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53화 (153/522)

# 153

새로운 힘 (1)

저택으로 돌아온 헨리는 통쾌함에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독이 든 성배임을 알면서도 차마 자식을 위해 궐련을 밀어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성애.

알프레드의 모습은 혼자서만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다른 부모 눈에 눈물 나게 했으면 녀석도 응당 피눈물이 나야지.’

죄책감은 없었다.

그 빌어먹을 삼대가문 때문에 죽어 간 자신의 사람들만 헤아려도 그 수가 까마득할 정도였으니까.

콧노래를 부르는 헨리를 보며 헥터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헥터는 접시 위에 꼬치구이를 잔뜩 담아 그릇째로 들고 다니면서 그것들을 먹고 있었다.

그것을 본 헨리는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럴 일이 있어. 그건 그렇고 마침 잘됐네. 그렇잖아도 널 찾고 있었는데 말이야.”

“날?”

우물우물.

입안 가득 꼬치구이를 집어넣고 대답하는 헥터.

“궐련이 떨어졌거든. 그리고 너도 이제 그만 샤하트라로 돌아가야지. 네가 맡은 본래의 임무는 헤라리온을 사막의 검으로 만드는 것이잖아?”

“뭐? 그냥 검술만 가르치는 거 아니었어?”

“가르칠 거면 제대로 가르쳐야지. 애매하게 검술 몇 번 가르쳐서 뭐 하게? 아무튼 준비해. 지금 바로 떠날 거니까.”

“지금 갑자기? 저녁은 먹고 가면 안 돼?”

“안 돼.”

단호하게 거절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기가 더욱 더 당겨졌으니 준비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는 헥터의 어깨를 붙잡은 뒤 텔레포트를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이잉!

‘음?’

낯선 진동.

진동의 근원지는 손가락에 찬 반지였다.

‘클레버?’

묵색으로 물든 백금 반지 안에는 여전히 헨리의 마력을 소화 중인 클레버가 있었다.

그리고 클레버의 고속 성장이 이루어지고 난 뒤부터 한동안 잠자코 있던 녀석이 갑작스레 반지를 진동시킨다는 것은, 별안간 어떠한 변화가 생겼음을 알리는 신호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

꾸물럭!

“오?”

반지로부터 회색 점액질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헨리는 입 모양을 둥글게 말며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클레버의 다음 행동이 몹시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어, 어? 뭐야 이거?”

그러나 헥터는 달랐다.

쏟아진 점액질은 헨리의 손가락을 타고 넘어가 붙잡은 헥터의 어깨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에 헥터가 깜짝 놀란 나머지 어깨를 움츠렸지만 그래도 헨리는 헥터의 옷깃을 놓아주지 않았다.

“놔, 미친놈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놀라지 말고 잠자코 있어. 이 녀석은 내 권속이야.”

“뭐라고?”

헥터는 놀란 나머지 오러를 방출할 뻔하였으나 헨리의 권속이라는 말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윽고 어깨를 뒤덮은 점액질은 기분 나쁜 감촉을 일으키다가 촉수들을 뻗으며 헥터의 오른손이 쥐고 있는 꼬치 접시로 향했다.

“어, 어! 이건 안 돼!”

츠즈즛!

자신의 몸을 휘감는 것까진 어떻게든 참아 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꼬치구이들만큼은 절대로 허락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저택의 요리사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닌, 시장에서 사 온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헥터는 방금 전에 들은 헨리의 말도 깨끗이 잊어버린 채 서둘러 오러를 방출했다.

그러나 오러를 방출한 그 순간, 헨리와 헥터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츠즈즛, 슈욱!

점액질 속으로 빨려 들어간 헥터의 오러.

착각이 아니었다.

헥터의 오러는 정말로 클레버의 몸속으로 ‘흡수’당해 버린 것이었다.

“어, 어!”

쨍깡!

오러를 흡수당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 나머지, 헥터는 들고 있던 접시를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점액질의 방향 또한 바뀌었다.

클레버는 헥터의 상체를 타고 다리를 지나 바닥에 흩어진 꼬치구이들을 향해 자신의 점액질을 뿜었다.

슈슈슉!

깨진 접시부터 바닥에 튄 국물까지.

모든 것들이 깔끔하게 점액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꼬치구이가 모두 사라졌을 때쯤, 반지에서 쏟아져 나오던 무수한 양의 점액질 또한 드디어 그 행렬을 멈추었다.

“클레버.”

꾸물꾸물.

이에 헨리는 손을 거두고 클레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바닥에 뭉쳐져 있던 회색빛 점액질들이 탑처럼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조그마한 소년 정도의 체구까지 덩치를 불렸다.

꾸물꾸물.

그러나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덩치를 키운 클레버는 곧 익숙한 형태로 점점 더 모습을 바꾸더니 이내 곧…….

“……!”

코룬의 육체를 빌린 헥터의 모습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오?”

완벽한 복제술이었다.

심지어 클레버는 헥터의 입가에 묻은 꼬치 소스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이윽고 클레버가 헨리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투로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이, 이건 나?”

가장 놀란 이는 단연코 헥터였다.

헥터는 완벽하게 복제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헨리가 입꼬리를 올리며 클레버에게 물었다.

“충분히 쉬었느냐?”

“예, 마스터의 힘이 너무나도 위대한 나머지, 미천한 저 따위가 그 힘을 받아들이기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마스터를 오래 기다리게 하여 정말로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본 클레버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전의 클레버가 새끼 고양이를 떠올리게 했다면, 이제는 점잖게 멋들어진 한 마리의 사자를 떠올리게 했다.

이에 곁에서 지켜보던 헥터가 말했다.

“헨리, 너한테 이런 권속도 있었나? 소름 끼칠 정도로 나랑 닮았는데?”

