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20화 (220/522)

# 220

시작 (2)

모든 명령이 하달된 뒤, 장군들은 배정받은 병사들을 데리고 명령받은 적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문은 금방 퍼졌다.

평화와 풍요의 여신, 아이린을 모시는 전 제국의 국교, 평화교는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아이니아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특수 도시, 뮤즈리얼의 예술가들은 아서스와 약속한대로 아이니아 제국이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륙민들의 민심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에는 지혜로운 정책과 연이은 승전보도 충분히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음유시인 같은 예술가들의 노래였다.

또한 평화교의 영향력은 어떠한가? 평화교는 무려 대륙을 통일했던 유라시아 제국의 국교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륙 곳곳에는 여전히 평화교의 신자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평화교의 여신을 믿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번쯤은 누군가의 귀감이 되었을 평화교의 태양 전사들이 제국군에 합류함으로써 아이니아 제국은 한층 더 신뢰 깊은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열 명의 장군과 열 개의 군단.

그중에서 현 제국 사검, 록펠러 이그덤이 이끄는 제4군단이 최근에 독립을 선언한 자유도시, 비발디 타운으로 향하고 있었다.

‘건방진 놈들.’

선봉에 선 록펠러는 이를 갈았다.

비발디 타운이라면 대륙 최고의 체스 마스터, 벤트 라르센이 시장으로 있는 곳이 아닌가?

록펠러는 전 제국 시절, 벤트와 체스를 두어 번 나눠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상대가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이이기에 당연히 패배했지만, 당시에 그와 게임을 하며 벤트가 상당히 신사적인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놈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화가 났다.

록펠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의리 없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참수를 해 줘야 직성이 풀리겠어.’

첫 임무치곤 쉬운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혼란을 틈타 독립을 선언해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고 한들, 그 짧은 시간 내에 제대로 된 국방력을 갖추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록펠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따르는 제4 군단의 군사들을 보았다.

든든했다.

제4군단에는 과거에 자신이 이끌었던 황립 제2기사단은 물론이고 새롭게 충원된 막강한 기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치상으로도 수도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임무를 받은 모든 장군들 중 가장 먼저 폐하께 승전보를 가져다 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록펠러는 일부러 강행군을 펼쳤다.

최대한 빨리 비발디 타운에 도착해 한 시라도 빨리 벤트의 목을 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제4군단은 일주일은 족히 걸릴 거리를 닷새 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멈춰라.”

선봉에 선 록펠러가 손을 들어 행군의 중지를 명령했다. 시야에 비발디 타운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막사를 치는 게 좋겠군.”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전군을 돌격시키고 싶었지만 닷새간의 강행군으로 병사들 모두가 꽤나 지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돌격명령을 내릴 만큼 록펠러는 아둔한 지휘관이 아니었다.

제4군단의 막사 건설이 시작됐다.

그리고 제4군단이 막사를 치기 시작하자 성벽에서 근무하던 근위병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벤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뭐? 제국군이 성벽 앞에서 막사를 치기 시작했다고?”

“그렇습니다, 시장님! 아, 아니, 전하!”

헨리의 계획대로 벤트는 비발디 타운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없던 권위가 생겨나진 않았다.

말 그대로 이름뿐인 왕.

하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감투뿐인 자리라고 해도 어찌 됐든 왕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귀족도 평민도 없는 평등한 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기에 별로 권위를 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이에 벤트가 급히 명령했다.

“전군 비상 체제로 돌입하고 경계 레벨을 최고등급으로 높여라.”

“예!”

벤트는 헨리가 일러 준 대로 행동했다.

이에 벤트의 명령을 하달 받은 근위병이 서둘러 비발디 타워를 빠져나갔다. 근위병이 빠져나가는 걸 보자마자 벤트는 품속에 넣고 다니던 호출권을 찢었다.

이에 허공에 새하얀 광명이 포슬거리더니 이내 곧 헨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헨리가 인사말 대신 벤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국군이라도 왔냐?”

“그렇습니다! 대마법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이니아 제국군들이 쳐들어와, 현재 성벽 앞에서 막사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방금 보고받은 거야?”

