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92화 (192/522)

# 192

동맹국 (6)

자신의 공격이 막힌 테리온은 다시금 마법 화살 한 발을 활시위에 걸었다.

그러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을 쏘았다.

피이잉!

오러가 실린 날카로운 파공음이 다시 한 번 헨리의 매직 실드를 두드렸다.

그러나 소용없다.

테리온이 아무리 궁병대 총사령관, 즉 보우 마스터라 할지라도 지금의 그로썬 헨리의 실드를 뚫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실력이었다.

“반가운 손님이 보이네요. 일단은 주위부터 정리하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죠.”

“좋은 생각이야.”

헨리의 제안에 반과 맥도웰, 그리고 바할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온몸에 오러를 띄운 그 순간, 세 번째 화살을 활시위에 걸려던 테리온의 눈썹이 구부러졌다.

“……음?”

시력이 좋은 그가 네 사람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화살부터 날린 이유는 두스카인인들이 공격 태세를 갖췄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은 메카산의 두스카인 왕궁 한복판.

일반인들은 감히 출입조차 힘든 이곳에서 생뚱맞게 저 네 사람과 마주칠 리가 없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자신의 착각으로 여겼다.

그런데 두 발의 화살을 쏘고 세 번째 활시위를 당기려는 순간, 테리온은 그들의 정체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오랜만이네, 이 참새 자식아.”

“다, 당신은!”

콰앙!

음속의 맥도웰.

헨리의 제압 명령이 떨어진 직후, 맥도웰은 세 번째 화살이 쏘아지기 전에 테리온과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솥뚜껑 같이 큰 손을 활짝 펼쳐 테리온의 안면을 땅바닥에 냅다 꽂았다.

“죽이면 안 됩니다. 적당히들 제압하세요.”

“그게 말이야 쉽지.”

헨리의 요구에 맥도웰이 툴툴거렸다.

그러나 상대가 동률의 실력자가 아닌 이상 헨리의 요구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읍읍!”

“시끄러워! 그러게 누가 무턱대고 활부터 들이밀래?”

얼굴을 붙잡힌 테리온은 어떻게든 맥도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맥도웰은 무려 전 제국 삼검.

겨우 궁병대 총사령관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우드득!

“크아아악!”

장난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맥도웰은 테리온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그 증거로 궁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 그리고 중지를 한꺼번에 부러뜨렸다.

“자, 다음은 왼손이다.”

맥도웰은 무릎으로 테리온의 목을 짓눌렀다.

그런 다음 기형적으로 굽어진 오른손을 내팽개친 후 활을 들어 올리는 왼손을 쥐었다.

그러자 테리온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빼들며 소리를 질렀다.

“크, 크헉! 항, 항복! 항복! 제발! 제에발!”

“엥?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테리온의 눈에 맥도웰은 아마도 악마처럼 비추어졌으리라.

이어서 맥도웰이 테리온의 왼손가락을 분지르려던 순간……!

“거기까지 하시죠.”

헨리가 테리온을 저지했다.

“뭐야, 갑자기 왜?”

“주위의 정리라고 말씀드렸지, 완전히 작살을 내라는 뜻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왼손은 남겨 둬야 고분고분할 것 아니에요?”

“음, 그것도 그렇군. 이봐, 참새, 운 좋은 줄 알아. 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넌 남은 인생 동안 활은 커녕 포크도 못 쥘 뻔했으니까.”

가볍게 던진 경고였지만 그 안에 담긴 살의는 진짜였다.

여자라면 모를까, 맥도웰은 남자에게 만큼은 한없이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쯤에 주위도 대부분 정리되어 있었다.

반과 바할드의 압도적인 검술 실력 덕분에 두스카인 왕궁 근위병들이 함부로 접근할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두 손을 모으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이쯤하고, 이제 슬슬 자릴 옮기도록 하죠.”

“자리를? 어디로 말이냐?”

“여기로요.”

딱!

헨리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반과 바할드, 그리고 맥도웰을 포함한 테리온까지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헨리의 텔레포트였다.

* * *

이동한 곳은 눈이 휘몰아치는 영역, 북방의 살게라였다.

헨리는 오베르를 가두어 두었던 독방으로 테리온을 처박아 넣었다.

콰당!

“크흐으윽……!”

