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데뷔 (2)
“헨리……!”
바츠와 킨리스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그리고 번진 놀라움은 곧 경각심과 더불어 희열로 변했다.
“하, 미쳤군.”
먼저 실소를 터뜨린 것은 킨리스였다.
저 모습은 마치 토끼가 호랑이의 아가리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미는, 그러한 꼴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가소로웠다.
여러 명도 아니고 겨우 혼자서 자신들을 상대하려는 모습이 하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에 킨리스가 칼날을 휘둘렀다.
푸슉!
날붙이가 고기를 베어 내는 그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실제로 킨리스의 칼날이 우사의 목덜미를 스쳤다.
핏물이 허공으로 튀었다.
그러나 우사의 목은 여전히 몸뚱이에 붙어 있었다.
뻐억!
칼을 휘두른 킨리스는 이어서 우사의 몸뚱이를 걷어찼다.
멀찍이 날아가는 우사.
이에 우사는 땅바닥 위를 볼품없이 굴렀다.
그러나 우사는 끝끝내 목덜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커억, 컥……!”
킨리스는 일부러 우사의 목을 완전히 베지 않았다.
대신 죽을 때까지 발버둥 치라는 의미에서 목덜미에 칼집을 냈을 뿐이었다.
우사가 괴로워하며 목을 감싸 안았다.
우사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헨리는 우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사는 이제 그 쓸모를 다하였기 때문이다.
배신자의 비참한 말로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감히 자신을 배신한 것에 대한 죄를 죽을 때까지 반성하는 것뿐이었다.
촤악!
이윽고 킨리스가 검을 휘둘러 칼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그리고 칼끝의 방향을 돌려 헨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에 대해선 폐하께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네놈이 바로 죽은 마법사와 이름이 똑같은 제자 놈이라지?”
“그렇다면?”
“바퀴벌레는 죽어서도 알을 낳는다더니, 그놈은 죽어서도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는군.”
킨리스는 헨리 앞에서 죽은 헨리의 욕을 했다.
그러나 눈앞의 헨리와 죽은 헨리는 동일 인물. 그러니 킨리스는 헨리에게 직접 욕설을 날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헨리가 한숨을 푹 쉬었다.
킨리스 셀이라면 반에게 죽은 살모라처럼 진즉부터 아서스에게 줄을 댄 머저리 같은 정치 기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옆에서 무게를 잡고 있는 바츠 요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암 덩어리 같은 놈들.’
두 사람은 헨리가 환생 직후에 작성한 살생부 명단에 기재된 인물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두 사람 다 곱게 죽일 생각이 없었다.
이에 헨리가 품속에서 텔레포트 스크롤 한 장을 꺼내 들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용건만 말하도록 하지.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텔레포트 스크롤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있는 이곳은 북방에 위치한 살게라. 말인즉슨,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다시 소레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뭐라고? 푸하하핫!”
헨리의 설명에 킨리스가 박장대소했다.
설마 자기들이 본인을 잡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저런 도발을 하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킨리스가 웃든 말든 헨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비웃는 건 좋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너희가 이곳에 온 그 순간부터, 소레국에선 전투가 시작됐으니까.”
“뭐라고?”
“귓구멍이 막힌 건가? 너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소레국에선 이미 전투가 시작됐다고. 못 믿겠으면 얼른 나를 쓰러뜨리고 소레국으로 가서 직접 확인해 보든가.”
깔끔하고 확실한 도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휘관이 없는 군대만큼 나약한 군대는 없었기 때문이다.
“제기랄!”
쾅!
헨리의 도발에, 바츠와 킨리스가 바닥에 발을 굴렀다.
그런 다음 허리춤에 검을 뽑아 들었다.
쿠구구구!
오러는 사용자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흥분한 두 사람이 오러를 출력시키자 곧 엄청난 기세의 오러가 허공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최상급 기사가 둘.’
이에 헨리 또한 오러를 출력시키며 생각했다.
‘내가 가진 마력으로 록펠러의 검격 정도는 쉽게 막아 냈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가진 오러라면 최상급 기사 둘 정돈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몰라.’
7서클로 각성한 이후, 전쟁 준비에 바빠 개인 수련에 몰두하지 못했다.
