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63화 (263/522)

# 263

지각의 대가 (9)

여러 번의 텔레포트 끝에 헨리는 무슈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러 도시들을 돌면서 제2의 앙켈만이 된 곳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지쳤다.

그래서 헨리는 무슈의 안전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헨리의 피로감은 극도에 달했다.

잠깐,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뇌가 녹아 버릴 것 같아서였다.

헨리가 등을 붙인 곳은 무슈에서 알아주는 제일 큰 병원이었다.

이곳의 의료 시설은 대륙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그도 그럴 것이 무슈의 의사들은 장인 정신을 갖고 사람을 치료하기 때문이었다.

헨리는 불카누스의 배려로, 과거에 불카누스가 입원했던 최고급 병동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불카누스가 헨리의 곁을 보필했다.

침대에 누운 헨리가 말했다.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무슈에 아무런 일도 없다는 게…….”

“말이 씨가 된다고 했네. 무서운 소리 말게나.”

“하하, 죄송합니다…….”

가벼운 농담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오가는 농담 속에서도 헨리는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잠깐의 침묵.

이윽고 헨리가 말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심신이 피로해지니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짜증도 투정도 부릴 수 없으니 자조적인 말들밖에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에 불카누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헨리의 손을 잡아 주었다.

“너무 괘념치 말게. 세상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불합리하고 모순투성이인 것들로 가득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이라네.”

“하…….”

교과서적인 대답.

이에 헨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위로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는 눈을 감았다.

마력들을 너무 소모한 탓에 뇌가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한 상황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머릿속은 녹아내리다 못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이제 헨리는 힐링 포션이나 피로회복제로는 더 이상 임시 처방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불카누스는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향을 피워 주었다.

피운 향 탓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헨리는,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며 눈꺼풀을 덮어도 될 것 같은, 꽤나 그럴 듯한 자기합리화의 늪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이대로 사흘 정도만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너무 피로하다 보니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불카누스는, 손자뻘 정도 되는 헨리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테지.’

이젠 불카누스도 어느 정도 자초지종을 알기에 헨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눈이 천천히 감기는 헨리에게 책임감이나 희망 같은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들로 헨리를 도우며 어떻게든 헨리의 짐을 덜어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이윽고 헨리의 긴장이 점점 더 느슨해졌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의식의 경계가 흐렷해질수록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왠지 이대로 눈을 감았다가 뜨면 모든 것들이 해결되어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로 말이다.

잡생각과 걱정,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꿈결 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어떨 땐 이 모든 것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이 모든 게 지독하게 긴 악몽이었다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충분히 잠을 자고 일어난 후,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9서클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태평히 연구나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의식의 경계가 거의 지워졌을 때쯤이었다.

지이잉……!

품 속의 떨림.

그리고.

파밧! 파밧! 파밧!

‘진동…… 빛…….’

느슨하게 떨어지는 잠의 경계 속에서, 헨리는 품속의 무언가가 울림을 느꼈다.

그리고 희미해져 가는 눈꺼풀의 틈 사이에서 꽤나 밝은 광명의 무리가 생겨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모호한 의식의 경계 속에서 헨리는 진동과 광휘에 대해 천천히 생각했다.

하지만 마력과 머리를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평소라면 쉽게 알아차릴 것도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그 순간, 불카누스의 목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헨리의 귓전을 간지럽혔다.

“헨리.”

그러나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커져만 갔다. 그리고…….

“헨리……!”

“헙!”

불카누스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고막을 긁어 놓았을 때, 헨리는 악몽을 꾼 사람처럼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잔뜩 놀란 얼굴을 하고서 눈앞에 떠오른 수많은 빛의 고리들을 보았다.

“이, 이건……!”

눈앞에 떠오른 숱한 빛의 고리.

그리고 헨리는 품속에서 진동하는 것들을 서둘러 끄집어냈다.

그것들은 다름 아닌 호출권 뭉텅이였다.

그리고 눈앞의 빛의 고리들은 진동하는 호출권과 연계된 호출 요청에 대한 이펙트였다.

무수한 양의 빛의 고리들.

