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시작 (6)
“저, 저자는……!”
알프레드를 알아본 좌사가 눈이 솥뚜껑만 하게 커지며 기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알프레드 대후작은 평생 동안 아서스의 뒤를 닦아 주었던 인물, 그런 자가 연합국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났으니 충분히 놀랄 만도 했다.
“후우우…….”
그의 입에는 굵직한 시가 한 개비가 물려져 있었다.
그리고 입에 문 시가로부터 분홍색 연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저건…….”
놀란 것은 좌사뿐만이 아니었다. 알프레드의 입에 물려져 있는 것을 본 헤라리온 또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헨리를 바라보았다.
“헨리 님!”
“모두들 조용.”
헨리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번에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모두가 입을 다물었을 때, 그제야 헨리가 설명을 시작했다.
“궁금한 게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자는 아서스의 오른팔이었던 알프레드 이더웨더가 맞고 입에 물고 있는 것은 헤라리온 전하와 함께 만들었던 핑크 스왐프 또한 맞습니다.”
시원시원한 대답이었다. 헨리의 설명은 이어서 계속됐다.
“알프레드가 비록 아서스의 뒤나 닦던 몹쓸 놈이긴 하지만 단언컨대 이 제국에서 그보다 뛰어난 정령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알프레드를 살려 두었습니다.”
계속된 헨리의 설명에 알프레드는 반쯤 감긴 눈꺼풀을 하고서 궐련을 연거푸 피워 댔다.
헨리의 말에는 일절 관심 없는 눈빛이었다.
“굳이 사과할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헤라리온 전하, 지금 알프레드가 물고 있는 것은 기존의 핑크 스왐프2에서 좀 더 손을 본 핑크 스왐프의 세 번째 개량본입니다.”
“세 번째 개량본……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기존의 궐련은 제아무리 독하다 할지라도 체내의 마력이 일정 수준 이상에 다다르면 중독이나 환각을 전혀 일으키지 않았는데, 개량본은 조금 다릅니다. 아마 단언컨대, 제아무리 최상급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이것을 오래 피운다면 기존의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거의…… 독약이나 마찬가지겠군요.”
“물론 알프레드를 활용해야 하니 농도는 어느 정도 조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해독초도 따로 구비해 두었고요.”
“으음, 그런데 헨리 님…… 말씀을 너무…… 앞에서 대놓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알프레드는 여전히 맹한 눈빛으로 헨리 곁에 서 있었다. 그리고 헨리는 알프레드가 듣건 말건 가감 없는 설명들을 내놓았고.
이에 오히려 민망해 하는 것은 헤라리온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 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사자 앞에서 당사자에 대한 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프레드?”
“……예.”
헨리는 조용히 알프레드를 불렀다.
그러자 맹한 눈빛의 알프레드가 헨리의 부름에 몇 발자국 앞으로 나와 헨리 앞에 섰다.
이에 헨리는 손바닥에 오러를 실었다. 그리고…….
철썩!
알프레드의 뺨을 있는 힘껏 올려붙였다.
“……!”
손바닥에 오러가 보일 정도로 강력한 따귀였다.
이에 알프레드가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알프레드의 뺨이 붓고 치아 하나가 빠졌다. 그리고 코피까지 흘렀다.
그러나 헨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어나.”
“……예.”
그러나 알프레드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흐르는 피를 신경 쓰지 않는 듯 떨어진 궐련을 주워다 다시 흡입하기에 바빴다.
그것을 본 도올이 말했다.
“세뇌를…… 시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는데 좀 오래 걸렸습니다.”
“허허, 알프레드 같은 최상급 정령사를 저지경이 되도록 세뇌를 시키시다니…….”
동정심은 없었다.
알프레드는 헨리의 과거를 산산조각 냈던 철천지원수들 중에 한 명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알프레드를 세뇌시킨 것이다.
오직 지금, 전쟁에서 한 번 쓰고 버릴 전쟁용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놈이 제 스승님에게 한 짓은 굳이 말 안 해도 다들 아실 거라 믿고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자가 복수의 대상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앙금을 풀겠다는데, 제 3자가 참견하는 것은 모양새가 좀 아니었으니까.
이어서 헨리가 설명을 계속했다.
