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발견 (2)
남자의 물음에 헥터가 답했다.
“난…… 일단은 길을 잃은 방랑자 정도로 해 두지. 그러는 넌 누구냐? 아니, 그보다 여긴 대체 어떻게 돼 먹은 곳이기에 이렇게나 끔찍해?”
다소 짜증이 섞인 물음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헥터의 짜증 섞인 물음에서 묘하게 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한참의 갈등 끝에 간신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그 갈등은 헥터가 믿을 만한 존재인지에 대한 갈등이었다.
이윽고 헥터를 믿어 보기로 한 남자가 헥터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 우선 제 이름은 베이브라고 해요…… 그리고 여긴 제국의 중범죄자들만 모이는 킬라이브라는 특수 도시에요.”
“킬라이브? 처음 듣는 이름인데?”
“예에……? 어떻게 대륙 사람이 킬라이브를 모를 수가 있죠?”
“아깐 귀신이라더니 이젠 사람 취급이야? 이봐, 될 수 있으면 정확하게 골라 달라고. 그편이 나도 헷갈리지 않고 좋을 테니까.”
다소 거친 농담이었지만 다행히 베이브에겐 먹힌 모양이었다.
덕분에 베이브가 ‘풋’ 하고 웃었고, 헥터는 한층 더 누그러진 분위기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필요한 정보 교환이 모두 이루어졌을 무렵, 헥터는 여태껏 나눈 대화들을 천천히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넌 중범죄자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납치돼서 이곳까지 왔다?”
“예.”
“나이는 열여섯 살이고?”
“예.”
“무슨 놈의 열여섯짜리가 얼굴이 그래? 너 진짜 열여섯 맞아?”
“……한창 클 때인 걸요.”
“……좋아, 그 부분은 네가 성장기이니 대충 넘어가도록 하고…… 그럼 네 말에 의하면 이곳은 웬 미치광이 마법사의 실험소다?”
“일단 제가 본 것은 그래요.”
베이브는 의외로 어린 소년이었다.
머리가 긴 것은 원래 그런 것이었고 수염이 난 것은 마을 어른들의 수염이 멋져 보여 자기도 기르던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베이브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은 헥터의 예상대로 어느 미친 흑마술사의 실험소가 맞았다.
마법사의 이름은 몰랐다.
하지만 그 마법사는 살아 있는 인간을 데려다가 끊임없이 괴물들을 만들어 냈으며, 이따금씩 심장을 뽑아 먹는 등 인간이 할 짓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기괴한 행동들을 일삼는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역겹군.’
베이브는 마법사에게 잡혀 온 이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베이브는 운 좋게 갇혀 있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들쥐처럼 감옥의 개구멍을 넘나들며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해 왔다고 한다.
처절한 삶이었다.
베이브는 감옥 내부를 돌아다니는 키메라들이나 마법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하루 온종일 벽에 바짝 붙어 지냈고, 배가 고프면 떨어지는 이슬이나 벌레 따위를 먹으며 버텼다고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헥터에게 발각된 것이라고 했다.
이에 헥터가 물었다.
“도망칠 생각은 안 해 봤고?”
“도망이야 항상 치고 싶죠. 하지만 아시잖아요, 여긴 무려 지하 7층이에요. 그런 제가 어떻게 도망칠 수 있겠어요?”
베이브의 대답에 헥터는 자신이 멍청한 질문을 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곧장 베이브에게 사과를 한 뒤,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베이브가 본 것은 분명히 키메라가 분명하다. 그리고 현재 대륙에서 키메라를 취급하고 있는 건 아서스 그놈밖에 없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헥터의 감이 그리 말해 주고 있었다.
‘이거, 헨리에게 전해 줄 것이 한두 개가 아니군.’
베이브로부터 뜻밖의 정보를 입수한 헥터는 더더욱 사명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어리고 불쌍한 소년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이에 헥터는 동정어린 눈빛으로 베이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의 생각 끝에 베이브에게 말했다.
