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31화 (231/522)

# 231

폭풍전야 (2)

“사실 필승법이라기엔 좀 거창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말 그대로였다.

필승법이라기엔 너무나도 간단한 전술이었으니까.

연합국이 10만 제국군을 상대로 백병전을 펼치는 동안 헨리는 텅 빈 수도를 기습해 아서스의 목을 가지고 오는 것이 전술의 전부였다.

그렇게만 하면 제아무리 제국군이 우세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판을 뒤집을 수가 있었다.

이에 잠자코 헨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맥도웰이 말했다.

“크크큭, 이 미친놈!”

비난이 아니었다.

헨리의 의견에 격한 찬사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할드와 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의견엔 나도 동감이야. 좋은 생각이다, 헨리.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 그동안 넌 네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라.”

“나도 동감이다.”

연합국 최고의 검사들이 지지 의견을 표명해 주었다. 그리고…….

“역시 대마법사님이십니다. 확실히 그런 전략은 대마법사님밖엔 하시지 못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희의 내내 말을 아끼고 있던 로어 또한 헨리의 의견에 공감을 표해 주었다.

이에 헨리가 대꾸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더 물어볼 필요도 없을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형식적인 질문을 했다.

그러자 헬라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뭐 언제는 우리 동의를 구했다고…… 맘대로 해.”

“저도 헨리 님의 의견이라면 무조건 믿습니다.”

“저도요.”

모두들 차례대로 찬성 의사를 내비쳤다.

괜찮은 분위기였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테이블 위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곧 테이블 위로 익숙한 수급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테이블에 올라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츠와 킨리스의 수급이었다.

물론 두 수급의 핏기를 충분히 빼서 테이블이 더러워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수급을 올린 후, 헨리가 말했다.

“소레국을 공격한 두 군단장, 바츠와 킨리스의 수급입니다.”

“오, 그렇다면 말인즉슨!”

“그렇습니다. 3만에 달하는 제국군으로부터 소레국을 지켜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더불어 소레국의 피해는 극도로 미미하며, 군의 재정비가 끝나는 대로 대열에 합류할 것입니다.”

희소식이었다.

그렇잖아도 소레국에 병력을 지원하지 못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던 차였기 때문이다.

헨리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덧붙여, 이 두 사람은 온전히 저 혼자만의 힘으로 제압했습니다. 그러니 제 걱정일랑 마시고 제가 수도를 급습하는 동안 바깥의 제국군을 상대해 주십시오. 그사이에 전 아서스의 목을 베어다가 깃발 드높이 걸어 오겠습니다.”

적장의 머리를 베어 오면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한 법이다.

특히 그 머리가 제국의 황제라면 더더욱 말이다.

헨리의 자신 있는 맹세에 회장의 분위기는 더더욱 달아올랐다.

그런데 그때, 잠자코 헨리가 펼쳐 놓은 마법 전술지도를 보고 있던 도올이 말했다.

“흐음…… 그렇다면 관건은 대마법사님께서 얼마나 빨리 아서스의 목을 베어 오느냐가 되겠군요. 그리고 소레국과 두스카인이 얼마나 빨리 합류하느냐의 변수도 있겠고요.”

“그렇긴 합니다만…… 도올 님, 혹시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도올은 헨리의 전략을 한번 되짚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뉘앙스가 그랬다. 무언가 이의가 있는 듯한.

이에 헤라리온이 헨리 대신 물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추후에 소레국이 합류한다 하더라도 병력의 차이는 대략 4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소레국이 합류하기 전까지 연합국의 수는 5만. 즉, 소레국이 참여하기 전까지는 연합국은 전체 병사의 숫자가 두 배나 차이가 나는 제국군을 막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좀 전에 대마법사님께서 연합국의 총 병력을 약 8만이라고 하셨으니 아마도 두스카인에서 지원될 병력은 2만 명 남짓인 것 같군요. 제 말이 맞습니까, 대마법사님?”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도올 님.”

도올의 날카로운 지적에 헨리는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헤라리온이 말했다.

