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53화 (253/522)

# 253

착각 (2)

“커억, 커허억……!”

촉수는 병사의 목을 기세 좋게 관통한 다음, 병사를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렸다.

핏물과 함께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내 병사의 몸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병사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참극에 몸이 얼어붙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 한스…….”

죽은 병사의 이름은 한스였다.

그리고 한스의 죽음을 코앞에서 목격한 어느 병사는 그만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고, 다른 한 명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쯧쯧, 이런 놈들에게 경비를 맡기니 금방 뚫리지, 퉤.”

털썩!

괴물은 침을 뱉듯이 촉수로부터 한스를 뱉어 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 이 괴물 새끼야악!”

주저앉거나 오줌을 지린 병사 이외에, 그나마 정신 줄을 붙잡고 있던 한 병사가 들고 있는 창을 바로 잡고 괴물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괴물의 눈에 비친 병사의 움직임은 한없이 미련하고 굼떠 보였다.

“아앙?”

짧은 대꾸.

그리고 괴물은 고개를 조금 비끼는 것만으로 병사가 날린 창을 가볍게 피해냈다.

“이야, 그래도 저기 주저앉은 두 놈보다는 좀 낫네, 하지만…….”

한스를 뱉어내면서, 얼굴 가득히 돋아 있던 촉수는 어느새 종적을 감추고 미소년의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외모가 아무리 미소년이라 한들, 본질은 다름 아닌 괴물이었다.

괴물이 창을 비껴 피하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허공에 붕 떠 있는 병사의 옆구리를 향해 힘껏 내질렀다.

콰직! 우드득!

양철로 만들어진 갑옷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갈비뼈 네 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병사의 몸이 몇십 바퀴나 회전하면서 저만치 나가떨어져 나갔다.

“……!”

바닥에 고꾸라진 병사는, 착지가 잘못되는 바람에 기형적인 모습으로 목이 꺾여 죽고 말았다.

그러나 괴물은 죽은 병사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신 남은 두 병사에게 손을 휘휘 털며 다가갔다.

“어이, 너희들, 둘 중에 하나만 살려 줄 테니 얼른 정해 봐. 누가 살래?”

“예, 예……? 그, 그게 무슨……!”

콰드득!

바지에 오줌을 지린 병사가 괴물의 물음에 말을 버벅거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괴물은 남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휘휘 털던 손에 날을 세워 남자의 목을 가격했다.

목 근육이 일그러져 죽는 병사.

이에 괴물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은 뭐가 ‘무슨’이야.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먹어? 이런, 죽고 말았네. 그럼 이제 너만 남았으니 네가 가서 전해. 지금 이곳에 새로운 신께서 보내신 사도, 나르바 님께서 오셨다고 말이야.”

“그, 그게 무슨……!”

“씁, 이놈도 영 말귀를 못 알아먹네.”

거의 실성하듯 몸을 덜덜 떠는 병사에게, 나르바는 가만히 다가가 눈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조그맣고 하얀 손을 들어 올려 병사의 오른쪽 귀를 단번에 뜯어냈다.

“으아아악!”

나르바는 뜯어낸 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움직여.”

“예, 옛!”

병사는 고통에 찬 음색으로 오른쪽 귀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살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운 후, 덜덜 떨리는 두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성 안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미개한 놈 같으니, 쯧!”

후다닥 뛰어가는 병사를 보며, 나르바는 몸에 걸친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그 안에는, 아서스와 드라칸이 입었던 것처럼 비슷한 종류의 깔끔한 제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르바는 뒷짐을 졌다.

그런 다음 죽은 병사의 시체로 다가가 손수 심장을 도려냈다.

“싱싱하네.”

마치 고기를 사러 온 손님처럼 나르바의 감상평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윽고 세 개의 심장을 회수한 나르바는 그것을 품속의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병사가 도망친 앙켈만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화아악-!

중대급 규모의 텔레포트가 시전되었다.

꽤 커다란 광명이 드리웠고, 빛이 사라졌을 때 주위의 풍경은 살게라의 설탑이 아닌 드넓은 샬롯 고원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샬롯 고원에는 대륙 최고의 무력 집단이 소환되었다.

일반병은 없었다.

소환된 이 하나하나 모두가 굉장한 무력을 가진 실력자들이었다.

그들 모두는 샬롯 고원으로 소환되자마자 각자의 무기에 손을 올렸다.

…….

허리를 숙이고 침묵을 삼켰다.

혹시라도 갑작스러운 기습이 날아올까 싶어 다들 신경을 곤두세운 것이다.

그러나 시야가 밝아지고 주변 사물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사색이 되어 입가로 손을 가져다 댄 것은 다름 아닌 헬라였다.

헬라는 진심으로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드리워진 풍경은 샬롯 고원 특유의 푸르름이 아닌,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괴물들의 향연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그리고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헨리가 손을 들어 모두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분명히 엄청난 수의 키메라들이었다.

하지만 키메라들은 모두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망부석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게 세뇌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뭐지?’

텔레포트를 통해 발생된 광명은 분명히 적지 않은 광명이었다.

이는 키메라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들짐승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키메라들은 그런 광명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헨리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헨리!”

“괜찮아요.”

