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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168화 (168/522)

# 168

눈치 싸움 (8)

드라칸 로티크.

장대같이 큰 키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기다란 생머리 때문에 흡사 귀신을 연상케 하는 외모.

게다가 알려진 정보 또한 몹시 한정적인지라 꽤나 신비로운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 알프레드조차도 상대하기 껄끄러워하는 존재가 바로 드라칸이었다.

그런 그가 연고도 없이 갑자기 자신을 찾아오다니?

게다가 아서스 또한 특별한 언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불안했다.

이에 급히 몰골을 재정비한 알프레드는 심호흡을 두어 번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지요, 드라칸 경.”

끄덕.

살가운 환대에도 불구하고 드라칸은 차갑게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러나 기세를 압도하는 시선 때문인지 전혀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직급상 알프레드는 그를 하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드라칸은 아서스 공작이 아끼는 사람.

또한 그가 없으면 비밀리에 진행 중인 키메라 프로젝트 또한 성사될 수 없기에 알프레드는 그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경어를 사용했다.

알프레드가 무안함에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흠흠,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혹시 공작님께서 보내신 겁니까?”

“아닙니다.”

알프레드의 물음에 드라칸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럼 무슨 일로 저를?”

“후작님의 첫째 아드님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제 첫째 아들이라면…… 왈레드, 말입니까?”

자신의 장남. 왈레드 이더웨더.

녀석은 왼팔이 잘린 병신이 됐다.

그런 병신에게 볼일이라니?

그것도 공작의 특별한 지시도 없었는데?

물론 팔이 잘렸다고 해서 정령과의 계약이 해지됐다거나 정령술이 약해지진 않았다.

다만 하루아침에 외팔 병신이 되어 버려 스스로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생겼을 뿐.

이에 드라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무슨 용건 때문에 말입니까?”

이에 알프레드의 신경이 부쩍 날카로워졌다.

왈레드가 외팔이가 됐다는 사실은 아직 소수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는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의 부상은 자신의 치부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드라칸은 여전히 같은 톤의 목소리를 유지하며 묵묵히 말을 이어 나갔다.

“듣기로는 현재 왈레드 님이 한쪽 팔을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 팔, 제가 복구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팔을 복구시켜 주겠다.

이에 알프레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친분도 없는 놈이 갑자기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아들놈의 팔을 복구시켜 주겠다니?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소리란 말인가?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드라칸의 용건은 간결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알프레드 쪽이었다.

“아, 아니,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제안을 하면 당연히…….”

“거절하시는 겁니까?”

물음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다.

너는 그저 선택만 해라.

이대로 아들을 방치할 것이냐?

그 물음이 너무나도 단호하여 지금의 제안을 거절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게다가 드라칸은 순수 인간학을 전공한 인체 연성술의 달인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더욱 신빙성이 느껴지긴 했다.

‘…….’

장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기색을 떨치진 못했다.

이에 알프레드는 다시금 드라칸의 눈빛을 확인했다.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차가운 눈빛.

그것은 신뢰일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포커페이스일 수도 있었다.

‘이놈은 갑자기 찾아와서 대체 무슨 심보로 이러는 거지?’

아들의 소식이야 아서스에게 들었을 테지만 아서스의 언질 없이 이러한 제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이 길어질수록 드라칸의 눈빛이 더더욱 부담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확실히 한 손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항상 갑의 위치에 있다 보니 이렇게 부담스러운 심리전은 또 오랜만이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드라칸의 제안을 승낙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로 방치해 두었다간 전력은커녕 오히려 짐만 될 놈이 바로 왈레드였던 것이다.

게다가 마음속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두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하지만 포기한다고 생각해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혈육이었다.

그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혈육의 정.

이에 알프레드가 한참의 장고 끝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아드님을 모셔 가도록 하겠습니다.”

씨익.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고수하던 드라칸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이런.”

몰아치던 광명이 잦아들 때쯤, 헨리는 실망스러운 눈초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광명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큼지막한 모습의 알이었기 때문이다.

‘또 기다려야 되는 건가?’

클레버에 이어 엘라곤까지.

권속이라 부를 만한 것들 전부가 하나같이 진화를 거쳐야 하니 주인으로선 조금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에 헨리가 실망스러움에 고개를 내저으며 바닥에 놓인 알을 향해 다가갔다.

‘크기는 또 엄청 크군.’

알이라고 부르기도 묘할 정도였다. 흡사 바윗덩이를 연상케 할 정도.

헨리는 알이 된 엘라곤을 팔찌로 역소환시키기 위해 알 표면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쩌적!

“음?”

쩌저적!

살짝 손만 댔을 뿐인데 갑작스레 생겨나는 균열.

그리고 균열 사이로 마력들이 짙게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진화.

이 느낌은 진화가 확실했다.

이에 헨리는 진화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부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마구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쩌저적!

균열은 더더욱 거대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알 전체에 거미줄과 같은 균열이 일어났을 때쯤, 헨리는 간절하게 바랐다.

그토록 바라던 정령왕으로 부화해 달라고 말이다.

쪼개진 균열이 일그러져 바닥에 무너져 내린 그 순간!

파삭!

“……?”

헨리는 알 속에 나타난 좀 더 작은 크기의 알을 보고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서스의 저택.

그리고 저택 내에 위치한 제1 응접실에는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황궁 최고의 귀족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아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다들 대단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다.

예컨대 중앙귀족회의 회원들은 물론이고 황제를 지키는 제국 십검이라든가 지방의 이름 있는 유지, 그리고 대가문주인 오스카와 테리온 백작까지.

