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76화 (176/522)

# 176

왈레드 (4)

헨리의 오러는 마치 산불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거세게 불타올랐다.

한껏 녹색 빛 오러를 피워 낸 헨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마법사의 영역.”

우웅……!

단 두 마디였다.

헨리가 딱 두 마디를 내뱉는 순간, 헨리가 딛고 있는 땅을 기점으로 사방에 무수한 양의 마법진들이 바닥에 생겨났다.

지금은 환한 대낮이었다.

그러나 환한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전개한 에메랄드 빛 마법진들로 인해 주위는 눈을 뜨고 있기 버거울 정도로 엄청난 광명이 뿜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헨리는 발을 굴리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퉁.

-킥킥?

퉁.

왈레드는 헨리의 그러한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기괴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헨리는 그런 왈레드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발을 굴렀다.

퉁.

우웅!

그러기를 몇 번.

시간이 지날수록 왈레드는 그제서야 헨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증식이었다.

헨리가 발을 구를 때마다 미처 채워지지 못한 영역에 새로운 마법진들이 증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단한 장관이었다.

만약 하늘에서 보았다면 신이 이 세상에 그림을 그려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헨리의 마법진은 점점 더 그 수를 불려 나갔다.

이에 왈레드는 진화한 이후, 처음으로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다.

그것은 본능이 왈레드에게 주는 경고였다.

이 이상 저 행위를 저지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닥칠 것이라는 진화된 본능의 경고.

인간이었을 때의 왈레드도 자신의 감을 맹신하는 편이었다.

-키에에에!

그저 킥킥거리며 웃던 녀석이 포효와 함께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녀석이 자리에서 발을 떼는 그 순간, 녀석의 앞으로 거대하고 날카로운 암벽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을 본 헨리가 말했다.

“어디 한번 시작해 보자고.”

하마터면 암벽에 꿰뚫릴 뻔하였다.

발동된 마법의 이름은 ‘킬링 스톤’.

바닥에서 날카로운 암벽을 솟아나게 하여 상대를 관통시키는 대지의 마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왈레드의 이동을 막을 수 없었다.

왈레드는 코끝에서 솟아오른 킬링 스톤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킬링 스톤이 통째로 박살 나며 순식간에 길이 열렸다.

이에 부서진 킬링 스톤을 넘어 두 번째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콰과과곽!

이번엔 양쪽에서 날카로운 얼음 화살들이 석궁처럼 쏘아져 왔다.

-……!

“놀라긴? 이제 시작인데.”

급습에 왈레드는 심히 놀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손쉽게 얼음을 격파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자, 이번에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왈레드는 온몸으로 벼락을 견뎠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자, 이번에는 바닥에서 용암이 솟구쳤다.

그리고 불꽃 장벽이 생겨났다.

폭발이 일어났다.

날카로운 얼음 기둥이 돋아났다.

쇠망치가 휘둘렸다.

끓는 기름이 부어졌다.

날카로운 돌풍이 불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수면 가루가 뿌려졌다.

왈레드가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주변의 마법진들이 끊임없이 마법을 토해 냈다.

마법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마법 하나하나가 서클이 달랐고, 시전 방식이 달랐으며, 속성마저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마법들의 테두리에는 에메랄드 빛에 둘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헨리의 마법이라는 증표였다.

그 에메랄드 빛은 평범한 마법을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해 주었다.

그렇게 마법 포화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쾅! 콰광! 콰과과과과!

귓전을 때리는 폭음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마법사의 영역.

수많은 마법들을 오로지 혼자서 모두 전개한 다음 가진 마력이 모두 닳아 없어질 때까지 철저하게 쏟아붓는 형태의 공격법.

헨리는 이러한 공격법을 ‘마법사의 영역’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전술이기도 했고 마법의 한 종류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법사의 영역은 오직 헨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법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마법사의 영역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주문을 외워 마법을 쏟아붓는, 천재들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어마어마한 숫자의 물량공세였기 때문이다.

