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눈치 싸움 (6)
놀란 표정의 아서스를 본 로어는 생각했다.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갖은 모략으로 개국공신파를 모두 제거하더니, 친분도 없는 자신에게 뜬금없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목적은 뻔하다고 생각했다.
반란.
개국공신들의 목을 발판삼아 대공작의 자리에 오른 남자다.
물론 대공작 자리도 결코 낮은 자리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최고의 권력자도 아니었다.
제국 최고의 권력가는 다름 아닌 황제였으니까.
로어는 그가 대공작으로 승작하던 날, 언젠가는 반드시 황제의 자리를 탐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눈동자 속에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추악한 욕망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그 예견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뻔하지 않겠습니까? 특별한 날도 아니고 우리가 사담을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저를 찾았다는 것은 무언가 부탁이 있어서겠지요.”
그렇다고 그 부탁이 반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이 제국에서 오직 로어 한 사람뿐일 것이다.
적어도 아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대화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길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돼서 좋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현재 제국에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요?”
“탑주님의 의견을 물으러 왔습니다.”
“딱히 묻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물론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란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황제의 편에 서서 저를 막으실 건지에 대한 의중을 여쭈러 왔습니다.”
‘능구렁이 같은 놈!’
애초에 답은 정해져 있으니 대답이나 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괘씸함에 쉬이 대답을 내놓기엔 아서스는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그리고 아서스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서 딱히 망할 황제 놈의 편에 서서 소중한 탑의 마법사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결론은 금방 도출되었다.
“중립을 선언하겠습니다. 저희 마탑은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그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마법사들에게 중립 선언을 명령하시겠군요.”
“물론입니다.”
반란을 저지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탑의 마법사들을 꾀어 반란의 도구로 사용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에 아서스는 로어의 철두철미함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나 싶어 물은 것이었지만 역시나 철벽처럼 가로막혔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서스는 처음부터 마법사들의 도움 없이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마법사들은 있으면 편리한 족속이었지만 이제는 딱히 그들이 없어도 거사를 치르기엔 별다른 무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롭게 손에 넣은 힘은 마법사들의 마법과 비교도 할 바가 되지 못했다.
“날짜는 정해졌습니까?”
“보름 뒤, 아이젠과 알프레드가 결투를 벌일 때로 정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로어는 아이젠과 알프레드가 결투를 벌인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딱히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두 놈도 아서스와 한패거리였으니 굳이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겠다는데 말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로어는 반란의 정확한 날짜를 물었다. 아서스가 돌아가는 즉시 모든 마법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줄 필요가 있어서였다
어차피 아서스는 마법사들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괘씸함에 칼을 들이밀지는 못할 것이다.
‘아서스 네놈이 새로운 마탑이라도 세우지 않는다면 말이야.’
전쟁이 종식되고 마탑이 세워지면서 헨리는 마탑의 이념으로 ‘살육’이 아닌 제국의 안녕을 위한 ‘생활’의 발전을 선택했다.
그 결과, 제국은 발전하는 생활 마법들 덕분에 더없는 부흥을 누릴 수 있었고, 그 명맥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홧김에 마법사들을 치워 버리기엔 크나큰 국가적 낭비였다.
이윽고 아서스가 마탑을 벗어나자 로어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헨리 님,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나지막히 불러 보는 그 이름.
로어는 죽은 헨리의 의지를 이어 2대 마탑주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로어는 헨리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니까.
이윽고 로어는 자신의 취임식 이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던 전체 소집령을 제국의 모든 마법사들에게 내렸다.
* * *
“제기랄……!”
헨리가 저택을 떠난 지 수 시간.
시레드는 헨리가 쥐여 주고 간 쪽지의 내용을 떠올리며 다시금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영악한 놈, 어쩐지 맛이 더 달콤하더라니……!’
그동안 자신이 그리워하던 게 허상이 아님이 증명되었으니 이제는 확실하게 욕망을 들이밀 수가 있게 되었다.
이에 시레드는 나무 갑에 남은 마지막 핑크 스왐프2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젠장……!’
이것은 마지막 궐련이었다.
물론 헨리가 주고 간 보통의 핑크 스왐프들은 방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진짜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가짜 따위는 피울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물론 어떻게든 핑크 스왐프2를 아껴 피우기 위해 기존의 것을 섞어 피워 보긴 하였으나, 기존의 궐련은 도리어 진짜의 소비 속도만 촉진시킬 뿐이었다.
이에 시레드는 받은 쪽지에 대해 고민하며 마지막 핑크 스왐프2를 기세 좋게 빨아들였다.
“후우우…….”
역시나 천국의 맛이다.
방 한쪽에 쌓여 있는 가짜들과는 달리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극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궐련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눈빛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앞으로도 진짜를 보급 받고 싶다면 ‘모몬트 마을의 한센 영감’을 찾아오라고 적혀 있었다.
‘모몬트 마을의 한센 영감.’
한센 영감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모몬트 마을이라면 후계자 수업 때 들어 그곳이 오베르의 영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몰래 이런 쪽지를 건넸다는 것부터가 수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흡사 함정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궐련이 짧아질수록 시레드는 고민할 겨를이 없음을 느꼈다.
‘그래, 나는 이렇게 살다가 뒈질 운명이야.’
결국 이번에도 궐련이 이성을 이겨 버리고 말았다.
결심을 마친 시레드는 즉시 말을 몰아 모몬트 마을로 향했다.
* * *
‘왔군.’
헨리는 어둠 속에서 멍청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의 이름은 시레드 이더웨더.
알프레드의 차남이자 헨리가 만든 핑크 스왐프에 가장 강렬하게 중독된 사람이었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칠흑같이 어두웠던 사위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이에 시레드가 깜짝 놀란 시늉을 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네, 네놈……!”