이는 분명한 문제였다.
제아무리 헨리가 마법과 검술을 동시에 다루는 마검사가 됐다고는 하나 원래 가진 8서클의 힘도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 성장 속도를 느슨하게 한다는 것은 긴장이 풀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는 강을 등진다는 생각으로 이번 전투에서 만큼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기로 했다.
오직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 말이다.
헨리는 이윽고 저들에게 보여 주었던 텔레포트 스크롤을 허공으로 띄워 냈다.
그리고 칼을 뽑은 두 사람에게 외쳤다.
“약속은 지키겠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 나를 쓰러뜨려라.”
정직한 도발.
이에 두 명의 기사는 분노를 폭발시켜 황소처럼 돌진해 왔다.
* * *
번쩍이는 광명.
광명이 번쩍인 순간, 성벽 위에서 제국군의 막사를 지켜보던 유하가 부관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전군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도록.”
명령은 빠르게 하달되었다.
유하는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이어서 유하의 명령을 전해들은 알프레드 또한 입에 물고 있던 궐련을 깊게 빨아들인 후 나직이 명령했다.
“……너희들도 준비해라.”
“예.”
궐련에 절여져 헨리에게 세뇌되긴 하였으나 생각을 아예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알프레드는 헨리에게 명령받은 대로, 유하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자신이 맡은 임무를 행하기 위해 정령 부대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은밀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모든 것은 헨리의 작전대로 움직였다.
“실디아.”
성벽의 가장 높은 곳으로 이동한 알프레드는 곧 바람의 최상급 정령, 실디아를 소환했다.
눈앞에 바람의 매가 조용히 소환되었다.
이윽고 알프레드를 따라 바람의 상급 정령사들 또한 각자 바람의 상급 정령들을 소환했다.
각기 다른 정령들이 소환되었다.
물론 개중에는 같은 형상을 지닌 정령들도 있었지만, 정령 자체가 워낙에 다양한 외형을 지녔다 보니 중하급 정령이 아닌 이상, 각자 그 모습이 조금씩 달랐다.
바람의 정령들이 소환되고 강렬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100명의 정령사들이 모두 하늘로 비상했다.
하늘로 비상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유하에게 알프레드가 말했다.
“……먼저 가도록 하지.”
인사를 마친 알프레드가 수십여 마리의 바람의 상급 정령들과 함께 분홍색 연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유하가 명령했다.
“우리도 준비가 끝났으면 슬슬 진격을 시작하지.”
“예!”
소레국 최정예군 일만 명.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야전의 기습이 시작되었다.
* * *
“홀드.”
몸을 회전시키며 칼날을 놀리는 킨리스에게 헨리는 홀드를 시전했다.
“크읏!”
비록 1초보다 더 짧은 시간이었지만 7서클의 마력은 확실하게 최상급 기사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고수의 싸움에서 1초는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었으니까.
헨리는 0.5초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얼음으로 된 검을 소환해 대각선 쪽으로 들어오는 바츠에게 아이스 웨이브를 날렸다.
콰드드득! 파앙!
방출된 얼음기류가 바츠의 오러와 맞부딪히더니 곧 거대한 얼음장을 생성해 내며 사방으로 얼음 결정들을 흩뿌렸다.
묵직했다.
처음에는 제아무리 7서클이라 할지라도 경험이 부족한 어린 마법사 정도로 생각했다.
아서스에게 듣기로, 녀석은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난 풋내기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헨리의 움직임은 마치 관록이 넘치는 한 명의 노련한 소드 마스터를 연상케 했다.
‘보법?’
게다가 전투를 벌이는 내내 보법으로 추정되는 발재간이 더더욱 혼란을 야기했다.
마법사가 보법이라니?
그건 평생 동안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츠는 검을 놀리는 내내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 보법? 아냐, 그것보단 좀 더 화려한 움직임이야. 우연인가?’
그 탓에 탐색전이 길어졌다.
원래대로라면 정석적인 움직임, 예컨대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선 마법사가 조금도 주문을 외우지 못하도록 쉴 새 없이 몰아붙여야만 했다.
그런데 눈앞의 마법사는 눈 깜짝할 새에 주문을 외워 자신들을 당황시키는가 하면, 현란한 발놀림으로 두 사람의 검무를 동시에 받아 내고 있었다.
