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도화선 (3)
“그럼 다음번에도 모쪼록 잘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모든 경매가 끝났다.
그리고 헨리는 핑크 스왐프를 포함한, 샤하트라에서 들여온 교역품 전부를 팔아 치우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귀족들의 표정에는 안도감과 허탈감이 반씩 뒤섞여 있었다.
안도감은 당연히 핑크 스왐프를 확보한 것에서 우러난 것이었고, 허탈감은 고작 이까짓 궐련 몇 갑을 사기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쏟아부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돈이 아깝다는 내색을 보이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귀족 중의 귀족, ‘중앙귀족회’의 회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경매가 끝나고 교역품들을 나누어 줄 때, 헨리는 그제야 그들이 데려온 시종들의 출입을 허락해 주었다.
그 덕분에 텐의 저택에는 때 아닌 짐마차의 행렬들이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본 반이 헨리에게 물었다.
“대체 얼마나 팔았기에 짐마차가 저렇게 많이 필요해?”
“전부 다 팔았습니다.”
“뭐? 싹 다?”
“예, 어차피 좌판 깔고 장사할 것도 아닌데 기회가 왔을 때 한꺼번에 처리해야죠.”
그 많던 교역품을 장사 단 하루 만에 모두 판매해 버렸다. 그러니 반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마진은?”
“글쎄요? 최소 수십 배는 남은 것 같습니다.”
“수십 배? 넌 대체 얼마를 남겨 먹은 거냐?”
“얼핏 계산해 본 바로는 대략 2천만이 조금 넘네요.”
“2, 2천만?”
2천만이라는 숫자에 반의 입이 다시금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천 만이라면 자신의 고향인 앙켈만의 1년 치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엄살을 부렸다.
“너무 놀라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헤라리온에게 아직 물건값을 지불하지 않아서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뭐? 물건값이 그렇게 비싸단 말이야?”
“예, 무리하게 상품을 공수받는 대가로 기존의 도매가보다 세 배를 더 쳐주기로 했으니까요.”
“세 배씩이나? 원래 총단가가 얼만데 세 배를 불러?”
“한 30만 골드 정도?”
“뭐라고?”
남겨 먹은 마진에 비하면 도매가는 새 발의 피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악덕 상인처럼 엄살을 부리는 헨리를 보며 반은 치를 떨었다.
이에 헨리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저놈들이 가진 돈들, 죄다 제국민들의 고혈을 빨아 모은 돈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리고 이렇게 한 번 크게 당했으니 다음번에는 똑같이 안 당할 겁니다. 그러니 한탕 장사는 이번이 끝인 셈이죠.”
클레버를 억지로 각성시키긴 하였으나, 녀석은 아직까지도 헨리의 마력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헨리는 여전히 클레버에게 맡겨 놓은 돈들을 되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앞으로는 더더욱 많은 액수의 돈이 필요할 것이기에, 이윤을 취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폭리를 취해 둬야만 했다.
“일단 장사는 이걸로 끝입니다. 아직 제일 큰 물고기가 걸려들지 않아서 좀 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떡밥은 충분히 뿌렸으니 충분하네요.”
“큰 물고기라면 ‘그놈’을 말하는 거냐?”
“예, 어차피 처음부터 핑크 스왐프는 황제를 잡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돈 따위야 부가 수입에 불과하죠.”
헨리는 장사 종료를 선언했다.
운이 좋다면 앞으로도 몇 번은 더 경매를 진행할 수도 있을 테지만, 오늘만큼의 폭리는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헨리는 이번 장사를 통해 ‘궐련의 유행’과 ‘폭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붙잡을 수 있었으니까.
* * *
며칠이 지났다.
이제 아이젠에게 받은 휴가도 며칠이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헨리는 생각해 두고 있던 물고기에 대한 입질이 오지 않자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됐는데?’
헨리가 기다리는 물고기는 다름 아닌 ‘시레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기존의 핑크 스왐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핑크 스왐프2를 주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양이 부족해 분명히 금방 다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헨리는 자신의 계획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지 입질이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 시레드는 분명히 궐련 때문에라도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순간, 그토록 기다리던 입질이 왔다.
“작은 주인님, 이더웨더가에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왔군.’
