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집결 (4)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살게라에 마법사가 있는 것을 모르는데 발락은 대체 어떻게 살게라에서 마법사를 찾은 것일까?
그리고 헨리는 애초에 살게라에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을 중점으로 두고 밀고자 수사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우사가 그 사실을 모른다니?
‘그럼 쟤는 뭐야?’
황당했다.
정리해서 생각해 보니 엉뚱한 심증을 가지고 조사에 착수했는데, 우연찮게 범인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잡은 범인은 헨리가 원하던 범인이 아니었다.
‘그럼 대체 누가?’
헨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회장의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회장 안에는 연합국에 중요하다 싶은 인물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다 참석해 있었다.
그러나 헤라리온의 눈을 통해 걸러진 이는 오직 우사 한 명뿐이었다.
‘하?’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 속으로 잠기고 말았다.
밀고자를 잡긴 하였으나 원하던 밀고자가 아니었으니 잡아도 잡은 것 같지가 않았다.
도리어 찝찝한 기분만 한가득 들었다.
‘수사 방법이 틀렸나?’
헨리가 헤라리온을 이용해 이와 같은 수사법을 펼친 까닭은 간단했다.
언젠간 헤라리온이 말하길, 사람이 아무리 진심을 감추려 한다고 해도 결국 속에 있는 본심까지 감출 수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는 모든 진심을 관통할 만한 문장들을 골라 선서를 행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범인을 잡지 못하였으니 수사는 다시 원점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남은 방법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것도 헤라리온의 능력을 통해서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발락, 그놈을 직접 털어 보는 수밖엔 없는 건가.’
현재 발락은 통째로 얼려져서, 클레버의 체스트 속에 가두어 두었다.
마음 같아선 과거에 베네딕을 상대했을 때처럼 체스트 속으로 돌아가 녀석과 사투를 벌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헥터에게조차 패배를 안겨 준 녀석이 바로 발락이었다.
그러니 발락을 직접 털어 정보를 갈취해 내는 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로 여겨야만 했다.
‘쯧, 어찌 됐든 아주 수확이 없는 건 아니니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지.’
머리를 싸매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땐 일단은 하던 것을 멈추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편이 효율적이고 현명한 방법임을 알면서도,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에 헨리는 시선을 돌려 우사를 바라보았다.
우사는 여전히 연합국 멤버들을 상대로 머리를 조아려 가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이중 첩자라…….’
현재 기분으로서는 그냥 혀와 사지를 자른 다음 살게라 눈밭에 던져 놓고 싶었다.
우사가 노출시킨 정보들을 들어 보니 그 중요성이 꽤나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도올의 말대로 녀석을 최대한 활용해야 본전치기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에 헨리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우사 앞으로 다가갔다.
“우사 님?”
“예, 예?”
“입 벌리세요.”
헨리는 손바닥에 흑색의 마력구를 생성해 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압축시킨 후 우사의 입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컥, 커억!”
“씁, 엄살떨지 말고.”
흑색 마력구는 천천히 우사의 입안으로 말려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흑색구가 우사의 식도를 완전히 타고 넘어갔을 때 헨리가 말했다.
“방금 전에 우사 님께서 삼킨 것은 제 마력으로 만들어진 마력 폭탄입니다.”
“포, 폭탄!”
“제 마력이니 당연히 저의 명령에 반응하겠죠? 그리고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인 제가 만들었으니 그 마법을 해제할 수 있는 마법사는 적어도 이 대륙에선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테리온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다만 테리온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마력구에는 약간의 고통을 가미했다는 것 정도.
“크윽!”
우사는 뱃속에 콕콕 찌르는 듯한 고통이 엄습하자 고통스러운 듯이 배를 움켜쥐고서 사색이 되었다.
엄살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딱히 알은체를 하지 않고 테리온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설명해 주었다.
“약속대로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연합국을 위해 개처럼 일하세요.”
헨리의 당부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우사를 쪼아 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니까.
“그리고…….”
헨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곧 오른손에 콜대거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소환한 콜대거를 쥔 후 바닥에 무릎 꿇은 우사에게 칼끝을 들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처벌은 받아야겠죠?”
“예, 예? 아, 아까 전엔 분명히 죄를 사해 주신다고……!”
“쉿. 움직이면 다쳐.”
겁에 잔뜩 질려 몸을 움츠리는 우사를, 헨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칼날을 들이밀었다.
그리곤 능숙한 솜씨로 밀고자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냈다.
새끼손가락을 자른 이유는 간단했다.
우사가 의리를 지키지 않고 약속을 어겼으므로 그 상징이 되는 새끼손가락을 자른 것이었다.
피가 튀었다.
그리고 고통에 익숙치 않은 우사가 흐느꼈다.
그러나 그런 우사를 동정하는 이는 회장 안에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같은 나라 사람인 좌사와 태제까지도 말이다.
헨리는 우사의 잘린 새끼손가락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리고…….
화르륵!
가벼운 화염 마법으로 그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후.”
헨리는 손바닥 위에 쌓인 재를 입으로 불어 허공에 흐트러뜨렸다.
그런 다음 굽혔던 무릎을 펴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원탁 앞에 다시 앉았다.
볼일을 마친 헨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아까 하려다 만 이야기들을 다시금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회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우사는 구석에서 흐느꼈지만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 누구도 우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가 막 시작되려던 순간, 헨리가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아무래도 회의 내용을 전면 수정해야 될 것 같네요. 좀 전에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손에 넣었으니까요.”