“네놈이라니, 여기까지 좋다고 찾아온 놈이 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시레드 또한 형과 함께 바람의 정령과 계약한 바람의 정령술사였다.
그래서 바람의 힘을 빌려 말을 몰았기에 금방 모몬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 한센 영감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마을 사람들이 친절하게 한센 영감이 사는 곳의 위치를 알려 주었으니까.
하지만 도착한 곳에는 한센 영감은커녕 촌구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큼지막한 신식 건축물만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꿀꺽!’
불안했다.
전신의 본능이 그 안으로 절대 들어가선 안 된다고 미친 듯이 경고장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궐련은 본능의 경고를 이겨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선 집 안에는 저택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의 헨리가 있었다.
딱!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철컥! 철컥! 철컥!
그러자 주위로부터 자물쇠가 잠기는 듯한 소리가 순차적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헨리가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기자.
촤르르륵!
바닥에서 쇠사슬이 튀어나와 시레드의 몸을 칭칭 동여맸다.
“지,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시레드의 얼굴에는 걱정과 불안함, 그리고 공포가 가득했다.
별도의 특수 장치는 아닌 것 같고 주변에 사람 또한 없는데 저절로 사슬이 튀어나와 자신의 몸을 휘감다니?
‘마법?’
시레드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마법임을 깨달았다.
“대, 대체 어떻게 네가……!”
이에 헨리가 불안에 떠는 시레드를 보며 말했다.
“떨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 그게 무슨……!”
“쉿.”
헨리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가만히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다.
그런 다음 다시금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 여기까지 온 보람을 느끼게 해 주지.”
딱!
헨리가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누에고치처럼 쇠사슬에 칭칭 감긴 시레드의 머리 위로 허공의 틈이 벌어지더니.
후두두둑!
시레드가 그토록 맛보고 싶어 했던 핑크 스왐프2가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다.
“이, 이건……!!”
“그래. 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것이다.”
“하, 한 개비만! 한 개비만 피우게 해 줘! 그때 준 건 진즉에 다 피웠다고!”
금단증상은 공포조차 잊게 만들었다.
헨리는 그 모습을 보며 애걸복걸하며 궐련을 구걸하던 오베르를 떠올렸다.
“피우고 싶나?”
“제발! 제발 한 개비만!”
시레드는 달콤한 궐련의 냄새가 코를 찔러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헨리는 오베르에게 그랬듯이 이번에도 순순히 궐련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치이익.
“후우우……!”
헨리는 바닥에 떨어진 궐련 한 개비를 주워 들어 불을 붙인 후, 시레드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다.
“으아아아악!”
철컹! 철컹! 철컹!
달콤한 궐련향에 시레드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주변에 이렇게나 궐련이 많은데 정작 자신은 한 개비도 입에 물 수 없다는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이에 헨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이런 광경은 언제 봐도 즐겁군.’
원수의 아들이 괴로움에 발버둥 치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란 말인가?
적어도 헨리는 그렇게 느꼈다.
이에 헨리는 입에 문 궐련을 손가락으로 집어 든 뒤 시레드의 입술 근처까지 가져다 댄 후 나지막이 질문했다.
“피우고 싶나?”
“제발! 제발 나에게 줘! 원하는 건 다 줄게, 제발!”
“좋아, 아주 좋은 자세야.”
치지직.
“안 돼애애!”
“……하지만 절박함이 부족해.”
헨리는 필사적으로 울부짖는 시레드의 부탁을 외면했다.
대신 피우던 궐련을 바닥에 비벼 끄며 시레드를 더욱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너는 오베르와는 달리 몇 개비 정도는 입에 물려 줄 테니까.’
이미 오베르를 괴롭혀 본 터라 두 번째는 더더욱 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헨리는 시레드를 오래 감금해 둘 생각이 없었다.
영지전이 일어나기 전에 시레드가 실종된 걸 알면 자연스럽게 용의자는 마지막에 시레드를 만난 자신이 될 테니까.
“그럼 우선은 너희 집안부터 한번 천천히 알아 가 볼까?”
헨리는 생각했다.
유능한 스파이는 고용해서 심어 두는 것이 아니라 내부자를 변절시키는 것이라고.
그렇게 변절자가 된 시레드의 절박한 밀고가 시작되었다.
* * *
그렇게 수 시간 뒤.
“그렇단 말이지?”
“예, 예!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좋아, 일단 한 대 피워.”
“가, 감사합니다!”
헨리는 직접 입에 궐련을 물어 불은 지핀 다음 묶인 시레드의 입에 핑크 스왐프를 물려 주었다.
“스으읍, 후우우……!”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시레드.
헨리는 시레드에게 조금의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녀석의 외출은 길어 봐야 이틀이 한계.
그러니 곱게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기 위해선 털끝 하나 건드려선 안 되었다.
‘생각보다 탄탄하네.’
헨리는 우선 시레드로부터 이더웨더가의 대한 전력 파악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다.
확실히 시레드는 집안의 차남씩이나 되다 보니 대외비적인 사항들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물론 영지전에 대한 계획이나 그런 것들은 들은 것이 없어 캐낼 수가 없었지만 여태껏 들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됐다.
전술이라면 헨리 또한 뒤처지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제 남은 건…….’
영지전에 필요한 정보들은 모두 알아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레드는 쓸모를 잃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제국 최고의 정령가 집안의 차남이기 때문이다.
“엘라곤.”
-뀨?
이에 헨리는 엘라곤을 소환했다.
그리고 엘라곤의 가슴팍에 심어 둔 진화의 알을 꺼내 시레드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 이건!”
“반응을 보니 뭔지 아는 것 같네. 그럼 이제부터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이 빌어먹을 알을 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게 시레드의 두 번째 쓸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