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52화 (252/522)

# 252

착각 (1)

“어째서……?”

몇 번이나 다시 두 팔을 벌리고 야누스를 소환하는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헤라리온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의 선조가 왕권을 손에 넣은 이후, 할아버지도, 아버지 때에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이 자신의 세대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럴 순 없어…….”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교차됐다.

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 보아도 왜 야누스가 자신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전신에 흐르는 식은땀 때문에 의복이 축축하게 젖었다.

이에 헤라리온은 품속에서 야누스의 증표로 불리는 검은색 반지를 꺼내 들었다.

그런 다음 꺼내 든 반지를 양손으로 포개어 쥔 뒤 소중한 것을 끌어안듯 가슴팍에 품었다.

그리고 기도의 자세를 취했다.

헤라리온의 전신에 깃드는 신력.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야누스의 증표로 불리는 반지에 여전히 신의 총애가 깃들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말도 안 돼.”

팅-

떨그러렁…….

창백해진 헤라리온의 얼굴.

헤라리온은 힘이 풀린 손아귀를 양쪽으로 늘어뜨렸다.

덕분에 증표라고 불리던 반지가 손아귀를 벗어나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제사장들이 보면 기겁을 할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누스의 증표 같은 신물은 왕가의 보물로 분류되기에 목숨보다 더더욱 소중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신물이자 왕가의 보물이라고 불렸던 야누스의 증표로부터 이제는 단 한줌의 신력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라리온이 실성한 듯이 속삭였다.

“야누스가…… 사라졌다?”

추측이나 가설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라의 힘을 통해 확인한 진짜 ‘현실’이었다.

* * *

엘라곤을 성공적으로 진화시킨 헨리는 전력 강화를 마쳤으니 본래 하려던 일을 다시 진행하려고 했다.

본래 진행하려던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사라진 아서스의 척살과 샬롯 고원에 도사리고 있는 키메라 군단의 말살이었다.

이에 헨리는 자신을 도와주기로 한 이들에게 다시금 소집령을 내렸다.

소집 장소는 설탑의 최상층.

제국을 탈환하고 황궁 또한 손에 넣었으니 모양새 좋게 황궁에서 회의해도 되었지만 이는 순전히 헨리의 선택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서스가 쓰던 곳에서 전략 회의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윽고 커다란 원탁에 소집령을 받은 인물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헨리와 아크 메이지들, 그리고 헨리를 보필하는 기사들과 제방 전투에서 합류한 용병국 페이실링, 그리고 세인트 홀의 전사들, 마지막으로 각 연합국의 수장들이었다.

반과 맥도웰, 그리고 바할드와 헥터, 마지막으로 로난.

그들은 여느 때와 같이 원탁 앞에 앉지 않고 헨리의 뒤편에 섰다.

이제 그들은 누가 봐도 완연한 헨리의 친위대들이었다.

그리고 그 친위대에 합류하게 된 여섯 번째 기사 또한 굳건한 모습으로 헨리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여섯 번째 기사.

그는 다름 아닌 발락이었다.

“크크큭,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 징벌왕을 다 구워삶다니 말이야.”

입을 연 것은 맥도웰이었다.

발락이 헨리의 편에 서게 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한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지난 번 대결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도웰의 말에 발락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목석같은 성격을 내세워 시선을 앞으로 한 채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마리스의 여제, 헬라가 말했다.

“하아…… 이거 아무래도 약속을 잘못한 것 같아. 이렇게 멋진 남자들이 잔뜩 있을 줄 알았다면 달랑 헨리 한 명만으로 만족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지.”

그녀는 진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한 사내의 딸을 갖는 것이 아마리스 여자들의 공통된 소망이었으니까.

이에 알렌이 빙긋 웃으며 맞은편의 여제에게 물었다.

“여제님, 그럼 저는 어떠십니까?”

“으흠?”

알렌의 말에 여제가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조용히 해, 알렌.”

알렌의 뒤편에 서 있던 마실라가 알렌의 어깨를 꼬집으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이에 헬라 또한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당신이 용병왕 알렌이지? 당신 같은 남자도 취향이긴 하지만…… 당신은 지키고 있는 고양이가 너무 앙칼져서 말이지.”

찌릿.

헬라의 농담에 눈을 매섭게 치켜뜨는 마실라.

