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데뷔 (1)
“어, 어떻게?”
우사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분명히 아서스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거짓 편지 한 통을 보낸 뒤, 그 대가로 우사는 드디어 차가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감옥에서 벗어남으로써 육체는 편안해졌지만 자신이 배신자라는 사실을 들킨 이상,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불안함에 왕궁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쓸모를 다한 자신을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은 뒤, 급하게 소레국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분명히 제국군의 막사에 있어야 할, 그것도 바츠의 검 앞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어야 할 자신이 헨리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고 있었다.
우사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이곳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갇혀 있던 소레국의 지하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시간이 역행하기라도 한 듯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의 연속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에 헨리가 환술서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네.’
환술서.
그렇다. 우사는 처음부터 감옥에서 나온 적이 없었고 편지를 보낸 대가로 감옥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헨리가 익힌 환술의 영향이었다.
헨리는 펼친 환술서를 덮었다.
그리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짝!
손뼉을 치는 것, 이것은 환술에서 환술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마무리 동작으로 환술사들은 이것을 흔히 ‘해금’이라고 불렀다.
이윽고 헨리가 시전한 해금 덕분에 몽롱했던 우사의 정신이 똑바로 붙잡혔다.
그리고 그제야 모든 사태를 파악한 우사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헨리를 부르짖었다.
“대, 대마법사님……!”
상대의 무의식에 침입해 꿈을 가장한 환술은 건다.
그런 식으로 발휘된 환술은 상대의 진심을 파악하는데 매우 요긴했다.
‘이 정도 환술이 제일 쉬운 축에 속하다니. 역시 환술이야.’
딱히 비람에게 배운 것은 아니지만 비람에게 받은 환술서를 통해 혼자서 공부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사는 그 환술 공부의 훌륭한 학습 교보재가 된 것뿐이었고.
그러나 연습이든 학습이든, 무엇이 됐든 간에 목숨을 구걸하던 우사의 진심을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다.
이에 우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무의식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대마법사님! 그것은 단순한 꿈일 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우사는 두려웠다.
배신을 들켰을 때만 해도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건만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의식의 영역까지 침범해 이런 식으로 사람을 시험할 줄은 몰랐다.
헨리가 차가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됐어. 어차피 기대도 안 했으니까. 배신이란 게 처음에나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거든.”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괜찮아, 이해해. 날 때부터 그런 습성을 가지고 태어난 건데 어찌 너를 탓하겠냐? 그리고 난 너의 진심을 확인했을 뿐, 이런 걸로 널 처벌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대, 대마법사님……!”
차라리 벌이라도 내렸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식의 처분이 더더욱 마음을 불편케 했다.
그리고 그것은 헨리 또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심리적 압박을 헨리는 꽤나 즐기는 편이니까.
“그럼 쉬고 있어. 다음에 또 올 테니까.”
“대, 대마법사님!”
볼일을 끝냈으니 이제 그만 방을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헨리가 방을 나서려던 순간, 우사가 헨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대마법사님! 제발! 제발 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무슨 기회를 줘? 처벌 안 한다니까?”
“아닙니다! 대마법사님을 이렇게 그냥 보내기엔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차라리 벌이라도 내려 주십시오!”
우사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상 밉보였다간 전쟁의 승패가 어찌 되든 간에 정말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뒤돌아 선 채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미소를 다시 싹 지운 채로 고개를 돌린 후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흠흠, 차라리 벌이라도 내려 달라?”
“그렇습니다! 제발! 제발 그렇게라도 해서 저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무의식이 그리 말하는데 의식적으로 결백함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자신의 무의식을 부정하겠다는데 헨리는 그런 절박함까지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면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이야말로 이용하기 가장 쉬운 최고의 장기 말이었으니까.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필사적으로 절박함을 내비치는 우사.
그런 우사를 보며 헨리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해가 지고 밤이 깊었다.
소레국과 군단의 막사 사이에는 여전히 전운이 감돌고 있었고 숲에는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적막한 밤이었다.
그리고 소레국의 근위병과 제국군의 보초가 한참 동안 눈싸움을 하고 있을 때, 소레국 성벽의 가장 낮고 더러운 곳에서 벽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기긱.
그곳은 구석지고 습하며 곰팡이나 이끼 같은 것들이 잔뜩 핀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개구멍은 원래 궁을 나가지 못하는 궁녀나 근위병들이 이따금씩 몰래 외출하기 위해 이용했다가 잊힌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잊혔던 개구멍이 다시 열리며 그 사이로 우사의 엉덩이가 나타났다.
“끄으으으……!”
좁디좁은 개구멍에 돼지 같은 몸뚱이를 집어넣으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이어서 지팡이까지 함께 빼낸 우사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숲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제국의 병사들에게 투항해 스스로 잡혔다.
“……소레국의 누구라고?”
“우사라는 작자가 투항해 왔습니다.”
“우사라고?”
병사들은 포획한 우사를 데리고 바츠를 찾았다.
그리고 잠자던 킨리스까지 불러내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이윽고 한 막사 안에 바츠와 킨리스, 그리고 포획된 우사까지 함께 모이게 되었다.
