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69화 (169/522)

# 169

결투 (1)

영지전이 발발하기 이틀 전.

세상은 마치 폭풍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함과도 같았다.

이 싸움에 걸린 복잡한 이해관계를 이제는 아서스의 반란 선언을 통해 모두가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헨리는 강물에 찌를 던져 넣은 강태공처럼 조용히 그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입구를 지키는 병사로부터 입질이 왔다.

“작은 주인님. 중앙귀족회 회원분들이 방문하셨습니다.”

“저번에 거기로 모셔.”

“옙!”

병사는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다시 대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대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익숙한 모양새로 줄을 지어 등장하는 중앙귀족회의 회원들이 보였다.

중앙귀족회의 회원들.

헨리는 저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도 마지막 장사가 되겠군.’

헨리는 영지전이 일어나기 전에 저들이 먼저 문을 두드릴 것을 예상했다.

핑크 스왐프의 중독성은 한 일가를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아서스에 줄을 대고 있으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아가리 속에 들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헨리는 저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저들이 먼저 문을 두드리기 전에 미리 편지를 보냈다.

이번엔 넉넉한 양을 준비했으니 다들 마음 단단히 먹고 오라고.

그리고 이젠 화폐 대신 황금이나 식량을 대금으로 받겠다고.

이에 눈치 빠른 구매자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가진 재산들을 긁어모아 황금과 식량을 확보해 만반의 준비를 가했다.

그렇잖아도 늘 부족했던 궐련을, 이번 기회에 단단히 쟁여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 같은 행위를 보고 상당히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궐련의 구매에 쏟아부을 막대한 재산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황좌의 주인이 바뀌고 나면 아서스 대공작이 자신들에게 더 많은 부귀영화를 안겨 주리라고 생각던 것이다.

그리고 여태껏 재물을 물 쓰듯이 써 온 그들의 사고방식은 절약 정신에 길들여진 일반인들과는 달라도 한참이나 달랐다.

“그럼 지금부터 핑크 스왐프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었다.

헨리는 이번 경매에서 일부러 자잘한 사치품들을 뺀, 오로지 핑크 스왐프만을 준비했다. 핑크 스왐프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헤라리온에게도 미리 통보해 두었다.

그런 덕분에 헨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핑크 스왐프를 준비해 놓을 수 있었다.

다들 눈빛이 매섭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이것이 마지막 경매가 될 것이란 걸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후, 치열한 접점 끝에 헨리는 첫 경매에서 벌어들인 금액에 두 배에 달하는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구매자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어떤 귀족은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며 흡족한 듯이 웃어 보였고, 어떤 이는 단 한 개비도 건지지 못해 낯빛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쯧쯧, 불쌍한 놈들.’

궐련 중독자들에게 있어 궐련은 절대적인 화폐나 마찬가지였다.

궐련을 확보한 이들 중에는 쏟아부은 재산의 일부를 회수하기 위해 구입한 궐련의 일부를 재판매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궐련을 구매하지 못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더 비싼 값에 더 적은 양의 궐련을 사들일 것이 뻔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헨리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식의 재판매가 몇 번만 더 이루어지면 가장 힘없는 귀족 놈들, 즉 끄트머리 놈들부터 떨어져 나갈 테니까.

이윽고 헨리는 경매가 끝난 직후, 경매에 참여한 이들을 위해 작별의 궐련들을 한 개비씩 지급했다.

“이것은 제가 드리는 조그마한 선물입니다.”

‘웰컴 드링크’처럼 늘 주어졌던 경매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감사의 궐련이었다.

이윽고 앉은 귀족들 모두에게 핑크 스왐프가 한 개비씩 배부되었다. 귀족들은 분홍색 연기를 뿜기 위해 성냥불을 댕겼다.

그리고 한 모금 빨아들이는 순간.

“……!”

모두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뜩였다.

‘이, 이 맛은……!’

평소에 피워 오던 것보다 훨씬 더 진하고 강렬한 맛.

분명히 같은 모습, 같은 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모금을 빨아들이는 순간, 그 차이점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혹시나 자신의 궐련이 잘못된 건가 싶어 옆 사람과 바꿔 피워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확연히 다른 맛이었다.

이에 헨리가 여느 때와 같이 미소 지으며 경매의 종료를 알렸다.

“이것으로 모든 경매를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구매하신 궐련에 대한 대금을 치르신 후에 낙찰 받은 궐련을 수령해 가시면 되겠습니다.”

“자, 잠깐만!”