마실라가 헬라를 노려보자 헬라는 그런 마실라가 무척이나 귀엽다는 듯이 꺄르륵 웃어보였다.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들 헨리와 비람의 합작 환술을 통해 아서스가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각자가 원하는 것들을 손쉽게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헨리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아서스와 키메라 군단의 처리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회의랄 것도 없었다.

키메라 군단의 위치는 스칼을 통해 이미 확보되었다.

키메라 군단의 수준은 일반 병사들로는 전혀 해를 끼칠 수가 없었기에 군대를 조직한다 하더라도 실력 있는 소수 정예로 조직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헨리는 짧은 시간 동안 군대를 재편성하는 대신 자신의 전력을 강화시킨 것이고.

이에 헨리는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헨리의 설명이 끝날 때쯤, 알렌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대마법사님, 그럼 지금 당장 샬롯 고원으로 가면 되는 겁니까?”

직설적인 물음이었다.

이에 헨리 또한 직관적으로 대답했다.

“키메라 군단이 여전히 샬롯 고원에 있다면 그곳으로 가서 한꺼번에 쓸어버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지체할 것 없이 곧바로 이동하시죠. 여기 계신 마법사님들이 힘을 합치면 저희들 정돈 얼마든지 이동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헨리의 힘은 전쟁을 통해 이미 충분히 확인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아군이 되었으니 당당하게 텔레포트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구요.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여러분들을 불러 모은 것이기도 합니다.”

“됐네, 그럼. 다들 짐 챙기고 바로 출발하자고.”

알렌의 요구와 헨리의 맞장구에, 잠자코 듣고 있던 맥도웰이 회의를 종결시켰다.

명확한 결론이었다.

이에 헨리도 맥도웰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동은 탑의 1층에서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각자 준비를 끝마치신 뒤, 정확히 1시간 후에 출발토록 하겠습니다.”

각 나라와 연결된 텔레포트 게이트가 1층에 있으니 헨리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준비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헨리의 마지막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나 모두가 준비를 위해 빠져나갔을 때, 헤라리온은 여전히 회장에 남아 있었다.

심각한 표정의 헤라리온.

남아 있는 헤라리온을 발견한 헨리가 물었다.

“헤라리온 전하.”

“아, 마법사님…….”

“이번 전투는 일반병을 제외한 소수 정예로 구성될 예정이라 혹시라도 부담스러우시다면 전하께선 굳이 참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헤라리온을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헤라리온과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니 사전에 배려해 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헤라리온은 아직 과거의 베네딕만큼 강해지지 못했으니까.

이에 헤라리온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제 저도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빛이 결연했다.

이에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십시오. 물론 전하만큼은 제가 보필해 드릴 테지만…….”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법사님.”

“예?”

“마법사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해 주실 말씀이라…… 중요한 이야깁니까?”

“저에겐 몹시 중요한 일이긴 한데……. 아닙니다, 곧 전투에 참여하셔야 할 몸이신데 제가 괜한 이야기를 꺼냈군요. 이 이야기는 모든 전투가 끝난 뒤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 궁금해졌긴 하지만…… 알겠습니다. 그 말씀,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헤라리온은 결국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지 못했다.

방을 빠져나가는 헤라리온.

헨리는 그런 헤라리온에게서 찝찝한 기분을 느꼈지만 단순한 착각이려니 넘기기로 했다.

곧 있으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대규모 전투가 일어날 예정이었으니까.

헨리는 헤라리온까지 방에서 빠져나간 걸 확인한 후, 다시 한 번 스칼을 소환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키메라 군단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에야 최종 목적지를 설정할 수 있었다.

‘놈들은 아직 샬롯 고원에 있다. 그러니 오늘 안에 반드시 그놈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이 지긋지긋한 악연의 종지부를 찍겠다.’

결심을 마친 헨리의 두 눈에 굳은 의지가 타올랐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 근데, 헨리. 이번에도 설마 그냥이야……?

“씁!”

-알았어…….

할일을 마친 스칼은 스스로 다시 이계로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 * *

하즈는 아이니아 제국의 황실로부터 헨리의 인장이 찍힌 편지 한 통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헨리가 다시 황권을 붙잡았으니 모든 경계 태세를 해제하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모든 것들을 전환시키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뛸 듯이 기뻤다.