“베이브, 믿기 힘들겠지만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바깥에 있는 그 미친 마법사를 쓰러뜨릴 수도 있을 것 같구나.”
“그 마법사를…… 요?”
“그래. 내 친구 중에 좀 대단한 녀석이 있거든. 그래서 말인데, 열흘 내로 다시 여기로 올 테니까, 그때 동안만 더 악착같이 버텨 줄 수 있겠니?”
“열흘…….”
베이브는 한동안 열흘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그동안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모아 마시고 생쥐나 벌레 같은 것을 잡아먹으며 생을 연명해 왔다.
자살이라도 할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자살마저도 겁에 질려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그에게 있어 열흘은 억겁과도 같은 시간.
하지만 그 억겁의 시간을 이겨 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열흘…… 정말 열흘만 기다리면 되는 거죠?”
“그래. 열흘도 최대한 많이 잡은 거란다. 내가 어떻게든 열흘 내로 내 친구들을 데려올 테니 그때까지만 좀 더 버티고 있어라.”
마음 같아선 베이브를 데리고 함께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베이브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고, 평소 속도대로 이동했다간 절대로 베이브가 따라오지 못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편이 지금으로썬 가장 현명한 판단이라고 헥터는 생각했다.
베이브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이곳 킬라이브에 납치되어 온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헥터는 마지막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준 뒤, 베이브로부터 정확한 방향을 전해받았다.
그런 다음 쏜살같이 허공을 주파해 킬라이브를 벗어났다.
헥터가 사라진 뒤, 베이브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신이시여…… 부디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서서…….”
베이브는 원래 아이린을 믿었던 평화교의 신자였다.
하지만 이곳으로 납치된 이후,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신앙심을 잃었다. 하지만 헥터와의 대화 이후 다시 신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두 손을 모은 후 신에게 기도했다.
그런데 그 순간.
-키에에에?
베이브의 조그마한 중얼거림을 들은 키메라 한 마리가 신경을 곤두세웠다.
* * *
제국에는 이제 7개의 군단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나머지 7명의 군단장들은 여전히 록펠러와 킨리스, 그리고 바츠가 패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7명의 군단장들은 아서스에게 지시받은 대로 상대적으로 공략이 어려운 ‘샤하트라’ 대신 ‘제방’을 타깃으로 삼고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7개 군단이 이동하면서 근방의 대지가 무섭게 진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7개 군단이 가진 병사들의 머릿수를 합치면 대략 10만여 명이 훌쩍 넘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10만 대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은 다름 아닌 제국 일검이자 현 기사왕인 ‘킹턴’이었다.
‘7개 군단이라…….’
헨리는 7개 군단에 속한 10만이라는 숫자를 속으로 곱씹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10만은 비발디 타운에 상주하고 있는 인구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숫자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앞서 이긴 두 번의 전투보다 이번에 일어날 한 번의 전투가 사실상 전쟁의 흥망성쇠를 가를 아주 중요한 전투였다.
헨리는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진 병력들을 정리해 보았다.
먼저 연합국에 가입된 아마리스에 2만, 샤하트라에 1만 5천, 그리고 제방에 1만 5천, 마지막으로 최근에 합류한 두스카인이 2만여 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차후에 합류할 소레국의 1만 병력까지 합친다면 총 머릿수가 대략 8만여 명으로 10만 대군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숫자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샤하트라의 환술사라든가, 헨리의 마법사들, 그리고 알프레드의 정령 부대까지 합한다면 부족한 2만의 전력 따위는 가볍게 메꾸고도 남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제방의 지형적 문제에 있었다.
‘제방은 산지를 등진 것도 아니고, 강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허허벌판 중앙에 세워져 있어 지형적 이점은 제로에 가깝다.’
