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79화 (179/522)

# 179

끝과 시작 (1)

오베르에 이어 아이젠이 죽었다.

이로서 복수해야 할 다섯 놈들 중 두 놈이 죽은 셈이다.

아이젠에겐 일부러 고문 같은 긴 고통을 주지 않았다.

아이젠 역시 다른 놈들처럼 미움 받아 마땅한 놈이긴 하였으나, 그동안 헨리를 위해 열심히 허수아비 노릇을 한 보상이었다.

헨리는 콜소드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그런 다음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린 후 가슴팍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알프레드를 내려다보았다.

“네, 네놈……!”

검상이 깊긴 하였으나 알프레드는 죽지 않았다.

아니, 헨리는 일부러 단칼에 죽이지 않았다.

알프레드는 아이젠과는 달리 헨리에게 정산을 받아야 할 것들이 많은 몸이었으니까.

-키에에에!

주인이 공격당하자 바람의 매, 실디아가 엄청난 광풍과 함께 헨리에게 몸뚱이를 날렸다.

콰아앙!

무용지물. 큰 효과는 없었다.

녀석의 몸뚱이는 헨리가 가볍게 전개한 매직 실드에 틀어막혔기 때문이다.

“시끄럽군.”

이에 헨리는 귀찮다는 듯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콜소드로부터 절제되지 않은 녹색 빛의 오러가 파도처럼 전방으로 뿜어졌다.

-키에에에!

-꾸어어어!

에메랄드 빛 파도가 두 개의 정령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그리고 파도가 잦아들 무렵엔 두 정령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헨리의 검기를 견뎌 내지 못하고 그만 정령계로 역소환되고야 만 것이다.

“크헉!”

그 증거로 알프레드는 각혈을 한 움큼 토해 냈다.

강제로 역소환된 만큼 계약자에 큰 부담이 갔기 때문이다.

덜덜덜.

믿었던 정령들이 모두 역소환되자 알프레드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에 헨리는 번뜩이는 칼날을 그대로 알프레드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러자 알프레드의 얼굴은 공포에 질렸다.

그러나 여전히 입술을 달싹일 만한 용기는 남아 있는 듯했다.

“네, 네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네놈?”

서걱!

이에 헨리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알프레드의 오른팔이 성둥 잘려나가 바닥을 굴렀다.

“크아아악!”

“힐.”

잘린 팔뚝으로부터 핏물이 분수처럼 솟았다.

그래서 헨리는 알프레드에게 지혈을 목적으로 힐을 사용했다.

그러자 아크 메이지의 에메랄드 빛 마력이 순식간에 솟구치던 핏물을 틀어막았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우리를 죽여 없애려고 할 땐 그렇게 약삭빠르던 놈들이, 지금은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되나?”

“우, 우리? 그, 그게 무슨…….”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다.”

“……!”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헨리 모리스.

이에 알프레드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직접 듣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들끓어 올랐다.

덜덜덜덜…….

알프레드의 몸이 다시금 떨리기 시작했다.

헨리 모리스.

모든 개국공신들의 수장이자, 중앙귀족이었던 자신들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던 인물.

정치에 깊은 참여를 하지 않고 제국 현자라는 위치에 앉아서 자신들이 중상모략을 펼쳐도 끝까지 간섭하지 않았던 인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들에게 큰 걸림돌이자 엄청난 압박을 주었던 존재.

그런 존재의 이름이 지금 눈앞의 남자의 입에서 다시금 튀어나왔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믿든 안 믿든 그것은 네놈 자유지. 하지만…….”

헨리는 다시 검을 들었다.

이번에는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푸욱!

“크으으아악!”

헨리는 무릎 꿇은 알프레드의 오른쪽 허벅지에 검을 찔러 넣었다.

깊게, 더 깊게.

찔러넣은 검은 허벅지를 관통하여 허벅지 뒤쪽과, 마주 붙은 종아리에까지 칼날이 스며들었다.

