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27화 (227/522)
  • # 227

    데뷔 (3)

    콰지지지짓!

    벼락은 제법 오랜 시간 떨어졌다.

    거의 2초 남짓한 시간.

    눈 깜짝할 새에 떨어지는 보통의 벼락과 비교했을 때, 2초는 몹시 긴 시간이었다.

    떨어진 벼락은 두 명의 최상급 기사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러나 헨리의 마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쓰러지는 거인!”

    지진을 일으키는 마법.

    헨리가 검을 휘둘러 바닥을 내려치자 검날이 닿은 곳을 기점으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 두 기사의 발밑을 무너뜨렸다.

    갈라진 지층 사이로 두 사람이 떨어졌다.

    두 사람이 낙하하는 동안, 헨리는 쉬지 않고 무수한 양의 바람 칼날과 화염의 창, 그리고 뜨겁게 달구어진 쇠구슬 따위를 소환해 쉴 새 없이 쏟아부었다.

    엄청난 마법 포격이었다.

    감히 한 명이서 쏟아 낸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의, 그런 포격 세례였다.

    그렇게 한동안 아수라 같은 폭격이 쏟아졌다.

    마법을 일으키는 내내 헨리는 팔을 크게 휘둘렀다.

    타깃을 정확히 조준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 뒤, 폭풍 같은 지휘가 끝나고 헨리는 그제야 뜨거운 숨을 토해 내며 주문을 멈추었다.

    ‘후우…….’

    어지러움에 머리가 핑 돌았다. 단기간에 너무 많은 양의 마법들을 쏟아 내기 위해 막대한 마나를 사용해서인지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지러움은 금방 극복됐다.

    헨리는 이어서 진지해진 눈빛으로 폐허가 된 구덩이 속을 바라보았다.

    “해치웠나?”

    여느 소설에서는 금기어와도 같은 말. 그러나 헨리는 태연스럽게 내뱉었다.

    구덩이 속은 까마득했다.

    마치 절벽 너머의 그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마법 포격이 이루어졌으니 이 정도 구덩이는 마법 포격의 당연한 잔재였다.

    헨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양손에 마법을 캐스팅해 둔 뒤, 구덩이 속을 예의 주시했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예상했던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헨리는 직접 구덩이 속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손끝이 저릿했다.

    이 또한 두 기사의 책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조금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천천히 구덩이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고요했다.

    헨리는 이어서 어둠으로 가득 찬 구덩이 속에 라이트 한 줌을 던져 넣었다.

    후우웅!

    라이트가 구덩이 깊숙이 떨어졌다.

    그리고 한참의 낙하 끝에 라이트가 비춘 것은, 다름 아닌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넝마가 된 두 기사의 시체였다.

    “……죽었다고?”

    바츠와 킨리스.

    두 사람은 헨리의 마법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죽어 버리고 말았다.

    * * *

    “시작하지.”

    막사 위로 비상한 알프레드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입에 궐련을 문 100명의 상급 정령사들 모두, 각자가 계약한 정령들을 소환해 막강한 정령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콰광! 콰과과! 콰드드득!

    사대 원소를 비롯해 좀처럼 보기 드문 속성의 상급 정령들까지, 간만에 발휘되는 주특기에 정령사들 모두가 미처 날뛰기 시작했다.

    “기습이다!”

    “대열! 모두 대열을 갖춰!”

    공습이 시작되자 제국군 전체가 아비규환에 빠졌다. 성공적인 선제공격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상급 정령군단의 정령술 폭격이 멋지게 먹혀들었다고 한들 고작해야 100명이었다.

    현실적으로 100여 마리의 정령만으로는 3만여 명에 달하는 제국군을 압도할 순 없었다.

    “전군, 돌격하라!”

    그 순간 뒤늦게 합류한 유하가 1만 여명에 달하는 소레국의 정예군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정령대가 기선 제압을 했다면 그 기세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유하가 할 일이었다.

    그리고 유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멋지게 해냈다.

    혼란의 도가니였다.

