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발견 (1)
헥터는 며칠 밤낮을 새서 겨우 살게라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전에 없던 마법 결계가 생겨 더 이상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헥터는 좌절했다.
하지만 이대로 절망하기엔 아직 한 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었다.
그곳은 바로 샤하트라.
환술 결계 때문에 산맥은 넘지 못하지만, 그래도 협곡을 지나 사막 전체를 가로지르면 얼마든지 수도 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설마 샤하트라에까지 이상한 결계가 쳐져 있진 않겠지.’
헥터는 마지막 희망, 샤하트라를 믿고서 다시 며칠 밤낮을 내달렸다.
그러기를 며칠.
그런데 아무리 내달려도 자신이 생각하는 풍경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달리던 다리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또 어디야?”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일까?
분명히 샤하트라가 있는 쪽으로 이동한 것 같은데 북방 특유의 척박한 땅이 끝나질 않았다.
이윽고 또다시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물론 해가 졌다고 한들, 북방의 밤은 별이 풍성하여 전혀 어둡지가 않았다.
그러나 북두칠성을 보고 방향을 잡는다는 여느 모험가들 같은 재주는 헥터에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에 수놓아진 별이 워낙에 많다 보니 무엇이 북두칠성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제기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자리에 가만히 있기엔 좀이 쑤셨다.
그래서 질주까진 아니더라도, 혹시라도 사람이 사는 마을과 마주치지 않을까 싶어 조금씩 이동을 강행했다.
그러기를 한참.
헥터는 어둠의 저편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꾸어어어!”
‘울음소리?’
짐승의 울음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쪽 지역에 마물이 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 울음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헥터는 낯선 울음소리를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기를 한참, 헥터는 마침내 사람이 만든 듯한 거대한 구조물 하나와 마주칠 수 있었다.
‘여긴 또 뭐야?’
그것은 도시나 영지 특유의 성벽 외곽처럼 생기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궁궐이나 성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감옥?’
감옥. 굳이 비슷한 건축물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헥터는 감옥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 순간.
“쿠어어어!”
또다시 들려오는 울음소리.
울음소리는 확실히 이 안에서 들리는 것이 맞았다.
호기심이 솟았다. 그래서 헥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건물 외벽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혹시라도 마법 결계가 둘러져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헥터의 손은 스파크가 아닌,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건물의 외벽을 통과하였다.
‘여긴 괜찮다!’
전기 스파크가 튀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헥터는 기쁜 마음으로 외벽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건물 내부의 풍경을 본 헥터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뭐야……?’
내부는 환했다.
하지만 분명히 환한 라이트 마법이 곳곳에 시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색깔은 홍등가 특유의 선홍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든 것은 홍등가와 같은 쾌락적인 풍경이 아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마치 도축장을 연상케 하는, 핏물이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들이 꼬챙이들에 잔뜩 꿰어져 걸려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킬라이브’였다.
* * *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선명한 현실이었다.
헥터는 두 눈을 껌뻑이며 천천히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헥터는 곧 소름 돋는 사실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
그것은 마물이나 짐승의 고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한 인육이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여전히 산 채로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사람들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으어, 으어어…….”
짐승의 울음소리인 줄로만 알았던 그것은 죽지 못해 고통을 내뱉고 있는 사람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시야를 확장하자 헥터는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사람들로부터 특이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대체 무슨…….’
등에 팔이 두 개 더 달린 사람.
입과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개의 주둥이가 꿰매져 있는 사람.
머리가 네 개 달린 사람 등.
꼬챙이에 꿰어진 것뿐만이 아니라, 십자가 형태를 한 침대나, 목조로 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들 또한 그 수가 적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린 헥터는 미간을 좁힘과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입에서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토악질마저도 산 사람의 권리이기에 헥터는 입안 가득히 차오르는 더러운 기분만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겨운 감정과 동시에 분노에 찬 호기심이 돌았다.
그래서 얼굴만 내밀고 었던 영체를,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와 하반신까지 완전히 투과시켜 몸 전체를 킬라이브 안으로 들여 놓았다.
‘…….’
몸을 완전히 안쪽으로 들인 헥터는 침묵을 삼켰다.
그리고 사방을 예의 주시하며 마치 도둑처럼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헥터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머릿속에 수많은 가설들을 세웠다.
‘이게 과연 인간이 벌일 수 있는 짓일까?’
만약 인간이라면 그 낯짝이 몹시 궁금했다.
“끄어어…….”
헥터는 발걸음을 옮기던 중 미약하게 신음을 흘리는 머리털이 모두 벗겨진 어떠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꼬챙이로 온몸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으며 손과 발등에 못이 박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였다.
