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56화 (156/522)

# 156

새로운 힘 (4)

클레버에 대한 파악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클레버가 다시 회복기에 접어들었으니 더 이상 설탑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헨리는 샤하트라로 떠나기 전, 살게라의 저택에 들러 맡긴 일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나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오셨습니까?”

헨리를 발견한 토리안이 익숙하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이젠 소리 없이 갑자기 등장하는 헨리에게 충분히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노예들은요?”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전부 블랙 티어를 만드는 작업에 투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럼 어디, 잘하고 있나 한번 볼까요?”

토리안이 철저하게 관리 감독했을 테니 크게 걱정은 없었다.

단지 헨리가 보고 싶은 것은 내 사람들을 짓밟고 권세를 누리던 이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저,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아,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제가 부리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부리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여 발끈할 뻔했지만 헥터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좀 전에 겨우 진화시켜 낸 클레버를 실수로 죽여 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이에 헥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군요.”

세 사람은 이윽고 헨리의 연구실 옆에 마련된 ‘블랙 티어 공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공방의 문을 연 순간.

-키에에에!

“어, 얼른 붙잡아!”

치열한 접점.

벽면에 고정시켜 두었던 사이클론 히드라를 상대로 오베르가 남자들이 검을 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흐뭇한 광경이었다.

헨리는 일부러 감시하기 편하게끔 공방의 한쪽을 통유리로 만들었다.

물론 이쪽에서는 저쪽이 보이지만, 저쪽에서는 이쪽이 보이지 않게끔 말이다.

치열한 사투였다.

개중에 일부는 사이클론 히드라의 꼬리에 맞아 저 멀리 나가떨어지는 등 하나같이 모두가 크고 작은 부상들을 입었다.

콰당!

제일 먼저 벽면에 나가떨어진 것은 오베르 후작의 넷째 아들인 리베르 크림슨이었다.

그것을 본 헨리가 토리안에게 물었다.

“머릿수가 좀 줄었네요?”

“예, 아무래도 흉폭한 히드라를 제압하려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시체는요?”

“히드라의 먹이로 던져 주고 있습니다.”

“좋네요.”

파레곤 때는 헨리의 힘이 워낙에 압도적이다 보니 손쉽게 꼬리를 채취할 수 있었지만 사이클론 히드라의 경우엔 그 사정이 좀 달랐다.

갖은 매질과 부족한 영양으로 쇠약해진 노예들에게 사이클론 히드라는 너무나도 위험한 존재였다.

하지만 꼬리를 채취하지 않으면 지금 누리고 있는 최소한의 의식주마저도 누릴 수가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노예들은 피눈물을 머금고 꼬리를 채취할 수밖에 없었다.

“블랙 티어는 몇 개 정도 만들었죠?”

“어제까지 32회분이 만들어 졌습니다.”

‘생각보다 더디군.’

인력은 많았지만 힘이 부족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에 헨리는 고민 끝에 토리안에게 말했다.

“속도가 너무 더디네요. 효율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겠어요. 그러니 이제부턴 꼬리를 채취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좀 보강해 주고, 노예들의 상처 치료와 식사에도 좀 신경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헨리는 노예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고통 속에 죽어 가는 것도 좋았지만 마지막까지 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헨리는 블랙 티어 1회분을 꺼내 든 뒤 엘라곤을 소환했다.

“엘라곤, 준비해.”

-뀨!

딱히 명령하지 않아도 의지가 전달되었기에 엘라곤은 헨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헨리는 집어 든 블랙 티어 1회분을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크윽!”

아찔한 고통.

헨리의 얼굴에 힘줄이 솟자마자 둥지의 고통을 알아챈 엘라곤이 치유의 빛을 내뿜었다.

“후우…….”

치유의 힘 덕분에 고통은 금방 사라졌다.

효율적인 섭취였다.

이윽고 빈 병을 토리안에게 건네준 헨리는 텔레포트를 사용해 샤하트라 게이트로 이동했다.

