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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215화 (215/522)

# 215

집결 (6)

“굳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목표는 발락의 생포입니다.”

“알고 있어.”

“그럼 저는 간만에 포지션을 바꿔야겠군요.”

헨리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런 다음 손을 들어 올린 후 나지막이 외쳤다.

“위즈덤.”

지이잉.

엘프목으로 만들어진 세상의 지혜, 위즈덤이 소환되었다.

헨리는 이번 전투에서 세 명의 기사들을 전력으로 보조할 생각이었다.

“마법무장.”

퉁!

발 구름 대신 위즈덤을 들어 올려 바닥을 두드렸다.

그러자 에메랄드빛 마력이 지면 전체에 퍼지면서 세 명의 기사를 감싸 안았다.

전신을 감싸 안는 부드러운 감각에 맥도웰이 미소 지었다.

“훨씬 낫군.”

대륙 최고의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보조 마법들이 시전되었다.

이에 기사들은 몸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발락이 말했다.

“척살령이 떨어진 마법사까지…… 놓쳐선 안 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구나.”

헨리의 존재를 확인한 발락이 한층 더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납치 감금한 것도 모자라 이젠 대륙 전체에 척살령이 떨어진 마법사까지 함께 있다니?

그러니 발락의 입장에선 저들을 더더욱 용서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발락의 짧은 소견이 끝난 순간, 맥도웰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스팟!

공기가 진동했다.

전신에 두른 오러를 발끝과 다리에 축약하여 폭발적인 스피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오러 활용법 덕분에 붙은 별명이 바로 음속의 맥도웰.

더불어 헨리의 마법무장 덕분에 맥도웰은 평소보다 두 배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맥도웰은 순식간에 발락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곧바로 발락의 뒤를 노려 창을 내지르듯이 검을 휘둘렀다.

카앙!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발락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검은 형벌을 뒤로 젖히는 것만으로 맥도웰의 공격을 막아 냈다.

“흥.”

그리고 짧은 콧방귀와 함께 뒤로 젖힌 검을 튕겨 낸 후 곧바로 지면을 강타했다.

콰아앙!

지면 전체에 균열이 일었다.

그리고 설산 내부를 깎아 만든 공동의 특성상, 내외로 큰 충격이 가해지면 공동은 금방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다.

‘홀드!’

이에 헨리는 공동 전체에 마력을 흩뿌려 공동의 붕괴를 막았다.

‘영리한 놈.’

이는 철저하게 계산된 발락의 계획이었다.

발락은 자신을 생포해야 한다는 말을 좀 전에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살의를 담아 전력을 다해 결투에 임해도 되지만 상대는 그러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가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될 경우 전투의 양상이 성가시게 변할 것을 알았기에, 일부러 공동의 붕괴를 노리고 검은 형벌을 휘둘렀다.

콰앙!

발락이 다시금 지면을 두드렸다.

그러나 분명히 거세게 지면을 내려쳤음에도 불구하고 파편조차 튀지 않는 바닥을 보며 발락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강한 충격에 의해 지면에 파편이 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먼지조차 일지 않는다.

이는 마법사가 공동의 유지에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계획대로였다.

그리고 발락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음을 깨닫자 희열을 느꼈다.

‘멍청한 놈들.’

분명히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 떼거지로 몰려온 주제에 왜 한꺼번에 덤비지 않는지, 발락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는 확실히 자신을 깔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고마운 방심이었다.

결투에서 방심은 곧 패배로 직결되는 요인이었으니까.

붕! 붕!

공격이 가로막힌 맥도웰은 다시금 발락의 주위를 맴돌았다.

엄청난 속도였다.

일반인들은 감히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는 그런 속도 말이다.

그러나 발락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발락의 입장에서 맥도웰은, 그저 속도만 조금 빠른 날벌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놈이 아무리 진심을 다해 검을 내지른다고 한들, 발락은 맥도웰의 검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한꺼번에 덤비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첫 공격에 나가떨어진 로난은 애초에 신경 쓸 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봉인에서 해방된 직후, 가장 약할 것 같아 검은 형벌을 던져 본 녀석이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약했기 때문이다.

이에 발락은 다시 검은 형벌에 오러를 응축했다.

그런 다음 마구잡이로 폭주하는 오거처럼 사방을 향해 검은 형벌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미친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반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바할드에게 말했다.

“우리도 합류해야 하는 거 아냐?”

“……조금만 더 기다리지.”

“냉정하게 말해서 맥도웰 혼자선 무리란 거, 너도 알잖아. 맥도웰이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저거 봐. 전부 다 막히고 있잖아.”

“…….”

바할드는 대답을 아꼈다.

확실히 반의 말대로, 그리고 헨리의 요구대로 처음부터 한꺼번에 공격을 감행했다면 일은 손쉽게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간단한 방법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리고 로난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걸 알면서도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은 이유는, 수십 년 만에 속세로 나온 발락의 실력이 궁금해서였다.

특히 그 부분에 대해선 바할드가 더욱더 궁금해했다.

바할드는 제법 오랜 세월을 발락과 비교당해 왔으니까.

반의 권유에도 바할드가 움직일 생각을 않자 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잘 알겠다. 그럼 넌 계속 구경이나 해. 난 슬슬 합류해야겠으니까.”

“……알겠다.”

이에 바할드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반은 그제야 뽑아 든 검에 오러를 출력하며 말했다.

“헨리.”

“예, 형님.”

“힘에 부치냐?”

“아뇨. 다들 탐색을 즐기시는 것 같아 저도 딱히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턴 좀 더 적극적으로 서포트 해.”

“알겠습니다.”

