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19화 (219/522)

# 219

시작 (1)

킬라이브.

세인트 홀.

페이실링.

뮤즈리얼.

그리고 아이니아 제국군.

원래대로라면 중립을 선언한 마탑의 마법사들까지 합류해야 완벽했지만, 아쉽게도 마법사들은 제국을 전복시킨 최악의 범죄자들로 그 위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이라고 알려진 전 8서클 대마법사 헨리 모리스의 직계 제자, 헨리 모리스는 아직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아서스가 예의 주시하는 최악의 범죄자로 규정되었다.

아서스는 그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전 시대의 동맹국들에게도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서스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뻔뻔스럽게도 연합국 결성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러니 더 이상 자비와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를 뼈저리게 치르게 해주는 것뿐.

아서스는 자신의 발아래에 집결된, 온 대륙에서 모인 아이니아 최고의 무력 집단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구성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호가 아닌 ‘대륙 최고’라는 자리였다.

그러니 이 정도 병력이라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

이에 아서스가 목청껏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 제국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은 들어라!”

집결된 병력의 숫자만 수십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서스의 카리스마는 그들 전부를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짐은 지금 몹시 분노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아서스의 분노 섞인 연설이 시작됐다.

“오랜 세월 대륙의 질서와 평화를 수호하던 유라시아 제국이 마탑의 오만한 마법사들의 손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이다!”

아서스는 연설의 첫 번째 외침에서 자신이 분노한 것에 대한 이유와 대륙 정벌에 대한 근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간악한 마법사들은 이제, 제국의 속국이었던 동맹국들을 구슬려 우리 아이니아 제국까지 해하려 들고 있다!”

아서스는 두 번째 외침에서 쓰러뜨려야 할 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놈들은 더 이상 마법사들이 아니다! 놈들은 단두대 앞에 세워야 할 극악무도한 전범자들이다!”

전범.

전쟁을 일으켰거나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대륙 평화를 위협하는 끔찍한 범죄.

아서스는 세 번째 외침에서 마법사들과 합국을 거절한 전 동맹국들을 공식적인 전범자들로 규정하였다.

“자랑스러운 제국의 전사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호!”

연설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아서스는 연설을 통해 대륙 정벌의 명분을 알리고 군인들에게 명예를 얹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한데 버무려 분노라는 원동력으로 가볍게 탈바꿈시켜 냈다.

“우리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 가혹한 심판을 내릴지어다!”

“호!”

대륙 정벌을 위한 출정식이 끝났다. 아서스의 연설에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출정식을 마친 아서스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기 위해 각 군의 최고 지휘자가 된 열 명의 군단장들을 불러 모았다.

아서스는 군단장들을 장군이라고 불렀다.

소집된 장군들 중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예컨대 새롭게 구성된 제국 십검들 같은 존재 말이다.

아서스가 장군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곤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스는 열 개의 군단장 자리들 중, 발락에게 한자리를 내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륙 정벌 직전까지 발락이 돌아오지 않아 급한 대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지금 당장 군단을 지휘할 장군이 필요하긴 했으니까.

이윽고 열 명의 장군들이 아서스 앞에 집결하자 제국 일검 킹턴이 대포로 인사를 올렸다.

“열 명의 장군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킹턴이 인사를 올리자 아서스는 아쉬운 표정을 뒤로 한 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장군들은 기존의 제국 십검들과 페이실링의 용병왕, 그리고 세인트 홀에서 온 태양의 전사들로 구성된, 누가 뭐래도 대륙 최고의 실력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그대들에게 각 군이 책임져야 할 소명과 책임에 대해 알려 주도록 하겠다.”

아서스의 본격적인 정벌이 시작되었다.

* * *

북방에 위치한 작은 마을, 노스코.

노스코는 북부 특유의 척박한 환경 때문에 남부 같은 환경적인 풍요로움은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골든 잭슨이 펼친 이주 정책에 의거하여 면세 혜택을 받아 세금에 대한 부담이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게다가 제국으로부터 주기적으로 생필품을 공급받고 있어 소소한 행복을 인생 최고의 낙으로 여기는 이들이 바로 노스코인들이었다.

그래서 노스코인들은 대부분이 낙천적이며 정이 많고 이웃끼리 잘 지내는 것이 큰 특징이었다.

저녁이 되었다.

노스코인들은 정기적으로 마을 사람들끼리 다 함께 밥을 먹는 ‘스카무’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노스코의 인구는 대략 백이십여 명 정도.

마을이라고 부르기엔 좀 부족한 숫자이긴 하지만 백이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노스코인들은 마을의 중심인 노스코 타운으로 여느 때와 같이 각자 준비한 요리들을 들고 삼삼오오 모였다.

그리고 타운 중심에 통나무를 쌓아 커다란 캠프파이어를 만들고,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넉넉한 양은 아니었지만 음식 중에는 술과 고기도 있었다.

그래서 노스코인들은 가지고 온 술과 음식들을 나누어 먹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음악과 행복이 공존하는 밤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얼큰하게 취해 갈 무렵이 되자, 노스코인들은 스카무를 마무리 짓기 위해 마을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제국이 건국되고 이주 정책이 시행된 직후에 마을이 세워졌으니 노스코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거라고 모두들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라시아 제국이 무너져 더 이상의 보급은 기대하기 힘들 줄로만 알았는데 아서스가 마을의 후원을 이어 주었기 때문이다.

노랫소리가 절정에 치달았다.

마을의 어린아이나 노인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어린 ‘미를렌’이라는 꼬마 숙녀였다.