* * *

“파이어 볼!”

화르륵!

2서클의 화염계 마법, 파이어 볼.

하울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1서클의 생성과 지겨운 이론 수업을 끝내고 드디어 실전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하울은 쉰 명의 학생들 중 단연코 가장 먼저 완벽한 파이어 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엄청난 재능이군.’

하울의 파이어 볼을 본 케일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울의 나이 열아홉 살.

마법을 시작하기에는 한참이나 늦은 나이였지만, 다른 나이 어린 지망생들과 비교해도 그 성장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괜찮네.”

그때였다.

하울의 뒤로 익숙하지만 두려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헨리였다.

“스승님!”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헨리에게로 몰렸다.

말도 없이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이에 헨리는 상업적인 미소로 학생들의 인사에 화답해 준 뒤 하울에게 말했다.

“하울.”

“예, 스승님!”

“이게 네가 만든 첫 파이어 볼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래?”

첫 파이어 볼치고는 매우 정교했다. 그러나 헨리가 보기엔 한참이나 부족한 수준이었다.

‘하울의 힘이 겨우 이 정도라고?’

무려 수정구에 자색 빛을 띄웠던 인재다. 그런 인재가 겨우 파이어 볼 한 개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에 헨리가 하울에게 조언을 시작했다.

“하울. 다시 한 번 파이어 볼을 띄워 봐라.”

“예.”

화르륵!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하울은 이번에도 능숙하게 파이어 볼을 띄워 냈다.

“지금 손끝에서 어떠한 기운이 느껴지는지 말로 한번 설명해 봐.”

“손끝에서 마력들이 수증기처럼 뿜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이번에는 그 수증기들을 압축해서 가느다란 실들을 만든다고 생각해 봐.”

“으음…….”

“헨리 공, 이 방법은…….”

“쉿!”

헨리의 가르침에 케일이 끼어들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가 하울에게 알려 준 방법은 3서클 때나 배우는 마력 기초 응용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

“오, 오……!”

무작위로 뿜어지던 수증기 같은 마력이 ‘실’이라는 형태로 집중되자, 덩어리처럼 뭉쳐져 있던 파이어 볼이 점점 더 길쭉하게 변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다름 아닌 ‘파이어 애로우’.

무려 3서클의 화염 마법이었다.

‘역시!’

훌륭한 재능이었다.

이처럼 마법이란 어느 정도의 테크닉만 구사할 줄 알아도 한두 단계 정도의 서클은 충분히 뛰어넘을 수가 있었다.

그 증거로 환생한 직후의 헨리가 그랬으니까.

이윽고 파이어 볼이 파이어 애로우가 되자 하울 또한 놀랍다는 듯이 입을 반쯤 벌려 보였다.

그러나 헨리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했다.

“집중해라, 하울! 이젠 실처럼 뿜는 마력을 꼬아 밧줄을 만든다고 생각해라.”

“밧줄…… 알겠습니다!”

하울은 헨리의 가르침에 흥미를 붙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하울 주위로 몰려와 헨리의 가르침을 구경했다.

하울은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에 가르쳐 준 것은 기초 응용술의 바로 한 단계 위인 중급 응용술이었다.

“크윽!”

이제 막 2서클에 진입한, 그것도 처음 마법을 부려 본 상태였기에 중급 응용술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특수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한다.

예컨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 앞에서, 그것과 더불어 다수의 사람들에게 기대를 잔뜩 받는 그러한 순간에 말이다.

피이잉!

하늘거리는 실을 단단한 밧줄처럼 꼬아 낸다고 생각하자 파이어 애로우 또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났다.

그리고 마침내, 하울은 ‘파이어 애로우’를 ‘파이어 스피어’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우와아아!”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케일까지 환호성을 내질렀으며, 헨리 또한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사르륵.

그러나 두 단계나 높은 응용술을 펼쳤기에 마법을 오랫동안 지속시킬 힘은 없었다.

