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39화 (239/522)
  • # 239

    더비 매치 (4)

    “당신은……!”

    알렌은 고개를 들어 바할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할드를 발견한 알렌의 입가에, 자기도 모르는 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기사왕!”

    유라시아 대륙에서 검을 잡게 된 이라면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이름.

    그리고 모두가 동경해 마지않았던 모든 검사들의 신앙과도 같은 존재.

    그는 다름 아닌 바할드 제라칸이었다.

    “당신이 어째서 여길……!”

    바할드는 알렌에게 있어 어린 시절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알렌뿐만이 아니라 검을 잡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동경해 마지않았을 테지만.

    하나 그들 중에서도 알렌에겐 유난히도 바할드가 특별한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간 바할드와 맞붙어 보는 것이 알렌의 소원이었으니까.

    알렌은 가슴이 뛰었다.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로 참여한 대륙 정벌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신의 꿈이라고 여겼던 인물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할드의 눈빛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우상이든 말든, 현재 바할드에게 있어 알렌은 그저 제방을 위협하는 불손 세력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음이 모두 녹아내리자 바할드도 곧 전신의 오러를 거두어들였다.

    그런 다음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꼬리를 귀밑까지 올린 알렌을 쳐다보았다.

    ‘성질 변환? 아니면 저 검이 가진 힘인가?’

    오러의 성질을 변환시켜 원소 마법과 같은 힘을 내게 하는 검사는 이 대륙에서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열 명의 검사들은 모두가 바할드의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할드에게 알렌은, 자신의 기억 속에 없는, 오러의 성질 변환이 가능한 희귀한 검사 정도였다.

    ‘검을 맞대어 보면 알 일이지.’

    호기심.

    그러니 바할드에게 알렌은 그저 호기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렇듯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사람의 생각이 잠시간 교차되었다가 흩어졌다.

    그러나 그 잠깐의 교차 시간은 알렌에게 있어 굉장한 자극이 되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알렌은 손에 쥐었던 부르칸을 다시 허리춤에 매달았다.

    그리고 마검 바실리포를 제대로 손에 쥔 후,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돌진하라!”

    “와아아아아!”

    우상이었던 남자와 맞붙을 수 있는 기회가 생각지도 않게 찾아왔다.

    그래서 알렌은 이 꿈같은 시간을 단 1분 1초도 허비하지 않고 알차게 즐기기 위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그에게 보여 주기로 했다.

    이로써 원조 기사왕과 현직 용병왕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 * *

    정돈되지 않은 거친 오러일수록 그것은 사용자가 오러에 대한 사용법이 미숙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중급을 넘어 상급과 최상급에 이르른 오러 사용자들은 오러가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얇게 전신에 코팅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헨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륙 최초의 마검사라서 그런 것일까?

    최초로 두 개의 코어를 동시에 사용하게 된 헨리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에레랄드 빛 오러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헨리는 아직도 이것에 대해 명확한 이름을 지어 주지 못했다.

    왜냐면 이것은 오러와 마력, 두 가지 성질이 섞인 두 가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는 사용법에 따라 이 녹색의 기운을, 오러나 마력으로 편한 대로 골라 가며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지금.

    헨리는 자신만이 가진 이 특이한 힘을 통해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놈들의 육체가 블랙 미스릴로 이루어져 있다면 저 두 놈은 좀 전의 돌진으로 내 매직 실드를 완전히 깨부수었겠지. 하지만 놈들은 그러지 못했다.’

    놈들은 헨리의 매직 실드를 완전히 통과하지 못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됐다.

    놈들의 몸에 함유된 것이 블랙 미스릴이 아니거나, 아니면 블랙 미스릴이 헨리의 마력을 완전히 융해시키지 못했거나.

    헨리는 이 두 가지 추측 중 후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마력을 절연시킬 수 있는 물질은 오직 블랙 미스릴뿐인데, 어찌 됐든 저놈들은 헨리의 매직 실드를 융해시켜 내긴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설은 놈들이 헨리의 마력을 완전히 융해시키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이유가 뭘까?

