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꼬리잡기 (4)
시녀들의 안내를 받아 황제가 있는 회장으로 우사가 들어섰다.
“소레국의 우사라고 합니다.”
지팡이를 짚고 회장에 입장한 우사는 힘겹게 한쪽 무릎을 꿇어 보이며 아서스에게 예를 갖추었다.
이에 아서스가 말했다.
“우사라…… 태제와 함께 소레국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두 문관을 아마 대사라고 하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런데 좀 의외로군. 아직 소레국에 보낸 사신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대는 혹시 내가 보낸 사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한 답변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가?”
말 그대로였다.
아서스는 소레국에도 사신을 보냈으나 아직 테리온을 제외한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은 상태.
그렇기 때문에 사신보다 먼저 온 우사가 의아했다.
이에 우사가 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소레국을 대표해서가 아닌, 새로운 제국의 황제 폐하를 위해 저 혼자 독단적으로 이곳에 온 것입니다.”
“태제도 모르게 말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그래?”
소레국 최고의 권력자, 태제도 모르게 자신을 찾아왔다.
탁한 냄새가 났다.
이러한 시국에 통치자 몰래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결코 그 의도가 불순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아서스의 두 눈에 흥미로움이 어렸다.
“그럼 어디 한번 들어나 보지. 무슨 연유로 그대가 모시는 주군까지 속여 가며 이곳에 왔는지 말이야.”
아서스의 권유에 우사는 숨을 몇 번 들이쉬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 떨렸다.
우사는 큰 결심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태제 몰래 이곳까지 온 것이고.
그렇기에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무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우사는 이를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폐하,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 감히 폐하께 주제넘은 부탁을 한 가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그렇사옵니다.”
“이미 태제 몰래 여기까지 온 주제에 부탁이라니, 그 행동이 모순되긴 하나 궁금하기는 하군. 한번 말해 보게.”
“감사합니다, 폐하.”
우사는 마지막으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저에겐 지금 아이니아 제국의 존망을 뒤흔들 수 있을 만한 정보가 있습니다.”
“제국의 존망을 뒤흔들 정보?”
“그렇사옵니다.”
“흥미롭군. 그렇다면 그대의 부탁은 당연히 그대의 미래를 책임져 달라는 것이겠군.”
“그렇사옵니다, 폐하.”
“좋다. 만약 그대가 정말로 그러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내 필히 그대를 내 사람으로 등용하여 평생 동안 곁에 두고 부귀영화를 약속토록 하지. 하지만…….”
담담히 부귀영화에 대해 읊던 아서스는 말꼬리를 비틀었다.
“만약 허황된 사실이나 말도 안 되는 거짓부렁을 나불거린다면 그 대가는 녹록치 않을 것이야.”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아서스는 부귀영화의 약속을 읊을 때처럼 마찬가지로 경고 또한 담담히 읊조렸다.
이에 긴장한 우사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얼마 전, 소레국에 마법사 한 명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폐하.”
“마법사?”
“그렇습니다.”
첫마디부터가 아서스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렇잖아도 전 제국의 마법사들에게 척살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척살은커녕 그들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다.
이에 아서스가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로어 길리언이 왔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죽은 전 대마법사, 헨리 모리스의 유일한 제자가 소레국에 찾아왔습니다.”
“……뭐?”
우사의 대답에 아서스의 동공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그리고 일순간, 뇌가 생각하는 것을 중지했다.
‘헤, 헨리 모리스라니?’
우사는 분명히 헨리 모리스의 제자라고 했다.
하지만 아서스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서스는 턱을 괸 채로 그대로 굳었다. 그러나 이내 곧 정신을 되찾은 듯 고개를 살짝 털어 내며 우사에게 되물었다.
“그대는 지금 짐을 능멸하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폐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폐하! 이는 저뿐만이 아니라 태제와 좌사까지 모두 똑똑히 보고 들은 사실이옵니다.”
우사는 서둘러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변명했다.
게다가 태제와 좌사까지 보고 들은 사실이라면 더더욱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헨리 모리스의 제자라니?
그는 분명히 마탑에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긴 하였으나 정식으로 임명한 ‘직계 제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 모리스가 죽은 날, 아서스는 더 이상 그와 관련된 숙청을 중지하였다.
‘여태껏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소레국에 나타났다고?’
이상했다.
반란을 준비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동안, 대마법사의 제자라고 의심될 만한 이는 한 번도 보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식 제자는 아니었으나 오랫동안 헨리의 가르침을 이어 온 마탑의 마법사들을 견제하였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뜬금없이 헨리의 직계 제자가 나타났다니?
참으로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아서스의 추궁이 시작되었다.
“좋아, 그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계속해서 대화를 나눠 보도록 하지. 그렇다면 그자의 이름은 무엇인가?”
“헨리 모리스입니다.”
“음?”
“농담이나 거짓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스승과 동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헨리 모리스라고 소개하였으며 그의 수준은 이미 전 마탑장인, 로어 길리언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현재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6서클을 이룩한 로어 길리언인데 그를 훌쩍 뛰어넘었다니?”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그자는 스스로를 7서클 대마법사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쾅!
대륙 유일의 7서클 대마법사!
그것은 헨리에게 숨겨진 직계 제자가 있다는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우사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폐하. 그는 전 마탑의 마법사들을 한데 모아 그들의 새로운 수장이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현재는 동맹이 파기된 전 동맹국들을 찾아다니며 폐하와 대적할 연합국을 형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7서클 대마법사라는 엄청난 전력이 생긴 것도 모자라 동맹국들을 모아 연합국을 형성하려 한다니?