바닥을 구르면서 부러진 손가락이 또다시 꺾인 듯, 테리온이 손가락을 부여잡으며 몹시 괴로워했다.

그러나 헨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독방에 불을 밝혔다.

“너, 너는……!”

“반가워. 오랜만이네?”

두스카인에서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전 제국 십검들 사이에 끼어 있던 녀석은 분명한 아이젠의 가신, ‘헨리’였다.

“네, 네가 어떻게?”

“시끄럽고, 시간 없으니까 빨리빨리 진행할게.”

헨리는 품속에서 모래시계 하나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딱 한 시간짜리 모래 시계였다.

두스카인에 도착하자마자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왔으니, 솔직히 말해 한 시간도 몹시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해서 우연찮게 굴러 들어온 호박을 걷어찰 바보가 아니었다.

“잘 들어. 지금부터 딱 한 시간 동안 너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넌 활은커녕 두 번 다시 빛도 보지 못하게 될 거야.”

꿀꺽.

보우 마스터 테리온.

그는 감이 좋은 남자였다.

현재 헨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맥도웰조차도 이 남자의 말에 고분고분히 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고를 마친 후, 헨리의 첫 번째 질문이 주어졌다.

“두스카인에 온 목적은?”

“그, 그걸 설명하려면 일단 대륙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부터 설명해야 하는…….”

쑤걱!

“크아아악!”

대답을 늘어놓는 테리온에게 헨리는 그의 허벅지에 콜대거를 박아 넣었다.

그러곤 쓰러진 테리온의 머리채를 붙잡아 올린 뒤 말했다.

“아서스가 새로운 제국을 건국했다는 건 알아. 그리고 그 밑에 있던 귀족 놈들 전부가 아서스 밑에 기어 들어갔다는 것도. 네놈도 그중에 하나잖아?”

……끄덕.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테리온.

예상한 대로였다.

이에 헨리가 차갑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그런 자잘한 정보나 듣자고 널 여기까지 끌고 온 게 아냐. 그러니까 묻는 말에나 대답해.”

“아, 알겠습니다.”

그 멍청한 아이젠의 유능하고 뛰어난 조력자였던 헨리.

그러나 이제 테리온에게 있어 헨리는 유능한 조력자가 아닌 정체를 감추고 있던 잔인한 악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 *

“……역시.”

모래알이 모두 떨어지기 전까지 헨리는 테리온에게 조금의 쉴 틈을 주지 않은 채 털어 낼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털어 냈다.

예상대로 테리온은 아서스가 보낸 사신이었다.

메카산이 하이랜더 지방과 가까운 탓에 헨리보다 더 빨리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테리온이 헨리에게 대뜸 화살부터 날린 이유는 두스카인인들을 도와 조금이라도 환심을 사기 위함이라고 했다.

‘게다가 마법사 척살령도 떨어졌고 말이지.’

또한 헨리는 테리온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황제와 황궁을 파괴한 용의자로 아이젠이나 자신이 아닌 마탑의 마법사들이 지목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척살령을 내린 것이군.’

물론 완전한 척살령은 아니었다.

항복하는 마법사가 있다면 투항을 받아 주고 저항하는 마법사만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어찌됐든 마법사는 귀중한 인적 자원이었으니까.

생각을 마친 헨리는 여전히 떨어지고 있는 모래시계를 집어 들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 후 바닥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테리온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테리온.”

테리온이 크게 움찔했다.

그에게 있어 지난 한 시간은 헨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주는 끔찍한 교육의 시간이었다.

이어서 헨리가 물었다.

“살고 싶나?”

짤막한 물음.

이에 테리온이 자세를 고쳐 앉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그렇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당연히 살려 줘야지. 우린 전장을 함께 누볐던 돈독한 전우잖아?”

전우.

전우라는 단어가 이렇게 등골이 오싹한 단어인 줄을 테리온은 난생처음 알았다.

헨리는 테리온 앞에 자세를 낮춰 눈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동그란 마력구를 생성해 낸 다음 테리온의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삼켜.”

“……!”

흑색으로 이글거리는 구.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입술에 닿았을 땐 마치 물방울이 입에 닿는 듯했다.

헨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밀어 넣었다.

