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44화 (244/522)
  • # 244

    새로운 탄생 (2)

    텐.

    비발디 타운의 가장 큰손이자 헨리의 가장 충실하고 쓸모 많은 친구였다.

    물론 굳이 수직적 관계를 들이밀자면 텐은 헨리의 하수인쯤 되겠지만, 헨리는 텐을 결코 하수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헨리는 텐을 자신의 사람이라고 인정했으니까.

    더불어 헨리는 텐을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일 때, ‘미래의 황금왕’이라는 찬란하고 눈부신 미래를 약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헨리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텐을 추천했다.

    “텐이 누구야?”

    그러나 이중에서 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헨리와 함께 온 사람들이 고작이었다.

    이에 제국군 간부들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워 보이자 맥도웰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헨리, 그 말…… 진심이야?”

    “그럼요, 진심이죠. 친구의 혈육이라고 해서 능력도 없는 녀석을 왕위에 앉히는 것보단,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 온, 능력 있는 일꾼을 왕으로 앉히는 게 저나 이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선택이지 않겠어요?”

    “하하, 이 미친놈!”

    구구절절 맞는 말에, 맥도웰은 헛웃음에서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것은 반과 바할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패는 한 번이면 족하다.

    그들은 이미 과거에 쓰디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경험했고, 새롭게 환생한 헨리에 의해 잃을 것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헨리가 생뚱맞은 장사치뿐만이 아니라, 길거리의 거지를 데려다가 황좌에 앉히겠다고 한들, 전혀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짝! 짝! 짝! 짝!

    “멋지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반이 박수를 치며 진심어린 찬사를 보냈다.

    이들의 동의를 얻어 낸 헨리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제국군의 간부들을 바라보았다.

    “어때요? 내가 추천한 사람, 한번 볼래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이리도 강력히 추천을 하시는 겁니까?”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높은 자리에 올라서고 심성이 변한다 한들, 내가 모두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그렇다면 결국 대마법사님은 마법사님의 허수아비를 황좌에 앉혀 놓고 싶으신 게 아닙니까?”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두세요. 난 권력에 욕심이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내 마음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걸.”

    헨리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헨리가 끝맺은 말 속에는 서먼 메테오만큼이나 서슬 퍼렇고 힘센 경고가 들어 있었다.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제국의 간부들이 텐을 직접 만나 보고 반대를 한다고 한들, 저들은 헨리의 선택을 꺾을 수 있을 만한 도의적인 명분이나 논리적인 근거 따위가 없었다.

    이윽고 차기 황제에 대한 논의를 마친 헨리는 다음 안건을 언급했다.

    “자, 그럼. 차기 황제에 대한 인물도 대충 정해졌으니…… 이제부턴 도망친 아서스와 키메라들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할까요?”

    본론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 * *

    “키아아아!”

    키메라들의 울음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제각기 다른 형상들을 하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모두 다 선뜻 형언하기 힘든, 그로테스크한 외형들을 가지고 있었다.

    키메라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전신의 근육이 굳은 듯, 녀석들은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방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멀지 않은 곳에 시체로 된 산이 잔뜩 쌓여 있었고, 거기서 흘러나온 핏물들이 강가를 이루어 거대한 피 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시체의 산이 여럿 보였다.

    개중에는 평범한 시체의 산들도 있었지만, 어떤 산은 관절이 뒤틀리고 미라처럼 바싹 마른 시체들만 쌓여 있기도 했다.

    그 시체들은 악마의 열매, 그리벨을 싹 틔우고 시들어 버린 숙주이자 살아 있는 비료들이었다.

    어지럽게 놓인 시체와 키메라들.

    난잡하게 벌려져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규칙적으로 군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군집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마법진의 핵이라고 부를 수 있을 중심에는, 거미 마물, 아라크네의 흑색실로 만들어진 것 같은 거대한 고치가 웅장하게 세워져 있었다.

    고치가 세워진지 이제 이틀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고치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지독한 악취를 뿜었다.

    그리고 동시에, 살아 있는 심장처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키르르르…….

    고치와 가까워질수록 드라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키메라들이 대거 분포되어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집채만 한 키메라, 거슬렁거도 있었다.

    거슬렁거는 거대한 눈꺼풀을 감은 채 묵묵한 바위산처럼 조용히 숨을 죽이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가 더 지났다.

    고치가 만들어진 지 마침내 사흘째가 되던 날, 묵빛을 띠던 고치는 내부에서부터 환한 빛무리를 싹 틔워 내기 시작했다.

    조그맣던 광휘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고치 전체를 밝게 비출 때쯤, 고치는 가장 위에서부터,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천천히 균열을 일으켰다.

    쩍- 쩌저적-

    균열이 일고 고치가 갈라질 때마다 고치가 품고 있던 빛이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균열이 더더욱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고치 전체를 두동강 낼 만큼 거대한 균열이 일었을 때, 주위를 지키고 있던 키메라 전부가 고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화아아아……!

    새어 나온 빛무리는 곧 쪼개진 고치를 포함해 주변에 포진되어 있던 키메라 전부를 집어삼켰다.

    빛은 점점 더 커졌다.

    그렇게 집어삼켜진 키메라의 숫자만 대략 30여 마리.

    이윽고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했을 때, 빛이 집어삼켰던 서른 마리의 키메라들 전부가 중심부에 있던 고치처럼 거대하고 단단한 알로 변하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빛이 새어 나온 중심부의 고치가 다시 보일 때쯤, 빛은 완전히 사라져 종적을 감추었다.

