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65화 (165/522)

# 165

눈치 싸움 (5)

“멍청한 놈.”

헨리는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알프레드를 보았다.

우스웠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품고서 당당하게 문을 두드린 주제에 꽁무늬 빠지게 도망치는 꼴이라니.

헨리는 일부러 알프레드를 쫓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 녀석을 죽여 버리기엔 헨리의 계획에서 알프레드가 짊어진 역할이 막중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주제를 알았으니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지.’

혹시라도 아쉬움을 느낄까 싶어 일부러 조금의 여지도 남겨 주지 않았다.

사실 아쿠아 버스트 이외에도 준비해 둔 패가 꽤 많았는데 벌써부터 꼬리를 내빼는 바람에 좀 허무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캬오오오오!

엘라곤이 울부짖었다.

그것은 놀이가 벌써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의 포효였다.

그러나 엘라곤의 포효가 설산을 뒤흔들수록 알프레드의 두 다리는 더욱더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프레드가 살게라에서 보이지 않을 때쯤, 헨리는 그제야 협곡 밑으로 내려가 토리안을 찾았다.

“여기 있습니다!”

토리안이 협곡 한쪽에 파 놓은 땅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혹여나 토리안이 다칠까 봐 사전에 파 놓은 땅굴들이었다.

헨리는 아쿠아 버스트에 의해 진흙투성이가 된 토리안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치신 덴 없습니까?”

“예, 진흙 범벅이 된 것 외엔 괜찮습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이번에 된통 혼났으니 이젠 두 번 다시 찾아올 일이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헨리 님 덕분에 위기를 넘겼습니다.”

갑작스러운 돌발 사태였지만 슬기롭게 잘 해결했다.

헨리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창공을 가르고 있는 엘라곤을 보았다.

-캬오오오!

‘성체가 되면 저 정도는 되겠지?’

흡사 진짜 드래곤을 연상케 하는 모습.

물론 실제로 드래곤을 본 적은 없었지만 만약 드래곤이 있다면 저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이에 헨리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뀨?

엘라곤은 다시 본연의 크기로 모습이 되돌아왔다.

“놀이는 여기까지다.”

-뀨…….

아쉬워하는 엘라곤. 헨리는 그런 엘라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후 헨리는 엘라곤을 역소환했다.

“급한 불은 끈 것 같으니 그럼 저는 다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말인데…….”

“예?”

“보름 뒤에 제국의 운명을 뒤바꿀 큰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 전에 미리 헤글러를 시켜 여분의 식량을 충분히 보내 놓도록 하겠습니다.”

“저, 전쟁이 말입니까?”

전쟁이라는 말에 토리안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에 헨리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드디어 복수의 때가 온 것뿐이니까요.”

싱긋.

신뢰가 넘치는 미소.

전달을 마친 헨리는 이윽고 텔레포트를 사용해 이더웨더가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 * *

“후작님께선 지금 저택에 계시지 않습니다.”

“상관없다. 나는 차남인 시레드 님만 만나 뵈면 되니까.”

헨리가 도착한 곳은 알프레드가 자리를 비운 이더웨더가의 저택이었다.

알프레드가 이제 막 살게라를 벗어나기 시작했으니, 그가 저택으로 돌아오려면 최소 며칠의 시간은 걸릴 터.

게다가 마차까지 부서졌으니 그 시간은 더욱더 걸릴 것이었다.

헨리는 그사이에 이더웨더가의 전력에 대해 파악해 놓기로 했다.

“으음.”

헨리의 방문에 문지기는 고민했다.

곧 영지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건 이더웨더가의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집주인도 없는 저택에 적진의 참모를 들여도 되는지 몹시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귀찮게 하지 말고 문을 열어라. 이는 후작님과 이미 협의된 사항이다!”

“아, 알겠습니다!”

협의된 사항이라고 하자 문지기가 황급히 문을 열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애초에 헨리는 시레드에게 줄 핑크 스왐프를 주기적으로 공급하기로 했었으니까.

