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55화 (155/522)

# 155

새로운 힘 (3)

“저건 또 뭐야?”

헥터가 놀란 이유는 베네딕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이번에도 새로운 변신술을 펼치는 모습이 신기하여 놀랐던 것뿐이었다.

왜냐하면 헥터는 베네딕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에 베네딕으로 변신한 클레버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래그래, 그럼 이제 슬슬 한번 시작해 보자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헨리는 클레버에게 헥터와는 달리 쇠몽둥이를 하나 더 주었다.

베네딕은 생전에 두 개의 시미터를 주로 사용했으니까.

“선공은 양보하지.”

헥터는 선뜻 선공을 양보했다.

이에 클레버는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뒤, 힘차게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콰앙!

‘오?’

폭발적인 발돋움.

그것을 본 헨리의 입 모양이 둥글게 모아졌다.

클레버의 움직임이 진짜 베네딕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클레버는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나가 헥터와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헥터와의 거리를 다섯 걸음 정도 남겨 두었을 때.

퉁!

클레버는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곧장 오른손을 크게 휘둘러 왼발을 회전축으로 잡은 다음 허리까지 한꺼번에 비틀어 회전력을 늘렸다.

부웅!

허공에서 세 바퀴를 회전함과 동시에 왼팔로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클레버.

그렇잖아도 인간을 초월한 근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베네딕 특유의 스타일리시 한 테크닉이 더해지자 엄청난 힘이 왼손으로 뻗어졌다.

‘움직임은 나쁘지 않군.’

헥터는 클레버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쇠몽둥이를 들어 클레버의 공격을 상쇄할 만큼의 힘을 주었다.

지금은 제압보다는 클레버의 힘의 관찰이 주된 목적이었으니까.

깡!

묵직한 타격음이 맞물린다.

인간의 근력을 초월한 것은 클레버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코룬의 육체를 빌려 쓰고 있는 헥터 또한 마찬가지였다.

“호오!”

클레버와 쇠몽둥이를 맞댄 순간, 헥터의 입술이 둥글게 모였다.

흥미롭다는 뜻이었다.

클레버는 자신의 공격이 저지당하자마자 맞부딪힌 쇠몽둥이를 아래로 짓누르며 그 위로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

‘디딤판?’

맞부딪힌 쇠몽둥이에 체중을 실어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헥터의 쇠몽둥이를 도움닫기로 활용한 것이었다.

‘꽤 괜찮은 움직임이야. 하지만 허공에선 행동이 극도로 제한되는 법!’

움직임이 가볍고 유연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허공에 떠오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 했다.

헥터와 같은 실력자들은 그러한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승부수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헥터는 허공에 날아오른 녀석을 마음껏 요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쾅!

“……!”

떨어지는 클레버를 향해 쇠몽둥이를 들이밀려고 했다.

그런데 천천히 낙하하리라 생각했던 클레버는 허공의 무언가를 발판 삼아 석궁처럼 몸을 날렸다.

‘오호?’

헨리는 똑똑히 보았다.

허공에 떠오른 클레버가 재빨리 자신의 발아래로 딱딱한 점액질을 뿌려 그것을 발판으로 삼는 모습을 말이다.

이에 클레버의 도약을 본 헥터는 다급히 전략을 바꿔 공중에서 돌진해 오는 클레버를 쇠몽둥이로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헥터의 순전한 착각이었다.

허공에서 2차 돌진을 시도한 클레버는 손에 쥔 두 자루의 쇠몽둥이가 아닌 본연의 회색빛 점액질을 그물망처럼 산개시켰다.

철푸덕! 철퍽! 철퍽!

산개시킨 점액질 전부를 이용해 헥터의 전신을 덮쳤다.

헥터의 전신에 흘러내리는 회색빛 점액질.

헥터는 쇠몽둥이를 들어 올린 모습 그대로 점액질 범벅이 되어 망부석처럼 굳고 말았다.