헨리의 체스 판이 다시금 변동되기 시작했다. 좀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말이다.
* * *
살게라에서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대륙의 시계는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동안 아서스는 칼리번 요새의 총사령관, 니첼 때의 일을 계기로 다른 사선지인 운요의 해구와 역귀의 절벽을 휘하에 둘 수 있었다.
이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운요의 해구와 역귀의 절벽 역시 칼리번 요새처럼 보급이 끊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특수군 모두 칼리번 요새보다 훨씬 더 먼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유라시아 제국이 멸망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을 포섭하기란 누워서 떡 먹기보다도 훨씬 더 쉬운 일.
아서스는 두 특수군을 손에 넣은 뒤 그들에게 정기 보급을 약속한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황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황궁에 복귀한 후, 아서스는 각지에 파견하였던 사신들이 귀환했음을 보고받을 수 있었다.
이에 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신들은 아서스의 환궁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황실로 집합하였다.
긴 출정을 마치고 돌아온 아서스.
그가 근엄한 표정으로 황좌로 복귀하자 집합한 사신 모두가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럼 차례대로 보고받도록 하지.”
“옛, 폐하!”
사신은 모두 열넷.
다섯 개의 동맹국과 네 개의 특수도시, 그리고 세 개의 자유도시.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진 전 대후작 놈들에게 둘.
개중에 특수도시에 해당하는 킬라이브와 먼저 돌아온 테리온을 제외하면 열두 명의 사신이 아서스에게 보고를 올려야만 했다.
보고가 시작되었다.
먼저 보고를 올린 이들은 특수도시로 떠났던 이들.
신성도시와 용병도시, 그리고 예술도시에 파견된 사신들이었다.
“신성도시 세인트 홀은 아이니아 제국의 국교가 되길 희망하였습니다.”
“용병도시 페이실링은 아이니아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하였으며 그 증거로 전쟁이 일어날 시 언제든지 전투에 참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술도시 뮤즈리얼 또한 아이나이 제국의 새로운 역사를 노래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
돌아온 사신들 중에 발락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는 자신의 명을 받고 살게라로 떠났으니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이에 아서스가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다음 차례는 동맹국에 파견되었던 사신들이었다.
이에 아서스의 표정이 다시금 굳었다.
“다들 거절했겠군.”
침묵하며 고개를 숙이는 사신들.
그러나 소레국에 파견되었던 사신은 당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폐하! 소레국은 아이니아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교섭에 실패하고 돌아왔으니 소레국의 사신은 더더욱 기세가 등등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아서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다음.”
“……?”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음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신.
억울했다.
그러나 사신은 우사가 태제를 배신하고 이곳에 다녀간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동맹국들의 사신이 물러난 후, 다음엔 자유도시로 파견되었던 사신들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자유도시로 파견되었던 사신들의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음?”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사신들을 보고 있자니 아서스는 불안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폐하, 비발디 타운과 앙켈만, 그리고 무슈까지 모든 자유도시들이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뭐?”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 형태가 독립국 선언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머릿속에 숱한 계산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유도시 주제에 독립을 선언해?’
애초에 자유도시가 하나의 왕국을 굴복시켜 도시로 전환시킨 형태이긴 했다.
하지만 왕국이 도시가 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도시가 하나의 나라로 기능하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필요할진데 대체 무슨 수로 이 시국에 독립을 선언하겠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이미 벌어진 일.
아서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일단은 다른 보고들을 마저 받기로 했다.
“다음.”
이윽고 두 대후작을 추적했던 사신들이 앞으로 나섰다.
“어떻게 됐지?”
어떤 의미론 가장 기대가 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두 사신의 표정들이 영 좋지 못했다.
“아이젠 후작은 영지전 이후, 그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젠 후작이 실종된 이후 쇼난 지방 또한 와해되었습니다.”
“알프레드 후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또한 영지전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후작이 실종된 이후 이더웨더 지방 전체가 와해되었습니다.”
‘쯧, 역시 그런 건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혹시 모를 기대를 품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잠자코 발락이 데리고 올 오베르나 기다리기로 했다.
‘소득이 있다면 용병국과 신성국 정도인가?’
특수도시.
그중에서도 교황이 다스리고 있는 평화와 풍요의 여신, ‘아이린’을 모시는 평화교의 세인트 홀을 손에 넣었다.
아서스는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지러운 민심을 잡는 데에는 종교만 한 것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다른 특수도시에 비해 그 규모는 작을지언정 교황청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군사력, 특히 사제와 성기사, 그리고 몽크들이 가진 힘은 황실기사단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군사력이었다.
‘그리고 용병국.’
용병국 페이실링.
비발디 타운에도 용병들이 많이 몰리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박에 인생을 바친 하류인생들이나 모이는 곳이었다.
물론 그러한 하류인생들 덕분에 세금 수급은 원활했지만 용병들의 양이나 질을 따져 보았을 땐 페이실링이 압도적으로 더 우세했다.
‘성기사단과 용병왕, 그리고 징벌왕을 휘하에 두었으니 더 이상 준비할 게 없겠군.’
우사를 적진의 첩자로 심어 두었고 킬라이브에는 아무도 모르는 와일드카드들을 제작 중에 있었다.
그러니 이제 준비는 얼추 끝난 셈이다.
이윽고 한참의 고민 끝에 아서스가 말했다.
“지금 당장 전군을 소집토록 하겠다.”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휘하에 둔 전군을 대상으로 소집령을 내렸다.
더는 대륙 정벌을 미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의 새로운 역사가 태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