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93화 (193/522)
  • # 193

    동맹국 (7)

    “이번엔 왕궁으로 안 날아가냐?”

    “이번엔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소레국 사람들은 예를 중요시하거든요.”

    “웃긴 놈, 그럼 다른 동맹국 놈들은 예의가 없다는 거냐?”

    “솔직히 두스카인이나 아마리스가 예의 바른 놈들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소레국.

    그들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제방인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이 쌍꺼풀이 없고 눈매가 날카로워 꼭 여우를 닮았다.

    또한 그들은 드물게도 단일민족이었다.

    소레국 사람들은 흰 옷을 즐겨 입으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머리가 길었는데, 그들이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머리카락 또한 부모가 물려준 신체의 일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복잡한 놈들이지.’

    소레국 사람들을 단순히 무력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두스카인이나 아마리스보다 훨씬 뒤쳐졌다.

    하지만 그런 나약한 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그들을 ‘자유도시’가 아닌 ‘동맹국’으로 남겨준 이유는 그들이 똑똑한 민족이어서였다.

    ‘특히 그놈의 주둥이.’

    소레국 사람들은 물가에 빠뜨려 놓으면 입만 동동 뜰 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술이 뛰어난 민족이었다.

    그리고 구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였으므로, 그들을 말로 상대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헨리는 곧 일행과 함께 소레국 입구에 도착했다.

    “성문이 꽤나 특이하군.”

    소레국 성문 앞에 선 이들은 소레국 특유의 외형을 가진 성문을 보고 나지막이 감탄사를 흘렸다.

    그중에서도 반은 곡선처럼 휜 모양의 지붕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지붕은 언제 봐도 특이하네. 이름이 뭐였더라?”

    “저 지붕은 ‘기와’라는 건데 흙을 구워 만든 소레국만의 전통적인 지붕입니다.”

    “아름답게 보이려고 일부러 곡선을 넣어 구운 것이라면 칭찬할 만한 일이겠지만, 저렇게 하면 손이 많이 가서는 효율이 떨어질 텐데 말이지.”

    “설마 아름다움만을 이유로 저렇게 했겠습니까? 저렇게 해두면 쌓기도 쉬울뿐더러 빗물을 흘려보내기에도 용이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곡선으로 구운 것으로 압니다.”

    “그래? 흠흠, 역시 세상에 의미 없는 물건은 없군.”

    “야, 다른 곳도 아니고 소레국이야. 뭔들 너보다 안 똑똑할까?”

    반이 민망함에 헛기침을 해 보이자 곁에서 듣고 있던 맥도웰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을 조롱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아무튼 이제 소레국에 들어가게 될 텐데, 아시다시피 소레국은 예를 중요시 하는 곳입니다. 일이 잘만 풀린다면 말 몇 마디로도 구슬릴 수 있는 곳이니 제가 특별히 지시하기 전까지는 모두들 검을 뽑아선 안 됩니다.”

    “당연한 소릴! 누가 들으면 우리가 툭하면 칼을 뽑는 줄 알겠네.”

    “아니었습니까?”

    “시끄럽고, 길이나 앞장 서!”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자유학파의 수장인 정키를 보내 유라시아 제국이 무너졌고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걸 알렸으니 일단은 성문부터 걸어 잠근 것이다.

    헨리는 성문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성벽 위로 소레국 특유의 무구를 걸친 경비병들이 헨리를 경계했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태제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뭣? 태제님을?”

    “블링크.”

    슈슉!

    헨리는 태제를 만나러 왔다는 말에 당황하는 경비병 앞으로 블링크를 시전했다.

    “어, 어어!”

    콰당!

    헨리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니 경비병은 당황하여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뭐야?”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나는 좀 전에 사신으로 보냈던 마법사의 수장쯤 되는 사람입니다.”

    “마법사? 아! 좀 전에 왔다 간 그?”

    “그렇습니다. 태제님의 대답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왔으니 문을 열어주시겠습니까?”

    “태제님의 손님이라면 뭐…….”

    태제는 소레국을 통치하는 왕의 호칭이었다.

    그리고 태제의 손님이라면 소레국 사람들에겐 귀빈이나 마찬가지이다.

    문은 금방 열렸고 소레국 왕궁까지 가는 길은 일사천리였다.