“오베르와 아이젠이 죽었고, 알프레드는 살아남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알프레드가 훨씬 더 쓸모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는 그 쓸모를 최대한 살려 소레국을 지키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헨리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했다.
마치 연합국원들에게 전술에 대해 설명할 때처럼 말이다.
“알프레드의 가문이었던 정령사 가문 이더웨더가는 제 손으로 직접 해체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래가 유망한 정령사들을 추려 냈습니다. 그렇게 구성된 최정예 정령 부대원들이 총 100명. 저는 알프레드와 정령 부대를 이용해 이곳, 소레국을 수호할 생각입니다.”
최정예 정령사들 최상급 정령사 알프레드를 포함해 상급 정령사 100명으로 이루어진 대륙 최고의 정령 부대라는 이야기였다.
“그럼 지금부터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혹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부담 갖지 마시고 편안하게 질문해 주시겠습니까?”
설명을 마친 헨리는 이어서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헨리의 꼼꼼한 준비와 알프레드가 가져다주는 충격적인 모습은 감히 입도 뻥긋하게 만들지 못할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에 헨리가 손뼉을 한 번 치며 말했다.
“없는 것 같군요. 그럼 바깥에 제국군이 몰려오는 관계로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가 종료되었다.
헨리와 알프레드가 이곳을 책임진다고 하니 다른 연합국의 수장들은 헨리가 일러 준 대로 모두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제방으로 병력을 밀집시킬 준비를 하였다.
이에 태제와 좌사를 제외한 모두가 회장에서 사라졌다.
회장에 남은 헨리가 태제에게 말했다.
“태제님.”
“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있는 한, 소레국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헨리 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헨리는 태제에게 신뢰 어린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런 후 회장을 벗어나 알프레드와 함께 정령 부대원들이 대기중인 곳으로 이동했다.
“후우우…….”
소레국으로 텔레포트 하기 전, 진작에 정령 부대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정령 부대원들 모두가 눈이 반쯤 풀린 채 분홍색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정령 부대원들을 보며 헨리는 생각했다.
‘쓸모없는 약쟁이 새끼들 같으니.’
헨리는 약에 절어 헤롱거리는 정령사들에게 속으로 질책을 퍼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기 모인 정령사들 대부분이 시레드에게 공급한 핑크 스왐프의 일부를 빼돌려 피운 놈들이었으니까.
‘뭐, 그 덕에 일이 잘 풀리긴 했지만.’
헨리가 직접 이더웨더가를 해체하러 갔을 때, 헨리는 저택 한쪽에서 죽어 가는 상급 정령사들을 보았다.
모두들 약에 절어 새로운 약을 찾기 위해 저택을 헤집어 놓은 놈들이었다.
처음엔 저택과 함께 통째로 불태워 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헨리는 죽어 가는 정령사 옆에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계약자를 바라보는 정령들을 보며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얻은 정령사가 무려 100명.’
원래는 107명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치료에 힘을 쏟아도 생사가 불투명한 7명이 죽고 나자 거짓말같이 100명으로 그 수가 딱 떨어졌다.
“모두 따라와.”
정령 부대원 모두에게 조그마한 아공간 주머니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엄청난 양의 개량형 궐련을 담아 주었다.
약쟁이들의 통제는 쉬웠다. 헨리의 손짓 한 번이면 궐련이 담긴 아공간 주머니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으니까.
헨리는 흐느적거리는 정령 부대원들을 데리고 소레국 성벽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아! 대마법사님 오셨습니까?”
“오, 대장군님께서 먼저 와 계셨군요.”
소레국 성벽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그곳에는 소레국을 수호하는 최고의 무력, ‘천하대장군’이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천하대장군, ‘유하’.
그는 소레국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으로 태제와 버금가는 막강한 군사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태제의 검과 방패이자 소레국의 수호신이었다.
유하가 말했다.
“놈들의 숫자가 대략 3만여 명 정도, 그리고 그들의 최고 지휘권자로 바츠와 킨리스가 왔더군요.”
“잔챙이를 보낼 줄 알았더니 아서스가 꽤나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 혹, 별다른 동태는 없습니까?”
