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시작 (5)
“주사강, 최근에 두스카인이 독립선언을 했다지?”
“그, 그렇습니다.”
“그리고 두스카인은 여전히 초완족이 집권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두스카인은 집권 부족을 쓰러뜨리기만 한다면 두스카인의 권력을 잡을 수 있다던데…… 내가 아는 사실이 맞나?”
“……그렇습니다.”
“그럼 좀 전에 네가 패배를 선언했으니 두스카인을 통치하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되겠네?”
“그 그건……!”
논리는 완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는 두스카인에 이어져 온 전통대로 행동했을 뿐이니까.
물론 그 전통이라는 것은 같은 두스카인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힘 앞에 장사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다른 동맹국들처럼 평화롭게 회유하는 것보단 힘에 의한 공포정치가 두스카인에겐 더 어울렸다.
주사강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나 헨리가 여우 같이 웃으며 되물었다.
“왜? 아! 혹시 삼세번을 안 해서 그래?”
삼세번.
결과에 쉽게 승복하지 않는 두스카인인들의 성격이 만들어 낸 두스카인 특유의 재도전 문화였다.
삼세번이라는 말에 주사강은 헨리의 눈치를 힐끗 보았다.
헨리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의 뒤편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발락의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닙니다. 당신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좋아, 진즉에 그랬어야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난 정치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야.”
“예, 예? 그건 또 무슨…….”
“말 그대로야. 정치는 내 목적을 위한 소소한 도구에 불과해. 그래서 말인데, 내 뒤에 서 있는 저 친구를 두스카인의 새로운 왕으로 앉힐까 해.”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놀랄 것 없어. 힘을 중요시하는 두스카인에서 발락은 최고의 왕이 될 테니까.”
두스카인의 왕.
그런 귀찮은 자리를 헨리가 직접 지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헨리는 자신을 대신하여 두스카인을 지휘할 새로운 왕으로 발락을 추천했다.
“발락, 넌 어때?”
“난 상관없다.”
“잘됐네.”
타고난 싸움꾼들과 그들을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왕.
발락을 두스카인의 새로운 왕으로 앉힘으로써 헨리는 번거롭게 용병을 소집하지 않아도 훌륭하고 막강한 군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주사강을 포함한 주변의 두스카인인들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왕국의 사람도 아니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외부인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겼으니까.
심지어 그 왕은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채찍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부턴 입에 당근을 물려 줄 생각이었다.
자고로 채찍과 당근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법이었으니까.
이에 헨리가 물었다.
“왜, 억울해?”
“아, 아닙니다…….”
“아니긴, 말이랑 표정이 따로 놀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억울하면 내가 다시 기회를 줄까?”
기회라는 말에 주사강의 귀가 솔깃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심정으로는 헨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헨리의 뜻을 번복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주사강이 애원하듯이 말했다.
“주십시오! 꼭 받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당연히 줘야지.”
간절히 바라면 들어주어야 하는 법이다.
물론 그냥 들어주진 않을 테지만.
이에 헬리의 설명이 시작됐다.
“주사강, 지금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예, 듣기로는 제국에서 대륙 정벌을 시작했다고…….”
“그래. 그런 이유로 우리는 제국에 먹히지 않기 위해 제국과 맞서 싸울 생각이야.”
“제국과 말입니까?”
“왜, 두려워?”
“아닙니다. 독립을 선언한 순간부터 저희도 이미 제국과 맞서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자세야. 그럼 더 고민할 필요도 없겠네. 주사강, 나와 함께 제국을 무너뜨리자. 제국이 멸망하고 새로운 황제, 아서스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그날, 두스카인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해 줄게.”
“…….”
파격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겉을 화려하게 포장했을 뿐이지, 그 알맹이는 자신을 도와 열심히 싸워 주면 두스카인의 자주권을 되돌려 주겠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선택지가 달리 없는 상황에서 헨리의 제안은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이었다.