헨리의 방문에 시종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헨리가 만나고자 했던 시레드가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레드 님을 뵙습니다.”

예의를 차리는 헨리.

그러나 헨리를 발견한 시레드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저를 보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퉁명스러운 말투.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언사였다.

헨리가 유통시킨 핑크 스왐프 때문에 두 형제가 반병신이 되었으니까.

게다가 이 일로 인해 아버지는 화병까지 얻을 뻔해 아이젠과 영지전까지 벌이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시레드가 헨리를 곱게 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에 헨리가 산뜻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시레드 님을 만나 뵙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왜 온 겁니까? 우리가 서로 주고받을 말이 남아 있었던가요?”

“물론입니다. 지금 자리에 후작님께서 계시지 않으니 시레드 님께서 대신 물건을 수령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물건 말입니까?”

“당연히 이것이지요.”

헨리는 품속에서 핑크 스왐프가 포장된 나무 갑 하나를 내밀어 보였다.

이에 시레드의 미간이 더욱더 일그러지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대체 어떻게 핑크 스왐프를 마련하셨나 싶었더니 역시 당신 짓이었습니까?”

“하하, 당신이라니요? 언행을 조금 삼가시는 게 어떨까요, 시레드 님?”

쾅!

헨리가 웃는 낯짝 속에 예리함을 드러내 보이자, 시레드가 책상을 ‘쾅!’ 치며 얼굴을 붉혔다.

“네놈……! 내가 웃으면서 장단을 맞춰 주니까 지금 내가 네놈이랑 동급으로 보이는 것이냐?”

시레드는 핑크 스왐프에 중독된 이후 감정의 절제가 많이 힘들어졌다.

물론 최초로 핑크 스왐프를 건넨 것은 오스카였지만 애초부터 헨리가 핑크 스왐프를 들여오지 않았다면 중독될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시레드의 생각이었다.

‘폐인이 다 되었군.’

반병신이 되었다는 소식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물론 부족한 궐련을 다시 입에 물리면 일상생활이야 가능할 테지만 전에 보았던 총명함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기에 현재의 시레드는 얼음으로 만든 유리잔과도 같은 상태.

이에 헨리는 주위를 살폈다.

보는 눈이 많다.

이곳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응접실이 맞았지만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기엔 다소 부적합한 곳이었다.

탐색을 마친 헨리가 말했다.

“이해를 못 하겠군요.”

“뭐?”

“지금쯤이면 궐련도 거의 다 떨어졌을 테고, 결투가 끝나고 나면 아이젠 후작님께서 궐련의 공급을 중단하라고 하실 지도 모르는 상황에 상단의 총책임자인 저한테 이러한 태도라니……. 시레드 님께선 더 이상 궐련이 필요하지 않으시나 봅니다?”

“네, 네놈……!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것이더냐?”

“그럴 리가요? 저는 고작 그러한 이유로 궐련의 공급을 중단할 만큼 속 좁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거든요.”

헨리는 협박이 아니라고 했지만 시레드는 분명히 협박처럼 들렸다.

하지만 헨리는 고작해야 궐련의 공급을 핑계로 시레드를 뒤흔들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공포로 얻기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진정한 교섭은 상대의 욕망을 움켜쥐었을 때 나오는 법이지.’

이에 헨리는 탁자 위에 올린 나무갑을 시레드에게 내밀며 말했다.

“꽤 오래 참으셨는데…… 한 개비 피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기랄!”

감정의 절제력만큼이나 참을성 또한 부족해진 것이 바로 현재의 시레드다.

이에 시레드는 서서히 금단증상에 입이 말라 오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무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성냥에 불을 붙이고 헨리가 내민 궐련을 한 모금 빨아들인 순간.

“……!”

시레드는 온몸에 강렬한 전율이 소름처럼 돋아났다.

‘이, 이건……!’

소름이 돋았다. 시레드가 지금 입에 문 것은 다름 아닌 ‘핑크 스왐프2’였기 때문이다.

이에 시레드는 분홍빛 연기를 빨아들일수록 강렬한 쾌감에 손이 떨렸다.