‘게다가 손에 쥔 얼음 몽둥이, 묘하게 검법을 흉내 내고 있어.’
헨리는 일부러 콜소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얼음으로 이루어진 빙검을 대체제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헨리가 휘두르는 빙검의 폼이 묘하게 검술을 연상케 했다.
‘이 녀석, 대체 정체가 뭐야?’
탐색전이 길어지다 보니 점점 더 녀석의 페이스에 말리는 듯했다.
게다가 킨리스는 이미 아까 전부터 잦은 방해 공작으로, 예컨대 홀드 같은 마법 때문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이대론 안 되겠어.’
그래서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검을 휘두르던 바츠는 머리를 식힌 뒤, 흥분한 킨리스의 뒷깃을 잡아 채 뒤로 끌며 말했다.
“킨리스, 물러나.”
“하지만!”
“내 말대로 해!”
킨리스와 바츠의 실력은 한끗 차이라고 할 만큼 대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킨리스가 삼검, 바츠가 이검인 이유는 바츠가 감정을 더 잘 다스렸기 때문이다.
이에 킨리스가 이를 으득 갈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킨리스, 놈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그건 너도 느껴서 잘 알고 있겠지?”
“확실히 마법사 같은 움직임은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러니 장난은 이쯤하고 지금부턴 본격적으로 녀석을 상대한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 한다고 했으니까.”
“후, 그럼 자존심이 상하지만 결전기를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나도 결전기를 사용토록 한다.”
뒤로 물러난 두 사람은 바츠의 지시대로 지금부턴 전력을 다해 헨리를 상대하기로 했다.
이에 헨리 또한 두 사람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결전기를 사용하려나 보군.’
주특기만 사용하던 최상급 기사 두 명이 자존심을 접고 결전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은연중에 헨리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좋은 생각이야. 그렇담 나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줘야겠지.’
거리를 벌린 헨리는 오른손을 앞으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착검.”
지이잉!
녹색 불꽃이 피어오르며 허공에서 콜소드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착갑.”
화르륵!
다시 한 번 피어오르는 녹색 불꽃.
헨리는 콜소드에 이어 콜아머를 소환했다.
“……!”
전신에 걸쳐진 백색 갑옷.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츠와 킨리스의 얼굴에 경악이 피어올랐다.
“검과 갑옷? 저 녀석 설마, 처음부터 검을 다룰 줄 알았다고?”
“마법사가 검이라니? 저건 듣도 보도 못한…….”
헨리가 죽은 대마법사의 직계 제자라는 사실만을 알았기에 검을 꺼내 들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다.
그렇기 때문에 첫 합을 겨룰 때만 해도 의혹만 가졌을 뿐이지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러나 이젠 당당하게 검과 갑옷을 걸쳤으니 의심을 지우고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하.”
허무함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에 킨리스가 허공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츠즈즈즛!
검을 휘두르자 평온했던 전신의 오러가, 마치 달구어진 돌에 물방울을 흘린 것처럼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츠 또한 전신의 오러를 진동시켰다.
“열검의 킨리스와 진동의 바츠.”
헨리는 나지막이 두 사람의 별명을 읊조렸다.
정치적으로는 전생에 자신과 대척점에 서 있던 인물들이긴 했지만 오랜 시간을 지켜봐 온 인물들이기에 놈들이 어떠한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에 헨리 또한 발바닥에 발을 구르며 주문을 외웠다.
“마법 무장!”
팡! 츠즈즈즛!
7서클 대마법사의 대륙 제일의 마법 무장.
이윽고 세 사람 모두 두 번째 싸움의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헨리는 하늘 위로 콜소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쿠르릉……! 쿠르릉……!
새하얀 눈보라 위에 피어오르는 새카만 먹구름.
그것은 설산 전체를 뒤덮어 버릴 정도로 거대한 뇌운이었다.
“공식적인 첫 무대이니만큼 확실하게 보여 주마. 대륙 최고의 마검사가 어떻게 싸우는지를 말이야.”
콰과광!
헨리의 경고가 끝났을 때, 거인의 팔뚝보다도 거대한 벼락이 두 사람에게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