“그렇습니다.”

“적군의 규모는?”

“대충 헤아려 보았을 때, 1개 군단 정도의 규모라고 합니다.”

“그래?”

아무리 헨리라 할지라도 적군이 얼마나 쳐들어올지는 예상할 수가 없는 법이다.

이에 헨리는 자리를 옮겨 성벽 위로 올라갔다.

헨리를 막는 이는 없었다.

그동안 비발디 타운의 성벽 증축을 위해 수많은 마법사들과 장인들이 다녀간 덕분이었다.

성벽 위에 오른 헨리는 마법을 이용해 시력을 대폭 강화시켰다.

“호오.”

마법으로 시력을 극강으로 강화시키자, 헨리의 시력이 10.0 이상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의 투시 능력도 생겨났다.

‘황립 제2기사단장이 대장으로 왔구먼.’

헨리는 강화된 시력으로 막사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리고 부단하게 명령을 내리는 록펠러를 보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거물이 있을까 한동안 더 막사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막사 내부를 뒤져보아도 장군급은 록펠러가 전부인 듯싶었다.

‘소문이 덜 난 건가? 비발디 타운에 모인 도시군만 해도 1개 군단급인데 겨우 제국군 1개 군단으로 이곳을 친다고?’

물론 같은 군단이라 할지라도 질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용병으로 시작해 농민 같은 보통 사람들로 이루어진 도시군에 비해 록펠러의 군단은 개개인이 모두 고도로 훈련받은 군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이제 하나의 국가로 우뚝 선 독립국이고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벽까지 구비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개 군단이라는 약소한 숫자를 데리고 온 것은 비발디 타운을 명백히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

마음 같아선 은신 마법을 사용한 다음 4군단 막사의 중심으로 잠입하여 광역 마법을 사용하고 싶었다.

참 쉽고 간단한 방법일 것이다.

현재 아이니아 제국군에는 은신한 헨리의 마법을 간파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이제 막 행군을 끝내고 여독을 푸려는 모양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허를 찌른다면 1개 군단쯤이야 더더욱 손쉽게 격파가 가능했다.

하지만 헨리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헨리가 나서서 록펠러의 군대를 제압한다면, 아서스의 관심이 이리로 몰리게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큰일이었다.

가뜩이나 우사를 통해 헨리의 존재가 발각된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곳에 헨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서스는 분명히 제국군 전 병력을 이곳에 집결시킬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헨리가 버티고 서 있다 할지라도 비발디 타운은 금세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쟁에 쓰이는 전술들은 반드시 신중해야만 한다. 운이 좋다면 단기간에 전쟁이 끝나겠지만……. 대부분의 전쟁은 오랫동안 늘어져 왔으니까.’

전쟁에 쓰이는 전술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길어질 지도 모를 전쟁을 어떻게든 유리하게 전개해 나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비발디 타운에 필요한 것은 ‘희망적인 착각’이었다.

예컨대 ‘1개 군단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공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종류의 착각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들에게 희망 어린 착각을 유발시켜 록펠러라는 훌륭한 인재를 이곳에 묶어 두기 위함이었다.

물론 제4군단 전체가 묶이는 것 또한 덤이지만 말이다.

생각을 마친 헨리는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려 시력 강화 마법을 해제했다.

‘최고의 공격은 최고의 방어라는 말이 있지. 하지만 그 반대도 맞는 말이란 걸 보여주겠어.’

판단은 끝났다.

머릿속에 이미 계산을 마친 헨리는 세운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 * *

제4군단.

총 병력 1만 3천.

1만의 군사가 1개의 군단이라고 가정했을 때, 1만 3천은 확실히 많은 숫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록펠러는 더더욱 자신감에 절어 있었다.

그래서 록펠러는 일부러 가지고 온 보급품 중 질 좋은 고기들을 풀어 전날 밤에 병사들의 배를 가득히 채워 주었다.

덕분에 병사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길어 봐야 이틀이다.’

최고조에 달한 병사들의 사기를 보며 록펠러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에 록펠러는 막사 맨 앞에 세운 사령탑 위에 올라가 수만의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오늘! 우리는 열 개의 군단 중 가장 먼저 승전보를 울리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와아아아!”

