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눈치 싸움 (2)
갑작스러운 거사일의 결정.
그리고 아서스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알프레드는 곧 벌어질 영지전에서의 승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부담스러웠다.
홧김에 추진한 대결은 어느새 대륙의 역사를 뒤바꿀 방아쇠로 발돋움하고 말았으니까.
이에 알프레드는 한참이나 똥 마려운 개처럼 끙끙대더니 아서스에게 곧 간신히 고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공작님, 그래서 말인데 실은…… 공작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 편하게 말해 보세요.”
아서스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했다.
이에 알프레드는 아서스의 온화한 표정에 자신감을 얻어 원하는 바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오베르를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오베르를요?”
“예, 아이젠과 곧 영지전을 벌여야 하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이젠으로부터 확실한 승리를 거두려면 저는 꼭 오베르를 만나야만 합니다.”
“이유가 뭐죠?”
“오베르가 가진 물건 중에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흐음…….”
두 사람은 오베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베르 일가에 대한 소식은 헨리의 통제 하에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었으니까.
게다가 헨리가 통제하기 이전의 살게라는 아이젠의 이름하에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시국에 알프레드가 오베르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프레드는 진심이었고, 또한 몹시 간절했다.
아서스를 실망시키지 않고 아이젠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기 위해선 오베르가 가진 ‘진화의 알’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서스가 눈을 얇게 뜨고서 불안해하는 알프레드를 응시했다.
고작 아이젠 하나를 처리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불쌍하고 한심한 어린 양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알프레드였다.
제국이 건국된 이후 꽤 오랜 세월을 자신의 수족으로 살아온 그였기에, 사실 이 정도 부탁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서스는 단지 강한 자신감을 통해 자신에게 신뢰를 심어 주지 못하는 알프레드에게 조금 실망스러웠을 뿐이었다.
이에 생각을 마친 아서스가 말했다.
“알겠어요. 그쪽은 내가 한번 힘써 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공작님……!”
황제가 핑크 스왐프에 중독된 지금, 아서스가 조금만 힘을 쓴다면 아이젠의 통제 따위는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도 아이젠이 아서스를 견제할 이유가 없었기에 오베르와의 만남은 반드시 성사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됐어!’
아서스의 허락이 떨어진 직후, 알프레드의 눈빛에 욕망과 환희가 어우러져 짙게 번들거렸다.
이제 남은 것은 마련된 자리를 통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베르를 구워삶는 것뿐이었다.
이에 기뻐하는 알프레드를 보며 아서스는 생각했다.
‘흐음, 그나저나 오베르라……?’
오베르 크림슨.
비록 한 번의 실수로 허무하게 모든 것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단순히 쓸모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알프레드보다 훨씬 더 쓸모 있는 자가 바로 오베르였다.
게다가 그 한 번의 실수조차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단독으로 벌였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에 대한 오베르의 충성심은 말로 이루 표현 할 수 없는 것.
‘거사가 끝나는 대로 다시 오베르를 불러들여야겠군.’
인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이에 아서스는 앉은 자리에서 즉시 오베르에게 줄 편지와 알프레드가 살게라로 입장할 수 있는 추천서를 작성했다.
그런 다음 두 장의 서신을 알프레드에게 건네며 말했다.
“오베르를 만나면 이것을 전해 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편지와 추천서를 받아 든 알프레드는 아서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급히 저택을 벗어났다.
이후 아서스의 시중을 들기 위해 집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서스가 말했다.
“지금 즉시 황궁 귀족 모두에게 소집 명령을 내리도록 하세요.”
“예, 공작님.”
명령을 내린 아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이에 집사가 아서스에게 물었다.
“마차를 준비할까요?”
“아뇨, 혼자면 충분해요.”
이윽고 나갈 채비를 마친 아서스가 허공에 몇 번의 손짓을 하자 금세 아서스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 * *
헨리가 양손을 비빈 후 가볍게 털어 내자 손바닥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텐은 여전히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방금 전에 본 그것은 분명한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많이 놀랐나 보네.”
