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70화 (170/522)

# 170

결투 (2)

쇼난군은 다행스럽게도 해가 떨어지기 전에 테헤른에 도착해 막사를 펼칠 수가 있었다.

이에 헨리는 병사들이 진영을 꾸리는 동안 아이젠을 포함한 천부장들과 함께 지형 정찰에 나서기로 했다.

“가자, 제이드.”

-푸히힝!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 이동의 대부분을 텔레포트에 의존하다 보니 제이드의 활용도가 많이 낮아졌다.

그렇다 보니 간만에 제 역할을 해낸다는 기분에 고취돼 제이드의 기분이 많이 들떠 있었다.

이윽고 지형 정찰을 진행하던 중 말을 몰던 아이젠이 말했다.

“어차피 야간 기습이나 매복 같은 전략은 거의 활용하지 못할 텐데 굳이 정찰을 할 필요가 있나?”

“아무리 그래도 전투 전에 전장을 미리 살펴 두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니 천부장들은 더욱더 꼼꼼히 전장을 살피도록.”

확실히 아이젠의 말에도 일리가 있긴 했다.

어차피 귀족들 간의 영지전은 명예 협정에 의해 야간 기습이나 매복 같은 전략은 거의 활용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상 이점을 파악하기 위한 지형 정찰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행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지형 정찰을 고집하는 이유는 적어도 헨리에게만큼은 명예 협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헨리는 애초에 협정에 관계없이 두 사람을 모두 한꺼번에 처리할 생각이었으니까.

밤에 아군 몰래 전장을 살피는 것과 낮에 확실하게 살피는 건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헨리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전장의 구석구석을 확인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정찰이 끝나 갈 무렵, 헨리는 그제야 대강의 견적을 낼 수가 있었다.

‘왜 이곳을 고른 건지 대충 알 것 같군.’

테헤른 지방.

쇼난 지방, 이더웨어 지방과 각각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

그리고 두 평야 사이에 난 큼지막한 숲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지형들이 존재하여 난전을 벌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경계선을 가르는 중앙에는 평야가, 왼쪽 길목에는 협곡이, 우측 길목에는 고지가 있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병력을 세 팀으로 나누게 되겠군.’

말 그대로였다.

특히 지형적 이점이 없는 중앙 평야에선 반드시 백병전이 일어날 테니, 각 군의 병력들이 대거 집결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변수는 협곡과 고지전이 되겠군.’

길목이 좁은 협곡과 높은 언덕이 특징인 고지.

영지전의 목표가 적의 항복을 받아 내는 섬멸전인 만큼 이 두 방향만큼은 절대로 뚫려선 안 됐다.

이쪽이 뚫리게 되면 평야에서 백병전을 벌이던 쇼난군은 순식간에 배후를 붙잡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락없이 포위돼 순식간에 승패가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정은 쇼난군뿐만이 아니라 이더웨더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 평야의 전투도 중요했지만, 좌우의 변수를 얼마나 잘 억제하느냐가 관건이기도 했다.

정찰을 마친 지휘관들은 곧 막사로 복귀했다.

그런 다음 가지고 온 술과 고기를 풀어 병사들의 사기를 충전시켰다.

어쩌면 이번 식사가 누군가에게는 최후의 만찬이 될지도 모르기에.

물론 술은 조금만 허용하였다.

아무리 최후의 만찬이라고는 하지만 당장 내일 전투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숙취로 인한 허무한 죽음은 절대로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이 깊었다.

두 사병대 모두 최소한의 불침번 이외에 모두가 잠에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술을 먹었다고 한들 깊이 잠든 이들의 수는 극히 적었다.

내일 있을 전투에 대한 긴장이 모두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기에.

* * *

“왔군.”

날이 밝고 해가 중천에 걸리자 예정대로 각 군의 지휘관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임 장소는 중앙에 위치한 평양의 중심부.

병사들은 대동하지 않았다.

대신 참모와 천부장들이 병사들을 대신해 가주의 뒤를 지켰다.