혹여 사정을 모르는 이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한데 모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에 아서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협탁의 가장 상석에 앉았다.

그런 다음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모였군요.”

평소와 같은 살가운 미소였다.

그러나 그런 살가운 환대에도 불구하고 협탁의 어느 누구도 아서스처럼 쉬이 미소 짓는 이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아서스의 미소 속에 감추어진 비정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막한 공기.

이에 중앙귀족회의 회원들 중 하나인 폼포드 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공작님! 공작님이 부르셨는데 당연히 달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물론입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대공작님께서 부르셨는데!”

“저는 공작님께서 호출해 주셨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폼포드 공이 서문을 열자 다른 귀족들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한두 마디씩 말을 얹기 시작했다.

달콤한 아첨들의 향연.

이에 아서스가 웃는 낯짝으로 길게 늘어진 탁자 위의 얼굴들을 지긋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줄을 대고 꾸준하게 조공을 바치는 세력가의 얼굴들이었다.

이에 아서스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제국 최고의 황제에게조차 진상품을 내놓지 않던 놈들이 그보다 낮은 서열을 가진 자신에게 설설 기는 꼴들이라니.

물론 이 자리에 알프레드는 없었다.

오늘은 굳이 알프레드가 없어도 되는 자리였으니까.

게다가 그 녀석은 거사일의 방아쇠와도 같은 역할을 맡았으니, 이런 자질구레한 자리에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됐다.

꿀꺽.

아서스가 대꾸 없이 한참을 웃고만 있자 귀족들은 다시금 침을 꼴깍 삼켰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기분이었다.

아서스는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귀족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지막이 몇 마디의 말을 내뱉었다.

“저는 얼마 뒤면 반란을 일으킬 생각입니다.”

“……!”

서론 없이 던져지는 말.

아서스의 독백은 그야말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날것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날것을 소화하지 못한 이들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사위는 더더욱 고요해졌다.

급체를 했지만 가슴을 두드릴 수 없는 그런 숨 막히는 분위기.

물론 몇몇의 얼굴에는 얼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눈빛을 반짝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서스는 길게 묻지 않았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당신들의 의사를 묻는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취해 주는 최소한의 예의일 뿐이었다.

아서스의 물음이 공허한 허공을 차갑게 긁어 놓았다.

침묵은 금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누구도 부정의 의사를 밝히지 않자 아서스가 이내 곧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대들의 뜻은 잘 알았으니 차후에 또다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세요.”

소집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오늘은 말 그대로 저들의 의사를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자리.

그리고 혹시라도 섞여 있을지도 모를 반동분자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불안함 따위는 없었다.

혹시라도 아서스의 이러한 행태를 황제에게 몰래 밀고한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는 제국 십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나라에서 제일가는 무력 단체가 이곳에서 아서스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는데 황제에게 이 소식을 알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쿠데타의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고 했다.

그리고 승자의 곁에서 함께 기록된 사람들은 머리가 비상하거나 뛰어난 공을 세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곁에서 숨을 죽이고 충의를 저버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충의가 목숨을 부지시켜 주진 않았으니까.

아서스가 해산을 명령하자 묵혀 있던 무거운 공기가 열린 응접실 문으로 토해졌다.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되어 갔다.

이제 남은 것은 알프레드와 아이젠이 맞부딪히는 날만 남았을 뿐.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 * *

며칠의 시간이 지나자 알프레드 측에서 영지전을 벌일 장소와 구체적인 날짜를 통보해 왔다.

장소는 알프레드와 아이젠의 영지가 맞물리는 경계선인 ‘테헤른 지방’.

협곡을 비롯한 고지와 평야가 고루 분포되어 있어 영지전 같은 소규모 전쟁을 벌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나쁘지 않아.’

말 그대로였다.

쇼난 지방과도 그리 멀지 않으며 곳곳에 분전을 일으키기에 좋은 전략적 요충지로 가득한 곳이었다.

게다가 이미 시레드를 통해 꾸준히 정보를 수집해 왔기 때문에 알프레드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략을 취해 올지도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진짜 전쟁이 아닌 몇 가지 약속하에 벌이는 귀족들 간의 명예로운 결투였으니, 사병의 숫자도 최대 오천으로 정해 두었다.

그렇기에 알프레드가 준비한 병력은 총 오천.

이번 영지전에 사용될 병력의 최대 머릿수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헨리?”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후작님”

헨리는 아이젠의 저택에서 곧 닥쳐올 영지전에 대한 전략 회의를 나누었다.

사실 회의라고 해 봤자 참모 격인 사람이 헨리 한 사람뿐이었으니, 사실상 헨리가 모든 전략을 계획하여 보고하는 형식이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아이젠은 뻔뻔스럽게도 헨리의 목을 내기의 대상으로 내건 주제에 자신의 무력만을 믿고 꽤나 태평한 편이었다.

참으로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가 없었다.

‘뭐, 그 덕분에 일이 더 쉬워지긴 했지만.’

어차피 아이젠의 병사들은 단순히 아이젠의 위신을 세워 줄 허수아비들에 불과하다.

진짜 전투가 시작되면 실제로 활약하게 될 사람은 병사가 아닌 헨리 한 사람뿐일 테니까.

이윽고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할 법한 회의가 끝났다.

브리핑을 마친 헨리는 아이젠의 저택을 빠져나왔다.

앞으로 영지전까지 이틀.

헨리는 그사이에 필요한 준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끝마쳐 두어야만 했다.

‘이틀 뒤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헨리의 계획들이 정돈된 톱니바퀴처럼 알맞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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