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96화 (196/522)

# 196

로난 (2)

포람의 성을 포기하는 것.

그것은 로난의 신분이 다시 귀족에서 평민이 됨을 뜻했다.

“이셀란 경!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십니까!”

로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본 헤밀턴이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헤밀턴이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지르려던 찰나, 이셀란이 살기를 띠우고 헤밀턴을 노려보았다.

“크, 크윽…….”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저 압도적인 눈빛.

헤밀턴이 잠잠해지자 이셀란은 그제야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로난.”

“예, 부사령관님.”

“무엇을 망설이느냐?”

“예……?”

“수십 년을 포람에게 빌붙어 목숨을 부지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니더냐?”

“그, 그건…….”

“어렸을 땐 누구나 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느냐? 지금의 너를 한번 보아라. 네가 비록 마물들과 매일을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지 않느냐?”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의 로난은 살기 위해서 포람 가의 양자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고 포람 가의 무예를 익혔다.

그렇게 해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지급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것에 대한 보상은 헤밀턴을 대신해 평생 동안 마물을 상대하며 이곳에 복무하는 것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제도라는 이름뿐인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말이다.

“로난, 포람의 성을 버려라. 네가 지금 포람의 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넌 평생 동안 포람의 개가 되어 킹턴의 사냥개로 살다가 늙어 죽을 것이다.”

이셀란의 말에는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실제로 여태껏 로난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킹턴이 갑자기 제국 십검으로 그를 추천한 까닭도 새로운 제국에 자신의 기반을 다지기 위함이었으니까.

이에 결국 참지 못한 헤밀턴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셀란 경! 이번 일은 도를 넘으셨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아버님과 폐하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알리든가.”

“예?”

“겁쟁이 자식, 얼굴만 못생긴 줄 알았더니 하는 꼬락서니도 못생겼군그래? 불쌍한 킹턴, 애써 지은 자식 농사가 흉년이라니.”

“그, 그건 또 무슨 무례한 발언이십니까!”

“왜? 내가 틀린 말을 했나? 네놈은 킹턴의 하나뿐인 적자가 아니더냐? 그렇다면 네 아버지가 이런 일을 시켰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임무를 완수할 생각부터 해야지, 고작 한다는 소리가……. 뭐? 킹턴한테 일러?”

이셀란은 참고 있던 조롱을 폭포처럼 쏟아 냈다.

점점 더 얼굴이 벌게지는 헤밀턴.

이에 이셀란이 더더욱 이죽거리며 말했다.

“왜? 분하면 검이라도 뽑든가. 만약 네가 정당하게 순수하게 실력으로 로난을 제압한다면 포람에서 로난을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재기하지 않겠다.”

쾅!

이셀란의 이죽거림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헤밀턴이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셀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 말……! 꼭 지키셔야 합니다……!”

씨익.

“물론이지.”

이에 이셀란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으니 낚시꾼이 미소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윽고 헤밀턴이 말했다.

“로난!”

“예, 형님.”

“검을 뽑아라. 내 포람 가를 이을 유일한 후계자로서, 모두에게 모범을 보이고 정정당당하게 너를 아버지 앞에 데려가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쿵쾅쿵쾅!

헤밀턴이 로난에게 대련을 신청하자, 로난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헤밀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비교를 받아 왔던 포람가의 적통, 헤밀턴 포람 말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굉장한 일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고 양자들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인다 한들, 헤밀턴은 적자라는 이유로 조금만 검을 휘둘러도 후한 대접을 받았다.

이에 로난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떨림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이셀란이 로난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로난.”

“예, 예! 부사령관님.”

놀라는 로난.

이에 이셀란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담 갖지 마라. 설령 네가 패배한다고 해도 난 너에게 실망하지 않을 테니까.”

“부, 부사령관님……!”

실망.

살면서 포람 가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그리고 유년시절 끊임없이 자신을 압박감 속에 몰아넣었던 말.

실망했다.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냐.

나는 네 나이 때 이보다 더한 것을 이루었다.

특히나 이러한 힐난은 킹턴의 버릇이었다.

그래서 로난은 누군가의 기대감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강박증이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러한 상황이 자신에게 찾아왔다.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 놓을 일생일대의 기회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로 앞에서 로난은 두 사람을 보았다.

헤밀턴과 이셀란.

그렇다면 로난의 선택은 뻔했다.

“감사합니다, 부사령관님.”

마음을 굳게 먹자 손끝의 떨림이 멈추었다.

이에 로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셀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헤밀텐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놈이……!”

툭하면 양자들을 괴롭혔던 헤밀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들 모두가 헤밀턴의 괴롭힘에 길들여져 있어 무의식적으로 헤밀턴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것은 로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좀 전에 보여 준 이셀란의 격려로 인해 헤밀턴에 대한 두려움과 본연의 강박증, 모두를 떨쳐 낼 수 있었다.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두 사람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 * *

“진검을 뽑아라, 로난.”

헤밀턴은 니첼이 건넨 목검을 마다했다.

이셀란에게서 받은 모욕을 로난에게 마음껏 풀어낼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셀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놈.”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고 있는데 그 어떤 구경꾼이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이셀란은 헤밀턴의 그러한 행동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그럼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헤밀턴의 명령에 로난도 목검을 내던지고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로난의 검은 이셀란에게서 선물 받은 ‘로아누스’라는 검으로, 로난이 이셀란의 부관이 되었을 때 이셀란이 특별히 무슈에 의뢰하여 만든 검이었다.

슬그렁.

로아누스의 칼날은 상앗빛을 띠고 있었다.

로아누스를 본 헤밀턴이 말했다.