아이젠은 알프레드보다 먼저 도착해 황동색 렐버트를 온몸으로 뽐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알프레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고작 아이젠의 눈빛 따위에 기선을 제압당할 알프레드가 아니었다.

알프레드 또한 정령사 특유의 경갑옷을 착용한 모습으로 자신의 참모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먼저 입을 연 쪽은 뒤늦게 도착한 알프레드 후작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용케도 나타났군.”

“나보다 늦게 온 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쯧쯧, 원래 하급자가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네놈은 오랫동안 백작이었으니 그 습관이 몸에 벤 것이고.”

“뭐, 뭐라고……?”

수준급의 화술.

오랜만에 본 알프레드는 여유를 되찾은 듯했다.

이에 헨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알프레드의 뒤편에 선 지휘관들을 응시했다.

‘왈레드?’

그리고 헨리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알프레드 뒤편에 선 지휘관들 중에는 분명히 헥터가 팔을 잘라 버린 왈레드 이더웨더가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더웨더가에는 그렇게 인재가 없나?’

이상했다.

듣기로는 팔이 잘린 뒤로 정신적인 충격이 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영지전 같은 중요한 자리에 지휘관으로 내세우다니?

물론 팔 한 짝이 잘렸다고 해서 계약된 정령이 사라진다거나 정령술이 취약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쇼난가보다 인재가 훨씬 더 많은 곳이 이더웨더가였다.

그런 곳에서 굳이 불안한 정신 상태를 가진 왈레드를 지휘관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이에 헨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혀를 차 보였다.

‘뭐, 우리로선 좋은 게 좋은 거지만.’

게다가 이 와중에도 팔이 잘렸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건지, 모두가 정복을 착용하고 있을 때 왈레드 홀로 커다란 망토를 둘러 몸통을 가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었다.

‘분명히 알프레드가 시킨 것이겠지. 그리고 시레드는…… 역시 참여하지 않은 건가?’

비정한 아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정한 아비치고는 시레드가 보이지 않자 그것 또한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아무리 급해도 약쟁이보단 병신이 훨씬 낫긴 하지.’

그러나 헨리는 그 모순조차도 이해해 주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 영지전은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행운아가 될 예정이었으니까.

게다가 시레드에겐 차고 넘칠 만큼의 정보를 뽑아냈기에 영지전에 불참할 자격은 충분했다.

이윽고 두 후작의 꼴같잖은 말다툼이 끝났다.

그리고 이어서 본격적인 영지전을 위한 명예로운 결투를 약속하는 명예 선서식이 거행되었다.

선창은 영지전을 신청한 알프레드가 진행했다.

“나 알프레드 이더웨더는 이더웨더 대가문의 대가문주로서, 황제 폐하와 제국 귀족의 명예에 부끄럽지 않은, 신성하고 정정당당한 결투를 벌일 것을 굳게 다짐한다.”

“나 아이젠 쇼난 또한 쇼난 대가문의 대가문주로서, 황제 폐하와 제국 귀족의 명예에 부끄럽지 않은, 신성하고 정정당당한 결투를 벌일 것을 굳게 다짐한다.”

선서는 황제의 결투 허가서 앞에서 진행되었다.

이윽고 선서식이 끝난 두 사람은 정정당당한 결투를 위한 명예로운 신사 협정서를 꺼내 들었다.

협정서에 적힌 조항들은 비교적 간단한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상대의 보급계는 건드리지 않는다.

-해가 지면 모든 전투를 중단하고 다음 날로 결투를 미룬다.

-전의를 잃은 상대를 조롱하지 않고 명예로운 죽음을 선사한다.

-결투가 끝난 뒤, 결과에 어떠한 불만도 재기하지 않으며 순순히 결과를 받아들인다.

……같은 것들 말이다.

두 사람은 신사 협정서를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협정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이로써 거추장스러운 행사 치레들이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그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울분을 칼끝을 통해 표출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승리의 조건 또한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내는 섬멸전이니만큼 최대한 한 명이라도 더 베어 내는 것이 유리할 터였다.

복수의 수단으로는 최고의 방식인 셈이었다.

