들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며 한 명이 비었음을 깨달았다.
부재중인 사도는 거슬렁거였다.
그러나 나머지 여덟 사도들은 거슬렁거의 부재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등에 칼을 꽂던 사이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제아무리 선택받은 아홉이 되었다고 한들, 그들에겐 딱히 유대감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이를 알아본 아서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참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구나? 그래도 명색이 같은 사도들인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아서스 님.”
아서스의 지적에 사도들은 그제야 머리를 숙이며 사죄를 표했다.
물론 그들은 원래 왜 사죄해야 되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아서스의 명령대로, 배정받은 도시들을 학살하며 섭취한 먹이들을 통해, ‘사회적 공감 능력’을 얻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보통의 인간들처럼 적재적소에 화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아서스가 말했다.
“흐음, 좀 의외네. 만약 첫 사상자가 나온다면 난 그것이 세인트 홀을 담당하기로 한 페일로가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서스의 말에 페일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저 말은 단지 자신이 맹신하고 있는 신적인 존재의 단순한 의견일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에게 힘을 준 신적인 존재에게 분노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도들에겐 말도 안 되는 행위였다.
“그래도 라의 아들이란 건가?”
아서스는 정신을 집중해 자신과 연결되어 있던 거슬렁거와의 연결점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헤라리온의 힘에 감탄했다.
페일로와 거슬렁거가 전도를 담당했던 구역은, 다름 아닌 신력의 소유자들이 대거 분포되어 있던 세인트 홀과 샤하트라.
그리고 자신의 신력의 일부를 가진 사도들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선 단순히 오러나 마력뿐만이 아닌 그에 상응하는 ‘신력’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서스는 만약 첫 사상자가 나온다면 페일로가 되지 않을까 하고 예상한 것이다.
아직은 평화교에 비해 샤하트라가 가지는 종교의 힘이 약했으니까.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가장 먼저 연결점이 끊긴 것은 다름 아닌 거슬렁거였다.
그래서 아서스는 조금 놀란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 약해 빠진 헤라리온이 자신의 사도를 제압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아서스의 착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스는 거슬렁거의 죽음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으니까.
아서스가 말했다.
“뭐, 됐어. 어차피 이미 죽을 놈을 되살려 봤자 뭐하겠어? 다시 되살려 봤자 또 죽을 게 뻔할 텐데. 그건 그렇고, 죽은 거슬렁거를 제외한 나머지는 시킨 일들을 잘들 처리했나?”
“예, 아서스 님.”
아서스의 물음에 사도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아서스가 그들에게 명령한 것.
그것은 아서스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여 아서스를 믿는 신도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아서스를 신이라고 믿는 자들이 늘어날수록, 아서스가 가진 신력의 힘 또한 커진다.
그러므로 아서스에겐 많은 수의 신도들이 필요했다.
물론 그 믿음이 굳이 순수한 믿음이 아니라도 괜찮다.
아서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살아있는 자들의 뇌 속에 ‘아서스’라는 자가 ‘신’이라는 것만 갈망하는 것.
그래서 드라칸은 아서스의 바람을 이루어 주기 위해, 사도들에게 인간들의 감정과 생각을 절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었다.
이는 매우 간단한 매커니즘이었다.
사람에게 아서스를 신이라고 생각하게 세뇌를 시킨 다음,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서 제거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오랫동안 지속시키려면 신도가 생존해 있어야 했으므로 믿음과 함께 ‘식욕’ 또한 남겨 둔다.
그렇게 되면 신자는 오직 아서스에 대한 믿음과 식욕만을 가지고 살아갈 테니 더할 나위 없는 신앙 기계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서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아서 기쁘군. 다들 전도를 열심히 해 준 탓에 내 몸 안에 흐르는 신력이 충만해졌거든.”
“축하드립니다, 아서스 님.”
“고마워. 그건 그렇고…… 이만하면 헨리도 내 선물을 잘 받아 봤겠지? 참 궁금하네. 선물꾸러미를 받아 든 헨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말이야.”
야누스의 힘과 키메라 군단을 손에 넣은 순간부터.
아서스는 더 이상 헨리를 자신의 적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국의 왕궁에서 헨리를 농락함으로써, 아서스는 자신의 힘을 증명해 냈다.
“후후, 나를 좀 더 즐겁게 해 줘. 헨리.”
그러므로 현재 아서스에게 있어 헨리란, 단순히 그가 신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소박하게 즐기는, 가벼운 유희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