그도 그런 것이 핑크 스왐프2가 다 떨어지고 난 후 시레드는 꽤나 오랫동안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후에 알프레드가 어렵사리 궐련을 구해다 주긴 하였지만, 그것은 핑크 스왐프2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존의 핑크 스왐프라도 없으면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아서 숨 쉬듯이 기존의 것을 피웠을 뿐이었다.

‘내 착각인 줄로만 알았는데……!’

시레드는 혹시나 싶어 궐련을 구매한 모든 귀족들의 핑크 스왐프를 구해다가 피워 보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피웠던 그 맛이 착각은 아닐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시레드는 지금 헨리가 내민 궐련을 빨아들인 순간, 여태껏 자신이 느꼈던 갈증이 허구가 아니었음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었다.

강렬한 맛이었다.

동시에 날카로웠던 신경이 무뎌지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그동안 잘못된 농도의 것만 피우다가 간만에 제대로 된 것을 맛보았으니 충분히 느낄 만한 오르가즘이었다.

‘그리웠겠지. 핑크 스왐프2는 너한테만 줬었으니까.’

이에 헨리는 한동안 그가 충분히 해후를 즐길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한 개비의 궐련이 모두 닳아 없어졌을 때, 헨리는 품속에서 조그마한 쪽지 하나를 꺼내 시레드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오늘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군요. 여분의 궐련은 여기에 두고 갈 테니 그럼 이번에도 충분히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내민 쪽지 속에는 새로운 약속 장소가 적혀 있었다.

이곳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엔 듣는 귀가 너무나도 많았기에.

이에 헨리는 몇 상자분의 핑크 스왐프를 탁자 위에 올려 둔 후 천천히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물론 지금 올려 둔 것들은 보통의 핑크 스왐프였고 핑크 스왐프2는 처음에 내민 한 갑이 전부였다.

하지만 헨리는 굳이 핑크 스왐프2가 든 갑을 회수하지 않았다.

그것은 먹이였다.

그 한 갑을 천천히 음미하며 더더욱 욕망을 키우라는 뜻에서 준 훌륭하고 영양가 있는 ‘욕망의 먹이’.

이에 쪽지를 확인한 시레드의 표정에 복잡한 심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 * *

아서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황궁에 위치한 ‘마탑’이었다.

마탑.

헨리가 세운 제국 최초의 상아탑이자 전무후무한 제국 최고의 지식의 보고.

아서스가 마탑을 방문한 까닭은 간단했다.

곧 치러질 거사에 앞서 현 마탑주, ‘로어 길리언’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은 성가신 존재다. 단순히 거사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해서 곧바로 치워 버릴 수도 없는 존재. 그러니 함께할 수 없다면 적으로도 돌려선 안 되는 존재들이다.’

아서스가 마탑주와 독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서스는 곧 상아탑 최상층에 위치한 탑주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시지요.”

로어 길리언은 제국 최고의 권력자, 대공작 아서스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서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헨리가 처형당한 지금, 눈앞의 남자가 바로 제국 최고의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로어가 말했다.

“공작님께선 갑자기 연락도 없이 어인 일이십니까?”

로어의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스와는 개인적인 친분도 없었을뿐더러 아서스가 헨리의 죽음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어는 헨리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서스에게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아서스의 과거가 아무리 괘씸하다고 한들 자신은 지금 탑주의 신분으로 대공작과 독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아서스는 로어를 한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아서스는 알고 있었다. 로어가 헨리의 열렬한 추종자였음을. 그리고 현재 자신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서스는 로어의 첫 마디에 묻어난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거사에 협조적이지 않을 것이란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두 가지일 수도 있었던 답이 한 가지로 축약되었다. 그러니 정해진 답이라도 곱게 받아 가야만 했다.

이에 아서스가 말했다.

“탑주님께선 현 황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론 없이 뱉어지는 날것, 그 자체의 질문.

그러나 로어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즉답했다.

“반란을 계획하고 계신 겁니까?”

“……!”

오히려 놀란 것은 아서스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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