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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180화 (180/522)

# 180

끝과 시작 (2)

찰박찰박……!

환궁 바닥에 핏물이 흥건하다.

기사들은 핏물이 튀건 말건 궁녀들의 시체를 넘어 약에 절은 황제를 들어 올렸다.

“무엄한 놈들…… 킥킥!”

황제는 걸친 가운이 반쯤 풀어헤쳐진 상태에서 포승줄에 묶였다.

헨리가 황제에게 궐련을 공급한 이후, 황제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양의 궐련을 피웠는지 모른다.

덕분에 황제의 정신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파괴된 상태였다.

다른 귀족들은 수량이 부족해 아껴 피운 반면, 황제는 궐련이 떨어질 걱정이 없으니 그것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 황제를 향해 크로웰이 혐오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끝이다.

이제 저 환멸 나는 황제의 수발 노릇도 오늘로써 끝이었다.

“으으, 머리야……!”

기사들에게 연행되어 환궁에서 끌려 나오던 중 황제가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핑크 스왐프의 금단 현상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황제의 두통을 외면했다.

그들에겐 더 이상 몰락한 황제를 보필할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황제가 중얼거렸다.

“궐련…….”

“조용히 해라, 실버 잭슨.”

“궐련을 가져와…….”

“조용히 하라고 했다.”

“궐련 가지고 오라고!”

“이놈이 그래도!”

황제는 급기야 금단 현상으로 인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동 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황제가 난동을 부려 봤자였다.

그는 이제 황제라는 절대자의 감투를 벗었으므로 무례한 난동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수밖에 없었다.

빡! 빡! 빡!

황제를 연행하던 기사들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러를 싣진 않았지만 황제의 입을 다물게 만들기엔 충분한 힘이었다.

“커헉, 커허어억……!”

난생 처음 맞아 보는 주먹에 황제는 침울한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나약한 놈.”

크로웰은 그것을 보고 혀를 찼다.

“야, 야! 뭐야, 설마 죽인 거야?”

“아닙니다. 기절한 것 같습니다.”

“공작님께서 생포하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괜히 힘자랑한답시고 죽이기만 해 봐. 니들 전부 내 손에 작살날 줄 알아.”

“옛!”

장난스럽게 기사들을 질책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하운드 기사단의 단장, 칠검의 루핀 샤리프였다.

루핀은 기사들에게 연행된 축 늘어진 황제와 눈높이를 맞춘 후 황제의 턱을 한손으로 들어 올렸다.

“이야, 내가 살다, 살다 황제의 얼굴을 맨손으로 다 잡아 보네.”

“그만 둬, 루핀.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야.”

“그러지 말고 너도 잡아 보는 게 어때, 엘펀?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만져 보겠냐?”

“루핀 말도 일리가 있네, 엘펀이 싫으면 내가 먼저 만진다?”

루핀을 말리는 이는 맘보 기사단의 단장, 팔검의 엘펀 라시아였다.

이에 엘펀은 골치 아픈 악동을 보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에 곁에서 구경하던 크로우 기사단의 단장, 구검의 카라스 레셔가 냉큼 끼어들어 황제의 얼굴을 붙잡았다.

“오호, 역시 용안은 다르네. 살결이 야들야들해.”

“그렇지?”

“둘 다 그쯤해라.”

루핀과 카라스의 장난을 저지한 것은 크로웰이었다.

크로웰의 명령에 루핀과 카라스는 그제야 황제의 얼굴을 놓아 주었다.

“끌고 가.”

“예.”

이윽고 기사들은 몸이 축 늘어진 황제를 질질 끌고서 환궁 밖을 나섰다.

이에 루핀이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너무 쉽게 끝났는데? 크로웰 님, 이제 그럼 저희가 할 다른 일은 없는 겁니까?”

“있다.”

“오오, 역시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웠습니다. 할 일이 뭡니까? 명령만 내려 주시죠.”

“황제가 뿌린 씨를 찾아 전부 죽여야 한다. 황궁 곳곳에 황제의 아이를 가진 궁녀들이 있을 테니 모두 찾아 죽여.”

“황제의 아이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하면 됩니까?”

