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91화 (191/522)

# 191

동맹국 (5)

이제 남은 곳은 세 곳.

헨리는 다른 동맹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먼저 설탑에 들르기로 했다.

지금쯤이면 다른 곳에 심부름을 보냈던 학파장들이 돌아와 있을 테니까.

“허, 정말로 황궁 마탑의 마법사들을 전부 데리고 오신 겁니까?”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화이트 게이트를 통과한 헤라리온은 텅 비어 있던 설탑이 제국의 마법사들로 가득 찬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설탑으로 돌아온 순간, 1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맥도웰이 헨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까칠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대마법사님! 우릴 여기에 방치시켜 두고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아, 죄송합니다. 회의가 길어진 나머지 잠시 십검님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습니다.”

“뭐? 우릴 잊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좀 전에는 아마리스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를 여기에 몇 시간이나 방치한…… 야 잠깐만 뭐라고? 아마리스?”

“그렇습니다.”

“아마리스엔 네가 왜 가?”

“유라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동맹국들을 하나의 연합국으로 만들기 위해 우선은 아마리스부터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연합국? 그럼 옆에 계신 이분은……?”

맥도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헤라리온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샤하트라의 왕, 헤라리온 칸이라고 합니다.”

“샤하트라!”

공물을 진상할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외부와 교류를 나눈 적이 없던 샤하트라였다.

그렇기에 맥도웰이 샤하트라 사람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샤하트라의 국민도 아니고 무려 사막의 왕!

이에 맥도웰이 얼른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전하! 저는 전 제국 십검, 그중에서도 삼검의 자리를 맡고 있던 맥도웰 커그스라고 합니다.”

“아,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맥도웰 님이라면 그 음속의 맥도웰 님이 맞으십니까?”

“하핫! 제 명성이 사막에까지 닿았습니까?”

“물론입니다. 아무리 우리 나라가 제국과 교류가 없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최소한의 정세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으니까요.”

“오오, 그렇군요. 근데…… 그나저나 이 녀석과는 그럼 이번에 가입하신 연합국 때문에 알게 되신 겁니까?”

“아뇨, 헨리 님과의 인연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맥도웰과 바할드는 아직 샤하트라가 제국과 교역을 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황궁을 나선 이후, 줄곧 뷰스티엘에 처박혀 있었으니까.

헤라리온은 친절하게 전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해 주었고 사정을 알게 된 맥도웰은 호탕하게 웃으며 헤라리온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도 한번 샤하트라에 초대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맥도웰 님 같은 귀빈이 오시면 최선을 다해 대접해 드려야겠지요.”

“오오! 방금하신 약속, 절대로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까칠했던 맥도웰은 금방 기분이 풀어져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에 반이 맥도웰의 옷깃을 끌어당겨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헨리 녀석을 혼내 주겠다더니, 갑자기 왜 태도가 바뀌었어?”

“전하께서 샤하트라에 초대해 주시겠다잖아! 너 인마, 샤하트라 여자들이 얼마나 예쁜지 소문 못 들었어?”

“소문?”

“그래 인마! 햇볕에 살짝 그슬린 매혹적인 사막의 여인들! 네가 샤하트라에 대해서 뭘 아냐?”

“샤하트라는 나도 다녀왔는데?”

“오, 그래? 그럼 잘 알겠네. 어때? 샤하트라의 여자들!”

맥도웰의 물음에 반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가만히 엄지를 치켜세워 올리며 말했다.

“……끝내주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흐흐흐!”

친한 사이라더니 늙어서도 죽이 잘 맞았다.

이에 헨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마침 잘 됐네요. 그렇잖아도 형님들의 도움이 필요하던 참이었습니다.”

“도움?”

“예, 이번 일에는 머릿수가 좀 필요하거든요.”

“머릿수? 무슨 일인데 그래?”

“자세한 건 조금 이따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학파장들과 금방 회의를 마치고 다시 형님들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전하께선 저와 함께 올라가도록 하시지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설탑의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최상층에 마련된 원탁에는 가까스로 아마리스에서 풀려난 더글라스를 포함해 다섯 명의 마법사들이 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헨리가 등장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앉지.”

척 보기에도 명망 높은 마법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법사들 모두 헨리에게 고개를 숙이자 헤라리온은 새삼스럽게 헨리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분은 다섯 개의 동맹국들 중 샤하트라를 통치하고 계신 헤라리온 전하이시다.”