“대신 저희들에겐 마법사와 환술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특수군의 유무는 제국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국군에게는 없으나 우리에겐 있는 특수군이 있듯이,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제국군 또한 가지고 있잖습니까?”

“예를 들면요?”

“전 제국의 국교, 평화교의 태양 전사들이 제국군에 합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양 전사!”

평화교의 태양 전사들.

평화교에는 세 개의 태양단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악과 맞서 싸우는 성기사단과 모든 것을 품는 사제단, 그리고 모두를 대신해 희생하는 몽크들이었다.

도올의 입에서 평화교의 태양 전사들이 거론되자 헤라리온이 무거운 침묵을 삼켰다.

이에 도올이 물었다.

“대마법사님, 저는 새롭게 구성된 제국군이 얼마나 강한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여태껏 군사훈련 대신 농업에 종사해 오던 저희 제방의 병사들이 제국군보다는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마법사님! 그런데도 대마법사님께선 저희 연합국의 잘 버텨 내리라고 믿으시는 겁니까?”

맞는 말이었다.

소레국이 전리품을 회수하고 이곳까지 오는 데에만 최소 사나흘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텔레포트 게이트가 설치되지 않은 두스카인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만 해도 최소 며칠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전투는 지금 당장 코앞까지 닥쳐왔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연합국의 병력은 5만여 명 남짓.

그러나 그마저도 두 군의 병사들이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도올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쯧, 이래서 사내놈들은 어리나 늙으나 다들 똑같다니까.”

도올의 지적에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아마리스의 철혈여제, 헬라였다.

헬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며 상체를 숙였다. 그런 다음 도올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도올 영감, 그렇게 자신없어?”

“……자신 있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쟁은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저희 제방의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결국 그게 그 말이잖아. 우리는 오랫동안 군사력에 투자하지 않고 농사나 지어 왔다. 그러니 병력이 2배나 차이 나는 백병전이 두렵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거 아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다소 거칠긴 하였지만 맞는 말이었다.

이에 헬라가 한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치며 말했다.

“늙으면 겁만 많아진다더니……. 이봐, 도올 영감. 전쟁이 현실이긴 하지만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건 아니라고.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말이 백병전이지 이 싸움은 사실상 제방이 가진 거대한 성을 끼고 싸우는 수성전이라고. 그러니까 최소 며칠 정도는 얼마든지 병력 차이를 극복해 낼 수 있어.”

“하지만…….”

“하지만 뭐? 설마 ‘성’이라는 뛰어난 메리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겁난다고 내빼려는 건 아니겠지? 제국군에게는 비록 태양 전사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에겐 마법사들이 있어. 그러니 애초부터 겁먹고 내빼는 그런 멋없는 짓거리는 하지 말자고.”

이 또한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긴 했다.

확실히 지형이 가지는 이점은 몇 배의 머릿수를 충분히 극복해 낼 만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어찌 됐든 결론을 내기 위해 하는 것이 회의.

그렇기 때문에 최종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해선 각자 자신이 주장하고픈 의견을 피력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헬라는 그 무언가로 여제 특유의 ‘카리스마’를 사용했다.

효과는 뛰어났다.

여제의 카리스마는 도올의 염려를 단숨에 덮어 버릴 만큼 제법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여제님 말이 맞습니다. 말이 백병전이지, 이번 전투는 사실상 성채에서 이루어지는 수성전이기에, 그 정도 병력 차는 적어도 며칠 정돈 충분히 메꿀 수 있을 만한 차이입니다. 그리고 저는 헨리 님께서 아서스를 암살하는데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헨리 님?”

헬라의 의견에 힘을 실어 준 것은 헤라리온이었다.

그리고 헤라리온의 의견 또한 제법 근거가 두둑했다.

과열된 분위기.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가 결코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최적의 결론은 오랜 회의와 다양한 관점, 그리고 겸손한 의심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었으니까.

이윽고 모두의 의견을 듣던 헨리가 도올에게 물었다.

“도올 님.”

“예, 마법사님.”

