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61화 (161/522)

# 161

눈치 싸움 (1)

짤막하게 대답한 아이젠은 곧바로 헨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에 헨리의 머릿속에 복잡한 심경들이 교차했다.

하지만 섣불리 대답하는 대신 침착하게 다음 질문을 건넸다.

“결투 종목은 정하셨습니까?”

“이미 영지전으로 채택되었다.”

‘역시!’

영지전.

가주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명예로운 결투 방식으로 상대 가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다.

헨리는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멋대로 자신의 목을 내기의 대상으로 내건 것에 대해 괘씸함을 느꼈다.

물론 선택권이야 가주에게 있다지만 괘씸한 마음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괘씸함과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겨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지전에는 가주가 반드시 결투에 참여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기에 이를 잘 활용한다면 알프레드의 목을 충분히 노려 볼 만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황금 삼대지를 향한 아이젠의 어리석은 욕심이, 본의 아니게 헨리에겐 좋은 기회가 된 셈이었다.

‘멍청한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

헨리는 생각했다.

알프레드는 분명히 아이젠을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여 황금 삼대지를 건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기 싫어하는 아이젠 특유의 성격상 분명히 대결을 받아들였을 게 분명했다.

아이젠 또한 스스로가 절대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젠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랫동안 힘없는 만년 백작으로 지내 온 아이젠에겐 자신을 제외한 유능한 인재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신이라고 해 봐야 기껏 나 하나뿐인 놈이 무슨 자신감인지.’

그래서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영지전이 아무리 백병전으로 이루어지는 전쟁의 방식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뛰어난 지휘관 한 명은 백 명분의 병사 몫을 해내기 때문이다.

‘뭐, 아무렴 상관없으려나?’

물론 보통의 경우엔 그랬다.

하지만 이번 같은 경우엔 아이젠이 가진 패가 ‘일당백’이 아닌, ‘일당천’을 능가하는 괴물이라는 점이 달랐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이 짓거리도 이번이 마지막이겠군.’

기회를 포착한 헨리의 머릿속이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번 영지전을 통해 알프레드의 목을 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아서스와 황제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이젠은 허수아비로서의 쓸모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굳이 아서스와 황제를 잡는 데 아이젠 같은 허수아비를 내세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이번 영지전을 통해 알프레드와 아이젠을 한꺼번에 해치워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명의 후작을 제거하는 그 순간, 그때가 바로 황궁으로 진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기가 너무 앞당겨진 것도 사실이야.’

모든 계획들이 퍼즐처럼 착실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시기가 빠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실 복수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지만, 서둘러서 망치는 것보다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준비하는 편이 훨씬 더 낫긴 했다.

이번 생은 오롯이 복수만을 바라보고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이미 아이젠이 주워 담을 수 없는 물을 엎질렀고 상황은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그러니 과로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계획한 일정 전부를 소화해 내야만 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는다면 분명히 알프레드와 아이젠의 영지전이 벌어지는 날, 아서스 또한 반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긴 것은 헨리뿐만이 아니었다.

헨리는 이번 영지전을 통해 아서스 또한 분명히 시커먼 속내를 바깥으로 끄집어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헨리의 예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근거가 뒷받침되는 논리적인 추론이었다.

아서스 입장에선 오랫동안 반란을 준비해 왔고 때마침 알프레드가 눈엣가시 같은 아이젠을 영지전으로 처리해 준다고 한다.

게다가 황제는 이미 핑크 스왐프에 중독된 약쟁이까지 되어 버렸으니 더더욱 거사를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아서스의 입장에서 알프레드와 아이젠의 영지전은 거사를 치르기엔 딱 좋은 날짜였다.

‘그렇다면 그전에 아군과 적군부터 확실하게 솎아 내겠지.’