    헨리는 그 이유를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헨리의 마력이 순수한 마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군.’

    증거는 또 있었다.

    그것은 바로 헨리가 좀 전에 사용한 ‘폭발 증후군’이 바로 그 증거였다.

    원래대로라면, 저들의 몸 전신이 블랙 미스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폭발 증후군을 통해 아주 작은 불씨라도 일어나선 안 되었다.

    하지만 헨리는 똑똑히 보았다.

    그들의 몸에 나타났다가 금방 사그라든 불씨의 흔적들을 말이다.

    이것만 놓고 보아도 헨리의 마력이 저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게 증명된 셈이었다.

    이에 헨리는 전신에 두른 에메랄드 빛 마력을 더더욱 거세게 피어 올렸다.

    화르륵!

    피어오른 마력은 마치 분출되는 가스에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거세게 불타올랐다.

    그리고 도약을 준비하던 핌과 림은 다시 한 번 총알처럼 헨리에게 몸을 날렸다.

    슈우웅!

    강화된 키메라의 근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냈다.

    공기가 찢기는 소리가 들렸고, 핌과 림은 전보다 더 강력해진 힘으로 헨리에게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두 개의 머리통이 헨리의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헨리는 피어 올린 마력을 촉수처럼 만들어 핌과 림을 향해 거세게 휘둘렀다.

    파박! 콰아앙!

    효과는 있었다.

    꼬아 낸 마력의 촉수를 손처럼 휘두르자, 핌과 림은 순식간에 튕겨 내자 나가 각 방향으로 고꾸라져 저 멀리 처박혔다.

    덕분에 헨리는 확신할 수 있었다.

    “효과가 있네.”

    순수한 마력이었으면 이 같은 행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통했다.

    그러니 아서스가 비장의 수라고 준비했을 핌과 림은, 사실상 헨리에게 있어 큰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서스에게까지 미친 듯싶었다.

    ‘설마?’

    가만히 턱을 괴고 있던 아서스의 한쪽 눈썹이 움찔거렸다.

    물론 헨리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졌음을 깨닫자마자 입꼬리가 환하게 올라갔다.

    딱!

    이어서 헨리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닥에 고꾸라져 있던 핌과 림에게 에메랄드 빛 마력 구속구가 채워졌다.

    특별한 마법 같은 게 아니었다.

    온전히 헨리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좀 전에 꼬아 낸 촉수와 같은 종류의 그런 구속구였다.

    구속된 핌과 림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핌과 림의 몸을 감싸 안은 헨리의 마력이 분해됐다가 다시 붙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핌과 림은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

    형제는 굉장한 힘으로 발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구속구을, 단 하나도 끊어 낼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태껏 헨리의 마력이 융해되었던 이유는 융해될 정도의 마력만이 결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는 감히 융해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진하고 단단한, 그리고 엄청난 양의 마력들을 끊임없이 퍼부었다.

    지이잉!

    마력 구속구에 결박당한 핀과 림이 허공에 들려졌다.

    그리고 들려진 형제는 곧 헨리의 코앞까지 당겨졌다.

    블랙 미스릴과 녹색 빛 마력은 끊임없이 융해되고 결집되었으며, 헨리의 두 코어에선 급격하게 방출되는 마력량을 맞추기 위해 쉴 새 없이 코어를 회전시켰다.

    헨리는 끌어당긴 핌과 림의 어깨 너머로 자신을 보고 있는 아서스를 보았다.

    그러고는 자신감이 가득한 미소를 놈에게 한 번 쏘아 준 후,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곧게 펴진 손가락.

    헨리는 곱게 편 손가락을 천천히 구부리기 시작했다.

    부르르.

    손가락이 떨렸다.

    헨리는 주먹을 쥐려 했다.

    그리고 헨리의 손가락이 주먹의 형태에 가까워질수록 눈앞의 형제 또한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근육이 찌그러지고 그 안에 든 뼈가 어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핌과 림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드라칸이 핌과 림의 얼굴 전체를 블랙 미스릴로 덮어놓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형제가 고통을 표현할 길은 단지 온몸을 뒤흔드는 것뿐이었다.