    턱-

    고치로부터 발 하나가 튀어나와 지상을 내디뎠다.

    그것은 인간의 발이었다.

    그러나 발끝이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피부가 까만 것이 아니었다.

    마치 짙은 어둠 속에 발을 담갔다가 뺀 것처럼, 발은 우주처럼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이윽고 종아리가 보이고 무릎을 지나 허벅지가 보였다.

    그러나 하반신이라 일컬어지는 신체 부위가 보이는 내내, 형태는 사람의 것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싸고 있는 외피는 전혀 사람의 피부색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기이한 검정, 그 자체였다.

    어둠은 허리를 지나 명치를 거쳐 가슴께를 지난 다음에야 점점 더 옅어졌다.

    그리고 어둠이 옅어질 무렵부터 진한 보랏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목젖에 다다랐을 때쯤엔 완연한 살색으로 변해 있었다.

    살색은 목 위의 얼굴뿐만이 아닌 두 손 또한 그러했다.

    형태는 사람이 맞았다.

    하지만 머리가 몹시 길었으며, 얼굴은 처음 보는 형태의 미남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미남자는 눈을 감은 채로 고치 밖으로 나왔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얼굴, 오똑한 콧날, 그리고 그것을 비단결처럼 감싸고 있는 긴 머리카락은 다리처럼 기이한 검은색이었다.

    남자는 곧 완전히 고치 밖으로 나왔다.

    우드득, 우드득.

    밖으로 나온 남자는 예의 남자들처럼 목 관절을 꺾으며 굳은 근육들을 마사지했다.

    그런 후, 가슴을 앞으로 조금 내밀며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하아아아…….”

    남자의 입이 벌려졌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남자는 황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눈을 뜬 순간, 꽃이 개화하듯, 허리까지 오던 검은색 긴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꽃의 개화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남자가 눈을 뜨자, 이윽고 남자 앞에, 남자와 비슷한 외모를 지닌 남자가 아지랑이처럼 나타났다.

    남자는 다름 아닌 아서스였다.

    “이제 완전히 끝난 것이더냐, 드라칸?”

    “그렇습니다, 폐하.”

    고치 속을 걸어 나온 이는 다름 아닌 키메라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자 아서스에 의해 만들어진 단 하나뿐인 역탑주, 드라칸 로티크였다.

    엄청난 변화였다.

    팔 척 장신에 긴 머리, 그리고 창백한 피부와 날이 선 눈매는 보는 이로 하여금 대번에 적대감을 표시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 나쁜 외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귀신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의 드라칸은 더 이상 없었다.

    아서스의 눈앞에는, 감히 인간이라고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이한 아름다움을 가진 미남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켠 드라칸은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서 신기루의 꽃처럼 비단이 피어나더니, 곧 새하얀 피부를 제외한 보랏빛과 검은 피부 전체를 덮는 아름다운 비단옷 한 벌이 생성되어 드라칸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것은 마치 귀족들의 예복을 떠올리게 하는, 아주 고풍스러운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아서스 또한 그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훌륭하군.”

    아서스의 은빛 머리칼과 드라칸의 백색 머리칼은 서로 닮은 듯 닮지 않았지만, 서로 묘하게 어우러졌다.

    옷까지 차려입은 드라칸은 이내 기지개를 폈다.

    상쾌했다.

    아크 메이지의 경지를 이루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7서클의 경지를 이룬 지금, 아크 메이지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상쾌했다.

    마치 공기 중에 흩어진 마나 하나하나와 모두 연결되어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렇다.

    드라칸은 숱한 그리벨의 섭취로 인해 이제야 모든 마법사들이 선망해 마지 않는 7서클의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역사적인 세 번째 7서클 마법사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아서스는 그런 드라칸의 각성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드라칸은 가슴이 벅찼다.

    고작해야 5서클 인간학 마도사에 머물러 있던 자신이, 죽은 헨리를 제외한 마탑의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경지를 스스로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축하한다, 드라칸. 그럼 너는 이제 대륙에서 공식적인 세 번째 7서클 마법사가 되었군.”

    “후훗, 순서로는 세 번째이지만 금방 대륙 유일의 7서클 마법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로군. 그나저나 이 알들은…… 너의 작품인가?”

    “그렇습니다. 정확히 서른 마리입니다. 제가 엄선하여 고른 이 서른 마리의 키메라들은 저의 각성과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경지의 키메라로 재탄생 될 것입니다.”

    “서른 마리라…… 너무 많아서 이름도 다 못 외우겠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녀석들은 알에서 부화하는 대로 곧장 살육전을 벌일 테니까요.”

    “더 나은 존재로 진화했는데도 서열 싸움을 한다고?”

    “말씀하신대로 서른 마리는 너무 많으니까요.”

    선택된 서른 마리의 키메라들은 드라칸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낸 인간학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아크 메이지에서 7서클이 된 지금, 드라칸의 수준은 한층 더 높아졌고 그러므로 아크메이지일 때 만들어 낸 키메라 역작들 또한 한층 더 진화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드라칸은 그들의 진화에 ‘생존 경쟁의 본능’을 주입했고, 그들이 알에서 새롭게 부화했을 때부터 끔찍한 살육전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이에 아서스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훌륭해. 그럼 키메라 군단이 재정비되는 즉시 수도 포식을 시작토록 하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그동안 줄곧 준비해 왔던 아서스의 ‘완전한 군대’가 드디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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