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지각의 대가 (7)
“컥, 커허억……!”
“흐응, 실망인걸.”
아마리스의 왕궁.
꽃향기로 가득했던 아마리스 왕궁에는 때 아닌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피비린내의 주인들은 다름 아닌 아마리스를 지키던 전사들의 것.
그리고 그 피비린내의 중심에는 시체 더미 위에 걸터앉은 한 여자와 그녀의 꼬리에 목이 휘감긴 헬라가 있었다.
마치 파충류의 꼬리를 연상케 하는 여자의 꼬리는 꼬리가 가진 무시무시한 완력을 바탕으로 헬라의 목숨 줄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헬라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애검인 스네이크 텅은 진즉에 두 동강이 나 어딘가로 던져졌고, 그녀를 지키는 나인 플라워는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채 개죽음을 맞이했다.
꼬리 달린 여자가 말했다.
“대체 뭐가 철혈여제라는 거야? 혹시 너희들은 철이 뭔지 모르는 거야?”
“끄, 끄흐윽……! 그, 그……냥, 죽여라……!”
“후후, 그래. 그렇게라도 발버둥 쳐야 내가 너를 남겨 둔 보람이 있지. 하지만…….”
여자는 꼬리를 비틀어 감싸 쥔 헬라의 목을 더더욱 강하게 조여 냈다.
“커허억!”
새파랗다 못해 보랏빛으로 물든 헬라의 얼굴.
여자가 말했다.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지. 그것이 바로 세상 사는 지혜란다?”
여자의 이름은 아일라.
아서스의 아홉 사도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성 키메라이다.
그녀는 드래곤의 것을 닮은 커다란 꼬리를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시체 위에 걸터앉아 있던 아일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일라는 헬라를 단숨에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생명줄을 바이올린 삼아 멋대로 연주했고, 헬라는 그럴 때마다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어야만 했다.
헬라는 아마리스에 남은 마지막 생존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일라가 헬라에게 아서스의 가르침을 제안하자, 헬라는 아서스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딱 잘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일라가 분노하기엔 충분한 이유였다.
그리고 아일라의 분노는 헬라가 그녀를 죽이기에도 충분한 이유였다.
헬라는 자신의 왕정 내에서 압도적인 수의 부하들과 함께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아일라를 공격했다.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그러한 행위 자체가, 아일라에겐 그저 어린애들 소꿉장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아일라는 왕국에 남은 모든 백성들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헬라를 남겨 둔 채 천천히 여흥을 즐기는 중이었다.
“흐음, 너를 어찌하면 좋을까?”
홧김에 아마리스의 백성들을 모두 죽이긴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왜냐하면 아일라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서스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 아서스를 믿는 신도들의 수를 늘리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게 아서스를 믿는 신도들이 늘어날수록 아서스는 더 막대한 신력을 가지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아서스는 정말로 유라시아 대륙의 하나뿐인 현신이 될 테니까.
그런데 모두 죽여 버렸다.
이에 아일라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흐음.”
고민은 계속됐다.
그리고 장고 끝에 돌연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네.”
아일라는 꼬리를 풀어 헬라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볼품없는 모양새로 나동그라지는 철혈여제.
그녀의 목에는 꼬리에 의해 거세게 조여진 압박의 흔적이 멍이 되어 남아 있었다.
“켈륵, 켈륵!”
헬라는 기침과 함께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목숨을 끊고 싶었으나, 막힌 숨구멍이 트이니 자기도 모르게 호흡이 고픈 사람처럼 게걸스레 숨을 삼켰다.
비참하고 원통했다.
이에 아일라가 추하게 내던져진 헬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강인한 육체는 강인한 후손을 낳는 법이지. 그리고 우리에겐 강인한 암컷이 아주 많이 필요해. 그래서 말인데…….”
아일라는 검지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가락으로부터 기다란 촉수가 나와 헬라의 어깻죽지를 관통했다.
“크흡……!”
피가 흘렀다.