    ‘다시 봐도 신기하군.’

    소레국은 단일민족인 데다가 가진 땅의 크기도 몹시 작았다.

    어찌 보면 아이니아 제국의 수도로 지정된 하이랜더 지방보다도 작은 땅덩이였다.

    그러나 헨리는 그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땅덩이는 작았지만 어찌 됐든 헨리를 상대로 동맹국의 자격을 얻어 낸 사람들이었으니까.

    * * *

    헨리는 곧 소레국을 통치하는 태제를 알현할 수 있었다.

    “태제님을 뵙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태제와 만나는 것은 헨리 혼자뿐이다.

    그래서 헨리는 십검들을 뒤로 하고 태제가 초대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르륵.

    궁녀들이 문을 열어주자 방 안에는 하얗되, 반쯤은 불투명한 천 자락이 헨리를 맞아주었다.

    “반갑소. 나는 이 나라를 통치하는 태제요.”

    천 자락 너머로 태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과거, 제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헨리는 이따금씩 태제를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래서 사실, 소레국을 설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만난 태제의 목소리가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말투도 조금 부자연스러운 것이, 헨리가 알던 태제의 말투가 아니었다.

    ‘이 목소리는…… 설마?’

    이번 목소리 또한 굵직하긴 하였으나 일부러 변조한 것처럼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헨리가 슬쩍 물어보았다.

    “태자님.”

    “왜 그러십니…… 앗!”

    “역시.”

    펄럭!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간단한 떠보기였다.

    그런데 태제는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말았다.

    이에 당황한 태제가 천 자락을 젖히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자 헨리의 눈앞에 선이 얇고 머리를 곱게 뒤로 넘긴, 아직은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여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태자님이셨습니까?”

    태자는 태제의 자식을 일컫는 말이다.

    제국말로 따지자면 왕자나 공주 정도.

    그러나 소레국에선 태제의 자식들 모두를 성별에 상관없이 태자라고 부르니 그녀 또한 태자라고 부르는 게 맞았다.

    그녀는 목소리 변조를 위해 목소리를 굵게 만들어 주는 특수한 장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헨리가 질문했다.

    “삼태자님. 태제님은 어쩌시고 삼태자님께서 저를 대신 맞아주시는 겁니까?”

    헨리의 점잖은 물음에 태제가 다시 자리에 앉아 천 자락을 걷어낸 후 차분히 대답했다.

    “흠흠, 저는 이제 태자가 아닌 태제가 맞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태제의 자리를 물려받았으니까요.”

    “……예?”

    태제의 자리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이름은 ‘홍월’.

    그녀는 태제, ‘천강’의 셋째 딸로 헨리의 기억이 맞다면 아직 성인도 채 되지 못한 어린 숙녀로 기억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태제라니?

    헨리는 놀란 마음에 입을 다물고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한참의 고민 끝에 태제에게 말했다.

    “태제님.”

    “예?”

    “천강 태제님과 일태자님, 그리고 이태자님은 모두 어쩌시고 홍월 님께서 태제 자리를 물려받으신 겁니까?”

    “아버님과 오라버니들은 모두 돌림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돌림병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신데 제 아버님과 오라버니들에 대해 그리 잘 아시는 척을 하시는 겁니까?”

    ‘아차! 흥분한 나머지 말실수를 하고 말았구나.’

    뜻밖의 인물이 태제라고 모습을 보이자, 헨리는 당황한 나머지 지켜야 할 예를 벗어나고 말았다.

    이에 헨리가 즉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대마법사이신 헨리 모리스 님을 스승님으로 둔 유일한 제자이자, 현 마탑주로 활동하고 있는 헨리 모리스라고 합니다.”

    “헨리 모리스? 동명이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허, 어르신께 제자가 있다는 말씀은 못 들었는데…….”

    홍월과는 전생에도 친분을 쌓아둔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의 제자라는 사실 덕분에 큰힘을 들이지 않고 홍월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며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나저나 태제님. 돌림병이라니요? 대체 소레국에 언제 돌림병이 창궐한 것입니까?”

    “이미 1년도 더된 일입니다. 아버님과 오라버니들의 장례는 얼마 전에 끝냈고 남은 태자가 저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제가 태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현 태제가 누가 됐든 간에 헨리의 목적은 그대로였다.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지금은 애도보다는 본업이 먼저다.’