그리고 낚시찌 같은 바늘에 두 눈꺼풀과 입술이 꿰여 어쩔 수 없이 입과 눈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꼬챙이에 꿰어져 있던 남자의 눈동자가 헥터에게로 옮겨졌다.
“아으으으…….”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고 헥터를 보자마자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영체가 된 헥터를 보고 두려움을 느낀 것일까?
그러나 곧 벌려진 남자의 입에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즈…… 겨…… 줘…….”
남자는 혈액이 섞인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벌려진 입 사이로 침을 흘림과 동시에 샌 발음으로 죽음을 구걸했다.
끔찍했다.
그러나 영체뿐인 헥터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두 눈을 질끈 감고 얼른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헥터는 한참을 이동했다.
킬라이브의 내부는 꽤나 거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건물 하나가 특수 도시 그 자체였으니까.
물론 이곳이 킬라이브라는 사실을 헥터가 알 리는 없었다.
‘……산 사람을 찾아야만 해.’
헥터는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고문 기구에 묶여 있는 사람이 아닌,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법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래야지만 이곳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이곳이 어떠한 곳일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사람들이 납치되어 있고 산 채로 바느질이 되어 있으며 마치 인체 실험을 하듯 가득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는 곳.
헥터는 아마도 이곳이 어느 흑마술사의 비밀 연구소 정도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끔찍한 곳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물론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들이 인체 실험 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헥터는 이곳의 주인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이미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식의 한계선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헥터는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이곳에 지하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하로 향하는 나선 계단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감옥?’
지하는 밝았다.
그리고 지하 깊은 곳으로 이동할수록 헥터는 이곳이 거대한 감옥 시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에는 수십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감옥들이 즐비해 있었으니까.
헥터는 순서대로 감옥을 돌며 산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감옥을 헤집어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있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순 없었다.
그렇게 벌써 지하 7층까지 왔다.
지쳤다.
한 명쯤은 있을 법도 한데 지하 감옥에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분 나빠…….’
사람이 없는 감옥 안은 몹시 조용했다.
그 흔한 들쥐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곳은, 마치 생기가 꺾인, 자신이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명계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포기해야 하나?’
7층까지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찾을 수 없자, 헥터는 그냥 포기하고 제 갈 길을 갈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1층에서 보았던 충격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묘하게 텁텁하고 찝찝한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흡!”
짧은 숨소리.
그것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맞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나도 작아서 헥터처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결코 듣지 못했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헥터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갈라진 벽이 있었다.
그리고 그 벽에는 바퀴벌레 같은 조그마한 벌레들이나 다닐 법한, 아주 좁고 작은 틈새가 갈라져 있었다.
“…….”
잠깐의 침묵.
귀를 쫑긋이 세웠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헥터의 귀는 속일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들은 그것은 분명히 사람이 숨을 삼키는 소리였다.
후우웅!
제자리에서 잠자코 벽면을 응시하던 헥터는, 일순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려 벽을 통과하였다.
그러자.
“으, 으아아악!”
웬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뭐야?”
소년 정도의 체구를 가진 남자.
남자는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으며 머리가 몹시 길었다.
그리고 넝마가 되다시피 한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있었다.
“……쯧, 어쩔 수 없지.”
기절한 남자를 보고 헥터는 혀를 찼다.
행색이 어떻든 간에 그는 어찌 됐든 이곳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그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헥터는 기절한 남자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기로 했다.
* * *
반나절 정도가 지나자 남자는 그제야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잠에서 깼다.
광대뼈와 뼈에 붙은 살가죽이 얼얼했다.
냉골 같은 킬라이브 건물에 볼을 붙이고 있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남자는 맹한 눈동자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 뭘 본 거야, 난…….”
남자는 혼잣말에 익숙한 듯, 기절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순간, 눈앞에 귀신의 얼굴이 나타났다.
“드디어 일어났군.”
“으아아악!”
“오, 안돼, 안돼. 이제 기절은 그만.”
남자는 신경 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몹시 예민했다.
그래서 헥터가 남자를 진정시키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한 번 더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헥터의 다독임에, 남자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가슴을 부여잡은 채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러곤 아래턱을 덜덜 떨며 헥터와 어렵게 눈을 맞추었다.
“귀, 귀, 귀, 귀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거, 어째 기분이 좀 나쁘군.”
일단은 산 사람이 아니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헥터는 일부러 남자의 말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화를 냈다가 남자가 다시 기절하기라도 한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더 골치 아플 테니까.
그래서 헥터는 남자가 충분히 침착해질 수 있게끔 팔짱을 낀 채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헥터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점잖은 헥터를 본 남자는 어느 정도 경계심이 누그러졌는지, 어렵사리 헥터에게 질문을 건넸다.
“다, 당신은 누구시죠?”
침착하게 시작된 대화.
헥터는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