헨리는 호출권을 발부한 이후, 이렇게나 많은 수의 빛의 고리들을 처음 보았다.

“헨리, 이게 다 뭔가?”

이것들 때문에 불카누스가 헨리를 다급히 깨운 것이다.

이에 헨리는 뻑뻑해진 두 눈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불카누스에게 말했다.

“시장님, 죄송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쯤은 불카누스도 충분히 눈치챘다.

헨리는 여전히 찌푸린 인상과 함께 눈앞에 나타난 수많은 고리들의 좌표 값들을 읽어 들였다.

“이런 망할……!”

한두 개가 아니다.

아마 헨리의 예상이 맞는다면, 헨리가 발부한 대부분의 호출권들이 호출을 요청하고 있었다.

헨리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고리 속의 좌표 값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헨리는 그것들을 기억했다.

그런 후 곧바로 텔레포트 주문을 외웠다.

‘젠장! 젠장! 젠장!’

욕설 이외엔 이 상황을 표현할 만한 길이 없었다.

이윽고 광명이 번쩍였고 침대 위에서 아주 짧은 휴식을 취하던 헨리가 사라졌다.

* * *

헨리가 도착한 곳은 로어가 있는 곳이었다.

로어는 헨리의 명령을 받아 혹시라도 도시를 침공할지 모를 아서스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헨리가 나타나자 로어가 놀란 눈초리로 헨리에게 말했다.

“대마법사님, 여긴 무슨 일로?”

“로어,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소집할 수 있는 모든 아크 메이지들을 소집해라.”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호출권의 호출 신호가 왔다. 그것도 아주 많은 양의 신호가 말이야. 아무래도 모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움직여. 그리고 소집되는 대로 즉시 여기 적힌 곳으로 출발해. 최종 집결지는 무슈다!”

“예, 옛!”

헨리는 로어에게 종이 한 장을 내던지고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종이에는 헨리가 좀 전에 보았던, 무수한 양의 빛의 고리 속에 기록되어 있던 발신지에 대한 좌표가 쓰여 있었다.

* * *

“제법 괜찮은 여흥이었다.”

샤하트라 왕궁이었던 어딘가.

이젠 ‘어딘가’라고 밖에 표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슬렁거와 헥터의 사투 덕분에, 샤하트라 왕궁의 절반이 넘게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이루어지는 내내, 거슬렁거는 단 한 번도 헥터를 상대로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조급함을 느낀 것은 헥터였다.

‘제기랄……!’

헥터는 거슬렁거의 발아래에 깔려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녀석의 발밑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 듯이 용썼다.

하지만 하급 마물인 ‘코룬’의 육체로는 절대 거슬렁거의 완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신기한 구조를 가졌군. 너는 우리와 같은 존재인가?”

아서스의 은총을 받은 거슬렁거는, 아서스의 은총을 받았기에 신력을 소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신력은 야누스의 권능에서 비롯된 것.

그렇기 때문에 야누스의 힘으로 명계에서 다시 인간계로 넘어오게 된 헥터의 존재를 거슬렁거는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헥터가 이를 갈며 말했다.

“네놈들 같은 잡종 똥개 새끼들과 비교하지 마라……!”

“잡종이라…… 재미있는 단어로군. 할 말은 그게 전부인가?”

“죽여라! 이 더러운 똥개 자식아!”

콰직!

자비는 없었다.

잡종.

똥개.

이 두 단어에 반응한 거슬렁거는 일말의 자비도 없이 곧바로 발끝을 눌러 헥터의 머리를 터뜨렸다.

“흥!”

수박 터지듯이 터진 코룬의 머리.

거슬렁거는 축 늘어진 헥터의 시체를 보자마자 짧게 콧방귀를 꼈다.

그런 다음 나직이 중얼거렸다.

“시간을 끌려는 행동은 제법이었다. 그래서 나도 장단에 맞춰 준 것이고.”

거슬렁거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헥터가 헤라리온이 도망칠 수 있게끔 시간을 벌려고 했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거슬렁거는 기꺼이 헥터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아무리 헥터가 시간을 벌어 준다고 한들, 결국은 아서스 님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걸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그것은 오만이었다.

물론 단순한 과시 때문만은 아니었다.