    군단 내 서열 2위에 해당하는 부관들이 바츠와 킨리스를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두 사람은 이미 구덩이 속에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뒤였다.

    그러니 머리가 잘린 뱀의 최후는 뻔했다.

    무차별적인 살육전.

    대가리가 잘린 뱀은 한동안 발버둥 치는가 싶더니 이내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본 유하가 말했다.

    “우리의 승리다……!”

    압도적인 승리.

    병법 속에나 나올 법한 그런 종류의 대승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레국은 3배나 차이 나는 병력 차를 극복하고 멋지게 대군을 제압했으니까.

    유하의 얼굴에 환희가 깃들었다.

    * * *

    “정말로 죽었잖아?”

    자신이 본 것을 믿지 못하겠는지, 헨리는 구덩이 속의 시체를 바깥으로 꺼내 직접 그것들을 살폈다.

    아무리 확인해 보아도 그것은 진짜 바츠와 킨리스의 시체였다.

    두 사람이 걸친 갑옷에, 제국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으니까.

    이에 헨리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명색이 제국 십검이라는 놈들이 고작 마법 포격 하나를 못 견디고 죽었다고?”

    기가 찼다.

    그래도 명색이 제국 십검에 속하는 놈들이었으면서 타이밍 좋게 쏟아부은 마법 포격에 사망할 줄이야.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헨리는 볼품없는 최후를 맞이한 두 사람의 시체를 체스트 속에 수납했다.

    그런 다음 여전히 가시지 않은 허망한 여운을 털어 내기 위해 잠깐이나마 나누었던 전투를 복기해 보았다.

    그리고 복기 끝에 헨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설마 내 힘이 그렇게 강해졌다고?’

    확실히 전생에 이루었던 7서클 때와는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달라졌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다름 아닌 마력 자체가 가지는 밀도의 차이.

    ‘확실해. 현재의 난 과거의 7서클 시절 때보다 훨씬 더, 아니 어쩌면 몇 배는 강해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자신을 제외한 7서클 마법사가 없어 정확한 검증은 어려웠지만,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 일단은 그렇다고 판단하기로 했다.

    이에 헨리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어서 전쟁을 끝내야겠어.”

    최상급 기사 두 명을 상대로 성장한 힘을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상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에 헨리는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지만 옛날처럼 마탑에 틀어박혀 자신의 수련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을 테니까.

    결심을 마친 헨리는 다시금 소레국으로 이동했다.

    * * *

    날이 밝았다.

    3만 여명에 해당했던 제국군은 헨리의 지시대로 단 한 명의 도망자도 없이 모두 사살되었다.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시체에서 빠진 핏물이 거대한 강을 이루었고 온 사방에서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시체의 산에 불을 놓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병장기나 보급품 같은, 전리품 회수 작업을 마치지 못했으므로 며칠은 더 피비린내를 방치해야만 했다.

    헨리는 날이 밝자마자 태제가 있을 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곳에는 먼저 와서 헨리를 기다리고 있는 유하와 좌사, 그리고 들뜬 표정의 태제 홍월이 있었다.

    헨리가 회장에 발을 들인 순간, 잔뜩 들떠 있는 태제가 가장 먼저 헨리를 살갑게 반겨 주었다.

    “대마법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태제님.”

    홍월의 미소가 싱그러웠다. 근심을 모두 씻어 낸 듯한 태제의 표정에 헨리는 의도치 않게 보람이 느껴졌다.

    이에 헨리가 좌사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좌사님은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허허, 마법사님 덕분에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대마법사님께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태제를 대신하여 좌사가 넙죽 허리를 숙였다.

    자칫하면 멸망했을지도 모를 소레국을, 헨리가 구원해 주었으니 이 정도 인사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도 딱히 겸손을 표하지는 않았다.

    “뭐, 예정된 수순이었으니 그다지 놀랍지도 않습니다만. 어떻게, 대장군님께선 충분히 만족하십니까?”

    “만족뿐이겠습니까? 저 또한 태제님을 대신해 대마법사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하, 세 분 다 안색이 좋으시니 저 또한 기분이 좋군요. 그건 그렇고 오는 길에 바깥을 한번 둘러보고 왔는데 모든 전리품을 회수하려면 적어도 사흘은 걸릴 것 같더군요.”

