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54화 (154/522)

# 154

새로운 힘 (2)

헨리가 도착한 곳은 샤하트라가 아닌 살게라의 설탑이었다.

설탑에 도착한 헥터가 말했다.

“여긴 또 어디야? 샤하트라로 간다더니?”

“설탑. 내가 지은 두 번째 마탑이지. 샤하트라로 가기 전에 클레버의 힘을 좀 파악해 두고 싶어서 말이야.”

설탑은 여느 때와 같이 고요했다.

아직 설탑을 제대로 활용하기에는 그럴듯한 마법사의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클레버.”

“예, 마스터.”

“헥터 흉내는 그만 내고 다시 원래 모습을 보여 봐.”

“알겠습니다.”

꾸물꾸물.

헨리가 명령을 내리자 클레버는 다시 회색 점액질과도 같은 형태로 되돌아왔다. 마치 슬라임을 떠올리게 하는 형태였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클레버에게 물었다.

“미믹에서 슬라임이라니, 원래 마물들은 진화를 거치면서 종족이 바뀌는 경우도 있나?”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제 육체를 이루고 있는 유기물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희 일족의 최고 진화 형태인 ‘프라임 미믹’으로 진화했습니다.”

“프라임 미믹?”

“그렇습니다.”

프라임 미믹.

마계에만 존재하는 순혈 미믹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진화 형태로, 클레버의 최종 진화 형태이기도 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차이점을 설명해.”

“예, 마스터.”

헨리는 의자 두 개를 끌어다가 헥터와 나눠 앉았다.

그 덕분에 헥터 또한 클레버의 자기소개를 줄곧 들어야 했지만, 듣다 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워 금방 빠져들게 되었다.

‘프라임이라…….’

미믹과 프라임 미믹의 차이점은 더 이상 ‘껍데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미믹은 남의 육체를 빌어 끊임없이 기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본체가 되는 핵이 너무나도 연약하여 남의 육체를 빌리지 않고서는 제대로 활동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헨리의 권속이 된 이후론 반지를 육체로 삼고 헨리의 마력을 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그러므로 프라임 미믹으로 각성한 클레버는 더 이상 껍데기 따위에 숨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헥터 님의 음식에 손을 댄 것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력을 소화시키느라 배가 고픈 나머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배가 고팠다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를 잡아먹지 않은 것에 대해선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클레버의 진심 어린 사과에 헥터는 썩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의 마력은 클레버의 힘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이긴 했지만, 배고픔까지 해결해 주진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클레버 또한 양분을 에너지 삼아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니까.

이어서 헥터가 물었다.

“꼬치 따위야 또 사 먹으면 된다지만……. 그보다 클레버,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아까 전에 분명히 내 오러를 흡수하지 않았냐?”

“그렇습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이 목격한 대로 클레버는 정말로 헥터의 오러를 흡수했다.

이에 클레버가 그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가 가진 능력들 중에 하나인 ‘포식’입니다.”

“포식?”

“저희 미믹들은 원래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거나 수집하며 성장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마스터의 은총으로 전보다 더욱더 강해졌으니 먹고 수집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난 것뿐입니다.”

“혹시 헥터의 모습을 흉내 낸 것도 포식과 관련이 있나?”

“예, 포식으로 얻은 헥터 님의 능력을 일부 흉내 내어 헥터 님과 똑같은 외견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클레버의 설명을 들을수록 헨리는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클레버의 설명을 듣던 중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클레버.”

“예, 마스터.”

“혹시 그 껍데기를 흉내 내는 것 말인데, 진화 전에 포식한 것도 포함되나?”

“예, 가능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씨익.

미소 짓는 헨리.

이에 헨리가 헥터에게 말했다.

“헥터, 지금 당장 대련 준비 좀 해 주겠어?”

“대련? 누구랑?”

“누구긴, 당연히 클레버지.”

“뭐라고?”

갑자기 클레버와 대련을 하라는 말에 헥터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러나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세 사람은 설탑 지하에 마련된 대련장으로 이동했다.

널찍한 무대였다.

헨리는 제대로 된 대련을 위해 헥터에게 흑갑옷을 착용할 것을 요청했으나 헥터는 끝끝내 그 요청만큼은 거절했다.

“그냥 처음부터 전력을 다 하지 그래?”

“됐어. 아무리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흑갑옷까지는 아니야.”

유쾌한 척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러를 흡수당했다는 사실이 내심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이에 알량한 자존심을 부리는 헥터를 보며 헨리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헤라리온보단 낫군.’

그래도 헤라리온을 상대할 때보단 사정이 나았다.

헤라리온은 흑갑옷은 고사하고 항상 참새와 대련을 펼쳐야만 했으니까.

“그럼 간만에 실력 발휘를 좀 해 보도록 할까?”

부웅! 부웅!

혹시 몰라 칼 대신 쇠로 만든 몽둥이를 지급했다.

그러자 코룬의 육체를 빌려 입은 헥터가 간만에 ‘짐승’이 아닌 ‘사람’의 형태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헨리가 클레버에게 다가가 조용히 귓속말을 속삭였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헨리의 주문에 공손히 대답하는 클레버.