“전군! 공격 준비!”

“호오!”

자신감에 절은 록펠러만큼이나 제4군단의 병사들 또한 자신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발디 타운으로 도시군이 몰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긴 하였으나, 하나같이 C급 용병이나 농민들로 이루어진 오합지졸이란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공격 태세가 갖추어졌고.

“전군 앞으로!”

“와아아아아!”

명령이 떨어졌다.

이에 1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숱한 지진을 일으키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땅이 울렸다.

이에 성벽 위에서 제국군을 기다리는 도시군의 보병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온다.”

만여 명의 병사들이 만드는 지진은 가히 위압적인 경고였다.

그렇기 때문에 벤트 또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제4군단의 진격을 주시했다.

“화살 장전!”

“장전!”

“발사!”

후두두둥!

도시군을 지휘하는 이는 다름 아닌 벤트였다.

벤트는 헨리가 만들어준 목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아티팩트에 대고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벤트가 직접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평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벤트가 직접 전투에 참여함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더더욱 북돋아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몹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화살이 발사되었다.

시위를 당길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즉석에서 궁병이 되어 화살을 퍼부었다.

이것은 도시군의 장점이기도 했다.

화살에 제국군들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눈먼 화살에 맞은 기사이거나 아직 화살을 제대로 쳐 내지 못하는 하급 병사들의 죽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러를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아는 병사들은 갑옷에 오러를 덧씌워 화살을 튕겨 냈기 때문이다.

이윽고 성벽 앞에 당도한 제국군들이 전날 만든 공성 사다리를 성벽 위에 얹었다.

사다리의 길이는 적절했다.

제아무리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비발디 타운이 성벽을 증축했다고는 하나, 전투 전에 미리 척후병을 보내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니까.

이에 록펠러는 승리를 확신했다.

척후병의 정보에 의하면 비발디 타운은 분명 도시군을 모집해 막대한 수의 병사들을 소집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급하게 소집한 것이다 보니 하나같이 실력이 부족한, 덜떨어진 병사들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록펠러는 튼튼한 사다리와 강인한 병사들만 있다면 순식간에 성벽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십여 개의 사다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얹어졌다.

이에 기어오르는 병사들을 막기 위해 사다리 위로 화살이나 끓는 기름 등을 부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효과는 미미했다.

사다리를 오르는 병사들이 방패 위에 오러를 덧씌운 채 사다리를 오르면 대부분이 해결될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번째 병사가 막 성벽 끝에 다다랐을 무렵, 벤트가 목청껏 소리쳤다.

“지금이다! 밀어!”

“끄으으응!”

병사들의 신음.

수십의 사람들이 매달린 공성 사다리는 제아무리 힘센 사람이 민다고 해도 결코 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시군의 병사들이 미는 것은 공성 사다리가 아니었다.

그들이 밀기 시작한 것은 성벽 한쪽에 마련된 거대한 ‘노’였다.

벤트가 명령을 내리자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일제히 거대한 노를 밀어젖히기 시작했다.

그 노는 마치 배의 방향키를 닮아 있었다.

거대한 방향키는 배의 것처럼 세워진 것이 아닌 중심축에 의지해 바닥에 수평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병사들은 수평으로 단단히 고정된 노를 밀며 그것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향키가 회전하기 시작한 그 순간.

쿠구구구구……!

“어, 어, 어……?”

“이, 이게 뭐야?”

“서, 성벽이?”

병사들이 노를 밀기 시작하자 굳건하게 세워져 있던 성벽이 옆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성벽 전체가 아닌, 장인들이 추가로 증축시킨 성벽의 중간 부분인 ‘허리’ 부분이 말이다.

“으아아악!”

“떠, 떨어진다!”

쿠웅! 쿵쿵!

성벽의 허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며 굳건했던 공성 사다리들이 우후죽순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크크! 맛이 어떠냐! 이게 바로 대마법사님께서 내게 주신 비밀 병기! ‘허리 돌리는 성벽’이다!”

헨리의 히든카드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본 벤트의 얼굴에 희열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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