반란의 기본은 당연히 보안이었다. 혹시라도 내부자 중에 밀고자가 생긴다면 모든 것을 그르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현 시국으로 보아선 귀족들의 대부분이 아서스에게 줄을 대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국에 마약에 중독된 황제 하나만을 믿고서 중립을 유지할 멍청한 놈은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더 이상의 피아 식별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아서스는 걸러 내려고 하겠지. 조금이라도 걸리적거리는 놈이 있다면 하루속히 없애 두어야 할 테니까.’

이미 칼춤을 추기 위해 칼을 뽑은 상황에서 무엇이 두려울까?

그렇기에 헨리는 이번 영지전이 모든 싸움을 한꺼번에 끝내 버릴 최후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이거, 아무래도 환술서는 정말로 나중에 보든가 해야겠군.’

헨리는 아공간 속에 넣어 둔 환술서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비람에게 호언장담한 열흘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우선은 이더웨더가의 전력부터 파악해야겠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을 알면 백 번을 싸워도 모두 이길 수 있다.

마음 같아선 하이랜더가의 전력까지 어떻게든 확보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에 반을 통해 키메라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겉으로 드러난 전력의 파악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러니 영지전이 끝나고 아서스와의 2차전을 고려한다면 어떻게든 알프레드를 압도적으로 짓밟는 것이 최고의 효율이라고 생각했다.

‘어디 보자, 그럼 지금 이더웨더가에서 나에게 가장 협조적일 사람이…….’

쇼난가의 전력이야 가신으로 등용되면서 진작 파악해 두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헨리가 파악해 두어야 할 전력은 단연코 알프레드의 총전력.

이에 헨리는 이더웨더가의 전력을 알려 줄 만한 후보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역시 밀고자는 내부인이 좋겠지.’

내부의 정보는 내부인에게서 얻는 것이 맞다. 그것도 핵심 인물에게서 말이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헨리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머릿속에 밀고자로 알맞은 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첩자는 대충 확보했고, 그럼 일단 간만에 벤트부터 한번 만나 봐야겠군.’

머릿속에 대강의 계획이 그려졌다.

판단을 마친 헨리는 아이젠의 저택을 벗어나자마자 곧장 비발디 타운으로 향했다.

* * *

“커흑, 케헥! 켁켁! 어, 어쩐 일이십니까, 헨리 공?”

비서의 보고가 채 올라오기도 전에 헨리는 벤트의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이에 한가로이 티타임을 즐기던 벤트는 그만 사레가 들릴 수밖에 없었다.

“별일 없지?”

여우처럼 씨익 웃는 헨리.

헨리는 벤트에게 있어 최악의 상사이자 최고로 무서운 존재였다.

이에 벤트가 입가의 홍차를 닦아 내며 간신히 대꾸했다.

“벼, 별일은 없습니다! 체스 방어전도 제 선에서 잘 처리하고 있고, 상부의 공문이나 또…… 천만황금의 세금 문제나 또…… 또…….”

“아, 그런 건 됐고. 오늘 내가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건축 허가를 좀 받고 싶어서 말이야.”

“……건축 허가, 말입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확실히 비발디 타운 내에 건물을 증축하려면 시장의 최종 승인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보통은 하급 공무원들이 민원을 처리하고 시장이 마지막에 도장만 찍어 주는 구조였기에 이렇게 직접 허락을 받으러 올 필요가 없었다.

물론 보통의 경우에야 그랬다.

하지만 헨리는 일분일초가 아까운 몸.

게다가 벤트와는 언제든지 독대를 할 수 있는 신분이었기에 더더욱 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그래. 이참에 낡아 빠진 성벽 보수를 좀 할까 하거든. 물론 인력과 자재들은 모두 밀리언 상단에서 공급할 예정이니까 그리 알도록 하고.”

“예, 예? 그래도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당장 분배해 놓은 예산도 없는데 말입니다……!”

“예산은 필요 없어.”

“예?”

“모든 비용은 우리 천만황금에서 지불한다. 그러니 넌 서류만 작성해서 도장 찍고 바로 천만황금으로 보내.”