“형편없는 검이군.”

저급한 비아냥.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문의 검, ‘포세이라’를 뽑아 들었다.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이었다.

검날은 대륙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미카제 강철’을 사용했으며, 새끼 송아지 가죽으로 된 손잡이는 주기적으로 가죽을 갈아 주어 늘 새것과도 같았다.

구경꾼은 니첼과 이셀란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두 사람만 대련에 참관해도 증인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했다.

츠즈즈즛!

오러를 내뿜는 두 사람.

아무리 얼굴이 못생겼어도 헤밀턴 또한 기사왕 킹턴의 아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킹턴의 무예 실력을, 진한 핏줄을 물려받았다는 뜻.

두 개의 푸른 불꽃이 대련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내 곧 같은 자세를 취했다.

두 사람 다 포람 가의 사람이어서 같은 검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이에 헤밀턴이 말했다.

“선공을 양보하지. 어디 재주껏 날뛰어 보거라.”

헤밀턴은 자신이 질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난 또한 포람의 검술을 배우긴 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급형 검술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배운 것은 포람 가의 적통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포람 검술의 원류였다.

이에 로난이 가볍게 대꾸하며 발재간을 놀리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츠팟!

로난의 발걸음이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군더더기 없이 유연하고 빠른 발놀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에 헨리와 대련을 나눈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본기를 연마했기 때문이다.

‘흥, 겨우 이 정도냐?’

그러나 헤밀턴의 눈에는 로난의 움직임이 보였다.

포람 검술의 원류 중에는 보급형 포람 검술을 제압하는 상극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람 검술은 보급형이라 해도 분명히 뛰어난 검술이다. 하지만 짝퉁은 오리지널을 이길 수 없는 법!’

헤밀턴이 자세를 취했다.

로난의 포람 스텝을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로난의 몸체가 헤밀턴의 코앞까지 당도한 그 순간.

부웅!

헤밀턴의 검이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휘둘렸다.

그런데 검이 휘둘린 순간, 눈앞에는 로난이 없었다.

“……!”

증발이라도 한 것일까? 로난은 정말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그 순간, 헤밀턴은 등 뒤에서 엄청나게 차가운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뒤!’

황급히 몸체를 틀었다.

그러나 이미 로난의 검이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다.

스핏!

칼날이 얼굴을 스쳤다.

그러나 헤밀턴은 가까스로 고개를 젖혀 로난의 검을 피했다.

그러나 모두 피하지는 못해 왼쪽 볼에 긴 검흔을 남겼다.

투둑, 툭…….

바닥에 핏물이 떨어졌다.

그것은 분명한 살의였다.

자신의 얼굴을 꿰뚫으려던 살의 말이다.

이에 헤밀턴이 몸을 회전시켜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네놈! 지금 이게 무슨 짓이더냐!”

대련이라고 했지, 목숨을 건 대결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헤밀턴이 씩씩거리자 로난이 말했다.

“피하실 줄 알고 내지른 것입니다.”

“뭐라고?”

“포람 검술의 원류를 익히셨다면 당연히 이 정도는 피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워, 원류! 네가 그걸 어떻게!”

“그럼 모를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럼 또 갑니다.”

대답을 마친 로난은 다시금 거리를 좁혔다.

이에 헤밀턴은 황급히 오러를 응집해 검기를 터뜨렸다.

쾅!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그러나 로난은 달려오는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어, 어떻게!”

검기는 금속과도 같아서 더 강한 금속이 무른 금속을 부러뜨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로난과 헤밀턴 중 더 강한 검기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 ‘로난’이었다.

로난은 헤밀턴의 검기를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온몸에 두른 강기를 믿고서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헤밀턴 앞에 당도한 순간, 로난은 귀신과도 같은 얼굴을 하고서 헤밀턴에게 경고했다.

“막으십시오.”

로아누스는 정직하게 수직으로 떨어졌다.

이에 헤밀턴은 본능적으로 포세이라를 들어 로아누스를 막았다.

서걱!

귓가에 전해지는 완벽한 파열음.

그리고 칼끝에 전해져 오는 칼끝의 완벽한 묵직함.

로난은 직감했다.

자신이 헤밀턴을 베었다고.

그리고.

…….

쩌적!

쩌저적…!

파삭!

사위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알껍데기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조용히 구경꾼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끝났군.”

이셀란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의 대련을 구경했다.

겨우 두 합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승패는 이미 갈라졌다.

털썩!

헤밀턴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그러고는 입을 반쯤 벌리고선 눈밑 살을 움찔거렸다.

“……아?”

눈앞에 그어진 일도양단은 분명한 죽음을 경고하는 사신의 손짓이었다.

그리고 수 초의 시간이 지났을 때, 헤밀턴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쉬이이이…….

그래서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누런 물 자국이 바닥을 적셨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몸은 쪼개지지 않았다.

대신 손끝에 맴돌던 묵직함이 반으로 갈라졌다.

‘포, 포세이라……?’

갈라진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포세이라였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준, 포람 가의 후계자의 증거로 내준 세상에 단 한 자루뿐인 포람 가의 명검, 포세이라.

이것은 훗날 헤밀턴이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줄 보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포세이라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났다.

철컥.

로난이 로아누스를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릎 꿇은 헤밀턴에게 다가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놀라셨습니까?”

“너, 너……!”

“저는 오늘부로 포람의 성을 포기하겠습니다. 아니, 포기하겠다, 헤밀턴!”

“……!”

“그리고 다음에 다시 얼굴을 보게 되면 말을 높이도록!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으니까.”

로난 포람.

그가 로난 포람에서 온전한 ‘로난’이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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