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45화 (245/522)
  • # 245

    새로운 탄생 (3)

    -키이이익……!

    베이브는 공포에 떨었다.

    헥터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척이라곤 조금도 들리지 않았던 이 킬라이브에서 낯선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울음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키메라였다.

    녀석은 체액이 뚝뚝 떨어지는 피부에 눈과 코가 뭉개져 있었으며 귀밑까지 찢어져 있는 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사족 보행을 하였으며 몸뚱이만큼이나 기다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크르르…….

    녀석은 벌써 며칠째 베이브가 있는 지하 7층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코가 뭉개져 있어서 그런지 냄새는 맡지 못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청각이 극도로 발달해, 베이브가 아주 조그만 소리라도 내면 귀신같이 알아듣고서는 울음소리를 내며 베이브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것도 아주 얇디얇은 벽 한 개를 사이에 두고서 말이다.

    덜덜덜…….

    아이리네에게 기도를 올린 후, 베이브는 물도 마시지 못하고 벌레 같은 것도 집어먹지 못한 채 벌써 며칠을 제자리에서 굳은 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혹시라도 벽 너머의 괴물이 이 얇디얇은 벽을 깨부수고 자신을 잡아먹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젠 정말로 한계였다.

    헥터는 열흘이 걸린다고 하였지만 이제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이다.

    가뜩이나 영양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흘이나 버틴 것은 베이브에겐 여러모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기적도 이젠 정말로 끝이었다.

    베이브는 졸렸다.

    눈꺼풀이 무거웠고 불안함에 크게 쉬지 못한 숨이 점점 더 가슴을 조여와 신경쇠약에 걸리게 했다.

    입술은 바싹 타들어 갔다.

    성대 또한 나무껍질처럼 말라붙었는지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똑-.

    멀지 않은 곳에서 베이브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베이브가 평소에 수분을 공급받던 천장의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이슬은 꽤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베이브의 보폭으로 서너 걸음 정도.

    그러나 벌써 사흘째 베이브는 키메라의 예민함이 두려워, 불과 몇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방울의 이슬도 입에 머금지 못했다.

    이젠 정말로 한계였다.

    오죽하면 이젠 정말 죽어도 좋으니 이슬 몇 방울이라도 입에 머금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고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윽고 헥터가 떠난 뒤 세 번째 해가 지기 시작했다.

    북부의 저녁은 해가 지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추워진다.

    이에 베이브 또한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러나 추위든 배고픔이든, 육체의 고통이 선명해질수록 눈앞의 이슬에 대한 욕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려…….’

    해가 지고 몇 시간 뒤, 베이브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예컨대, 이따금씩 들려오는 키메라의 울음소리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베이브는 행복한 상상을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 빌어먹을 키메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게 아닐까 싶은 그런 상상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베이브의 삶에 대한 미련과 행복한 상상이 역설적으로 교차되어 갈 때쯤, 베이브는 큰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래, 먹자! 먹을 수 있어……!’

    용기가 생긴 베이브는 전신의 근육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선뜻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탓에 근육과 관절들이 뻣뻣하게 굳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이브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어떻게든 근육을 비틀고 관절을 두드렸다.

    덕분에 온몸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악착같이 움직였다.

    이까짓 육체의 고통 따위가 저기 코앞에서 떨어지고 있는 이슬 몇 방울의 달콤함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베이브는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렸지만.

    그래도 아직은 완연히 떨쳐내지 못한 공포 때문에 벽을 짚으며 자리에서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

    “어, 어……!”

    몸이 기울었다.

    사흘 만에 자리에서 일어난 까닭일까?

    충분히 몸을 지탱했다고 생각했는데 베이브의 무릎 사정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동시에 현기증이 일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 탓에 벽을 짚고 완전히 허리를 폈을 때쯤, 베이브는 그만 옆으로 기우뚱 무너지고 말았다.

    몸이 쓰러진다.

    하지만 평소의 운동신경이라면 이 정도 비틀거림 따위, 얼마든지 다시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내던 상황.

    평소의 운동신경 따위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가 천천히 기울어지면서 베이브의 시간 또한 느리게 흘러갔다.

    그것은 마치 주마등을 볼 때나 느끼는 느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베이브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굶고 굶어서 한없이 가벼울 몸일 테지만, 그래도 이 가벼운 육신이 땅에 쓰러져 내는 소리는 저 벽 너머의 괴물을 불러들이기엔 충분한 미끼가 될 것이다.

    ‘결국…….’