“……중요한 건 난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는 사실이다.”

헨리는 다시 힐을 시전했다.

그리고 다시 검을 움직였고 그럴 때마다 기계처럼 힐을 사용했다.

파괴와 재생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고통의 패턴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칼날을 달구기도 하고 냉기를 활용하기도 했다.

극한의 고통이었다.

전신을 주무르는 아찔한 고통이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칠 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럴 때마다 알프레드를 치료했다.

무려 제국 최고 마법사의 치료였다.

그렇게 삼십여 분 동안 고통과 회복이 이루어졌을 때쯤, 알프레드의 몸에는 아문 상처가 만들어 낸 수많은 흉터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제발, 제에발……!”

초 단위로 들어오는 칼날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게다가 알프레드는 기사처럼 강인한 육체도 굳은 정신력도 없었다.

그는 단지 마법사와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한낱 정령사일 뿐이었다.

척.

다시 들어 올려진 검.

이에 알프레드가 남은 한 팔로 헨리의 각반과 부츠를 붙잡으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구걸했다.

“제발! 제발 그만해 주십시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 저를 죽이고 싶으신 것이라면 지금 당장 죽여 주십시오!”

알프레드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 자리에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걸 직감하였기 때문이다.

“…….”

이에 헨리는 놀리던 검을 멈추었다.

그러곤 슬픔이 조금 깃든 눈동자로 알프레드를 내려다보았다.

‘고작 이런 놈한테 죽어 나갔다니…….’

근본적인 원흉이 이놈이 아니란 것은 잘 안다.

하지만 황제나 아서스만큼이나 죄악이 있는 놈이 바로 알프레드였다.

그래서 더더욱 허무했다.

결국엔 이렇게 자신의 발밑에서 목숨을 구걸할 것을, 왜 그땐 사사로운 관념에 사로잡혀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 했는지 말이다.

‘……슬퍼하기엔 아직 이르다.’

헨리는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이러한 감정은 지금 느껴선 안 됐다.

아직 황제와 아서스라는 두 개의 능선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콜소드를 역소환했다.

그런 다음 콜대거를 소환해 단검을 손에 쥔 후 알프레드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살고 싶나?”

“예, 예! 사, 사, 살려만 주십시오!”

생각지도 못한 기회에 알프레드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튕겨졌다.

“좋아, 그렇다면 기회를 주지.”

이에 헨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알프레드는 그런 헨리의 얼굴에서 과거에 보았던 여든의 마법사, ‘진짜 헨리 모리스’가 겹쳐 보이는 듯했다.

* * *

아서스의 저택이 있는 하이랜더 지방.

그곳은 산을 등지고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으며, 일 년 내내 날씨가 좋아 마땅한 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아서스는 일부러 이곳을 자신의 거점으로 삼았다.

언젠간 이곳이 ‘지방’이 아닌 ‘수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만반의 준비를 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하이랜더 지방의 대저택에는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정복을 착용한 채 집결해 있었다.

물론 정복을 착용한 것은 아서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옷은 제국 황실에서 지급한 정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옷이었다.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고 황실 특유의 무늬나 자수도 들어가 있지 않은 그런 정복 말이다.

“때가 왔군요.”

아서스는 마치 황좌의 그것처럼 회장의 가장 상석에 앉아 마주 앉은 귀족들에게 말했다.

귀족들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어려 있었다.

오늘이 바로 아서스가 말했던 ‘거사’가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황제를 보위하는 제국 십검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십검들이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황궁으로 진격했다.

“십검들이 일을 잘 처리해 줬으면 좋겠군요.”

“그 부분에 대해선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가 직접 가려 뽑은 인재들입니다. 그러니 공작님께선 그저 편안히 승전보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서스의 심려에 대답한 이는 현 기사왕이자 제국 십검들의 대장인 킹턴 포람이었다.

킹턴 포람.