마법 포화는 계속됐다.

그로 인해 흙먼지와 시커먼 연기가 끊임없이 솟구쳤다.

그 때문에 왈레드는 그 안에 갇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에는 왈레드도 마법 포화를 우습게 여겼다.

이까짓 마법 따위, 실라이온의 마법 저항력과 강화된 육체만 있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왈레드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는 마법 포격들.

게다가 미약하긴 해도 어느 정도의 대미지가 축적되고 있긴 했다.

그도 그런 것이 마법 저항력이 조금 높다고 해서 세상 모든 마법들을 견뎌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법이 점점 더 거세져 갔다.

그리고 쏟아지는 양 또한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폭증하고 있었다.

콰광! 쾅!

쾅! 콰드득! 콰직!

-키에에에!

드디어 포효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이는 마법 포화가 시작된 지 정확히 3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작해야 3분이었다.

하지만 그 3분 동안 수십 개의 마법들이 쏟아졌고 왈레드는 미치광이처럼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두 날개를 휘저으며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데 다시 2분이 지났다.

비명이 멎었다.

이에 헨리는 한쪽 손을 들어 올려 쏟아지는 마법 포화를 멈추었다.

척.

고지에 드디어 폭음이 잦아들었다.

“윈드.”

헨리는 바람을 일으켜 자욱한 흙먼지와 연기를 걷어 냈다.

그러자 그 안에는 흙먼지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덩이는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구덩이는 마법 포격에 의해 녹았다가 얼기를 반복했지만 결국엔 거대한 폭발들에 의해 까맣게 탄 흔적들이 대부분이었다.

바람을 거두자 사위는 다시금 고요해졌다.

현재 헨리에게 있어 침묵은 꽤나 긍정적인 신호였다.

그 거만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건 녀석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에 헨리는 구덩이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 안에는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한 왈레드가 벌레처럼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키륵, 키르륵, 키륵…….

헨리는 그 모습을 보고 밟힌 조그마한 벌레를 떠올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마치 벌레를 떠올리게 하는 외형이기도 했다.

왈레드의 상태는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헨리의 콜소드를 씹어 먹었던 날개는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넝마가 되어 있었고, 몸 곳곳에는 미처 재생하지 못한 상처들로 가득했다.

“……나약한 놈.”

이에 헨리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사방에 펼쳐져 있던 마법진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더는 마법사의 영역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고작 그 정도 몸뚱이로 위세를 떨었다니.”

마법사의 영역으로 전개한 마법들은 전체의 3할도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고작해야 5분이었다.

물론 5분 동안 쏟아진 마법의 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아크 메이지에 접어든 헨리의 마력은 강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퀴륵, 퀴르륵…….

헨리의 조롱에, 왈레드는 팔을 부들거리며 땅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팔 근육을 부풀렸다.

그러나 헨리는 그런 모습조차도 몹시 하찮게 느껴졌다.

“착검.”

지이잉.

헨리는 다시 검을 뽑았다.

그런 다음 천천히 콜소드에 오러를 방출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걱!

종축으로 그어지는 검.

이에 왈레드의 목이 허무하게 땅바닥을 굴렀다.

“흥.”

생김새는 제법 신기했으나 역시나 헨리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헨리는 꽤나 괜찮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했다.

왈레드의 변태를 통해 키메라 연성술이 어디까지 발달했는지 얼추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프로즌.”

쩌저적!

이윽고 헨리는 왈레드의 시체를 얼렸다.

헨리는 왈레드의 시체를 소각하지 않았다.

대신 시체를 잘 냉동시킨 다음 그것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천천히 키메라에 대해 탐구해 볼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왈레드의 시체를 챙긴 헨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판이네.’

거대한 구덩이, 그리고 대지 곳곳에 새겨진 크고 작은 마법의 흔적들.

그러나 헨리는 그것들을 굳이 원상 복구시킬 생각은 없었다.

대신 죽은 정령사들의 시체를 모아 말끔하게 태워 버렸다.