“…….”

주르륵.

마치 진흙을 부어 놓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얼굴에 부어진 점액질 일부가 흘러내리며 헥터의 얼굴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헥터는 여전히 어이가 없다는 듯이 황당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나 참……!”

어이가 없었다.

클레버가 웬 사람 흉내를 내기에 헥터는 당연히 클레버와 쇠몽둥이로만 겨룰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순진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람 흉내 자체가 속임수였다니.’

일반적인 상식이 빚은 오해였다.

그래서 헥터는 화를 내기 보단 허탈함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헥터 님, 항복하시겠습니까?”

헥터의 호흡을 위해 얼굴의 점액질을 거두어 준 클레버는 더 이상 점액질이 흐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켰다.

마치 진흙이 굳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클레버는 헥터의 전신을 확실하게 옥죈 다음 조심스럽게 항복을 권유했다.

이에 헥터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클레버.”

“예, 헥터 님.”

“전에는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는데 말이야, 이제는 완벽하게 징그러워졌구나.”

“……감사합니다.”

클레버는 헥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클레버의 이해와는 관계없이 헥터가 한껏 진지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이번에도 어디 한번 잘 버텨 보거라. 만약 이번에도 나를 당황시킨다면 그때는 나의 패배를 인정하도록 하마.”

헥터의 나지막한 경고.

헥터는 이제부터라도 전력을 다해 클레버를 상대해 주기로 했다.

츠즛, 츠즛, 치지직!

“……!”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헥터는 클레버가 자신의 몸을 옥죄든 말든, 푸른색 스파크를 일으키며 천천히 오러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클레버는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서둘러 헥터의 오러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네 능력이 포식이라고 했나? 그렇다면 어디 한번 배터지게 마음껏 먹어 봐라. 네 배가 더 클지, 아니면 내 힘이 더 많을지 말이야.”

전략은 같았다.

하지만 헥터는 생각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소용없음을 말이다.

그래서 헥터는 클레버에게 보여 주기로 했다.

네놈의 위장이 아무리 거대할지라도 내 힘이 더 크고 방대하다는 것을 말이다.

파지지직!

소리는 폭발적으로 증폭됐다.

마치 수천 마리의 새들이 한꺼번에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렇기에 헥터의 오러는 불꽃이 아닌 천둥, 번개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퍼엉!

……후두두둑!

사방으로 점액질이 튀었다.

결국 헥터가 방출한 엄청난 양의 오러를 견디지 못해 클레버가 터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사방으로 튄 회색의 점액질들.

그것들은 마치 폭격에 터져 버린 살점들을 연상케 했다.

헥터는 그제야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어……?”

얼굴에 차오르는 당혹스러움.

그 표정은 마치 고양이였던 클레버가 갑작스레 알이 되었을 때만큼 당황한 표정이었다.

“헤, 헨리?”

“잠깐 기다려 봐.”

이에 헥터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처럼 헨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헨리는 이미 사방에 튄 클레버의 점액질을 손으로 주워 들어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탄성이 줄었군.’

끈끈했지만 점액질이 손에 묻지 않았고 꽤 괜찮은 탄력을 가진 것이 바로 클레버의 육체였다.

그런데 헥터에 의해 볼품없이 터져 나간 직후, 흩어진 살점들을 손으로 만져 보자 이전과 같은 탄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클레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레버와 헨리 사이의 계약이 끊어졌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에 헨리는 나지막이 클레버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자 클레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 마스터.

육성이 아닌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

클레버가 진화하기 전에 주로 대화를 나누던 방식이었다.

이에 헨리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클레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저의 패배입니다. 제가 헥터 님의 힘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해 생긴 일입니다.

‘그럼 부상을 입은 건가?’

-지금으로썬 회복이 필요합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알겠다. 회복을 위해 내 마력을 끌어다 쓰는 걸 허락할 테니 필요한 만큼 사용하도록.’