이윽고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은 헨리의 참관하에 대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싸울 참이냐?”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헥터는 여유를 과시하며 선제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클레버는 여전히 회색 슬라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순간.

꾸물럭, 꾸물럭!

클레버의 점액질이 전에 그랬던 것처럼 탑처럼 켜켜이 쌓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코룬의 육체보다 훨씬 더 높이 몸체를 쌓아 올린 클레버는 헥터를 흉내 냈을 때처럼 육체에 디테일 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꾸물꾸물.

그리고 얼마 뒤 마침내 클레버의 변신이 끝났을 때, 헥터는 완성된 클레버의 외견을 보고 그만 할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헨리가 클레버에게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

그것은 바로 헨리가 쓰러뜨렸던 전대 사막의 검, 베네딕 칼리프의 재림이었다.

* * *

궁 어딘가.

그곳에는 아서스의 사람을 제외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역탑’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그 문은 역탑의 유일한 주인인 드라칸 로티크만이 열고 닫을 수가 있었다.

문은 뛰어난 보안성을 자랑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 할지라도 감히 영역을 침범할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말이다.

드라칸은 역탑 안에서 오늘도 실험을 진행했다.

하이랜더가에서 살아 있는 인간 실험체를 구해다 주면, 마탑에선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인체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했다.

다른 분야도 아닌 인간학을 연구했던 그였기에 그에게 있어 인체 실험은 최고의 공부였다.

“끄흐흑, 사, 살려 주십시오……!”

“제, 제발 우리 아기만은……!”

연구실 한편에는 하이랜더가에서 구해다 준 다양한 종류의 인간 실험체들이 두려움에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드라칸의 귀에는 그들의 울부짖음이 고작해야 쥐가 찍찍거리는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드라칸은 현재 인간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아서스가 두려움을 모르는 광전사와 같은 병사들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칸은 그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광폭화 마법’의 자료가 될 온갖 종류의 감정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정된 실험들 중에 오늘 진행할 실험은, 다름 아닌 ‘모성애’에 대한 실험.

드라칸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철갑 속에 아기와 아기 엄마를 밀어 넣은 뒤, 천천히 불을 지폈다.

‘숱한 감정들 중에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목숨이 걸린 생사의 기로 앞에서도 사랑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까?’

예컨대 드라칸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희생정신’에 대한 감정을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윽고 철갑이 지펴지면서 바닥이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쾅쾅쾅!

“끼아아악!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아기 엄마는 발가벗겨진 채로 철갑 속에 집어넣어졌다.

그리고 철갑이 뜨겁게 달궈질수록 한 손으로 아기를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끊임없이 철갑 내부를 두드리며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흐음.’

그러나 드라칸은 특유의 메마른 눈동자와 함께 달구어지는 철갑을 가만히 구경할 뿐이었다.

“제발! 제발!”

치이익!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달궈진 철갑 속에서 아기 엄마의 살갗이 녹으며 나는 냄새였다.

“으애애앵!”

동시에 아기 울음소리 또한 철갑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줄어만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목소리 전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끝났군.’

두 사람이 죽었다고 판단한 드라칸은 굳게 걸어 잠갔던 철갑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는 어떻게든 바닥의 뜨거움을 피하기 위해 아기 위에 올라서려던 아기 엄마가 반쯤 녹아내린 숯덩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죽음 앞에선 사랑도, 희생정신도…… 모든 것이 쓸모없는 것이었다.

“크크크크!”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에 드라칸은 실험 일지를 기록하는 내내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실험 일지를 기록하는 드라칸의 뒤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라칸 경.”

“……!”

이곳은 역탑.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다니?

단언컨대 실험체일 리는 없었다.

이에 펜대를 놀리던 드라칸이 굳은 긴장과 함께 천천히 손을 멈추었다.

“드라칸 경.”

다시 한 번 들리는 이름.

그런데 고조된 긴장과 함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그것은 낯선 목소리가 아닌 익숙한 것이었다.

“공작……님?”

“그래요.”

홱!

추측이 맞았다.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서스였다.

이에 드라칸이 놀란 눈초리와 함께 등을 돌리자, 그곳에는 정말로 아서스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공작님? 공작님이 대체 여길 어떻게?”

믿을 수가 없었다.

아서스가 아무리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한들, 아서스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서스 혼자서 이곳에 입장하기란 불가능한 일.

그러나 드라칸의 질문과는 달리, 아서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게 중요한가요?”

“예?”

아서스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드라칸의 옆으로 와 이제 막 실험이 끝난 아기 엄마의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아서스가 물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로군요.”

“……그렇습니다만.”

꿀꺽!

무언가 이상했다.

원래도 신비로운 힘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그런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서스가 죽은 시체를 향해 손을 뻗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Dbdnjf dbrdlfdms guscnddlf. Tnsrnrtjsdufemfdml cndtjddmf rlflqtlek.”

‘저, 저 언어는!’

확장되는 드라칸의 동공.

아서스가 지금 외운 주문은 흑마술사들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아서스가 주문을 외운 직후, 새카맣게 그슬리고 녹아내렸던 모녀의 시체가 천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뀌륵, 뀌륵…….

“……!”

그리고 불에 타 죽은 모녀의 시체가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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