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83화 (183/522)

# 183

끝과 시작 (5)

헨리가 자기소개를 마치자 로어를 포함한 모든 마법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놀랄 만도 했다.

자신들 또한 대마법사 헨리에게서 마법을 배운 몸.

하지만 정식으로 마법을 배운 것이 아닌 실력의 증진을 위한 ‘부분적인 도움’을 받았을 뿐이었다.

이에 로어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해 갔다.

‘저 말이 과연 사실일까? 사칭은 아닐까?’ 등등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이곳, 축복의 전당까지 온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서 분명히 강력한 마나의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후 사정을 짐작한 로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봐도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났을 법한 외모다.

그런데 축복의 전당에서 느껴진 마나의 파동은 분명히 마도사 이상의 것이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로어가 의문을 띤 수많은 마법사들을 대신하여 물었다.

“방금하신 그 말씀,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이는 로어뿐만이 아니라 마탑 전체에게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대마법사의 밝혀지지 않은 제자였으니까.

게다가 과거에 헨리가 처형되면서 헨리와 함께 진행 중이던 수많은 연구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조용히 사장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등장한 헨리의 제자는, 어쩌면 멈추어 버린 마탑의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에 헨리가 옅은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책임지지 못하겠다면요?”

“예?”

“책임지지 못하겠다면 어쩌시겠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왜 당신들에게 스승님의 제자임을 굳이 증명해야 합니까?”

“그야 당연히……!”

순간 로어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생각해 보니 눈앞의 헨리가 굳이 죽은 대마법사의 제자임을 밝힐 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마탑에서 헨리라는 대마법사의 존재가 가지는 의의가 너무나도 컸다.

이에 로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꾸했다.

“돌아가신 대공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니까요.”

“그게 왜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죠? 혹시 스승님께서 살아생전에 자기가 죽으면 자신의 명예를 드높여 달라고 유언이라도 남기셨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저도 스승님께서 그런 유언을 남기셨다는 말씀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스승님의 한을 대신 풀어 달라는 유언은 들었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웠다.

지금 로어의 눈앞에 있는 헨리의 몸속에는 로어가 모시던 전 마탑주, 헨리 모리스의 영혼이 들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헨리가 내뱉은 말들은 내뱉는 즉시 모든 것들이 사실이 되는 셈이었다.

‘귀여운 놈들.’

이에 헨리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간 마탑의 꼬맹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한번쯤을 골려 주겠노라 다짐하긴 했었다.

이것이 헨리식 장난이었으니까.

‘놀리는 건 이쯤하고 슬슬 장단에 맞춰 줄까?’

애초에 헨리는 마탑의 꼬맹이들과 척질 이유가 없었다.

헨리가 처형당한 이유는 온전히 헨리 자신이 잘나서였을 뿐이다.

물론 마탑에는 절대로 자신의 처형에 나서지 말라고 미리 명령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헨리 모리스’의 처형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로어는 헨리가 왜 마탑에 자신의 처형에 개입하지 말라고 했는지, 그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서스의 반란에도 마탑은 중립을 지킨 것이다.

로어의 그 착각이 마탑을 살렸다고나 할까?

만약 마탑이 황제나 아서스의 편에 섰더라면 헨리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마법사들의 씨를 말려 버릴 생각이었다.

뛰어난 마법사 한 명이 수백 수천의 새로운 마법사들을 양성해 낼 수 있었으니까.

이윽고 헨리가 말했다.

“좋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증명할 의무는 없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우선은 가벼운 것부터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벼운 것?”

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런 다음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추켜올린 다음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륵!

그러자 헨리의 전신에서 에메랄드 빛 마력이 불기둥처럼 치솟았다.

치솟은 마력은 이윽고 하나의 형태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드래곤.

그것은 드래곤이었다.

헨리는 저들에게 가벼운 증명을 하기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마력패, ‘드래곤’을 빚어냈다.