-감사합니다, 마스터.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윽고 클레버는 매우 졸린 목소리로 천천히 기척을 감추었고 사방에 흩어져 있던 살점들 또한 헨리의 반지로 역소환되었다.

그리고 사방에 흩어져 있던 점액질들이 사라지자 헥터가 더욱더 초조해진 표정으로 헨리에게 물었다.

“헨리, 크, 클레버는?”

그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몹시 미안한 표정.

이에 헨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죽었어.”

“뭐, 뭐라고?”

털썩.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헥터.

벌써 두 번째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헨리는 한동안은 헥터에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편이 헥터를 부려 먹기에 훨씬 더 요긴했으니까.

* * *

“후우…….”

시레드는 입 밖으로 분홍색 연기를 마음껏 분사했다.

행복했다.

음식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술만 마시기를 며칠.

그동안 핑크 스왐프2에 의해 끔찍한 금단현상을 겪었던 시레드는, 아버지가 가져다준 궐련에 의해 생기를 되찾을 수가 있었다.

“후우우…….”

그러나 시레드 또한 알고 있었다.

이렇게 궐련을 태우는 동안에만 자신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래서 당장은 몹시 행복했지만 후에 찾아올 금단현상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핑크 스왐프를 끊을 수가 없었기에 시레드는 이제 생각하는 것을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후우…… 이렇게 살다가 뒈질 운명인가 보지…….”

이윽고 궐련 한 개비를 모두 피운 시레드는 새로운 핑크 스왐프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성냥불을 댕겼다.

* * *

“시레드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렇습니다, 후작님.”

“……알겠다. 그만 나가 봐.”

알프레드는 결국 헨리의 제안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헨리의 말마따나 다시 핑크 스왐프를 피우기 시작한 둘째 아들의 상태는 눈에 띌 정도로 호전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일 뿐, 최선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시로 시종들에게 보고받았다.

“하아…….”

그 총명하던 시레드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살다가 뒈질 운명이라니?’

아들에게 크게 실망한 알프레드는 책상 위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보고를 받을수록 알프레드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고통을 덜기 위해 더 큰 고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확실히 미친 짓이었다.

이에 알프레드는 술잔 가득히 위스키를 부었다.

쪼르륵.

반 잔씩 채워 마시던 위스키가 어느새 한 잔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젠 술 없이는 감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로웠다.

감사를 진행하겠다던 황제는 어느새 핑크 스왐프 마니아가 되어 있었고, 소중한 두 아들들은 병신 중의 병신이 되어 버렸다.

이에 알프레드는 화병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 때문에 술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술기운을 빌려 억지로라도 눈을 감으면 아이젠과 헨리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꿀꺽꿀꺽.

탁!

속이 답답해진 알프레드는 서둘러 위스키 한 잔을 비워 냈다.

씁쓸한 맛과 함께 목이 타들어 가듯이 식도가 화끈거렸다.

하지만 차라리 이런 화끈거림이 두통보다는 나았다.

“후우…….”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뒤편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고, 앞에는 자신을 밀어내고자 하는 칼날들이 수두룩했다.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몸을 내던져 주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렇게는 절대 안 되지!’

술은 사람을 용기 있게 만든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뇌까렸던 방법들이 술의 힘을 빌려 추진력을 얻게 했다.

‘내가 이대로 곱게 무너질 것 같아?’

황제와 두 아들은 핑크 스왐프에 의해 병신이 되었지만 자신은 멀쩡했다.

그리고 자신의 양손에는 여전히 남부럽지 않은 부귀영화가 가득히 쥐여 있었다.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썩은 살은 도려내면 된다는 뜻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알프레드는 갑자기 머릿속이 차가워지는 듯했다.

치욕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는 여태껏 받은 치욕들을 모두 되갚아 줄 차례였다.

“마차를 준비해라.”

결심을 마친 알프레드는 즉시 마차에 몸을 실어 쇼난 지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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