그는 야욕이 많은 인물이었다.

킹턴은 황궁의 권력 세력이 교체되기 전, 제국 이검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대표적인 중앙귀족파의 기사였다.

그리고 아서스가 피의 숙청에 성공한 직후, 정치 싸움에 환멸을 느낀 전 기사왕이 은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사왕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는 그랜드 마스터의 자리는 물론, 검술 아카데미의 교장직과 대공급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킹턴은 새로운 황제가 열 새 시대에서 차기 ‘대가문주’의 자리를 꿈꾸고 있었다.

황궁으로 진격한 제국 십검의 수는 총 넷.

육검의 모드레드와 십검의 살모라의 후임을 아직 뽑지 않았으니, 제국 십검은 현재 여덟 명이 전부였다.

그 여덟 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네 명의 기사들이 황궁으로 진격했다.

십검의 다섯 번째 검, 크로웰 시마.

십검의 일곱 번째 검, 루핀 샤리프.

십검의 여덟 번째 검, 엘펀 라시아.

십검의 아홉 번째 검, 카라스 레셔.

모두가 각자의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황궁 기사단의 단장들이었다.

그들은 하이랜더 지방에서 황궁까지 도보나 말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황궁 기사단에게만 지급되는, 황제가 특별히 하사한 황궁 전용 텔레포트 스크롤을 이용해 황궁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갑옷은 햇빛을 받아 찬란한 광택을 뽐냈다.

하지만 그들의 갑옷에는 더 이상 황제가 하사한 문장과 황실의 심벌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들의 두 눈에는 충성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충성심은 더 이상 황제와 제국을 향한 충의가 아니었다.

그들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뽑아 든 검은 더 이상 황제를 수호하기 위함이 아닌 새로운 황제를 위한 길을 터놓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황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황궁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한없는 침묵에 잠겼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저들이 흉흉한 살기를 드러내는 것은 새로운 황제를 황좌에 앉히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목소리를 드높이지 않고 역사의 흐름에 침묵하는 것이었다.

황궁에는 더 이상 실버 잭슨을 향한 충의도, 기대도, 일말의 동정심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덜컹!

십검의 다섯 번째 검이자 황립 제 3기사단 단장, 크로웰 시마가 황제가 있을 환궁의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누구냐?”

황제의 나지막한 물음.

이에 환궁의 문을 박차고 들어선 크로웰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환궁 가득히 피어오르는 분홍빛 연기. 헨리가 공급해 준 핑크 스왐프의 분홍빛 연기였다.

“뭐야……? 크로웰이었냐?”

황제는 이미 술과 마약에 잔뜩 절어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주위에는 황제와 마찬가지로 수십 명의 여자들이 술과 약에 취해 해롱대고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환궁.

황제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일부러 지은 그만의 놀이터였다.

환궁은 말 그대로 환상의 궁이었다.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쾌락이 밀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약에 취해 실실거리며 크로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크로웰의 뒤를 따르던 루핀과 엘펀, 그리고 카라스 또한 황제의 모습을 보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저렇게 한심한 모습이라니……!’

제국 십검 모두가 친 중앙귀족파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친 중앙귀족파라고 해서 모두가 출세 때문에 중앙귀족파에 선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황제의 저 구역질나는 모습에 정이 떨어져 아서스의 편에 선 자들도 수두룩했다.

이에 크로웰이 나직이 말했다.

“여자들은 모두 죽이고, 황제는 생포해라.”

“예!”

크로웰의 명령에 부하들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휘둘러 약에 취한 궁녀들을 모두 베어 넘겼다.

비명을 지르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들 술과 약에 취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광경을 보던 황제가 말했다.

“킥킥, 핏물이 참 아름답구나……. 정말 아름다워……! 킥킥킥……!”

황제는 여전히 약에 취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그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었다.

실버 잭슨 에드워드 2세.

평생을 무능하게 살았던 아집의 황제가 황좌에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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