“저, 저건!”

“드, 드래곤?”

“헨리 님의 마력패가 어떻게!”

“마력이 녹색이라고?”

예상했던 반응들이었다.

역사상 드래곤 형상의 마력패를 가졌던 사람은 8서클 대마법사였던 초대 마탑주, 헨리 모리스가 유일했으니까.

게다가 이번에 소환된 마력패는 푸른색이 아니었다.

헨리의 마력이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면서 자연스럽게 마력패의 드래곤 또한 블루에서 그린이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탑의 마법사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이윽고 헨리가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녹색 불꽃을 내뿜던 드래곤이 허공으로 흩어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충분합니까? 이 정도면.”

“녹색 마력이라니……! 이런 색의 마력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저 또한 마력이 녹색으로 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요.”

“처음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마법사이되 마법사가 아닙니다. 저는 검사들의 오러를 익힌 몸. 지금의 저는 마법과 검을 함께 익힌 ‘마검사’입니다.”

“마검사!”

모두가 다시금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할드와 맥도웰도 꽤나 놀란 눈치를 보였다.

“뭐? 마검사라고?”

“마검사?”

이에 반이 말했다.

“아,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저 녀석, 검과 마법을 동시에 익혔어. 그래서 오러의 색이 남들과는 다르게 녹색 빛을 띠고 있지.”

“그런 건 진즉에 말해 줘야 할 거 아냐?”

“뭐 어때, 조금 늦게 알았다고 해서 별다를 게 있나?”

“그야 그렇지만…….”

반의 설명에 맥도웰은 빠르게 수긍했다.

그러나 마법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헨리가 마검사라는 말에 더더욱 복잡한 기색을 띠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 또한 헨리와 같은 지독한 ‘마법 우월주의자’들이었으니까.

이에 헨리는 이번에도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것이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많이 놀랐겠지. 나 또한 이전 생에선 지독한 마법 우월주의자였으니까.’

헨리의 가치관은 환생을 통해 많이 바뀐 편이었다.

그렇기에 저들이 놀라는 것 또한 당연했다.

하지만 헨리는 굳이 마력패가 아니라도 저들을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아무래도 많이들 혼란스러우신 모양이로군요.”

이에 로어가 당황한 마법사들을 대표해서 이번에도 대신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대공께선 저희와 같은 마법 우월주의자였는데 어떻게 제자분께 검을 함께 가르치셨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솔직한 감상평이었다.

“모든 것이 스승님의 유언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선 마법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한낱 맹독 따위도 해독할 수 없는 나약한 육체에 대해 깊은 후회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검을 함께 연마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실례지만 현재 헨리 님께선 마법사로서 어느 정도의 경지를 이룩하셨습니까?”

“저는 현재 아크 메이지의 경지에 도달하였습니다.”

“아, 아크 메이지의 경지에 말입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건방진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지식을 합쳐도 제가 훨씬 더 뛰어나다는 걸 증명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지식과 마법 실력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들, 특히 한 분야의 정점을 이룬 학파장들에 대한 도발 말이다.

하지만 헨리의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전생의 헨리는 저들 모두를 상대로 정기적인 지식 대결을 펼쳐 단 한 번도 패배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술렁이는 좌중.

이에 로어가 흥분하는 좌중들을 대신해 점잖게 경고했다.

“……그건 좀 무례한 언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헨리 님. 헨리 님께서 아무리 대공의 숨겨진 제자라고 한들, 여기 있는 분들 모두가 한 분야의 명망 높은 권위자들입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요? 그런 권위자들을 상대로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를 지나신 것 같은 분이 지식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시면 그 태도가 얼마나 오만불손해 보이겠습니까?”

이에 헨리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고민에 잠겼다.

사실을 말해 주어도 모두가 믿지를 못하니 한번쯤은 본때를 보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좋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 현재 마탑주님이신 로어 길리언 경께선 저와 같은 아크 메이지의 경지를 이룩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만?”