“저는 도올 님의 의견도 맞고, 여제님과 헤라리온 전하의 의견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단순히 겁만 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한 번만 저를 믿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물음을 던진 후, 헨리는 가만히 도올의 눈을 바라보았다.

도올은 헨리의 눈빛에서 강인한 자신감과 진심을 보았다.

잠깐의 적막.

이에 도올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도올 님께 드렸던 그 약속,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눈 맞춤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도올을 설득해 낸 헨리는 이어서 ‘알프레드’나 ‘발락’ 같은 숨겨진 와일드카드들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에 강력한 신뢰를 불어넣었다.

“그럼 지금부터 병력을 나누고 그에 맞는 지휘관 임관을 시작토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전투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 * *

제국군 총사령관 킹턴 포람.

페이실링의 지도자이자, 현 용병왕으로 불리는 알렌.

알렌의 하나뿐인 부관이자, 창술의 천재라고 불리는 워커.

그리고 알렌의 자랑이자 가장 소중한 보물, 천재 책사 마실라.

평화교에서 파견된 세 개의 태양단 중 성기사들을 이끄는 노련한 팔라딘, 로거.

평화교의 유일한 성녀이자 살아 있는 축복이라고 불리는 아이리네.

마지막으로 평화교의 마지막 태양, 모든 수도승들의 귀감이라고 불리는 몽크, 아난다까지.

총 7명의 군단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 뜰 무렵에 도착한 헤너른 평야와 그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제국의 골칫거리, ‘제방’을 섬멸하기 위해서였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된 행군으로 지칠 법도 했지만 살아 있는 축복, ‘아이리네’의 초광역 회복술로 인해 병사들은 지친 줄도 모르고 곧바로 토성 건축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중, 7명의 군단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첫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했군. 근데 사실 회의랄 게 있나? 척 보기에도 압도적인 전력 차, 그냥 쓸어버리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먼저 입을 연 것은 킹턴이었다.

킹턴은 이곳에 모인 군단장들 중 유일한 황궁 사람이었다.

이에 용병왕 알렌의 하나뿐인 책사, 마실라가 말했다.

“위험한 발언입니다. 저쪽에는 마법사를 비롯한 환술사까지 포진해 있습니다. 그러한 마당에 전면전이라니, 그것은 화롯불에 지푸라기를 던져 넣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마실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오만하고 멍청한 자를 가장 싫어했다.

하지만 킹턴은 현재 자신의 상관의 신분에 해당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해 보려 하였으나 좀처럼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킹턴 또한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 뭐, 우리에겐 없는 마법사와 환술사가 있으니 조심하는 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강행군을 펼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자마자 토성 증축이라니? 이건 내 병사들을 너무 굴려 먹는 거 아니야?”

“그 부분에 대해선 행군 중에 충분히 동의하셨을 텐데요? 그리고 이미 아이리네 님의 회복술이 피로 회복에 탁월하다는 건 오래전에 입증된 바이고요.”

킹턴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때마다 마실라는 논리적인 언변으로 하나하나 반박을 내놓았다.

사실 킹턴도 마실라의 의견쯤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군단의 총사령관이다.

반면 마실라는 자신의 밑으로 들어온 부하 군단장.

그런 수직적 관계에 놓여 있으면서도 사근사근하지 못한 마실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쯧, 한 마디를 안 지려 드는구먼. 이래서 개뼈다귀 같은 용병 놈들을 넣지 말자고 한 건데.’

킹턴은 속으로 마실라를 비난했다.

하나 마실라 또한 킹턴의 그러한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자 중재에 나선 것은 용병왕 알렌이었다.

“하하, 같은 편끼리 싸움은 그만하시고…… 이제 그만 구역을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탁 트인 헤너른 평야라면 누가 봐도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 가는 게 정석일 것 같은데 말이죠.”

“그 정돈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회의를 연 것이고. 좋아, 그럼 지금부터 각자가 맡을 구역과 병력의 재분배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연합국과 제국군.

같은 시각, 두 군 모두 서로의 섬멸을 위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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