대열을 이탈하고 빠져나가는 헨리를 반이 불러 세웠지만 헨리는 되려 일행을 안심시킨 후 기세 좋게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 있는 키메라는 킬라이브에서 보았던 녀석과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얼굴이 없고 날카로운 이빨과 입만 보이는, 그리고 사족보행을 할 것처럼 근육이 발달된 꼬리가 달린 키메라.

녀석의 얼굴엔 벌려진 입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녀석이 하늘을 향해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헨리는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바로 앞에서 인간의 살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말이다.

하지만 키메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헨리는 키메라에 손을 댔다.

사람과 비슷한 촉감이지만 그래도 더 닮은 것을 찾으라면 오히려 짐승의 가죽에 가까운 피부였다.

그러나 녀석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쯧.”

헨리는 혀를 찼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천에 달하는 키메라들이 바보처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착검.”

헨리는 콜소드를 소환했다.

그리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검을 휘둘러 키메라의 목을 잘라 냈다.

깨끗하게 잘리는 단면.

머리를 잃은 키메라가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지독했다.

놈은 머리가 잘리고 바닥에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피비린내가 풍겨져 나왔다.

하지만 그런 피비린내에도 불구하고 키메라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뭐야 이놈들?”

급기야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맥도웰과 반이 답답하다는 얼굴을 하고서 헨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순간, 헤라리온이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서 모두에게 말했다.

“자, 잠시만요……!”

“음?”

모두의 시선이 헤라리온에게로 몰렸다. 그리고 헤라리온은 반쯤 벌어진 입과 함께 떨리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저기 하늘에…….”

“하늘에 뭐가 있기에 그렇게 놀라는…… 어?”

“……!”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몰렸다.

그리고 집중된 시선의 끝에는 허공 위에 부유하고 있는 두 개의 의자가 있었다.

“안녕?”

“아서스……!”

두 개의 의자 위에는 헨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서스와 드라칸이 다리를 꼰 채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라칸?”

헨리에 이어 말끝을 흐린 것은 설탑의 생물학파장, 아가스 드루이드였다.

그러나 모든 학파장들이 기억하기에, 그들이 알고 있는 드라칸의 모습과 의자 위에 앉아 있는 드라칸은 완벽하게 다른 존재였다.

아서스가 말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는군요.”

의자가 움직였다.

공중에 높이 올라가 있던 의자는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들과 시선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하강했다.

이윽고 양측이 시선을 마주하게 되자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아서스였다.

아서스는 두 손을 모으며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소식이 제법 빠른데? 사도들을 출발시킨 지 아직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사도……? 그게 무슨 말이지?”

“응? 내가 보낸 사도들의 말을 듣고 이리로 온 게 아니었어?”

헨리는 지금 아서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는 헨리와는 달리, 아서스는 빠르게 상황 파악을 끝마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아서스는 무척이나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아직 헨리 일행이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받아 보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아서스가 미소와 함께 두 손을 더더욱 모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온 건 아무래도 다른 경로를 통한 추적이었나 보네. 후후, 하지만 뭐가 됐든 간에 며칠 만에 날 찾아낸 건 충분히 칭찬할 만한 사실이야. 아니지, 대마법사의 하나뿐인 수제자니 이 정도는 어려운 일 축에도 속하지 않는 건가?”

“그게 지금 무슨……!”

“아서스!”

그때였다.

빙글거리며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아서스의 모양새가 너무나도 고까운 나머지, 분노를 참지 못한 발락이 등에 이고 있던 검은 형벌을 아서스에게 집어던졌다.

후웅!

검은 형벌이 거센 바람소리를 내며 아서스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

검은 형벌은 아서스뿐만이 아니라, 아서스가 등을 붙이고 있는 의자까지도 관통하면서 저만치 날아갔다.

이에 모두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저, 저 힘은……!”

특히나 더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헤라리온이었다.

그리고 헤라리온과 마찬가지로 성녀 아이리네 또한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서 아서스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했더니 발락이었잖아? 그나저나 실망이야. 그새를 못 참고 헨리에게 붙어먹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네놈이 감히……!”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발락은 분노로 손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아서스는 그러한 발락의 분노를 보며 기쁜 듯이 더더욱 조롱을 일삼았다.

아서스의 행동은 마치 간사한 간신배의 그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간신배 같은 행동으로부터 나오는 기세는, 몹시 역설적이게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이들을 압도할 만큼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하하, 다들 할 말들이 많겠지. 하지만 이를 어쩌나, 나는 아직 너희들과 할 말이 없는 걸……. 그러니 나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먼저 그에 맞는 격을 갖추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내 선물부터 확인해 보고.”

“선물이라니? 아까부터 그게 대체 무슨……!”

“쉿! 그런 걸 선물해 준 사람이 일일이 말해 주면 재미없지. 선물 상자란 건 자고로 받은 사람이 직접 열어 봐야 재미있는 법이잖아? 그럼 모처럼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이대로 돌아가기엔 아쉬울 테니 우선은 내 병사들과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라고. 그럼 나중에 봐, 헨리.”

“아서스!”

할 말을 마친 아서스는 손을 흔들며 다시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뒤늦게 아서스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아서스는 드라칸과 함께 의자째로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아서스가 사라진 그 순간.

-키에에에에!

하늘을 향해 고개만 쳐들고 있던 수천 마리의 키메라들이 일제히 날카롭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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