미를렌이 자신이 만든 율동에 맞춰 전통 민요를 불렀다.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 모두가 웃었고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에 감사해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피이잉!

어디선가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그러나 파공음이라기엔 그 소리가 너무나도 작아 마을 사람들의 노랫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피이이잉!

파공음은 더더욱 길어졌다. 그러나 길어진 파공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피이이이잉!

“음?”

이윽고 마침내 누군가가 길어진 파공음을 눈치챘다.

그러나 뒤늦게 파공음의 존재를 깨달은 순간.

콰지직!

어디선가 날아온 기다란 꼬챙이가 춤을 추던 미를렌의 미간을 정통으로 관통해 버렸다.

“……어?”

“미, 미를렌?”

날아온 꼬챙이는 엄청난 회전력을 가진 꼬챙이였다.

그 증거로 꼬챙이가 미를렌의 머리를 관통한 순간, 연약한 미를렌의 몸뚱이가 회전하는 꼬챙이의 방향을 따라 몸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미를렌의 몸통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꿰뚫린 머리로부터 허공에 피가 흩뿌려졌다.

피는 시계 방향을 따라 흩어졌으며 미를렌의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혔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사색이 되었다.

“미, 미를렌!”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미를렌의 어머니가 그제야 쓰러진 미를렌을 품에 안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를렌의 아버지는 캠프파이어로 쓰려고 만들어 둔 나무 작대기 하나를 집어 들어 미친 사람처럼 고함치기 시작했다.

“누구야! 대체 누구냐고!”

분노와 슬픔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졌다.

그러나 그들의 슬픔이 사방으로 번져 나간 그 순간.

피이잉!

콰직! 콰직! 콰드득!

하나뿐이었던 파공음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도, 도망쳐!”

“끄아아악!”

꼬챙이가 쏟아졌다.

아니, 그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계방향으로 틀어진, 여느 괴물의 뿔이나 가시를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평화로웠던 노스코에 살육의 피바람을 몰고 온 것은 사실이었다.

가시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늘어나는 사상자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쿵!

쿵!

그런데 그 순간, 땅이 울렸다.

“어, 어, 어!”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어떤 사람은 흔들리는 땅 때문에 도망치다가 넘어지는 등,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저게 뭐야?”

어둠이 완전히 내린 밤이었다.

그런데 도망을 치던 마을 사람들 중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실루엣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움에 소리를 질렀다.

시커멓고 거대한 실루엣.

오거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만큼 실루엣은 몹시 거대했다. 마치 수백 년 묵은 나무가 연상될 정도로.

그 실루엣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밑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실루엣의 꼭대기로 가져다 올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시커먼 실루엣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렇다고 짐승의 것이라고 해도 전혀 믿기지 않는 눈동자 하나가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괴, 괴물?”

눈동자 속에 동공이 움직이고 있으니 그것은 생명체가 맞았다.

하지만 이러한 짐승이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마을 사람들에겐 그저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피이잉!

날카로운, 하지만 좁은 느낌의 파공음이 다시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소낙비처럼 매섭게 떨어져 내리며,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모든 것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든 노스코인들이 죽었다.

괴물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모든 노스코인들이 죽은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뜨며 포효했다.

“끼에에에에!”

그것은 기쁨의 포효였다.

괴물의 길고 긴 포효가 끝나자 이윽고 괴물의 주변으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케케케케!”

“키키키키!”

“키아아아!”

한두 개의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나 짐승의 웃음소리 또한 아니었다.

“수집해.”

누군가가 명령했다.

그것은 인간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꽤나 익숙한 그런 목소리 말이다.

남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괴물들은 웃음소리를 멈추고 죽은 노스코인들의 시체를 들쳐 업고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깐.”

괴물들이 시체를 운반하기를 한참, 남자는 미를렌의 시체를 운반하는 괴물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머리가 꿰뚫린, 처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미를렌을 손수 들어 올리더니 물건을 사려는 손님처럼 한참을 이리저리 살폈다.

씨익.

그리고 웃었다.

마치 보석을 발견한 광부처럼 그 웃음은 순수한 행복이었다.

“운이 좋군.”

남자는 미를렌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손수 뽑아냈다.

그런 다음 손끝에 불꽃을 점화시켜 꿰뚫린 환부를 지졌다.

치치직.

살이 굽는 냄새가 났다.

남자는 불꽃으로 상처를 지혈한 다음, 이어서 미를렌의 머리통을 붙잡고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중얼중얼중얼…….

이윽고 남자의 주문이 끝났다.

그리고 그의 주문이 끝난 그 순간, 남자의 몸으로부터 보랏빛 마력이 새어 나와 죽은 미를렌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새어 나온 마력들의 대부분이 미를렌을 감싸 안은 그 순간.

끼기기긱.

고개가 꺾여 있던 미를렌의 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곧 사지가 뒤틀리더니 구멍이 난 얼굴로부터 보랏빛 꽃잎을 가진 기괴한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시시시시…….

꽃은 기괴한 울음을 토해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꽃망울이 지고 그 자리에 열매 하나가 맺혔다.

“좋아.”

남자는 꽃송이에서 핀 보라색 열매를 손으로 집었다.

사과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다.

그런 다음, 남자는 그것을 곧바로 한입에 베어 물었다.

츄릅!

육즙이 풍부했다.

열매의 육즙은 피를 닮은 진홍색이었다.

그리고 선 채로 열매 하나를 모두 먹어치운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가를 닦았다.

“좋아, 아주 좋아…….”

남자의 이름은 드라칸 로티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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