    “흐으읍!”

    헨리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그리고 눈이 벌겋게 충혈되기 시작했으며 심장과 단전의 코어가 과부하를 일으킬 만큼 맹렬하게 회전했다.

    손가락 관절이 거의 굽혀졌다.

    이제 남은 것은 굽힌 관절을 손바닥 쪽으로 당겨 완전히 주먹을 쥐는 것뿐이었다.

    힘들었다.

    손마디가 손바닥과 가까워질수록 눈은 더욱 더 붉어졌고 식은땀이 전신을 적셨다.

    그리고 마침내 다섯 개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접혀 든 순간!

    콰지지직!

    비명을 지르던 전신의 고통이 마침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두 형제의 목숨을 앗아갔다.

    ……추욱.

    운명을 달리 한 핌과 림의 몸뚱이가 아래로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헨리는 그제야 쥐었던 손을 펼치며 호흡을 가쁘게 몰아 쉬었다.

    “후우…….”

    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로써 헨리는 단 한 번의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서, 순수한 마력만으로 블랙 미스릴로 온몸을 도배한 키메라를 굴복시켜 냈다.

    “이런……!”

    이에 아서스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자신과 생명의 기운이 연결되어 있던 핌과 림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윽고 생명을 다한 핌과 림의 사체가 눈 녹듯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악취가 났다.

    마치 수은이 녹아내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전혀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않고서,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듯 마력을 거두어들였다.

    “보여 줄 건 이게 전부인가?”

    헨리는 여전히 황좌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아서스에게 비웃음을 가득 담아 물었다.

    그러자 미간을 찌푸리던 아서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짝- 짝-

    같은 박자로 정확히 다섯 번이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헨리에게 말했다.

    “핌과 림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제자가 스승보다 훨씬 낫군.”

    “아무렴, 청출어람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저세상에 있는 스승이 아주 기뻐하겠어. 좋아, 인정해 주지. 솔직히 좀 놀랐어, 널 위해 특별히 만든 형제였는데 말이야.”

    예상대로였다.

    핌과 림은 오직 헨리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이지 킬러’들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가볍게 메이지 킬러들이 제압당하자 아서스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아서스는 자리에서 일어난 황좌를 뒤로 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나직한 목소리로 헨리에게 말했다.

    “헨리라고 했던가? 참 얄궂은 이름이군. 썩 기분 좋은 이름은 아니야. 어쨌든 스승의 복수를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을 축하해.”

    아서스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비록 여기까지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지만, 이 또한 얼마든지 겸허히 포용할 수 있다는, 그런 종류의 자만심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난 참 궁금해. 대체 무엇이 이토록 너를 분노하게 만들었지?”

    아서스는 궁금했다.

    이제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이 헨리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헨리를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말이다.

    “고작해야 사제지간이잖아? 피붙이도 무엇도 아닌 그냥 사제지간. 그런 사제지간 정도의 인연으로 이렇게까지 분노할 필요가 있을까?”

    아서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보면 헨리는 아서스에게, ‘고작해야 정치 싸움’에 패배한 것뿐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서스는 더더욱 헨리가 분노하는 이유를 공감하지 못했다.

    “하, 하하…….”

    아서스의 물음에, 헨리는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참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어쩌다 헨리는 본인 스스로의 복수가 아닌, 있지도 않은 자신의 스승의 복수를 하겠다는 명분으로 아서스와 대면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어찌 보면 아서스의 말도 맞는 말이긴 했다.

    그래서인지 헨리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이러니함이 입안 가득 씁쓸함으로 번졌다.

    이윽고 헨리가 대꾸했다.

    “글쎄, 궁금하면 저세상에 가서 내 스승한테 한번 물어보든가.”

    화르륵!

    대답을 마친 헨리가 전신에 에메랄드 빛 오러를 폭풍우처럼 출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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