    베이브는 땅에 쓰러지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닥쳐올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보이지 않는 공포에 가늘게 몸을 떨었다.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다시 원래의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털썩!

    -키에에에에!!

    40킬로그램도 안 되는 조그마한 육신이 내는 소리는 깃털이 바닥에 떨어지듯 몹시 작았다.

    하지만 바깥의 키메라에게 위치를 제공하기엔 아주 충분한 것이었다.

    쿠구! 쿠구! 쿠구!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키메라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키메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뚱이를 내던졌다.

    콰아앙!

    후두둑-! 쩌저적-!

    키메라가 몸뚱이를 한 번 내던지자 가뜩이나 금이 가 있던 벽에 위태로운 균열이 생겼다.

    -키아아아!

    콰아앙!

    후두둑-! 쩌저적-!

    그리고 두 번째로 몸을 내던졌을 때, 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온힘을 다해 전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후두두둑-!

    그리고 마침내 키메라가 마지막으로 몸뚱이를 내던졌을 때, 위태로웠던 벽은 무너지고 말았고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돌 부스러기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신이시여…….’

    그리고 베이브는, 바닥에 쓰러져 천 근 같은 눈꺼풀을 겨우 들어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이제 저 흙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이빨이 날카로운 키메라가 다가와 자신을 뼈까지 통째로 씹어 먹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말이다.

    이윽고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동시에 공포와 절망으로 인해 눈앞이 뿌예지기 시작했다.

    눈앞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키아아아아!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두 귀로부터 들려오는 괴물의 울음소리는 또렷했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베이브는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잃은 베이브의 머리를 향해 키메라의 날카로운 이빨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서걱!

    푸슈슈슉-!

    헨리는 검을 휘둘러 키메라의 목을 깨끗하게 잘라 냈다.

    그리고 바람을 일으켜 자욱한 흙먼지를 저만치 걷어 냈다.

    그런 다음 헥터에게 물었다.

    “헥터, 쟤 맞아?”

    “오, 그래! 쟤가 맞아! 확실해!”

    “죽은 것 같은데?”

    “아니야 이놈아!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벽을 무너뜨렸던 키메라가 죽었다.

    그리고 키메라를 죽인 것은 다름 아닌 헨리였다.

    “베이브! 베이브!”

    헥터가 쓰러진 베이브의 이름을 다급히 부르짖었다.

    전쟁이 끝난 후, 헨리는 헥터의 부탁으로 헥터와 함께 킬라이브의 마지막 생존자로 추정되는 베이브를 데리러 왔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텔레포트로 킬라이브로 들어왔을 때, 마침 키메라 한 마리가 벽을 향에 몸뚱이를 내던지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그리고 벽을 무너뜨린 키메라를 처치한 곳에서 죽어 가고 있는 베이브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헨리! 얼른 그거 내놔!”

    “여기.”

    흑갑옷 대신 코룬의 육체를 착용한 헥터는, 헨리로부터 작은 꾸러미를 낚아챈 후 다급히 그것을 열었다.

    꾸러미 속에는 아이리네가 만들어 준 힐링 포션과 급속도로 영양을 보충시킬 수 있는 영약 들이 들어 있었다.

    “정신 차려라, 베이브! 내가 널 데리러 왔다!”

    헥터는 베이브의 입에 환약을 으깨 넣은 뒤 포션을 부었다.

    그러자 기절한 베이브의 육체가, 며칠 만에 찾아든 수분에 반응하여 본능적으로 입을 오물거리고 목젖을 움직이게 했다.

    베이브의 손끝이 떨린다.

    그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열여섯 어린 소년의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됐어……!”

    기뻐하는 헥터.

    베이브를 살려냈다는 생각에 그제야 한시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베이브가 살아난 걸 본 헨리는 고개를 돌려 지하 7층의 킬라이브를 둘러보았다.

    ‘여기서 생체 실험이 이루어졌단 말이지?’

    대륙 전역에 널린 중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곳이 바로 이곳 킬라이브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수감된 범죄자의 수만 해도 최소 몇 만.

    게다가 이곳에 수감된 놈들은 대부분이 살인강도 같은 흉악범들이 대부분이니 보통 사람들보다 신체적 조건도 훨씬 월등했다.

    그러니 이놈들을 데려다가 만든 키메라는 분명히 보통의 병사나 기사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이 분명했다.

    ‘골치 아프네, 진짜.’