“조금이라도 찝찝하다면 가능성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옛!”

하룻밤을 보낼 때마다 수십 명의 궁녀들과 함께 해후를 즐겼던 황제였다.

황제의 체력 자체는 별 볼 일 없었지만 마탑의 도움으로 밤일을 할 때만큼은 야생마처럼 일을 치렀으니까.

아서스는 황족의 씨를 멸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것이 비록 혼인을 치르지 않은 궁녀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모두 찾아 죽일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아앙!

바깥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황궁이다.

그런 곳에서 저러한 폭음이 들린 것은 제국이 건국된 이래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에 크로웰의 미간이 좁혀졌다.

황궁의 모두가 현 상황을 알고 있을 텐데 황궁에서 저런 소리를 내다니?

간덩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루핀이 말했다.

“하, 어떤 미친놈인진 모르겠지만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네.”

“크로웰 님, 마법사 놈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엘펀과 크로웰의 생각이 일치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황궁에 큰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제국에서 오로지 마탑 놈들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마탑은 아서스를 통해 공식적으로 중립을 선포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러한 상황이 의아했던 것이다.

이에 카라스가 말했다.

“제가 한번 보고 오겠습니다.”

팔검의 카라스가 자신 있게 상황을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이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그렁.

카라스가 검을 뽑아 들었다.

혹시 모를 기습에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카라스가 복도를 지나 환궁을 벗어났다.

그러자 바깥에는 산더미 같이 쌓인 자신들의 기사단원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너무 놀라서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기사단원 한 명이 있는 힘을 쥐어 짜내 카라스를 불렀다.

“카, 카라스 님……!”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 그분들입니다……!”

“그분들? 그분들이 누군데?”

“저, 전 제국 십검들이……!”

“뭐? 전 제국 십검들이라고?”

그 순간.

번쩍!

거대한 오러의 폭풍이 섬광처럼 카라스를 덮쳤다.

* * *

용병단원의 추가 모집에 실패한 반은 헨리로부터 새로운 명단을 받았다.

그리고 받아 든 명단의 첫 줄을 확인하자마자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바할드 제라칸.

명단의 첫 줄에는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 명단을 주며 헨리는 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명단의 첫 줄에 있는 사람, 바할드 제라칸만큼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원조 기사왕이라…….’

바할드 제라칸.

전 기사왕이자 검으로 첫 번째 그랜드 마스터의 자리를 꿰찼으며, 제국이 건국된 이후 단 한 번도 검술로 패배해 본 적이 없는 남자.

그리고 헨리의 마지막을 거두어 간 사람이자, 그 이후 돌연 종적을 감추어 버린 사나이.

바할드 이외에도 명단에는 교체되기 전에 제국 십검으로 활약하던 이들의 이름이 쭉 적혀져 있었다.

‘……미친 놈!’

반은 헨리가 어떤 의도로 자신에게 이들의 추적을 부탁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불확실한 소문을 쫓느니, 확실한 과거의 인물을 들이자는 게 헨리의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결국 반 또한 헨리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놈들의 뒷꽁무니를 쫓는 것보다야 확실한 실력자들을 영입하는 게 좋긴 하지.’

하지만 문제는 자신처럼 종적을 감추었던 이들을 무슨 수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이다.

반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골똘히 명단을 응시하며 머리를 굴리던 중 명단에서 ‘맥도웰 커그스’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맥도웰?’

맥도웰 커그스.

과거의 제국 십검들 중 삼검의 자리를 꿰찼던 남자로 자신 만큼이나 물욕이 없는 남자였다.

‘그래! 이놈이 있었지?’

제국 십검은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들을 모아 만든 황제의 무력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 무력의 기준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험을 통해 평가되었는데, 사실 실력이라면 반 또한 제국 십검에 소속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반은 끝끝내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귀찮다는 이유에서였다.

반의 관심사는 오로지 앙켈만의 흥망뿐.

그래서 반은 자신을 대신하여 맥도웰을 삼검의 자리에 집어넣었다.

맥도웰도 반만큼이나 굉장한 실력의 검사였다.