이윽고 초완족의 왕, 전직 두스카인의 우두머리, 주사강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좋아, 거래가 성립됐군.”
두스카인과 주사강.
그리고 몇 만에 해당하는, 즉 몇 군단에 해당하는 검은 전사들과 훌륭한 지휘관까지, 헨리는 큰 힘 들이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럼 지금 당장 수뇌부 회의를 시작할 테니까 각 군의 참모들을 소집해.”
헨리의 장기판에 새로운 장기 말이 추가되었다.
* * *
제국 이검과 삼검이 이끄는 두 개의 군단. 즉, 제2군단과 제3군단은 ‘소레국’의 제거를 명령받고 이동을 시작했다.
소레국 같은 작은 나라에 두 개씩이나 되는 군단을 파견한 까닭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서스에게 작위와 임무를 받은 우사가 아직까지 소레국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서스는 우사에게 포상도 내릴 겸, 연합국들 중에서 공략이 가장 쉬워 보이는 소레국을 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실제로 정벌이 시작되기 전, 아서스는 우사로부터 연합국의 최근 동향에 대한 보고서를 편지로 받았기 때문에 소레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란 확신에 차 있었다.
제국 이검의 바츠 요란과 제국 삼검의 킨리스 셀.
두 장군이 드디어 도합 삼만에 달하는 군사들을 이끌고 소레국에 도착했다.
이에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소레국의 근위병은 벌 떼같이 나타난 제국군을 보자마자 이 사실을 급히 태제에게 전했다.
“기어코…….”
이에 홍월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헨리에게서 받은 호출권을 찢었다.
그러자 헨리에게서 호출권을 나눠받은 각 동맹국의 수장들이 진동하는 호출권을 꺼내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첫 먹잇감은 소레국인가?”
아마리스와 샤하트라, 그리고 제방의 지도자들은 진동하는 호출권을 확인하자마자 각 나라에 설치된 텔레포트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이윽고 태제 앞에 헬라와 헤라리온, 그리고 도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겁에 질린 홍월이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 여러분! 제국군이 침입해 왔습니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 여기에 우리가 온 거잖아?”
“헤, 헨리 님은요?”
“좀 늦나 보지, 뭐.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녀석이 좀 늦는다고 해서 당장 소레국이 무너질 것도 아니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같은 여자였지만 불안감에 떠는 홍월과는 달리 헬라는 몹시 여유로웠다.
이어서 도올이 물었다.
“적의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대략 삼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태제 대신 대답한 것은 좌사였다.
“삼만이라면…… 3개 군단 정도가 투입된 모양이로군요.”
“파악된 총지휘관은 일단은 둘 정도로 보입니다.”
“총지휘관이라면 군단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파악된 군단장으로는 전 황실친위대장 바츠와 황립 제1기사단장 킨리스가 있습니다.”
“바츠와 킨리스라…….”
좌사는 태제를 대신하여 보고받은 정보들을 빠르게 조합해 연합국들에게 알려 주었다.
이에 헤라리온이 말했다.
“확실히 제국이라 그런지 사이즈가 다르긴 하네요. 2개 군단인데도 병력의 숫자가 3만 남짓이라니, 보통 1개 군단은 1만 명의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나요?”
“뭐…… 구성하기 나름이겠지만 확실히 제국군이니 가능한 숫자인 것 같습니다.”
“그럼 소레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병사들을 운용할 수 있습니까?”
“최대한 징병한다 해도 2만이 한계입니다.”
“정예군은요?”
“1만이 조금 안 됩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병력은 1만 남짓이란 이야기군요.”
헤라리온은 빠르게 소레국의 전력을 파악해 나갔다.
그래야지만 자신들이 얼마나 병력을 지원해 줄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정예군이 1만이 채 안 되는 나라라니? 확실히 소국은 소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출발지가 하이랜더인 것을 고려했을 때, 우리 아마리스보다 소레국에 더 빨리 놈들이 도착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저희 소레국이 아마리스보다 많은 면에서 부족하다 보니 첫 상대로 삼기엔 좋아 보였나 봅니다.”