클로징 멘트를 던지고 무대를 내려가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경매에 참여한 귀족들 중 한 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헨리를 불러 세웠다.

‘그렇지!’

이에 헨리가 쾌재를 불렀다.

붙잡지 않으면 섭섭할 뻔했다.

누군가의 부름에, 헨리는 뻔뻔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왜 그러시죠?”

“이, 이거! 이게 대체 뭔가!”

급히 불러 세운 것이라 그런지 목소리에 당황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에 용기 내어 목소리를 냈다.

이에 헨리가 싱긋 웃음을 터뜨리며 알쏭달쏭한 대답을 남겼다.

“글쎄요. 그 부분에 대해선 다음 경매에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 경매.

다음이 없을지도 모를 이 경매에서 헨리가 다음 경매를 언급했다.

그 말인즉슨 영지전의 결과와는 관계없이 또다시 경매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그렇게 마지막인 척했던 핑크 스왐프의 경매가 방금 막 막을 내리게 되었다.

* * *

또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헨리는 텔레포트 게이트들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막바지에 치닫고 있는 준비 상황을 손수 점검했다.

과연 무슈의 장인들이었다.

헨리의 언질 이후, 불카누스는 작업 중이던 무슈의 모든 장인들을 끌어모아 각 자유도시들의 성벽 증축에 힘을 쏟았다.

그 덕분에 각 자유도시의 성벽들은 유래 없는 웅장함을 선보이며 그 규모를 키워 나갔고, 성벽 근무를 서던 경비병들은 갑작스러운 증축에 얼떨떨함을 보였다.

‘잘 진행되고 있군.’

비발디 타운과 무슈, 그리고 앙켈만.

협약을 맺은 이곳 외에도 다른 자유도시들이나 속국의 수는 많았지만 지금 당장 헨리가 신경 쓸 수 있는 곳은 이 세 곳이 전부였다.

그리고 알려진 자유도시들 중 가장 쓸모 있는 곳들이 바로 이 세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도시를 드나드는 시민들은 왜 갑작스레 성벽을 증축하는지, 식량들의 가격이 올랐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세 개의 도시에도 알 사람만이 아는 폭풍 전야 같은 고요함이 떠돌기 시작했다.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리고 헨리는 반으로부터 짧게나마 연통을 받을 수 있었다.

헨리가 추적을 부탁한 사람들 중 일부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호출권과 비슷한 아티팩트를 통한 연락이었기 때문에 누굴 어디서 몇 명이나 찾았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었다.

대신 곧 벌어진 영지전의 위치를 전송하는 것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준비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샤하트라에도 미리 다녀와 대금을 치렀고, 학생들의 발전 속도나 기타 잡다한 준비도 대부분 확인이 끝난 상황이었다.

남은 것은 내일 벌어질 영지전을 슬기롭게 치러 내는 것뿐.

이윽고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점검을 마친 헨리는 내일 있을 결전의 날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젠의 저택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

“참모가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이더냐?”

헨리가 다시 저택에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를 질책했다.

이에 헨리가 부드럽게 대꾸했다.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바깥 공기를 좀 쐬고 왔습니다.”

“……그래, 우리 참모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헨리는 지금 내일 있을 영지전 때문에 이틀 전부터 아이젠의 저택에 기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젠이 저런 질책을 한다는 건 태평한 척하고 있던 그 또한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아이젠이 짜증을 낼 법하긴 했다.

헨리가 눈앞에 있어도 초조한데 틈만 나면 자꾸만 시야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하지만 헨리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앙켈만에 있던 몸.

이런 식으로라도 자리를 비우지 않으면 절대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할 수가 없었기에 헨리로선 어쩔 수가 없었다.

‘뻔뻔스러운 놈, 이 짓거리도 조만간이다.’

헨리는 시간을 확인했다.

해는 아직 중천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슬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기도 했다.

헨리가 아이를 구슬리듯 아이젠에게 말했다.

“후작님, 슬슬 테헤른 지방으로 병력을 이동시킴이 어떻겠습니까?”

“벌써 말이냐?”

“미리 움직여 병사들을 쉬게 하는 편이 내일 있을 전투에 더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알겠다. 그럼 당장 쇼난군에게 일러라. 곧 출정식을 치르겠다고 말이야.”

말 그대로였다.

영지전은 내일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병사들을 이동시켜 두지 않으면 병사들이 충분히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내일 아침 일찍 이동해도 되긴 했다.