화르륵!

‘헥터 쪽은 슬슬 끝났으려나?’

헨리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그림자의 길이를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지긴 하였으나 그래도 아직 평야에서의 전투는 지속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직 약간의 여유는 있었다.

이윽고 시체 소각을 마친 헨리는 병사들이 잠들어 있을 고지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나다스만 천부장과 삼백의 병사들.

헨리는 그런 병사들을 보고 짧게 혀를 찼다.

물론 일부러 깨우지는 않았다.

저들을 깨우는 것은 전투가 잠시 중단될 저녁 무렵에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는 제이드 위에 몸을 올렸다.

“가자, 제이드.”

-푸힝!

약간의 여유를 확보한 헨리는 헥터에게 맡긴 협곡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 * *

테헤른 협곡.

그곳에는 마치 역병이 창궐한 마을처럼 수많은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역병의 시체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협곡의 시체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한 줄기의 검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체들의 무덤 속에서 유일하게 쓰러지지 않은 한 남자가 간신히 이성을 쥐고 검을 들고 있었다.

이에 헥터가 그를 칭찬했다.

“좋은 정신력을 가졌군.”

“닥쳐라!”

욕설을 내뱉은 남자는 다름 아닌 캄사디아였다.

캄사디아는 자신의 무기인 바스타드 소드를 꼭 쥐고서 죽일 듯이 헥터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한계였다.

눈앞의 시야는 뿌옇게 흐려졌고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턱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벌써 한 시간이 넘도록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헥터를 공격했다.

하지만 저 거대한 흑기사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공격을 반격하지 않고 온몸으로 캄사디아의 공격을 받아 주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사디아는 흑기사의 갑옷에 아주 자그마한 상처도 낼 수가 없었다.

아니, 상처도 아니었다.

캄사디아는 흑기사의 갑옷 위에 둘러진 오러에 단 1mm도 칼날을 박아 넣을 수가 없었다.

이에 캄사디아는 절망했다.

그동안 오랜 용병 생활을 하며 숱한 강자들을 만나 보아 왔지만 이러한 괴물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헨리, 이 개 같은 놈이……!’

캄사디아는 똑똑히 기억했다.

흑기사가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누구의 이름을 내뱉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협곡 중심에 악취 나는 수렁을 만든 것도 이더웨더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흑기사가 쇼난군을 몰아넣기 편하게끔 캄사디아 스스로 함정을 파게 만든 것이었다.

‘내 반드시 살아나가 그놈의 목을 치겠다!’

캄사디아의 두 눈에 투지가 샘솟았다.

물론 힘으로 저 녀석을 제압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품속에는 단거리 이동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 스크롤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용병 시절의 습관이 만들어 낸 비장의 카드인 셈이었다.

‘한 번! 딱 한 번이다!’

이에 캄사디아는 틈을 노렸다.

이 한 번의 공격이 성공해야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할 기회가 생기기에 캄사디아는 머리를 뒤흔들어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어떻게든 맑게 만들었다.

이윽고 캄사디아는 마지막으로 긴 호흡을 내뱉으며 수를 헤아렸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콰앙!

캄사디아는 남은 힘을 쥐어짜 내 오러를 폭발시켰다.

어차피 헥터는 반격을 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놈은 자신의 발악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캄사디아는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러를 폭발시켜 자욱한 흙먼지를 만들어 냈다.

그런 다음 얼른 품속의 이동 마법 스크롤을 꺼내 급하게 그것을 찢어발겼다.

우우웅!

흙먼지가 가라앉기 전, 옅은 섬광이 캄사디아를 덮쳤다.

‘됐어!’

눈앞의 시야가 바뀌었다.

이곳은 자신이 미리 지정해 둔 협곡의 후방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걸어가면 보급병들이 있는 쇼난군 막사가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캄사디아?”

익숙한 목소리.

캄사디아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과 함께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제이드 위에 올라탄 헨리가 미간을 좁힌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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