밀어 넣어진 흑색 마력구는 천천히 테리온 입속으로 들어가 결국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내가 만든 특제 마력 폭탄이다. 내가 원할 때면 언제 어디서든지 ‘펑’ 하고 터지는 놈이지. 그리고 그 폭발 반경은 약 1km. 게다가 제국에 마법사가 없는 지금 이걸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

나지막한 설명 속에는 섬뜩한 내용들이 잔뜩 똬리를 틀고 있었다.

“테리온.”

“예, 예!”

“지금부터 딱 한 번만 행동 강령을 알려 줄 테니 잘 듣고 외우도록.”

뽑아 먹을 정보는 모두 뽑아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타이밍에 쉬이 테리온을 죽여 버리면 분명히 아서스도 무언가 잘못됐음을 눈치챌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테리온이 인질로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녀석의 목숨 자체를 인질로 잡는 것이지.’

헨리는 테리온을 훌륭한 첩자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만에 하나 들켰을 경우엔 죽임을 당해도 되는, 가성비가 좋은 훌륭한 장기 말로 말이다.

그렇게 십여 분간 헨리는 새로운 첩자로 등극된 장기 말에게 녀석이 해야 할 행동들에 대해 알려 주었다.

마치 과거에 아이젠에게 알려 주었듯이 말이다.

이윽고 설명을 마친 헨리가 확인차 되물었다.

“잘 알겠지?”

“……예!”

그의 대답에는 사뭇 비장함까지 어려 있다.

테리온은 똑똑한 남자였다.

그는 단 한 번의 교육으로 앞으로 그가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암기했다.

이윽고 헨리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힐, 클린, 차밍.”

지이잉!

밝은 빛 무리가 테리온을 감싼다.

그러자 기이하게 휘었던 테리온의 손가락은 물론이고, 흙투성이가 되었던 옷가지들까지…… 완벽하게 처음 모습 그대로 복구되었다.

“헤, 헨리 님, 이건……?”

“거지꼴로 변명하면 누가 그 변명을 믿어 줘? 이제 널 다시 두스카인으로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넌…… 알지?”

“아, 알겠습니다!”

딱!

헨리는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자리에 있던 테리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대단한 놈일세.”

테리온이 사라지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맥도웰이 반에게 나지막이 감탄하듯 말했다.

“저놈, 그렇게 안 봤는데 되게 무서운 놈이었네.”

“철두철미한 놈이야. 대공의 현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냉철하기도 하고.”

“하긴, 그러니까 네가 믿고 나선 거겠지.”

“아니, 나도 저런 식으로 코를 꿰였거든.”

“……?”

헨리는 테리온을 다시 두스카인으로 보냈다.

그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기다리는 세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이에 맥도웰이 말했다.

“네 방식은 잘 봤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 무서운 놈이더라?”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폭탄 말이야, 폭탄! 그 흉악한 걸 참새 배 속에 잘도 집어넣더구먼.”

“그거 폭탄 아닙니다.”

“뭐?”

“아무리 7서클 마법사인 저라고 해도 제 손을 떠난 마력구를, 그것도 영구적으로, 게다가 단기간에 그런 식으로 사람의 몸에 심어 둘 수는 없습니다.”

“뭐야, 그럼 아까 전에 그건 대체 뭐였어?”

“그냥 단순한 마력구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될 그런 마력구 말입니다.”

“그럼 너…… 설마?”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위험하다고 믿는다면 얼마든지 생명의 위협을 느껴 자연스레 겁을 먹게 되죠. 그리고 그러한 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강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헨리의 군더더기 없는 논리에 맥도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사족을 붙여 봤자 득 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맥도웰이 화제를 바꿔 다른 것을 질문했다.

“그럼 우린 다시 두스카인으로 가나?”

“아뇨,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왜?”

“원래대로라면 두스카인부터 먹으려고 했지만 테리온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도우미가 나타났으니까요.”

“그럼 이젠 뭘 하면 되지?”

“저희는 그동안 다른 일부터 처리할 생각입니다.”

“다른 일? 다른 일이라면 다른 두 동맹국에 가는 것 말이냐?”

“그렇습니다. 더 늦기 전에 얼른 나머지 두 곳도 확보해야겠죠. 다음은 소레국입니다.”

소레국.

어쩌면 가장 까다로울지도 모를 곳이 다음 행선지로 결정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