이미 중앙귀족회 회원들을 상대로 2천만 골드에 달하는 거액을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고작해야 돈 몇 푼 아끼자고 시간을 지체할 순 없는 일.

그러나 아무리 모든 비용을 천만황금에서 부담한다고 해도 이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이에 벤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자 헨리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벤트에게 내밀었다.

“받아.”

“헨리 공, 이건……?”

“천만황금으로부터 5만 골드를 수령해 갈 수 있는 확정 어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 공사를 허가해 주는 조건으로 너에게 주는 조그마한 수고비인 셈이지.”

‘5, 5만 골드!’

5만 골드.

비발디 타워 내에 숨겨 두었던 새로운 체스 챔피언에게 지급해야 할 상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헨리에게 빼앗긴 상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벤트는 여전히 아직까지도 10만 골드를 모두 채우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벤트는 어음을 받아 든 직후, 이마가 바닥에 닿을 듯이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화끈하게 10만 골드가 아닌 5만 골드만 건넨 까닭은 혹시 모를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빚을 변제해 주면 벤트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니까.

그리고 헨리는 혹시라도 바뀐 태도를 다시 교정해 주기가 몹시 귀찮기도 했다.

“그럼 수고.”

이에 볼일을 마친 헨리는 곧바로 시청을 벗어나 텐의 저택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헨리 공.”

“텐, 할 말이 있으니까 회의실로 따라와.”

저택에 들어선 헨리는 텐의 인사를 받아 주는 것 대신 곧바로 텐을 끌고 와 회의실로 향했다.

그런 다음 회의실 한편에 구비해 두었던 대륙 지도를 응시하며 말했다.

“텐.”

“예, 헨리 공.”

“예전에 내가 너에게 했던 말들, 혹시 기억하나?”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륙 제패를 이룬 후에 천만황금의 전부를 너에게 주겠다는 약속 말이야.”

“물론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황금왕이 되기 위해 헨리 공께서 맡기신 일들을 매일같이 성실하게 처리하고 있잖습니까?”

“역시 텐이야. 믿음직스러워.”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그 대륙 제패. 드디어 때가 온 것 같아.”

“……예?”

“대륙 제패의 때가 왔다고. 아마 곧 큰 전쟁이 벌어질 거야. 그러니 우리는 지금부터 그 전쟁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워 둘까 해.”

“예, 예? 헤, 헨리 공! 갑자기 전쟁이라니요? 지금 저는 헨리 공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만…….”

갑자기 나타나서 전쟁 타령이라니?

텐은 헨리가 왜 저런 발언을 내뱉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대륙이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고 태평성대를 맞은 최고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해가 안 되겠지. 그동안 너는 천만황금 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으니까. 근데 이 나라는 썩었어. 그리고 곧 그 썩어 빠진 상처가 곪아터질 예정이니 우린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할 뿐인 거고.”

“그러니까 왜 하필이면 저희가 그 준비를 하는 겁니까?”

“그럼? 두 손 놓고 있다가 전쟁 통에 가만히 모가지나 날릴래? 저번에는 대륙 제패를 돕겠다면서?”

“아, 아니 그러니까 헨리 공이 아무리 아이젠 후작님의 하나뿐인 가신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전쟁 통에 대륙 제패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텐의 물음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헨리의 능력이 인정받을 만큼 비범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전쟁은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신은 맞아. 하지만 내 힘은 아이젠의 가신이라는 점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예?”

“그러고 보니 너한테는 말을 하지 않았군.”

“예? 헨리 공, 그게 무슨……?”

그때였다.

텐이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헨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곧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화르륵!

“……!”

양손에 피어오르는 뜨거움 화염 기둥.

이윽고.

쩌저적!

뜨겁게 피어오르던 화염 기둥은 이내 곧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되어 날카로운 얼음 송곳이 되었다.

이어서 헨리는 두 손을 맞잡아 그것들을 없애 보인 후 손바닥을 비벼 털어 내며 말했다.

“봤지?”

“예……? 예에에에엑?”

텐은 진심으로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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