“그럼 아직 스승님을 제외한다면 여전히 마탑에선 7서클의 마법사가 탄생하지 않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그 두 번째가 되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예?”

잠깐의 정적.

그리고 이내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흡!”

“푸하핫!”

“하하하! 헨리 경,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웃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웃을 만한 사항이기도 했다.

다른 것도 아닌 7서클이라니?

7서클부터는 단순히 가진 마력만 많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7서클부터는 보통의 깨달음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마의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7서클은 헨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경지였기에 감히 ‘대마법사’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로어가 말했다.

“물론 대공의 제자이시니 어쩌면 저보다 훨씬 더 빨리 7서클의 경지를 이룩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지금 당장 헨리 경의 가치를 증명할 만한 것은 못 되지 않습니까?”

“누가 나중에 이룩한다고 했습니까?”

“예?”

“어차피 황제의 목을 치고 나면 언젠간 마탑에 들르려고 했습니다. 헌데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직접 저를 보러 발걸음 해 주셨으니 지금 당장 그 가치를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게 무슨……?”

“시간은 넉넉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7서클의 증진을 증명해 보일 테니 마탑으로 이동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헨리는 진심이었다.

정말로 언젠가는 마탑을 방문해 7서클로 증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단지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모두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로어와 마법사들뿐만이 아닌 바할드와 맥도웰, 그리고 반까지 말이다.

* * *

헨리의 주도 하에 헨리는 실로 오랜만에 자신이 지은 마탑에 발을 디딜 수가 있었다.

‘오랜만이군.’

그리운 공기였다.

매일 같이 정화 마법을 사용해 공기를 정화시킨다고는 하지만 마탑에는 마탑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실까요?”

헨리는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향하는 기구에 몸을 실었다.

그것을 본 고위 마법사들이 짐짓 놀라움을 표했으나 헨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헨리는 탑의 꼭대기에 도착하자마자 다시금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꼭대기 층의 방을 바라보았다.

‘정말 오랜만이군.’

탑의 최상층.

그것은 오직 탑주에게만 허용된 공간이었으며, 현재는 2대 탑주인 로어 길리언이 사용하고 있었다.

헨리는 최상층의 곳곳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몇 가지 물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그대로였다.

헨리를 열렬히 추종했던 로어가 일부러 헨리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해 두었기 때문이다.

‘잘됐어.’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질 터였으니까.

이에 헨리가 말했다.

“모두 뒤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헨리의 말대로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몇몇은 오히려 미간을 찌푸리고 팔짱을 낀 채 헨리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러나 헨리는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탑의 중심부에 섰다.

그리고 바닥에 발을 한 번 굴렸다.

퉁!

절그럭!

‘옳지.’

헨리가 발을 굴리자 중심부 바닥으로부터 조그마한 구멍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길쭉한 모양새의 지팡이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저, 저건!”

이에 로어를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생에 헨리가 사용하던 ‘세상의 지혜’라는 이름을 가진 아티팩트였기 때문이다.

“저, 저걸 어떻게!”

이에 헨리가 피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잠자코 지켜보기나 하시죠.”

헨리는 익숙한 모양새로 세상의 지혜를 손에 쥐었다.

손에 착 붙는 느낌.

정말이지 반가운 감촉이었다.

세상의 지혜는 헨리가 대륙을 정벌하던 시절, 정말 어렵게 손에 넣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티팩트였다.

그리고 그것의 효과는 다름 아닌 ‘마력의 축적’.

헨리는 처형장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 이 세상의 지혜에 여태껏 모아온 모든 마력들을 이 안에 저장시켜 두었다.

“그럼 지금부터 영광스러운 7서클로의 증진을 시작토록 하겠습니다.”

인류 최초를 이을, 마법사들에겐 원대한 꿈이나 다름없는 영광스러운 진화가 이제 막 시작되려고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