    좀 전에 썰어 버린 놈도 헨리가 워낙에 강해서 그렇지, 베어낸 촉감의 경도로만 따져보았을 때 익스퍼트급 오러로는 절대로 베어 낼 수 없는 놈이었다.

    그리고 킬라이브 전체에 이놈 한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걸로 보건데, 분명히 이놈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예컨대 베이브 같은 사람들의 처리나 맡은 하급 조무래기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골치가 아픈 것이었다.

    조무래기 주제에 이런 경도를 가진 키메라라니, 아서스가 부릴 키메라 군단의 힘이 얼추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서둘러야겠어.’

    생존자 구조 겸 현장 답사를 마친 헨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두 사람을 데리고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

    “……예?”

    “왜, 싫어?”

    “아, 아니 잠시만요! 대마법사님, 제가 방금 무얼 들은 거죠?”

    “아이니아 제국에 황제 자리가 비었다고. 그래서 그 자리에 널 앉힐 생각인데 생각이 있냐고 묻고 있는 거다, 지금.”

    쨍그랑!

    헨리의 질문에, 텐은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유리잔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유리잔이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텐은 시간이 멈춘 사람처럼 꼿꼿이 굳고 말았다.

    “텐?”

    “…….”

    “……텐.”

    “…….”

    “텐!”

    “아, 아, 네, 네! 대마법사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아, 저 그게…… 제 생각에 저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은 꿈을 말이죠. 그러니까 대마법사님께서 그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제게 하신 거겠죠? 이것 보십시오, 여긴 분명히 꿈일 테니까 이렇게 깨진 유리로 제 손등에 상처를 내도…… 아얏! 꿈……이 아니야?”

    이곳이 꿈임을 증명하기 위해 텐은 바닥에 떨어진 깨진 유리조각을 들어 손등을 그었다.

    그러자 손등 위로 선명한 혈흔이 그어지며 핏방울이 맺혔다.

    이에 다시금 휘둥그레지는 눈과 반쯤 벌려지는 입.

    그 모습을 본 헨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텐. 정신 차려. 네가 들은 건 모두 진실이고, 지금 이 상황은 꿈 따위가 아니야. 그리고 난 정말로 아서스 대신 제국을 통치해 줄 유능한 경영자가 필요해.”

    “그, 그런, 마, 말도 안 돼……!”

    좀처럼 믿기 힘들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텐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록펠러가 이끄는 제국군을 상대로 도시군에게 지급할 식량 따위의 물자들을 보급하고 있었으니까.

    이에 텐은 고개를 잠깐 흔들고서 다시금 침착하게 질문했다.

    “대, 대마법사님! 하지만 지금은 아직 전쟁 중이지 않습니까? 이런 전쟁 통에 황좌가 비었다는 건…….”

    “누가 전쟁 중이래?”

    “예? 아니 지금 당장 바깥에만 하더라도 도시군과 제국군이 한참 전투를…….”

    텐의 물음에 헨리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쳐 보이자 그곳에는 비발디 타운과 교전을 벌이던 제4군단장, 록펠러의 수급이 들려져 있었다.

    “방금 전에 잘라온 록펠러의 수급이다. 전쟁은 이미 끝났어. 아서스는 도망쳤고 다른 군단장들도 더 이상 연합국을 향해 칼을 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헨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헨리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 흔한 성씨조차 없는 자신이 대륙의 절반을 넘게 장악한 대제국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헨리가 쭉 설명을 잇던 중, 그제야 정신을 차린 텐이 헨리에게 다시금 질문했다.

    “대마법사님…… 지금 하신 제안, 정말로 진심이십니까……?”

    “말했잖아, 난 유능한 경영자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난 이제 지쳤어, 멍청한 놈이 황위에 앉아 제멋대로 칼을 휘두르는 건.”

    “대마법사님…….”

    “그러니 너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다, 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너를 도울 것이고, 풀지 못할 일이 생겨도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그러니 넌 날 믿고 내가 약속한 황금왕이 되어 제국을 더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마 내 스승님도 그런 뜻에선 네가 황제가 되는 걸 적극적으로 찬성하실 것이다.”

    “대마법사님……!”

    헨리의 다정한 제안에, 텐은 끝끝내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헨리에게서 감동하여 흘린 눈물만은 아니었다.

    눈물 속에는,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과 동시에 그동안 착실히 살아온 것에 대한 결실을 맺었다는 기쁨과 환희의 눈물도 뒤섞여 있었다.

    “대마법사님! 정말!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이로써 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의 네 번째 황제가 비공식적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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