그 부위는 관통되어도 딱히 죽진 않지만 모세혈관이 잔뜩 뭉쳐져 있는 곳이라 고통이 매우 강한 곳이었다.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커서 단말마를 닮은 신음 한 줄기가 전부였다.
아일라는 그녀의 어깻죽지에 촉수를 꽂은 후, 자신의 꼬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아일라의 꼬리는 곧 그 끝이 갈라지며, 나르바가 꽃이 되었던 것처럼 그런 형상을 틔워 냈다.
꽃의 이름은 그리벨.
드라칸이 마력을 수집할 때 직접 싹틔우고 채집했던 마족의 꽃이었다.
드라칸은 그리벨을 사도들에게 심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사도들은 그리벨이 가진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사도의 권능처럼 응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했다.
준비를 마친 아일라가 말했다.
“여제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겠지?”
“……!”
아일라의 말이 끝나는 순간, 어깨죽지에 연결된 촉수가 헬라의 신체로부터 ‘무언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그것은 피였다.
헬라의 마력이 가득 담긴 순수한 피.
그리고 피는, 그리벨을 싹 틔우는 아주 필수적인 영양분들 중에 하나였다.
아일라는 헬라의 피를 빨아들였다.
조금씩, 헬라가 쉽게 죽지 않도록 아주 조금씩 말이다.
하지만 의료 상식에 기반한 것이 아닌 무식한 방법으로 강제로 피를 빨아들이는 행위였기에 아주 소량이긴 하였으나 동반된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헬라는 고통에 신음했다.
그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도 커서 헬라는 이번에는 역시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아일라는 헬라가 고통스러워하거나 말거나, 빨아들인 헬라의 피를 바탕으로 꼬리로 꽃피운 그리벨을 통해 보랏빛 포자들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아일라의 의지에 의해 포자들이 아마리스의 죽은 백성들의 시체 위로 흩어졌다.
그리고 포자가 백성들에게 닿는 순간, 굳어 가던 근육이 다시 부드러워지기 시작하고 멈추었던 혈액이 다시금 온 혈관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부활이었다.
멈추었던 혈액이 다시 순환하면서 시체의 시간이 역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부활이 아니었다.
아마리스의 백성들은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영혼이 명계로 떠나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은, 순전히 죽었던 육체의 부활일 뿐이었다.
일어서는 시체들을 보며 아일라가 말했다.
“그래도 여제는 여제라고……. 헬라, 두 눈 뜨고 잘 봐. 너에게서 갈취한 생명력을 죽은 네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말 그대로였다.
비록 상처 입은 헬라였지만, 그런 헬라에게서 채취한 막대한 생명력과 사도의 권능을 버무려, 아일라는 죽은 백성들의 시체를 다시 산 사람처럼 일으켰다.
물론 다시 살아난 백성들은 아주 미약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면 충분했다.
죽음을 통해 굳었던 뇌는 흐르는 혈류를 통해 잃어버린 기능의 일부를 다시 작동하게 했고 그 아주 작은 기능의 일부에 아일라는 드라칸에게 건네받은 마법의 힘을 심어 주었다.
-크륵?
살아난 시체들에게 심어 준 마법의 힘.
그것은 바로 식욕이었다.
식욕.
다른 것들은 몰라도 어떻게든 식욕만 다시 살려 낼 수 있다면 살아난 시체는 끊임없이 영양분을 섭취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식욕을 통해 섭취한 영양분이 다시 거대한 생명력을 싹 틔워 낼 것이고, 그를 통해 아일라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때? 남은 게 식욕뿐이긴 해도 어찌 됐든 다시 살아났어. 그리고 이렇게 살아난 네 백성들은 아서스 님을 위한 키메라 군단의 아주 훌륭한 그릇이 될 거야.”
포유류의 장점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것.
물론 다른 개체들도 생명을 잉태할 순 있겠지만, 자신의 몸에 직접 생명을 잉태하는 것만큼 훌륭한 힘의 전달법은 없었다.
“이, 이 미친년이……!”