그야말로 포위당하기 딱 좋은 구조였던 것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제국군이 제방을 공격 우선순위에 배치한 것일 테지만.
헨리는 곧 일어날 전투를 머릿속에 한 번 그려 보았다.
‘좀 빠듯하긴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나쁘지만은 않아. 확실히 해볼 만해.’
수적으로 큰 열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각 병력이 가진 군사들의 질 또한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양상 자체는 비등하리라고 생각했다.
‘됐어. 남은 건 실전뿐이다.’
제아무리 헨리라 할지라도 이렇게 큰 전투는 떨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헨리는 몇 번이나 자기 최면으로 승리의 암시를 건 뒤, 천천히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하이랜더 지방.
영지에서 수도로 격상된 하이랜더 지방은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롭게 건국된 아이니아 제국의 국민들은 아서스의 대륙 정벌이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에 거두어들이던 세율을 20%나 낮추었고, 전쟁 때문에 치솟은 물가 또한 적절하게 잡아 주고 있었으니, 제국민들에게 아서스는 최고의 성군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아예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서스는 얼마 전에 손에 넣은 뮤즈리얼의 예술가들을 활용했다.
그들은 황궁의 명을 받고 대륙 곳곳으로 흩어져 대륙의 평화와 제국군의 승리를 염원하는 노래를 불렀다.
또한 뮤즈리얼의 조각가들은 성군이 될 아서스와 한창 전쟁을 치르고 있을, 곧 영웅이 될 군단장들의 석상을 조각해 곳곳에 세워 두었다.
대륙민 모두가 전쟁을 아무렇지 않은 가벼운 문제라고 여기게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수도에서 멀지 않은 마을, ‘밸리티에’ 또한 마찬가지였다.
밸리티에 마을은 빵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예컨대 대도시나 수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명한 제빵사들은 모두 밸리티에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밸리티에는 제과 제빵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밸리티에에는 빵과 과자가 구워지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밸리티에 마을의 한복판. 밸리티에 타운에는 성군 아서스를 기리기 위해 뮤즈리얼 조각사들이 석상을 세우고 있었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나왔다.
그리고 그 누구도 석상이 세워지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도리어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석상이 완공되는 날이었다.
석상이 완공된 직후, 평화교에서 파견된 상급 사제, 나일리가 석상 앞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축복을 기도해 주었다.
이에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더더욱 몰려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이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행 사제나 하급 사제와는 달리, 상급 사제는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지도자, 성군, 아서스 하이랜더 님의 석상이 건립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밸리티에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평화의 여신, 아이린 님에게 기도할 것이며…….”
사람들은 대체로 사제의 축문이 길어질수록 더더욱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제의 기도가 길어질수록 신이 더 큰 은총을 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아는 상급 사제는 때마침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더 긴 축문을 읽어 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피이잉!
낮게 파고드는 파공음.
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피이잉!
파공음은 다시 한 번 더 울렸다.
그러나 이번엔 누군가가 파공음의 기척을 읽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밸리티에에서도 알아주는 신예 제빵사, 카뮤엘이었다.
카뮤엘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시선을 옮긴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기도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딴생각이라니, 카뮤엘은 머리를 한 번 긁적인 후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순간.
콰직!
카뮤엘의 뒤통수에 기다란 꼬챙이가 날아와 사정없이 처박혔다.
“카, 카뮤엘!”
카뮤엘의 곁에서 함께 기도하던 마을 사람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의 비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곧 날아온 꼬챙이에 의해 그 또한 머리를 꿰뚫리고 말았으니까.
“모, 모두 피해!”
“으아아악!”
-케륵, 케륵, 케륵!
아비규환이 된 밸리티에 타운 안에서, 노스코에서 들었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그리고 지축을 뒤흔드는 움직임.
노스코에서 보았던 거대한 존재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해라, 거슬렁거.”
-우어어어……!
산처럼 거대한 존재.
녀석의 이름은 거슬렁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