“뭐, 그렇게까지 자국을 비하할 필요는 없고……. 그나저나 이제 어쩔 셈이야? 소레국에 2개 군단씩이나 도착했다는 건, 다른 나라에는 그럼, 최소 서너 개의 군단이 투입된다는 얘기잖아? 그렇게 되면 지금 당장은 소레국을 도와줄 순 있어도 끝까지 도와주기는 좀 힘들어.”
헬라는 현실적인 부분을 지적했다.
제아무리 텔레포트 게이트로 병력을 운용시킨다고 한들, 수천, 수만에 해당하는 병사들을 수시로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였다.
호출권의 부름을 받은 헨리가 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헨리!”
헨리의 등장에 헬라가 반갑게 반겨 주었다.
이에 헨리는 그녀에게 의무적인 미소를 한 번 지어 준 다음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2개 군단이 이리로 온 것은 제가 의도한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소레국에는 1개 군단 정도로 밀어 버릴 수 있는 크기지만, 배신자 우사에 대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일부러 2개 군단을 요청한 것이니까요.”
“그럼 2개 군단까지는 감당이 가능하다는 이야긴가?”
헨리의 설명에 좌사가 질문했다.
“듣기로는 수도에서 출범한 군단의 숫자가 총 10개라고 들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비발디 타운에 있고 2개 군단이 소레국으로 왔으니 남은 군단은 총 7개가 되겠군요.”
“그럼 아마리스와 샤하트라, 그리고 제방이 7개 군단을 나누어 감당하게 되는 건가?”
“아뇨.”
“그럼?”
“좀 전에 마무리를 짓긴 했는데. 사실 제가 예전에 두스카인에 연합국 제의를 하러 갔을 때, 운 좋게 첩자 한 명을 심어 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첩자 덕분에 두스카인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제국군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기쁘게도 조금 전에 두스카인을 평정하고 오는 길입니다.”
“평정? 설마 그 초완족 놈들을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서스는 두스카인에게 아마리스의 처리를 명령했더군요. 하지만 좀 전에 제가 두스카인의 실권을 손에 넣었으니 사실상 아마리스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공격받지 않는 안전지대가 되었습니다.”
“그럼 남은 곳은 샤하트라와 제방이 되겠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 하자면 7개 군단 전체를 좁은 샤하트라 산맥 안으로 밀어 넣는 것보단 먼저 제방을 처리하고 아마리스에 있을 두스카인과 합류한 뒤, 샤하트라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샤하트라는 지형적인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사막의 매력이죠.”
헨리가 샤하트라의 이점에 대해 언급하자 헤라리온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했다.
이에 헬라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쩌면 되는 거지?”
“당장은 아마리스와 샤하트라가 안전할 테니 소레국은 최대한 방어에 집중하고 나머지 병력 전부를 제방에 집결시키는 게 지금으로썬 가장 현명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그럼 소레국에는 얼마의 병력을 지원하면 되는 거지?”
“딱히 병력을 지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레국은 원래 가진 1만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저들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뭐?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쟁은 머릿수 싸움이야. 그런 싸움에서 병력 차이를 세 배나 두다니? 누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해?”
“전술에 따라 머릿수 정도는 얼마든지 좁혀 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에겐 그 머릿수를 좁혀 낼 수 있는 괜찮은 패가 있습니다.”
“괜찮은 패?”
“그렇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소개하도록 하죠. 이번 전투에서 새롭게 활약할 저의 새로운 장기 말을요.”
소개를 마친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새하얀 원이 그려지더니 이내 곧 낯익은 인물 하나가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진의 빛이 사라지며 모습을 드러낸 인물.
그는 다름 아닌 알프레드 이더웨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