하지만 서너 시간의 행군 끝에 전투를 치르는 것과 밤새 휴식을 취하고 전투를 벌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슬슬 시작인가?’

헨리는 시종에게 출정식을 이르면서 다시 한 번 쇼난군의 전력을 되짚었다.

영지전치고는 꽤나 규모가 크긴 했다.

무려 한 진영당 오천에 해당하는 사병들이 투입될 예정이었으니까.

물론 보급병을 제외한다 해도 그 수는 무지막지했다.

게다가 행위 자체는 귀족들 간의 명예로운 결투였으나 그 실상은 어디까지나 상대 가문의 멸문을 목표로 한 무자비한 살육전이었다.

그래서 헨리는 아이젠에게 보고 하기를 이 영지전이 끝나려면 최소 나흘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꽤나 합리적인 예측이었다.

아무리 영지전이 무자비한 살육전이라고는 하나 명예로운 결투에 뿌리를 두었다.

그래서 사전에 장소와 날짜를 정하고 이외에도 신사적인 협정들을 미리 맺어 둔다.

예컨대 해가 떨어지면 전투를 멈춘다든가, 서로의 보급계는 공격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헨리는 정석대로 영지전을 벌일 경우 최소 나흘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말해 둔 것이었다.

‘실상은 길어야 이틀이겠지만.’

물론 헨리는 이 쓰잘머리 없는 두 머저리의 결투에 나흘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 없었다.

나흘이면 아서스가 진즉에 반란을 일으켜 황궁을 점거하고 황제의 목을 벤 뒤 군대를 재편성해도 충분히 남을 시간이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길어야 이틀 안에 두 사람의 목을 베어 버리고 황궁으로 진격할 생각이었다.

펄럭!

출정식이 준비되었다.

쇼난가의 거대한 정원에 오천에 달하는 쇼난군이 집결되었다. 며칠간 사용될 군량미와 각종 보급품들이 마차 가득히 쌓여 있었다.

이에 아이젠은 자신이 즐겨 착용하던 ‘렐버트’라는 황동색의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했다.

그리고 황동색과 어울리는 금빛 망토를 펄럭이며 단상 위에 올라갔다.

슬겅!

단상에 오른 아이젠은 자신의 덩치에 어울리는 ‘블리킨’이라는 거대한 양날 도끼를 빼들었다.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블리킨.

이윽고 아이젠은 번쩍이는 블리킨을 지휘봉 삼아 오천의 병사들을 향해 목청껏 포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때가 당도했도다!”

쿠웅!

아이젠의 포효에 병사들은 대답 대신 발을 굴렸다.

그러자 굉장한 발 구름 소리가 거대한 쇼난가의 앞마당을 뒤흔들었다.

이에 아이젠이 더더욱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리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쿠웅!

“빌어먹을 알프레드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쿠웅!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굵고 짧은 연설이었다.

또한 말재주가 없는 아이젠에겐 더없이 어울리는 연설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사기가 한껏 오른 병사들 또한 아이젠과 같이 힘찬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공기가 진동했다.

쇼난 지방 전체에 울려 퍼진 병사들의 함성은 사뭇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에 헨리는 아이젠 옆에 서서 포효하는 병사들을 흘깃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쇼난가의 병사들.

헨리는 그런 병사들을 위해 눈을 감고 잠깐 동안 짧은 기도를 해 주었다.

‘너희들에게 죄가 있다면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이겠지.’

겨우 일천이었다.

고작해야 일천밖에 되지 않던 쇼난군이, 샤하트라 토벌전 이후 규모가 몇 배나 커지며 타 사병대에도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유명세도 이번 전투가 마지막일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의 목숨은 헨리의 복수를 위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도를 마친 헨리는 눈을 떴다.

그런 다음 각 부대의 병사들 앞에 서 있는 천부장들을 바라보았다.

천 명의 병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장군격의 천부장들.

지난번에 벌어진 토벌전 이후, 아이젠의 명성을 듣고 쇼난군에 입대하길 희망하는 이들 중 고르고 골라 받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백 명의 병사를 지휘할 백부장들과 하나의 부대, 즉 열 명의 병사들을 책임질 십부장들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살아라. 끝까지 살아남아서, 더 나은 세상에서 더 나은 권리를 누려라.’

그것이 헨리가 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도였다.

부우우우!

이윽고 출정을 알리는 나팔이 우렁찬 포효를 내뱉었다.

“가자!”

“워어!”

아이젠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제국의 역사를 뒤바꿀 사건이 이제 막 거칠게 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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