    “마음 같아선 한꺼번에 불태우고 싶으나 숫자가 워낙에 많다 보니 병장기를 확실하게 분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병장기들은 불에 타지 않으니까요.”

    죽은 적병들의 병장기를 빼앗는 건 전쟁 중에 물자를 보급하는 기본적인 지혜들 중에 하나였다.

    게다가 사슬 갑옷이나 창칼들은 시체와 함께 불타지 않으니 더더욱 분리해 두어야만 했다.

    그래서 헨리도 좌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회수 작업은 그렇게 진행한다 치고 여러분께 또 다른 희소식을 전해 드려야겠군요.”

    “예? 그런 소식이 또 있습니까?”

    헨리는 대답 대신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손가락을 튕겨 보이자 헨리의 양손 위로 낯익은 수급 두 개가 나타났다.

    “그, 그건……!”

    “두 군단장의 목입니다.”

    그것들은 분명한 바츠와 킨리스의 수급이었다.

    그것도 마법 포격에 당해 꽤나 흉물스러운 모습의.

    이에 홍월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태제님께서 비위가 약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아, 아닙니다. 설마 그 짧은 시간 동안 적장의 수급을 가지고 오실 줄이야……. 역시 대마법사님이십니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우사를 미끼로 두 사람을 꾀어냈더니 독사과인 줄도 모르고 잘도 깨물어 먹더군요.”

    “우사를 미끼로 사용하셨다니, 그럼 우사는……?”

    “죽었습니다.”

    헨리는 담담하게 우사의 죽음을 전했다. 그러자 좌사와 유하 또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배신자의 말로이기에 어쩔 수 없군요.”

    역시 좌사였다.

    그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이에 대부분의 소식을 전달한 헨리가 말했다.

    “그럼 전리품 회수 작업이 끝나는 대로 시체는 모두 태워 버리는 걸로 하고, 군의 재정비가 끝나는 대로 제방으로 합류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볼일을 마쳤으니 더 이상 소레국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태제는 떠나려는 헨리에게 감사의 뜻으로 아침 식사라도 대접하려 하였으나 헨리는 이를 거절했다.

    “승리의 만찬은 모든 전쟁이 끝난 뒤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정중한 거절.

    이윽고 헨리는 텔레포트를 사용해 알프레드가 기다리고 있을 장소로 이동했다.

    * * *

    헨리가 도착한 곳은 소레국 외곽의 어느 구석진 공터.

    그곳에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하염없이 궐련을 피우는 약에 절은 정령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헨리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맹한 표정으로 궐련을 태웠다.

    그 모습을 보는 헨리 또한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머릿수를 헤아렸다.

    “아무도 안 죽었네.”

    알프레드를 포함한 101명의 정령사들.

    그 흔한 부상자 하나 없으니 간밤의 전투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헨리는 아공간을 열어 맑은 물과 건조식량 따위를 공터 가득히 내려놓았다.

    “알프레드.”

    “……왜?”

    “여기 며칠분의 식량을 놓고 갈 테니 부하들이 굶어죽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어라. 며칠 내로 다시 데리러 올 테니까.”

    “……알겠다.”

    대답을 마친 알프레드는 다시 그늘 아래에 주저앉아 궐련을 피우기 시작했다.

    퀭한 눈두덩이.

    그리고 허공을 응시하는 맥없는 눈빛.

    알프레드의 모습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좀비, 그 자체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거죽 속에 담긴 것은 대륙 제일의 정령술사였으니 헨리는 더 이상 혀를 차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제방 정도인가?”

    선제공격의 대상이 된 비발디 타운과 소레국을 보란 듯이 멋지게 지켜 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제방에서 일어날 제국군 전체와의 전면전뿐.

    딱히 두렵지는 않았다.

    이 또한 헨리가 바라는 그림의 아주 작은 밑그림일 뿐이었으니까.

    “텔레포트.”

    헨리는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남은 밑그림을 모두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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