“여독을 풀기 위해 막사를 치고 있는 게 전부인 듯합니다만…… 아마 이르면 내일 아침부터 진격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수된 성벽과 공성 병기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마법사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그런데…… 회의는 어떻게 끝났습니까?”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유하는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일부러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회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준비된 소레국의 정예군, 1만 명으로 저들을 막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흐음,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담백한 것 같습니다? 상대 병력이 무려 3만입니다. 그런데도 대장군님께선 전혀 걱정이 안 되십니까?”
헨리가 의아하다는 듯이 질문했다.
이에 유하가 이번에도 역시나 담담하게 대꾸했다.
“설마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적들은 몰려 왔고, 우리 소레국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미처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남은 것은 가진 책무를 다하여 현재에 충실히 임하는 것뿐이지요.”
무관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치관이 담긴 대답을 들은 헨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간단해서 좋군요. 역시 대장군님이십니다. 우사가 대장군님의 반만 닮았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평소 소레국의 안전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했으니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제 잘못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 그를 너무 나무라진 마십시오.”
“이거…… 말을 꺼낼수록 저만 나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군요. 그럼 이제 슬슬 저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되는지에 대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사에 대한 뒷담이나 하자고 이곳에 올라온 게 아니다.
대장군 유하는 좌사에 이어 사용하기 편한, 신념과 무력이 겸비된 강력한 장기 말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새롭게 손에 넣은 장기 말과 준비해 온 패들을 적절히 섞어 세 배나 차이가 나는 병력들을 멋지게 막아볼 생각이었다.
헨리는 발밑에 깔린 수북한 인파와 주변 지형들을 가리키며 유하에게 이번 전투에서 쓰일 전술들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날 때쯤, 유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런 전략이라면 저 많은 병력들을 모두 막을 수 있겠군요.”
“전쟁은 머릿수가 전부가 아니란 걸 이번 전투에서 확실하게 보여 주도록 하죠.”
교육을 끝낸 헨리는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작전의 다음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 말이다.
* * *
깊은 밤.
우사는 가진 패물들을 모두 챙겨 헐레벌떡 소레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자신은 이제 쓸모가 다 되었으니 날이 밝는 대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본보기로 처형한다는 말을 우연찮게 들었기 때문이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과거에 다친 무릎 때문에 우사는 아직도 여전히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짚었지만, 절름발이라고 해서 남은 삶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고통을 줄여 준다는 값비싼 비약을 먹고 어떻게든 소레국을 빠져 나와 어둠 속을 헤쳐 나가는 중이었다.
목적지는 뻔했다.
눈앞에 펼쳐진 제국군의 막사에 닿기만 하면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은 아서스가 작위를 내린, 선택받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막사로 가서 저들에게 헨리의 작전을 알려 준다면 얼마든지 전쟁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우사는 제국군의 막사에 당도했다.
그리고 병사들의 부축을 받아 군단장인 바츠와 킨리스를 만날 수 있었다.
“우사?”
두 사람은 우사를 알아보았다.
아서스가 미리 언질해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사 또한 일이 잘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그동안 헨리에게 당했던 크고 작은 사실들을 모두 낱낱이 고했다.
“그렇단 말이지……?”
우사의 말이 끝났을 때, 바츠가 낮게 웃었다.
“헨리의 직계 제자라…….”
그리고 그것은 킨리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웃음을 본 우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음을 확신했다.
그래서 더더욱 목이 멘 목소리로 그들에게 호소했다.
“놈들에게 정령사가 있습니다! 그것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알프레드와 상급 정령사 100명이!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장 야습을 벌여야만 합니다!”
“호오, 알프레드까지 살아 있다라……?”
귀한 정보가 줄줄이 나왔다.
그리고 바츠의 미소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바츠가 칼을 뽑아 들며 말했다.
“역시 넌 안 될 놈이었어.”
“예, 예? 지, 지금 그게 무, 무슨……!”
서걱!
바츠의 검이 전방을 갈랐다.
그리고 허공에 피가 흩뿌려지며 우사는 자신의 목덜미로부터 날카롭고 섬뜩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눈을 떴다.
사위가 어두웠다.
그리고 갑작스레 눈앞에 광명이 번쩍였을 때, 우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놈 이거…… 정말 안 될 놈이었잖아?”
우사의 눈앞에는 미간을 찌푸린 헨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