“샤하트라의 칸, 헤라리온입니다.”

헨리는 학파장들에게 먼저 헤라리온을 소개했다.

그러자 각 학파장들 또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좋아. 다들 서신들은 잘 전달했나?”

“그렇습니다, 대마법사님.”

“다섯 개의 동맹국들 중 샤하트라와 아마리스가 연합국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세 곳인데 스탠, 정키, 링키. 너희들 중 답신을 받아 온 사람이 있나?”

세 사람은 각자 순서대로 두스카인과 소레국, 그리고 제방을 다녀왔다.

이에 스탠이 모두를 대표해 대신 대답했다.

“저는 답변을 받아 왔으나 소레국과 제방은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두스카인 측은 뭐래?”

“그들은 누구와도 동맹을 맺지 않고 이번 기회에 독립국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흐음, 두스카인이 독립이라…….”

두스카인.

국민 대다수가 피부가 새카만 전형적인 전사의 나라였다.

그들은 대륙 전체의 인종으로만 놓고 보자면 가히 최강이라 불릴 만한 신체적 조건을 가졌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호전적이고 강인한 성향을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하긴, 기회가 왔는데 독립을 안 할 리가 없지. 통일 전쟁 시절에도 거의 힘으로 굴복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헨리는 두스카인 또한 아마리스와 마찬가지로 이 같은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각 동맹국들을 애초에 자유도시로 전향시키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가진 문화력이 너무나도 강력한 탓이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문화만 맞춰 주면 얼마든지 구워삶기 쉽단 말이지.’

헨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두스카인 놈들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 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레국과 제방은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고. 그럼 다음 행선지는 두스카인이 되겠군.”

“예? 대마법사님께서 직접 두스카인을 설득하시려는 것입니까?”

“응, 이번 전쟁은 다섯 개의 동맹국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거든.”

“그럼 저희도 가겠습니다. 대마법사님 혼자서 보내시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해? 내가?”

당연히 예의상 한 말이었겠지만 헨리는 그 예의가 너무 웃겼다.

이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어! 두스카인에선 필요도 없는 인력, 주렁주렁 달고 다녀 봤자 인력 낭비일 뿐이야. 그리고 두스카인에는 이미 함께할 사람들을 초빙해 뒀어.”

“벌써 말씀이십니까?”

“응, 두스카인은 두스카인의 방식대로 맞춰 줘야지. 놈들이 좀 야만스러워?”

“그럼 그동안 저희는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로어, 이사는 모두 끝났나?”

“예, 대마법사님.”

“그럼 이걸 가지고 모두 아마리스로 출발해.”

“대마법사님, 이건?”

헨리가 내민 것은 헬라에게서 받은 아마리스의 보물, ‘피의 달’이었다.

“아마리스 왕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이야. 이걸 가지고 가면 내가 보낸 사람이란 걸 알 거야. 너희들은 아마리스에 도착하는 즉시 그녀들이 제국의 총공세를 버틸 수 있게 성벽을 개조해 줘. 여태껏 생활 마법을 발전시켜 왔는데 이럴 때라도 써먹어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또 다른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텔레포트 게이트를 잘 안 보이는 곳에 설치해 둬. 게이트는 전시에 전략적으로 이용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가스와 메이커는 내가 앙켈만으로 보냈어. 아마리스와 같은 이유로.”

무슈의 장인들의 손을 빌려 자유도시들의 성벽을 증축하고 더 튼튼하게 개조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슈의 장인들이 만능은 아니었다.

그래서 헨리는 아크 메이지들의 마법을 이용해 자유도시들을 ‘완벽한 요새’로 탈바꿈시킬 계획이었다.

“회의는 여기까지. 필요하다면 4서클 마법사들부터는 활용해도 좋아. 그럼 각자 맡은 일을 끝내고 나면 다시 설탑으로 복귀하도록.”

“예!”

힘찬 대답.

이윽고 헨리의 두 번째 영업이 시작되었다.

* * *

두스카인.

용맹한 전사족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왕국의 이름.

그들은 힘을 숭배하는 이들로 단일민족이 아닌 수 개의 전사족들이 모여 집단을 이룬 일종의 공동체 사회였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전사족들은 매년 각 부족의 대표들을 선발해 두스카인의 통치자를 선발한다.