모든 행사 치레가 끝나고 나자 알프레드가 비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럼 이제 쇼난가의 명맥도 이것으로 끝이겠군.”

“뭐라고?”

“왜, 내 말이 틀렸는가? 네놈은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변변찮은 자식 놈 하나 없잖아?”

“뭐야?”

“크크크, 어쩌면 소문이 사실인지도 모르겠군. 네놈, 정말로 불구가 되어 버린 것이더냐?”

“닥쳐라!”

챙캉!

저급한 도발.

이에 화를 참지 못한 아이젠이 자신의 무기, 블리킨을 거칠게 뽑아 들었다.

“큭큭큭, 흥분하기는……. 그래, 네놈은 무기라도 잘 세워야지, 안 그래? 하지만 진정하라고. 결투가 시작되려면 멀었으니까.”

자신의 도발이 먹혀들자 알프레드는 더더욱 이죽거렸다.

이에 아이젠은 금방이라도 도끼를 휘두를 것처럼 굴었으나, 신사 협정 때문에 주먹만 부들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 이어 알프레드의 시선이 아이젠의 뒤편에 서 있는 헨리에게로 옮겨졌다.

“네놈도 용케 도망치지 않고 나왔구나.”

가벼운 도발.

그러나 헨리는 아무런 대꾸도, 표정의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조금 까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방자한 놈 같으니, 결투가 끝나고 나서도 그 낯짝을 유지할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웃기고 있네.’

치열한 기 싸움.

이에 자존심이 상한 알프레드가 소리쳤다.

“가자! 여기에 더 있다간 나까지 불구가 될 것 같으니!”

“저 망할 놈이 끝까지……!”

헨리에게 도발이 먹히지 않자 다시 대상을 바꾸어 아이젠의 속을 긁어 놓는 알프레드.

이윽고 알프레드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가자 분노를 참지 못한 아이젠이 바닥을 향해 블리킨을 휘둘렀다.

콰앙!

마치 화약이라도 폭발한 것처럼 평야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것은 아이젠의 분노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에 헨리는 생각했다.

‘이 녀석, 정말로 고자였던 건가?’

아이젠이 극도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알프레드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흥분할 리가 없을 테니까.

게다가 놈의 말대로 만약 이번 결투에서 아이젠이 죽음을 맞이한다면 자식과 부인이 없는 아이젠은 자신의 대를 이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참 이상한 놈이야.’

생각해 보면 아이젠은 이상한 놈이었다.

보통은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 양자라도 들이는 것이 보통인데, 아이젠은 무슨 이유에선지 절대로 양자를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젠의 여성 편력에 대한 소문은 꽤나 자자한 편이었다.

당장 그저께만 하더라도 여자들을 침소에 들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명성에 비해 사생아 하나 없다는 사실이 의외일 따름이었다.

‘뭐…… 뭐가 됐든 간에 내 상관은 아니다마는.’

물론 아이젠이 고자든 불임이든 간에 헨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무엇이 됐든 간에 알프레드와 아이젠 두 놈 다 이번 전투에서 그 명맥이 끊길 운명인 것은 확실했으니.

이윽고 헨리가 말했다.

“슬슬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후작님?”

“후우, 알프레드 이 후레자식! 개 같은 놈……! 자식 농사를 그따위로 할 바엔 차라리 안 낳고 말지……!”

어지간히도 분했던 모양이다.

확실히 중년의 나이에 자랑할 자식이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긴 했다.

특히 사교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상 말이다.

이에 헨리는 씩씩거리는 아이젠을 어르고 달래 다시 막사로 복귀했다.

결투의 시작은 해가 가장 높이 뜰 때 시작된다.

말인즉슨 결투까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전략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형을 확인한 순간부터 전략은 이미 정해 두었다.

그래서 헨리는 막사로 복귀하자마자 아이젠과 천부장을 모아 생각해 둔 전략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하자고?”

“그렇습니다. 어차피 첫 전투는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는 탐색전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헨리의 설명이 끝났을 무렵, 아이젠과 천부장들은 입을 반쯤 벌리고서 헨리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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