심문이 시작되기 전, 병사 하나가 바츠에게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놈의 품 안에서 나온 것입니다.”
제아무리 순순히 투항한 적이라 할지라도 신체를 모두 수색한 뒤에야 우두머리 앞으로 데려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사의 신체를 모두 수색한 결과, 이렇다 할 위험한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품속에서 제국의 인장이 찍힌 조그마한 서신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윽고 바츠는 우사가 가지고 온 서신을 펼쳐들며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건…….”
서신에 찍힌 인장은 자신이 모시는 군주, 아서스 하이랜더의 것이었다.
그리고 서신 안에 적힌 내용물을 모두 확인한 바츠가 병사에게 명령했다.
“포승줄을 풀어라. 그리고 모두들 나가 있어.”
“예.”
이윽고 포승줄을 푼 병사들이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막사 안에는 우사와 바츠, 그리고 킨리스만이 남게 되었다.
바츠가 말했다.
“폐하께서 보낸 손님인 줄도 모르고 저희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우사의 신분을 확인한 바츠가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우사도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아닙니다. 저 또한 밀명으로 행한 일이니 당연히 모르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레국으로 가면 구해야 될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폐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사람이 우사 님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후우…… 어쨌든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저는 그걸로 됐습니다.”
우사의 몸속에서 나온 서신.
그것은 아서스가 우사에게 내린 밀명이 적힌 서신이었다.
우사는 그것을 부적처럼 가지고 다녔다. 언젠간 이 서신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킨리스가 말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혹 불편한 곳이 있다면 군단 내 사제를 불러 드릴 테니 언제든지 말씀하시지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세 사람은 한동안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 같은 것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물렁해지자 우사가 말했다.
“두 분께서 저를 편안히 맞이해 주시니 이제야 좀 긴장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럼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빠져나왔으니 이곳에 온 목적을 두 분께 말씀드려야겠군요.”
소레국 내부의 밀고자가 목숨을 걸고 적진에서 빠져나왔다.
그렇단 말은 전쟁에서 요긴하게 쓸 최신 정보를 함께 가져왔다는 뜻이다.
우사의 소개에 두 사람이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선 저에게 그 서신을 주시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서신을 다시 건네받은 우사는 받은 서신을 뒤집어 외피가 바깥에 오도록 했다.
그런 다음 그 위에 손을 얹은 후,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두 분께서도 여기에 손을 올려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우사의 요청에 두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선뜻 두 손을 올려 주었다.
이윽고 뒤집힌 서신 위에 세 개의 손이 포개어지자, 우사가 나지막이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이동.”
츠팟!
순간, 막사 안을 집어삼킬 정도로 눈부신 광명이 잠시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막사 안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 * *
휘오오오!
몰아치는 눈보라.
그러나 몸 위로 눈들이 쌓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허공의 어딘가에 눈을 막아 주는 결계가 처져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결계 바깥에는 눈들이 소복이 쌓여 있었지만 결계 내부에는 한 줌의 눈도 쌓여 있지 않았다.
츠팟!
광명이 번쩍였다.
그리고 눈들이 쌓이지 않은 결계 내부에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무슨!”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바츠와 킨리스는 그제야 서신에서 손을 떼며 허리춤의 칼을 뽑았다.
그런 후 곧바로 우사를 붙잡아 땅에 처박은 뒤 목덜미 뒤에 칼을 들이밀었다.
“네놈! 이게 무슨 짓이더냐!”
화가 났다.
척 보기에도 이곳은 절대로 소레국이 아니었다.
게다가 형태를 감안컨대 이것은 분명히 텔레포트 같은 이동 마법의 한 종류임이 확실했다.
이에 우사가 몸을 덜덜 떨며 대꾸했다.
“죽일 거면 죽여라! 이젠 나도 모르겠으니까!”
우사의 목소리는 겁에 잔뜩 질리기도 하였으나 모든 것을 포기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이에 분노에 찬 킨리스가 칼끝을 밀어 넣으며 목덜미에 상처를 냈다.
“으아아아!”
겁에 질린 우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우사가 비명을 내지른 그 순간.
“그만.”
누군가 킨리스의 행위를 저지했다.
헨리였다.
헨리를 발견한 바츠가 두 눈에 살기를 잔뜩 띠우고서 헨리에게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바츠는 진심으로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스의 직인 이 찍혀 있어 우사를 진짜 첩자라고 믿었건만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누구겠어? 너희 둘을 이쪽으로 불러낸 장본인이지. 혹시 아직 아서스한테 못 들은 건 아니지? 내가 누군지 말이야.”
“뭐라고? 그럼 설마 네놈이……!”
“그래, 아마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번 만남이 내 공식적인 데뷔전이 되겠네. 반갑다.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 아서스가 그토록 찾아 헤메던 새로운 마탑의 주인이자 모든 마법사들의 수장이다.”
휘오오오!
강풍이 더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그리고 그러한 눈보라 속에서, 헨리는 바츠와 킨리스를 상대로 공식적인 데뷔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