아직은 마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를 통해 하울의 재능이 다시 한 번 검증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이에 하울이 약간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런 하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헨리가 말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정말인가요, 스승님?”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자만하지 말고 동기들을 챙겨라. 중요한 것은 모두의 성장이니까.”

사실 잘 키운 제자 한 명이면 어중간한 열 명의 마법사가 부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소수의 싸움이 아닌 다수의 싸움.

하울의 압도적인 성장도 좋았지만 헨리는 전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법 포격 부대를 원했다.

이후, 헨리는 학생들을 다시 한 번 격려해 준 뒤 마법에 대한 짧은 강연을 마치고 교육기관을 벗어났다.

헨리가 교실을 벗어나려 하자 케일이 학생들을 자습시킨 후 헨리 옆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말씀도 없이?”

“내가 굳이 그런 것까지 너한테 보고해야 하나?”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흠흠, 그나저나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셀렌 왕비님께서 기도 의식 중에 쓰러지셨다던데 말입니다.”

멈칫.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자세히 얘기해 봐.”

소식은 간단했다.

샤하트라 왕조 최초로 칸이 야누스 신전에 왕비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야누스에게 기도 의식을 거행하던 중 왕비가 갑자기 쓰러졌고 지금까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 뭐지?’

측근조차 접근을 금지하던 야누스 신전에 왕비를 데려갔다는 게 의아했다.

물론 헨리는 예외의 경우였지만.

‘혹시 야누스 때문에?’

그리고 멀쩡하던 왕비가 갑자기 쓰러질 리가 없었다. 그녀의 항상 건강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그녀가 쓰러진 이유가 야누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야누스는 그 헨리조차도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할 수 없게 만든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무엇보다도 헨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헤라리온 상태가 말이 아니겠군.’

바로 헤라리온의 정신 상태였다.

헨리는 궐련의 보충과 더불어 개인적인 볼일을 위해 샤하트라에 들렀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왕비가 쓰러졌으니 헤라리온의 정신 상태가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한동안 수련에 지장이 생기겠군.”

그리고 그것은 헥터 또한 헨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헥터의 임무는 어찌 됐든 헤라리온의 단련이었으니까.

과연, 왕궁의 분위기는 셀렌의 혼수상태로 인해 전체적으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헨리는 시녀들의 안내를 받아 셀렌이 잠들어 있는 왕의 침소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전하, 헨리입니다.”

“……들어오세요.”

침소 안에는 화려한 장신구들이 가득했지만 어째서인지 헨리의 눈에만큼은 잿빛처럼 비쳤다.

헤라리온 때문이었다.

헤라리온은 한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 했는지 부쩍 야위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전하?”

“후우, 너무 괴롭습니다, 헨리 공…….”

그는 마치 베네딕에게 왕비와 대비가 인질로 붙잡혀 선택을 강요받을 때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심각하군.’

척 보기에도 심각해 보였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왕비님께선 혼수상태가 증상의 전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흐음.”

단순한 혼수상태.

어찌 보면 병환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엘라곤.”

-뀨?

모습을 드러내는 엘라곤.

헨리가 헤라리온에게 물었다.

“전하, 혹시 저에게 왕비님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헨리 공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른 이도 아닌 헨리였으니까.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지 시도해 보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에 헤라리온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고 헨리는 엘라곤에게 명령했다.

“엘라곤, 부탁할게.”

-뀨!

블랙 티어를 섭취하고 온 직후라 그런지 묘하게 엘라곤의 덩치가 좀 더 불어 있는 듯했다.

이윽고 엘라곤이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침대에 곤히 누워 있는 왕비를 감싸 안았고 잿빛으로 물든 듯한 침소를 환하게 비추었다.

펄럭!

잠시 후, 빛이 사그라들며 엘라곤이 날개를 거두었다.

그러자.

“으음…….”

“……!”

짧은 신음과 함께 셀렌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헨리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띨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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