“헤, 헨리 공? 아, 아, 아니 헨리 님……! 제가 방금 전에 뭘 본 건지 도저히 저는……!”
“그래그래, 충분히 놀랄 만도 하지.”
“예?”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 돌아가신 대마법사 헨리 모리스 님의 숨겨진 유일한 제자인 동시에 동명이인이기도 하다.”
“예에에에엑?”
헨리의 엄청난 자기소개에 텐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마법사인 것만 해도 놀라 죽을 지경이었는데, 그 대마법사의 유일한 제자이자 숨겨진 제자라니?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왜 우리가 전쟁을 준비해야 되는지 좀 이해가 되나?”
끄덕끄덕.
죽은 대마법사의 제자가 전쟁을 예견하고 미리 그것을 준비한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세상 소식에 빠삭한 텐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안 늦는다더니……!’
이 모든 것이 스승의 복수를 위해 준비된 치밀한 연극이었다는 사실에 텐은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름이 끼침과 동시에 텐은 돈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치솟아 오르는 광대를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이건 대박이다!’
장사꾼인 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죽은 대마법사의 제자가 여태껏 이러한 연극을 진행해 왔다. 그렇다면 연극의 결말 또한 다분히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헨리는 여태껏 모든 일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해 왔고, 앞으로도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해 낼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주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은 헨리가 인정한 ‘헨리의 사람’이지 않은가?
‘미래의 황금왕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크고 화려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계산을 마친 텐의 눈동자에 야망의 불씨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텐의 눈동자에 깃든 야망의 불씨를 본 헨리가 다시금 미소 지으며 말했다.
“텐, 그건 그렇고 너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니냐?”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내가 사칭이거나 가짜 제자면 어떡하려고?”
“으음,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왠지 거짓말은 아닐 것만 같습니다.”
“이유는?”
“일단 계속 의심하고 있긴 했었거든요. 대체 어떻게 완벽한 검치기 챔피언의 영업 비밀을 파헤쳤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헨리 님께서 그 대마법사님의 제자라면 충분히 설명이 되겠더라고요.”
“고작 그게 이유야?”
“사실 이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마는, 어찌 됐든 헨리 님께선 저한테 하셨던 약속만큼은 꼭 지켜 주실 것 같거든요.”
‘괜찮네.’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믿음에서부터 나오는 신뢰였던 것이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헨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아무튼 이 사실은 반과 헤글러 정도밖에 모르는 사실이니 앞으로도 입단속에 주의하자고.”
“물론입니다, 저만 믿어 주세요!”
텐이 헨리를 부르는 호칭이 ‘공’에서 ‘님’이 되었다.
이것은 더 이상 아이젠의 가신 같은 하잘것없는 지위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재빠른 태세 전환을 의미하는 바이기도 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전쟁을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해 말해 줄게.”
헨리는 드디어 텐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했다.
이로써 헨리는 앞으로 더욱더 시간을 단축하여 유동적으로 계획을 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텐 또한 헨리의 정체를 알게 됨으로써 본격적으로 헨리의 대리인으로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곧 벤트 시장이 도시 성벽에 대한 증축 허가서를 보내 줄 거야. 그럼 넌 그 허가서를 받은 다음 내가 보내 준 기술자들을 인부로 고용해서 성벽 증축을 시작해.”
“저는 그럼 인부들의 관리 감독을 맡으면 되는 건가요?”
“아니, 사실 관리 감독은 할 필요가 없어. 기술자들은 모두 무슈에서 데리고 올 거니까. 오히려 네가 참견했다간 구박만 받을걸?”
“예? 그럼 전 뭘 하면 되죠.”
“기술자들이 요구하는 자재들을 납품해 줘. 그리고 자재들을 납품함과 동시에 도시에 있는 모든 상단으로부터 여분의 식량들을 매입해. 전쟁이 길어질수록 귀해지는 건 돈이 아니라 밥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택 내부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해 둘 테니, 인부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신경 좀 써 주고.”