그 말인즉슨, 이제는 전쟁이 끝났으니 다시 예전처럼 놀고먹으며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전해 받은 하즈는 황권을 탈환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즉시 해리스에게 도시의 모든 경계 태세를 해제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그러한 명령은 곧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되어 해리스에서 하급 공무원으로, 하급 공무원에서 성벽을 지키는 도시군들에게로까지 전해졌다.

“경계를 해제하라!”

“결계를 해제하라!”

이는 분명히 기쁜 소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이라는 기회 덕분에 일개 자유도시가 하나의 독립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긴 하였지만, 그에 따른 자체적인 국방력을 유지하는데 너무나도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걱정도 끝이었다.

전쟁은 끝났고 황권을 헨리가 쥐게 되었으니 이제 헨리가 죽거나 변심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헨리’라는 이름이 보증하는 절대적인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될 테니까.

‘우선은 도시군부터 축소시켜야겠어.’

신바람이 난 것은 하즈뿐만이 아니었다.

하즈 대신 앙켈만을 운영해 오던 해리스 또한 예산을 대폭 절약할 생각에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앙켈만뿐만이 아니라 비발디 타운과 무슈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 즉 태평성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모두들 믿었다.

그에 따라 잔뜩 날이 섰던 사람들의 신경도 온화하게 내려앉기 시작했고, 대륙 전체에 굳어 있던 긴장 또한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소식 들었어? 전쟁이 끝난 기념으로 모든 병사들에게 유급휴가를 지급한다던데?”

“유급휴가! 그게 정말이야?”

“이미 다른 나라에선 시작됐다고 하던데…… 크으, 생각보다 전쟁이 빨리 끝나긴 했지만 뭐, 모쪼록 참 다행이야.”

“그 말엔 나도 동의하지. 그래서 말인데, 그런 의미로 오늘 한잔?”

“조오치이이!”

병사들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더불어 최고 수준에 달했던 경계 태세도 해제되었으니 군에서도 경계 병력을 줄이고 병사들에게 휴식을 권했다.

따라서 한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성문 또한 개방되었다.

순차적이긴 했지만, 전쟁 때문에 도시 내부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이제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상인들도 본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성문이 개방되면서 성문 앞에는 여느 때와 같이 4명 정도의 병사들이 근무대를 만들어 시민들의 출입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첫 근무는 나다! 뭐든 초번이 최고지!”

“빨리 근무 끝나고 퇴근했으면 좋겠어, 이젠 너무 지쳤거든.”

“이따가 나랑 한잔하러 갈 사람?”

“나.”

“좋았어.”

성문 근무를 나온 병사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그만큼 병사들의 사기가 회복되었다는 증거.

그때였다.

“어? 야야, 저기 봐봐. 벌써 누가 오는데?”

“엥, 정말이네?”

병사는 멀리서 희미하게 다가오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인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놀랄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문이 개방되자마자 방문객이 찾아온 것이었으니까.

“소식도 빠르네. 꼭 기다렸다는 듯이 오는 것 같잖아?”

“에이 설마, 우연이겠지. 우리 내기할래? 저 사람 고향이 어딘지 말이야.”

“좋아, 그럼 내기에서 진 사람이 이따가 퇴근하고 술 사기.”

“오케이.”

신분패에는 그 사람이 태어난 고향에 대한 정보가 적혀져 있다.

그래서 병사들은 이따금씩 방문객의 고향으로 내기를 하곤 했다.

이윽고 후드를 뒤집어 쓴 사람이 성문 앞까지 다가왔다.

방문객은 키가 매우 작은 사람이었다.

대략 150cm정도.

게다가 체구도 갸냘픈 것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녀를 연상케 했다.

이에 병사가 말했다.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정중한 물음.

병사의 질문에 후드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방문객이 고개를 든 순간, 후드 속에 감추어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순간, 방문객의 얼굴을 확인한 병사의 전신에 좌악 소름이 끼쳤다.

“어, 어……?”

너무 놀라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병사의 얼굴을 본 방문객은 입가를 주욱 찢어 귀밑까지 입꼬리를 걸어 보였다.

인간이라면 절대로 올릴 수 없는 곳까지 말이다.

“도, 도망……!”

병사는 순간, 얼빠진 정신을 대차게 붙잡았다.

그리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소리를 지르려 하였다.

그러나…….

“그러면 안 돼지.”

촤아악!

방문객의 얼굴로부터 숱한 촉수들이 뿜어져 나와 병사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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