맥도웰 혼자선 발락을 어찌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합류해도 결과는 비슷할지 몰랐다.

그래서 반은 헨리에게 좀 더 적극적인 서포트를 요청했다.

이윽고 반의 칼날이 오러에 의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러의 길이를 늘리는 것은 반의 주특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반에게는 이러한 제한적인 장소가 아닌 탁 트인 야외가 훨씬 더 유리했다.

게다가 속도로 밀어붙이는 맥도웰과 합을 맞추기엔 상성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반은 헨리의 도움이 더욱더 절실했다.

“간다.”

츠즈즈즛.

뿜어진 오러가 점점 늘어나며 롱소드 정도의 길이였던 검신이 투핸디드 소드만큼 늘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검신을 가지고 반은 발락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내던졌다.

“여전히 건방지군.”

그러나 발락은 바할드가 아닌 반이 참전한 것을 보고 다시금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입장에서 반의 개입은 한 마리였던 날파리가 두 마리가 되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할 소릴!”

카앙!

싸움에 뛰어든 반은 길쭉해진 리치의 장점을 살려 검은 형벌이 자신의 몸에 닿지 않게끔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그런 다음 채찍을 휘두르듯이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다.

까강! 까강! 깡!

대장간에서나 들릴 법한, 칼날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반은 맥도웰과 마찬가지로 쾌속하게 발락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맥도웰 또한 속검에 박차를 가했다.

금속 파쇄음이 더 빠른 템포로 공동 안을 울렸다.

그러나 발락에게 검을 휘두르는 내내 반과 맥도웰은 생각했다.

‘이 자식, 설마 일부러?’

거리를 벌리고 최대한 검은 형벌에 닿지 않게끔 민첩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락이 일부러 반격을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락은 검은 형벌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었다.

“아둔한 놈들…….”

몇 분간의 검무 끝에 발락이 내린 짧은 감상평이었다.

그리고 발락의 평가가 이어졌다.

“안 본 사이에 개돼지가 다 되었구나, 네놈들.”

“이놈이……!”

모두가 최상급의 경지를 이룩한 소드 마스터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락은 이들에게 개돼지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것은 치욕이었다.

하지만 치욕스러움을 씻어 낼 만큼의 능력을 증명할 수 없음이 더더욱 분했다.

“이 개새끼가……!”

수치스러움의 끝은 분노의 발화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분노를 발화시킨 것은 맥도웰이었다.

맥도웰은 놀리던 발재간을 멈추고 자리에 섰다.

그리고 날이 선 눈빛으로 전신의 오러를 서서히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귀로 들릴 만큼 선명한 파공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폭발한 오러는 굽이치는 파도처럼 맥도웰의 오른손으로 응축되었다.

“그럼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 봐라.”

맥도웰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허리를 굽힌 후 허리춤의 칼집에 칼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웅크린 손목에 기운을 집중했다.

‘발도!’

헨리는 맥도웰의 저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동의 붕괴를 억제하는 작업을 마무리 지은 다음 서둘러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맥도웰의 결전기, ‘푸른 초승달’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맥도웰의 발도술이 펼쳐지려던 순간.

“그만둬, 맥도웰.”

바할드가 맥도웰의 어깨를 붙잡으며 그를 저지했다.

이에 맥도웰의 집중력이 흩어졌다.

그러나 분노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채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뭐 하는 짓이야!”

“그만해, 맥도웰. 그 정도면 충분하다.”

“개소리 집어치워!”

같은 기사로서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 그런 와중에 결전기까지 방해를 받았으니 충분히 불똥이 튈 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할드는 맥도웰을 말렸다.

그리고 동시에 반에게도 나직이 제안했다.

“반, 너도 그만둬.”

“…….”

이에 반의 낯빛 또한 잿빛이 됐다.

그러나 반은 맥도웰과는 달리 입술을 앙다물며 검을 거두었다.

“이거 놓으라고!”

“그만해.”

바할드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맥도웰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헨리는 바할드가 왜 저러한 행동을 취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망이 없나 보네.’

맥도웰의 결전기인 ‘푸른 초승달’은 맥도웰 특유의 속검술을 살린 초고속 발도술이었다.

그리고 대륙에 널린 대부분의 존재들은 맥도웰의 초고속 발도술 앞에 무릎을 꿇어 왔다.

하지만 바할드는 그 발도술조차 발락을 베어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맥도웰을 저지한 것이었다. 상처 입을 친구의 자존심을 위해서 말이다.

바할드가 굳은 눈빛으로 맥도웰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기를 얼마간.

맥도웰은 신경질적으로 어깨 위의 손을 밀쳐 내며 대꾸했다.

“알았다고!”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은 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현재의 두 사람은 결코 발락을 제압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발락이 투구 사이로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렇게라도 주제 파악을 할 줄 알아야지.”

이에 맥도웰이 다시 검을 뽑으려 하였으나, 바할드가 맥도웰의 손목을 붙잡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기랄.”

무슨 뜻인지 잘 안다. 그래서 반과 맥도웰은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헨리 또한 외웠던 주문을 거두고 바할드 곁에 다가가 말했다.

“바할드 님을 믿긴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전 제국 제일검이자 기사왕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그만큼 발락은 벅찬 상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간 기회가 되면 반드시 발락과 겨루어 보겠다고 다짐해 왔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일 뿐이었다.

바할드는 허리춤에 찬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런 다음 오러를 끌어 올렸다.

“드디어 네놈이 나서는구나.”

바할드가 직접 나서자 발락도 그제야 제대로 자세를 갖추었다.

발락과 바할드.

음유시인들 사이에서 이따금씩 회자되던 두 강자의 결투가 드디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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