좀 전에도 언급했지만 거슬렁거는 궁금했다.

야누스의 은총을 입은 헥터가 어쩌면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르기에, 자신이 헥터보다 훨씬 더 뛰어난 존재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쓸데없는 걱정이었단 걸 알게 되었다.

코룬의 머리를 터뜨린 거슬렁거는 이내 곧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왕궁의 절반이 소실되면서 왕궁에 기거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물론 방식은 같았다.

모두들 거슬렁거가 던진 심판의 창에 꿰뚫려 선 채로 꼬챙이에 처박혔다.

이는 사도가 되기 이전의 거대한 모습의 거슬렁거 시절일 때도 같은 방식이었다.

거슬렁거는 발걸음을 옮겼다.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헨리가 예전에 만들어 놓은, ‘샤하트라 게이트’ 앞이었다.

거슬렁거는 게이트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게이트 주위에는 헥터와의 전투로 소실된 샤하트라 마법 학교의 잔해들이 남아 있었다.

“이상하군.”

텔레포트 게이트를 찾아온 게 아니었다.

이 근방에서 미약하지만 신력이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감각을 활성화시켜도 신력을 내뿜는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거슬렁거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거슬렁거가 샤하트라 게이트에서 멀어지자마자, 입을 틀어막고 있던 하울이 작게나마 숨을 내뱉었다.

“프하!”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만약 거슬렁거가 몇 발자국만 더 앞으로 걸어왔다면 비람의 결계 속에 숨어 있는 모두의 존재가 발각되고 말았을 것이다.

무리에는 헤라리온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헥터가 미끼를 자처하자마자, 헤라리온은 즉시 호출권을 찢었다.

그리고 왕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생존자들을 찾아 한 곳으로 모았다.

혼자서 이곳에서 도망치기엔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소중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생존해 있었다.

이를 테면 왕비나 어머니, 비람 대제사장 같은 인물들 말이다.

헤라리온은 비람과 접선하자마자 곧바로 최상위 레벨의 환술 결계를 펼쳤다.

그리고 어떻게든 왕궁의 생존자들을 끌어모았다.

근위병이든 시녀든 너 나 할 것 없이, 살아 있는 자들이라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환술 결계 안으로 들였다.

헤라리온은 그런 왕이었다.

상황이 아무리 급박해도 자신의 백성들을 챙기는, 그런 왕 말이다.

이윽고 거슬렁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헤라리온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다시금 다독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조금만 더 버티시오. 어떻게든 조금만 더 버티면 대마법사님께서 우릴 구해 주러 올 테니까……!”

헥터가 패배했다.

그리고 이중에서 헥터보다 강한 실력자는 없었다.

그러니 헤라리온이 할 수 있는 것은 비람과 함께 환술 결계 속에서 어떻게든 헨리의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케일만 살아 있었어도……!’

헤라리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케일만 살아 있었어도 진즉에 샤하트라 게이트를 발동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이이잉-!

익숙한 소음.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회전음이었다.

이에 모두가 회전음에 교육된 공포에 의해 본능적으로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헤라리온을 포함한 결계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저, 저건……!”

거슬렁거는 헤라리온을 찾아나서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신력은 느껴졌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바꾼 방법.

그것은 바로 왕궁 전체를 덮어 버릴 정도로 수많은 심판의 창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왕궁의 하늘이 새하얀 심판의 창으로 빼곡하게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결계 속이들의 두 눈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네가 자초한 것이다, 헤라리온.”

거슬렁거가 팔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러자 하늘을 빼곡이 채우고 있던 심판의 창들이, 매운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으헉!”

“컥!”

“커헉!”

심판의 창에 꿰뚫리는 수많은 사람들.

이에 헤라리온은 다급한 마음에 자신의 왕비 셀렌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커헉!”

헤라리온의 나약한 육체 따위로는 거슬렁거의 창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심판의 창이 헤라리온의 등줄기를 꿰뚫었다.

그리고 꿰뚫린 창은 셀렌의 심장을 관통했다.

“세, 셀렌……!”

“전하…….”

툭.

절명하는 왕비.

심장을 관통당한 셀렌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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