하지만 반과 마찬가지로 맥도웰 또한 귀찮은 것을 몹시 싫어하는 풍운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검의 자리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맥도웰이 반에게 진 과거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이라면 아마도 거기에 있겠지.’

과거의 십검이 와해되고 난 이후, 맥도웰은 기다렸다는 듯이 십검을 탈퇴하고 수도를 떠나 버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반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뷰스티엘에서 여자나 후리고 있겠지.’

미인의 도시, 뷰스티엘.

술과 여자를 밝히기로 소문난 맥도웰이 십검을 탈퇴했다면 놈이 갈 만한 곳은 뻔했다.

그리고 맥도웰은 정말로 뷰스티엘에 있었다.

“……바할드?”

문제는 바할드도 그곳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었다.

* * *

오러의 폭풍이 멎었다.

그리고 폭풍에 덮쳐진 기사들은 재가 되다시피 사라져 버렸고 카라스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힘은 분명히……!’

뜨거웠다.

마치 불구덩이에 통째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카라스는 이 작열하는 오러의 폭풍이 누구의 기술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까마귀가 우릴 마중 나왔네?”

환궁 마당에 둘러진 벽이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벽 너머로 보이는 이들은 다름 아닌 맥도웰과 바할드, 그리고 처음 보는 낯선 미남자였다.

이에 카라스의 눈동자가 큼지막하게 확장되었다.

“바할드!”

“어어, 저놈 저거 되게 건방지네? 감히 원조 기사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작열하는 오러의 폭풍을 뿌린 것은 바할드가 맞았다.

하지만 바할드 대신 대답하는 이는 전 삼검, 음속의 맥도웰이었다.

맥도웰은 이어서 빈정거리며 말을 이었다.

“매가 없어지니 까마귀가 날뛴다더니, 정말이었군.”

맥도웰의 빈정거림에 카라스가 이를 부득 갈며 대답했다.

“네놈들이 여길 어떻게……!”

“네놈들?”

그 순간, 카라스의 건방진 대답에 맥도웰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싹!

그리고 카라스는 전신을 엄습하는 살기에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젠장……!’

카라스 또한 최상급 소드 마스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싹함을 느낀다는 것은 본능이 깨달아 버린 것이다.

맥도웰이 자신보다 훨씬 더 월등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분명한 힘의 격차였기에.

하지만 자신 또한 최상급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십검의 자리를 꿰찬 몸.

카라스는 전신을 저릿하게 하는 살기를 뚫고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까마귀 주제에 제법인데?”

이에 맥도웰이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지?”

그 순간, 카라스의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 크로웰 님!”

크로웰 시마였다.

크로웰의 등장에 카라스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살기를 걷어 낼 수 있었다.

“어, 뭐야? 마법사가 아니었어?”

의아함에 찬 루핀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엘펀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바할드, 네놈이 여기엔 대체 무슨 일이지?”

대번에 상황을 파악한 크로웰이 말없이 검을 들고 있는 바할드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바할드 대신 맥도웰이 대답했다.

“남이야 오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네놈에게 묻지 않았다, 맥도웰.”

“네놈?”

다시 한 번 살기를 발산하는 맥도웰.

그러나 황실 제 3기사단장인 크로웰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에 맥도웰이 살기를 거두며 말했다.

“아 참, 너는 저기 까마귀 놈이랑 좀 달랐지?”

“장난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오래 전에 종적을 감춘 놈들이 이곳엔 갑자기 무엇 볼일로 낯짝을 들이미는 것이냐?”

“왜긴, 네놈들 때문에 왔지.”

“뭐?”

“들었다. 아서스 그놈이 황좌를 탐내고 있다면서?”

“뭐라고?”

아서스는 이미 크로웰의 주군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크로웰은 자신의 주군을 ‘그놈’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런데 그때였다.

꽈르르릉!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그리고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낯선 텔레포트 게이트가 나타났다.

“이건 또 무슨……?”

당황하는 아서스군의 기사들.

이윽고 텔레포트 게이트로부터 익숙한 형태의 얼굴이 나타났다.

“웃샤, 보아 하니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네.”

낯선 방문자는 다름 아닌 헨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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