    이에 헨리가 물었다.

    “그럼 제가 드린 제의를 좀 더 고민해 보겠다고 답변하신 것도 태제님이십니까?”

    “연합국 제의 말이시지요?”

    “그렇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녀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시선을 아래쪽으로 살짝 내렸다.

    그리고 헨리는 그녀의 그러한 변화를 귀신같이 눈치챘다.

    ‘홍월의 뜻이 아니군.’

    태제와 친분을 쌓으면서 이따금씩 태자들에게 제국의 문물을 가르쳐 주기도 했던 헨리였다.

    그렇기에 태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습관 몇 가지 정도는 훤히 꿰고 있었다.

    삼태자인 홍월이 말끝을 흐리며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나 빈말을 할 때나 드러나는 습관이었다.

    헨리는 생각했다.

    홍월의 뜻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일까?

    누가 태제를 대신하여 나랏일의 중대사를 정할 수 있을 것일까?

    답은 금방 나왔다.

    ‘좌사와 우사 정도겠군.’

    좌사와 우사.

    그들은 태제를 도와 소레국을 운영하는 두 명의 문관대신들이었다.

    홍월이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아 총명하다고 한들, 아직 약관의 나이도 채 지나지 못한 나이였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연륜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두 신하가 태제를 대신하여 정사에 많이 관여할 수밖에.

    그렇다면 이야기는 홍월과 나눌 것이 아닌 좌사와 우사와 나누어야만 했다.

    헨리가 말했다.

    “지금 좌사와 우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희들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때였다.

    헨리가 태제에게 질문을 건넨 순간, 태제의 등 뒤로 좌사와 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엿듣고 있었나?’

    약삭빠른 늙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어린 태제를 앞세우고 뒤에 숨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더 많은 정보의 확보를 위해 말이다.

    헨리의 물음에 좌사와 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신령같이 하얗고 긴 수염에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졌지만, 호랑이 같은 얼굴을 한 좌사.

    그리고 다리를 다쳐 절뚝거려 지팡이를 짚은, 살집이 거대하고 수염이 짧은 우사.

    두 사람이 태제의 곁에 나타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러한 방식이 대마법사님의 제자분께 실례가 됨을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럼 두 분께서도 대화에 참여하시지요.”

    무례이긴 했으나 헨리는 굳이 화를 내지 않았다.

    외교에서는 무례 또한 전략이라면 전략이었으니까.

    게다가 어차피 태제와 이야기를 나눠 봤자 태제는 좌사와 우사와 또 다시 회의를 거칠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좌사와 우사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어차피 좌사와 우사와 대화를 나눌 것이라면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착석하자 헨리가 말했다.

    “마음 같아선 전 태제님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누고 싶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본론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보내드린 서신은 보셨을 것 같고, 세 분께선 아직도 어찌하실 지 결정하지 못하신 겁니까?”

    직설적인 물음.

    이에 좌사가 답했다.

    “서신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헨리 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 또한 말이지요. 그래서 저희는 더더욱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헨리 님의 제안을 거절하든 받아들이든, 어찌 됐든 간에 저희 소레국의 미래는 같지 않겠습니까?”

    “같다니요? 어떤 점이 같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금은 헨리 님의 발이 제국의 사신보다 빨라 먼저 도착하셨지만…… 곧 제국의 사신들도 도착할 터. 그렇다면 그들도 분명히 똑같은 제안을 해올 텐데, 어찌 됐든 제안을 거절한 쪽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당연하지 않습니다. 저희도 물론 어느 정도의 국방 능력은 갖추고 있긴 하나, 제국이나 마탑처럼 강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제안을 거절하면 적으로 두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필시 보복을 받게 될 터! 만약 헨리 님께선 저희가 연합국 제안을 거절하고 제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저희를 공격하실 것 아닙니까?”

    “적으로 두게 될 테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이는 제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헨리 님과 동맹을 맺는다면 제국 또한 헨리 님과 같은 입장일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 소레국의 미래는 어느 쪽과 동맹을 맺든 같지 않겠습니까?”

    “그럼 소레국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싶으신 겁니까?”

    “저희 소레국은 중립을 선언하겠습니다.”

    좌사를 대신해 대답한 것은 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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