“예? 텔레포트 게이트라면 설마 그 마탑에 설치되어 있는 그 텔레포트 게이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맞아.”
“자, 잠시만요. 헨리 님. 실례지만 지금 헨리 님께선 마법사로서 어느 정도의 경지를 이루셨습니까?”
“6서클.”
“예?”
“네가 들은 게 맞아. 난 지금 마탑에 등록되지 않은 제국 유일의 비공식 아크 메이지야. 아 참, 이 사실은 헤글러랑 반도 모른다?”
무덤덤하게 자신의 비밀을 밝히는 헨리.
이에 텐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 * *
헨리는 텐의 저택 내부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했다.
그런 다음 곧바로 무슈로 떠나 무슈의 시장, 고르바 불카누스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헨리 공,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갑자기 방문하셔서 뜬금없이 전쟁이라니요?”
텐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이에 헨리는 텐에게 그랬던 것처럼 불카누스에게도 숨겨 둔 정체를 밝혔다.
“허어……!”
가진 연륜 때문이었을까?
불카누스의 반응은 의외로 담백했다. 그리고 놀란 표정을 짓는 대신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불카누스가 눈을 뜨며 말했다.
“역시 범상치 않은 분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말로 그런 존재였을 줄은…….”
그러나 텐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사설이 길 순 없었다.
헨리는 나직이 감탄하는 불카누스의 말허리를 자르고 곧바로 본론을 언급했다.
“지금 상황이 몹시 좋지 않습니다. 아서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고, 대다수의 귀족들 또한 이미 아서스에게 줄을 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그에 따른 대비책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가진 인력들 중에 가장 소중한 인재가 바로 고르바 불카누스였다.
그렇기에 헨리는 불카누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사실들을 일러 주었고, 금방 불카누스로부터 공감대를 얻어 낼 수가 있었다.
특히 불카누스는 그중에서도 키메라에 대한 사실을 듣자마자 탄식을 금치 못했다.
“아서스가 비록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고는 하나 만약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키메라 군사들을 민간에 풀어 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대비책을 강구해야겠군요.”
“그래서 말인데, 우선은 연대 협약을 맺은 자유도시들부터 요새처럼 변형시키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도시의 요새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지에 소속된 영주민들까진 어쩔 수가 없다지만…… 적어도 자유도시에 속한 제국민들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영주민들이야 귀족들 휘하에 있으니 징집을 막을 순 없다지만 적어도 여자와 아이들은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얼마나 빨리 전쟁을 끝내느냐에 따라 발생할 피해가 다르긴 하겠지만, 이 모든 건 ‘키메라’라는 변수 때문에 준비하는 것이란 걸 알아주십시오.”
“흐음,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아이젠과 알프레드가 영지전을 일으키기 전까지 최대한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겠군요.”
“무슈의 기술자들은 시장님께서 설득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동에 필요한 텔레포트 게이트도 시청 대장간에 설치해 두겠습니다. 또한 요새화에 필요한 자금 또한 얼마든지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부족하면 당연히 헨리 님의 돈을 끌어다 쓰겠지만, 과연 그 돈이 필요하지는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국이 무슈에 배정해 준 예산이 아직 좀 많이 남아서 말입니다. 당장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는데 그까짓 예산 따위 곧 눈먼 돈이 될 텐데,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가 아니겠습니까?”
“역시 시장님이십니다.”
“이제 곧 시장이라는 감투도 쓸모없어지겠죠. 그럼 게이트의 설치가 끝나는 대로 알려 주십시오. 저는 지금 당장 수뇌부 회의를 거쳐 요새화에 대한 도안을 짜야겠습니다.”
불카누스 또한 헨리의 정체를 알게 됨으로써 헨리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더 부드러워졌다.
이에 헨리 또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들이 순조로웠다.
헨리는 텔레포트 게이트의 설치를 마친 후, 이곳의 지명을 따 게이트의 이름을 ‘무슈 게이트’라고 지었다.
그리고 무슈에서의 볼일을 끝낸 후, 헨리는 마지막으로 반이 수호하던 땅, ‘앙켈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