“이런 권속이 아니야. 이 녀석은 네가 강제로 알 속에 집어넣었던 클레버다.”

“클레버? 클레버라면…… 설마 그 귀여운 구름 고양이?”

“그래.”

“맙소사…… 그 귀여운 구름 고양이가 이렇게 변했다고?”

그 기분 나쁜 점액질의 정체가 클레버라는 사실에 헥터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클레버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헥터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헥터 님에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헥터 님 덕분에 제가 진화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으니까요.”

“흠흠, 그야 그렇지만……. 아무튼!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 주어 난 참 기쁘다!”

헥터는 멀쩡하던 고양이가 알이 되었다며 호들갑을 떨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헛기침과 함께 점잔을 떨었다.

그러나 헨리는 딱히 핀잔을 주지 않았다.

완전히 각성한 클레버의 상태에 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래도 일정을 좀 미뤄야겠는데?’

계획도 중요했지만 새로운 전력에 대한 확인도 중요했다.

새롭게 각성한 클레버가 자신의 계획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

이에 헨리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헥터와 클레버를 데리고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 * *

쿠구구구!

야누스를 불러내는 주문을 외우자 신전이 진동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동이 멎었을 때, 야누스 신전의 천장에는 환한 보름달과 함께 아름다운 샤하트라의 밤하늘이 펼쳐졌다.

후우우!

바람이 불었다.

아름다운 밤하늘이 갈라지며 밤하늘보다 더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샤하트라의 밤과 죽음을 지배하는 유일한 신, 야누스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의식은 계속되었다.

헤라리온은 여느 때와 같이 야누스의 권능으로 죽음을 박탈시킨 가축을 야누스에게 제물로 바쳤다.

의식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야누스 또한 여느 때와 같이 헤라리온의 기도를 받아 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의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셀렌에게 걸어 두었던 ‘아서스의 힘’이 다시금 발동되었다.

아서스의 힘은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셀렌의 무의식 속에 자신이 가진 힘의 일부를 심어 두는 것.

그래서 아서스는 먼 거리에서도 셀렌을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아서스는 그동안 셀렌의 무의식 속에 집어넣은 자신의 힘을 통해 끊임없이 그녀가 야누스의 신전에 관심을 보이도록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증거로 단 한 번도 외부 사람을 들인 적이 없던 헤라리온이 야누스의 신전에 그녀를 들이게 되었으니까.

헤라리온의 의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셀렌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아서스가 본격적으로 그녀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간단했다.

야누스의 권능이 서린 물건을 자신의 손안에 넣는 것.

동시에 헤라리온까지 함께 처리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 셀렌에게 심어 놓은 힘으로는 셀렌을 조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슬슬 움직여 볼까요?’

아서스는 야누스의 권능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했다.

야누스의 권능은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흑마법과 닮아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야누스의 권능은 바로 막강한 힘, 그 자체였다.

아서스는 야누스의 힘을 이용해 비밀 병기, ‘키메라’를 좀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두려움 없이 죽을 때까지 살육전을 벌일 광기의 전사들을 제작하여 아무리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불사의 군대를 갖고 싶어 했다.

번뜩!

때가 도래했다.

아서스는 자신의 꼭두각시가 된 셀렌을 조종하기 위해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셀렌은 아서스의 의지를 이어받아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품속에서 몰래 준비해 온 칼을 빼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네놈은 누구지?

오싹.

셀렌이 칼을 빼 든 그 순간, 아서스는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살갗을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이에 아서스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서둘러 눈을 치켜떴다.

그렇게 하면 셀렌과 연결된 무의식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낼 수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서스가 눈꺼풀을 다시 올린 그 순간, 눈앞에는 자신의 집무실이 아닌 좀 전에 셀렌의 눈으로 보고 있던 야누스의 신전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이 무슨……!’

-왜 그렇게 놀라지?

“……!”

이번에는 머릿속이 아니었다.

바로 뒤편에서 육성으로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에 아서스는 온몸의 근육이 차갑게 식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 버린 것만 같았다.

저벅. 저벅.

등 뒤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

발걸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갔다.

그러나 아서스는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에 근육이 석고처럼 굳어 버린 탓이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리고 몹시 두려웠다.

그리고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자각한 그 순간, 아서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 이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자신은 보통의 인간과 다른 존재였다. 그렇기에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두려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난생처음으로 공포에 잠식돼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재미있군.

발걸음은 아서스의 바로 뒤에서 멈추었다.

마치 날카롭게 벼려진 수십 개의 창날이 자신을 향해 겨누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아서스는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미친 듯이 호기심이 일었다.

‘누굴까? 대체 누구기에 이 나를 이토록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일까?’

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뒤편의 누군가가 독백을 이어 나갔다.

-네놈, 나의 힘을 원하고 있군.

‘나의 힘?’

자그마한 단서가 주어지자마자 아서스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아니, 굴리려고 했다.

그러나 머리를 채 굴리기도 전에 아서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존재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내가 바로 네가 그토록 원하는 힘을 줄 수 있는 존재, 야누스다.

‘……!’

다시 한 번의 전율.

자신을 공포에 떨게 한 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야누스였다.

야누스의 말은 계속되었다.

-좋은 그릇을 가졌군. 좋다, 그렇다면 네놈에게도 헤라리온과 똑같은 기회를 주도록 하지.

아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욕망은 충분히 야누스에게 전달되었다.

이윽고 말을 마친 야누스는 인간의 것을 닮은, 하지만 시커멓기 그지없는 어둠 같은 두 손을 들어 올려 야누스의 얼굴을 뒤에서 감싸 안았다.

치이이익!

살이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것이 아서스가 기억하는 마지막 감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