그리고 제국이 건국된 이후 약 21년간 두스카인의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는 부족은 다름 아닌…….

“초완족입니다.”

“초완족?”

“지금은 멸망해 버렸지만 원래는 카스베니아 왕국과 릴다 왕국 국경 사이에 출몰하던 비적 떼였습니다.”

“뭐? 그런 비적 떼가 지금은 왕족 행세를 하고 있다고?”

“엄밀히 말하자면 왕족은 아닙니다. 단지 초완족의 힘이 강해 장기 집권을 하고 있을 뿐. 두스카인은 철저하게 무력으로 서열을 정하니까요.”

“그래서? 그런 초완족 놈들을 상대로 우리가 힘자랑이라도 하라는 거야?”

“바로 그겁니다.”

맥도웰은 의외로 핵심을 짚었다.

두스카인인들은 철저하게 물리적인 힘과 미신으로만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마법은 약해 빠진 놈들이나 쓰는 요망한 술수 정도로 통용되었다.

그렇다 보니 제아무리 아크 메이지급 마법사가 서신을 가지고 간다고 한들, 제안이 먹힐 리가 없었다.

“말로는 이번 기회에 독립을 하니 뭐니 지껄였지만 막상 아서스에게 패하고 나면 얼마든지 아서스에게 붙어먹을 놈들이 바로 초완족입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아서스에게 초완족을 빼앗길 바엔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서 연합국에 가입시키자는 이야기죠.”

“좋아! 네 말은 충분히 이해했어. 근데 그렇다면 굳이 우릴 데려갈 필요가 있나? 너 마검사라며? 설마 비적 놈들 하나 처릴 못 해서 우릴 부른 거야?”

“아뇨.”

“그럼?”

“두스카인에는 ‘삼세번’이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세 번은 붙어 봐야 인정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형님들을 모신 겁니다. 저 혼자서 세 번 다 이겨 봤자 어차피 인정을 안 할 테니, 처음부터 머릿수를 맞춰서 가는 겁니다.”

“비적 출신 주제에 까다로운 놈들이네.”

논란이 생겨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 애초에 처음부터 논란의 여지를 주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헨리가 초완족을 상대하는 방법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헨리는 맥도웰과 반, 그리고 바할드와 함께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아마리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두스카인의 왕궁 정중앙을 도착점으로 삼았다.

* * *

꽈르르릉!

두스카인이 위치한 메카산.

메카산 전체를 뒤흔들 만큼 거대한 벼락이 두스카인의 왕궁 중앙으로 떨어졌다.

이에 맥도웰이 말했다.

“……다음부턴 좀 평범하게 등장하자.”

“대마법사는 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벼락이 떨어진 직후 자욱한 흙먼지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흙먼지 속으로 무수한 양의 화살들이 헨리를 향해 쏟아졌다.

“실드.”

티디딩!

헨리는 본능적으로 에메랄드 빛의 매직 실드를 전개했다.

그러자 오러를 두른 화살들이 헨리의 매직 실드에 가로막혀 이쑤시개처럼 힘없이 부러지고 말았다.

“윈드.”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거두었다.

그러자 헨리는 사방천지에서 자신들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두스카인인들을 볼 수 있었다.

“거 봐, 쟤들 화났잖아.”

“아무렴 어떻습니까? 어차피 곧 맞붙게 될 텐데.”

이에 반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헨리는 대수롭잖다는 듯이 쉬이 넘겼다.

그런데 그 순간, 헨리를 향해 엄청난 속도의 화살 한 발이 쏘아져 왔다.

콰직!

“음?”

화살 한 발.

그것은 전에 쏘아진 다른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것 봐라?’

날아온 화살은 헨리의 매직 실드에 박힌 후에도 몸체가 부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이정도의 화살을 다루려면 궁수들 중에서도 보우 마스터급에 해당하는 궁수여야만 했다.

헨리는 고개를 들어 화살을 쏘아 보낸 궁수를 찾았다.

그런데 그 순간.

헨리는 수많은 두스카인인들 속에서 익숙한 낯짝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테리온?”

화살을 쏘아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헨리와 함께 샤하트라 토벌전에 참가했던 ‘테리온 팔콘’ 대백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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