아일라의 말을 들은 헬라는 신음하는 고통 속에서,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발상.
하지만 아일라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것들을 행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들 전부가 아일라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오로지 ‘순수 인간학’을 전공한 ‘어느 미친 마법사’가 오래도록 연구한 끝에 손에 넣은 잔인한 결과물이었다.
헬라의 반응에 아일라가 양손을 모아 볼에 붙이며 황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시 드라칸 님이셔…….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거지?”
드라칸의 상상력과 인간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그리고 야누스로부터 하사받은 아서스가 가진 죽음의 힘까지…….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현재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러한 조화로부터 아일라는 황홀함을 느꼈다.
아일라가 말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버텨 봐. 이런 축복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고. 어찌 됐든 넌 여왕이니까 죽은 네 백성들을 한 명이라도 살려 내야지?”
“이런 미친……!”
아일라는 헬라의 생명력이 최소한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피를 빨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녀는 지금 아마리스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생명이었으니까.
그리고 앞서 언급된 작업이 끝나면, 아일라는 헬라 또한 되살아난 백성들처럼 만들 생각이었다.
그녀는 지금 되살아난 백성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훌륭한 ‘암컷’이었으니까.
“그럼 모쪼록 힘내 달라고.”
아일라의 순수한 응원.
그 응원의 의도를 알기에, 헬라는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 * *
“다행이다……!”
칸 왕궁에 도착한 헤라리온은, 별 탈 없는 수도의 상황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텔레포트를 거쳐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모른다.
만에 하나 샤하트라까지 앙켈만처럼 습격을 받는다면, 유약하기 짝이 없는 그의 정신으로는 좀처럼 견디기 힘들었을 테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군. 그래도 대비 정도는 해 두는 게 좋겠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안심하는 헤라리온에게 헥터는 경계 레벨을 올릴 것을 권했다.
이에 헤라리온은 즉시 수도 전체에 비상 경계령을 선포했고 나머지 세 도시에 전령을 보내 현 시국의 상황을 알렸다.
‘다른 곳도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앙켈만의 소식을 접한 후,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실시해 두긴 하였으나 그래도 불안한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에 헤라리온은 즉시 왕궁 내 최고 전력들을 야외 회의장으로 소환했다.
언제든지 아서스의 침공에 대응할 수 있게끔 마땅한 대비책을 짜 두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최고 전력’이라고 해 봤자 가진 전력이 궁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력이 될 만한 모든 무장들을 과거에 베네딕이 소집해 반란군으로 몰살시켜 버렸으니까.
이에 한숨을 내쉬는 헤라리온.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의 곁에는 헥터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이에 한숨을 내쉬는 헤라리온에게 샤하트라 마법 학교의 교사인 케일이 물었다.
“폐하, 갑자기 소집령은 왜 내리신 것입니까? 혹시 일을 그르치신 것입니까?”
케일은 헨리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헤라리온에겐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인력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가지는 케일의 권력은 마탑에서 마도사로서 가지는 권력보다 높았다.
권력은 상대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러므로 아서스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현 시국에 대한 상황쯤은 케일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헤라리온도 케일에게 딱히 숨길 이유가 없었다.
헤라리온은 케일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러자 케일의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눈에 띄게 불안감을 표했다.
“그, 그럼 저흰 이제 어찌 되는 것입니까?”
“아마도 최악의 상황엔 아서스의 키메라 군단과 전쟁이라도 벌여야겠지요.”
“전쟁……!”
케일이 제아무리 파괴광이라고 한들, 그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전형적인 소인배였다.
그러므로 아서스와의 전쟁은 그로썬 별로 달갑잖은 상황일 뿐.
이이이잉-.
그런데 그 순간, 모두의 귓가에 옅은 소리가 울렸다.
“……?”
얇고 긴, 이상한 소리에 케일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 순간…….
콰지직!
하늘에서 한 줄기의 창이 떨어졌다.
떨어진 창은, 케일의 이마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직선으로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