확실했다.
놈은 지금 자신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군……!”
우사의 말을 듣고 있자니 왜 황궁의 마법사들이 자신을 배신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것은 바로 구심점이었다.
그들에게 어느 날, 헨리의 직계 제자라는 신적인 존재가 나타나 그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놈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한 것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지적 자부심이 대단하고 오만한 족속들이라고는 하나, 결국 ‘헨리’라는 신화적인 인물 앞에선 한낱 어린 양에 불과했으니까.
물론 그 대상이 진짜 헨리가 아닌 직계 제자라 하더라도 이미 로어 길리언을 추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추대하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형성되었다.
‘직계 제자라…… 그렇다면 놈의 목적은 뻔하겠군.’
마탑의 마법사들을 선동하고 황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뿐만이 아니라 황제의 목을 잘라 축복의 전당에 효시해 두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보낸 새로운 십검들까지 죽였으니 이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법한, 뻔한 복수극이었다.
“큭큭, 재미있군.”
확실히 우사의 밀고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할 뻔하였다.
이에 아서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의심에서 보배를 발견한 듯한 애정 어린 눈빛으로 말이다.
우사는 그 눈빛 속에서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밀고가 제대로 먹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서스는 생각했다.
밀고자가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낚아 주었으니 이제 그것을 손질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말이다.
생각을 마친 아서스가 말했다.
“우사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폐하.”
“그대에게 아이니아 제국, 후작의 지위를 내리고 그에 준하는 영지를 내리도록 하겠다.”
“……!”
후작!
공작 다음에 해당하는 막강한 지위로 제국의 후작은 어찌 보면 동맹국의 왕보다 훨씬 더 높은 자리에 속했다.
이에 우사의 목구멍 속으로 탐욕의 침이 꿀꺽 스며들었다.
“하지만…….”
“예, 예?”
“이 모든 건 대륙을 어지럽히는 벌레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난 뒤에 하사토록 하겠다.”
“그, 그런……!”
“물론 걱정하지 마라.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니까.”
어째 일이 잘 풀린다고 했다.
우사는 지금 당장이 아닌 모든 일이 끝난 뒤에나 상을 내리겠다는 아서스의 말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늘 그렇지만 불안한 쪽은 상을 내리는 쪽이 아닌 받는 쪽이었으니까.
이에 아서스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사.”
“예, 폐하.”
“내 아무리 모든 일이 끝난 뒤에 그대에게 작위를 내린다고는 하였지만 나는 지금부터 그대를 후작으로서 대우할 것이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좋아,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그대는 이제 자랑스러운 아이니아 제국의 후작이 되었으니 당연히 제국을 위해 평생 봉사할 준비가 되었는가?”
“무, 물론입니다, 폐하!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신다면 제국을 위해 평생 온몸을 바쳐 제국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훌륭하군. 아주 좋은 자세야. 지금 나에겐 그대 같이 훌륭한 인재들이 아주 많이 필요하던 차였거든.”
이어서 아서스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대는 지금 당장 본국인 소레국으로 돌아가도록.”
“예,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
“말 그대로일세. 어차피 태제 몰래 소레국을 나왔다고는 하나, 그것은 몰래 나왔을 뿐 딱히 범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면 돌아가지 못할 이유도 없지. 내 특별히 황실의 텔레포트 스크롤을 그대에게 하사할 테니, 그대는 지금 당장 소레국으로 돌아가게. 그리고 그 뒤는…… 말 안 해도 잘 알겠지?”
“……물론입니다, 폐하.”
이렇게 조건이 좋고 머리가 똑똑한 장기 말이 있는데 어찌 전쟁 중에 가만히 썩힐 수만 있겠는가?
아서스는 우사를 훌륭한 첩자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것은 밀명이네. 다른 사람에겐 절대로 알려져선 안 될 밀명. 그러니 자네의 책임이 참으로 막중하네. 자네가 말한 대로 자네의 애국심에 따라 우리 제국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을 테니 말일세.”
부귀영화를 약속하되 막중한 책임감까지 어깨에 지워 주었다.
그리고 우사는 이미 아서스에게 귀중한 정보를 누설하였으니 벼랑 끝에 선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우사의 얼굴색이 먹구름처럼 탁해졌다.
물론 우사는 아서스가 순순히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자신만큼 메리트 있는 장기 말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사가 절개와 충의를 버리고 아서스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대륙 유일의 대마법사와 다섯 동맹국이 힘을 합쳤다지만, 이미 절반이 넘는 대륙을 집어삼킨 아서스를 상대하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은 용 머리는 필요 없다.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뱀의 꼬리로라도 남겠다.’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살아남은 승자들의 몫이다.
그렇기에 우사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그것이 설사 볼품없는 뱀의 꼬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후…… 이럴 때 천강 님이라도 살아계셨다면…….’
우사가 변절자가 된 이유에는 전 태제, 천강의 죽음도 한몫했다.
그는 우사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장남과 차남까지 죽어 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란 홍월이 핏줄을 이유로 태제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제아무리 대마법사가 연합국을 제의해도 불투명한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을 추스른 우사가 바닥에 이마를 붙이며 말했다.
“미천한 저를 거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을 황제 폐하의 은혜를 갚으며 살겠습니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지.”
아서스가 흡족한 듯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헨리가 쌓은 주춧돌에 조그마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