양반은 못 된다고 생각했다.
헨리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 이더웨더가의 누가 찾아왔지?”
“이더웨더가의 장남, 왈레드 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왈레드가?”
낚싯대에 엉뚱한 물고기가 꿰었다.
* * *
“왈레드 이더웨더라고 한다.”
시레드인 줄 알았던 이더웨더가의 손님은 다름 아닌 이더웨더가의 장남, 왈레드 이더웨더였다.
헨리는 일단 그를 응접실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응접실로 온 왈레드는, 경매 전에 롤링 백작이 그랬던 것처럼 헨리에게 대뜸 반말부터 지껄이는 등 한없이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헨리는 전혀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않고 가면을 쓴 것처럼 예의를 차려 그를 맞이했다.
“아이젠 후작님의 가신, 헨리라고 합니다.”
“헨리? 기분 나쁜 이름을 가졌군그래.”
점입가경이었다.
장남인 왈레드는 차남인 시레드와는 달리 무척이나 거만했고, 무례함을 저지름에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헨리는 오히려 그러한 점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근본이 무례한 놈치고 머리가 좋은 놈은 드물었으니까.
‘어쩌면 더 괜찮은 놈일지도 모르겠군.’
이에 헨리가 여전히 능글맞은 태도로 대꾸했다.
“하하, 아버님이 지어 주신 이름 때문에 그런 말씀을 자주 듣곤 합니다만……. 그런데 왈레드 님께선 무슨 연유로 저를 찾아오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연유? 이거 실망이 큰데? 당연히 일면식도 없는 네놈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라면 목적은 뻔하잖아?”
“혹시 핑크 스왐프 때문에 찾아오셨습니까?”
“잘 알고 있네. 뭐 해? 알아들었으면 얼른 가서 꺼내 오지 않고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에 헨리는 당당하게 핑크 스왐프를 요구하는 왈레드의 부탁을 조심스럽게 거절하였다.
“죄송합니다만…… 왈레드 님, 저희 상단은 이미 가진 핑크 스왐프 전부를 판매하여 더 이상 재고가 없습니다.”
“호오, 과연 그럴까?”
‘음?’
그때였다.
왈레드는 헨리의 대답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품에서 조그마한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왈레드가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아공간 주머니였다.
‘아공간 주머니?’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든 그는 이어서 테이블 위에 익숙한 모양의 ‘갑’들을 주욱 꺼내 놓기 시작했다.
‘저건…….’
왈레드가 꺼내 놓은 담뱃갑.
그것은 며칠 전에 중앙귀족회 회원들에게 경매로 판매했던 핑크 스왐프의 갑들이었다.
왈레드는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 개씩 담뱃갑을 꺼내더니 이내 곧 아공간 주머니를 뒤집어 그 안에 담긴 담뱃갑들을 무더기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와르르!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이는 담뱃갑.
척 봐도 수십 갑은 되어 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 주머니에서 갑이 나오지 않자 왈레드는 아공간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집어 던지며 노기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이게 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이글거리는 두 눈빛.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동자였다.
‘호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전혀 몰랐는데?’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엉뚱한 놈이 미끼에 걸려들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찌 됐든 헨리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에 충분한 놈 같아 보였다.
‘좀 더 자극해 볼까?’
시레드를 노리고 던졌던 미끼를 왈레드가 물었다.
하지만 시레드가 얌전한 관상어라면 왈레드는 마치 싱싱한 활어를 연상케 했다.
이에 헨리는 활어가 좀 더 펄떡거리며 날뛸 수 있도록 약간의 자극을 주기로 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뻔한 시치미.
이에 왈레드가 덜컥 화를 내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네놈이 이걸 모른다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지 그래? 분명히 예약이 모두 이루어져 더 이상 판매할 여분이 없다던 핑크 스왐프가 어떻게 중앙귀족회 놈들은 전부 다 가지고 있었던 거지?”
“그건……!”
분노한 상대를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방법.
그것은 상대가 분노하고 있는 이유에 확실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헨리는 일부러 시치미를 떼는 척하며 어설픈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뜸도 너무 오래 들이면 음식을 망치는 법.
말꼬리를 흐리던 헨리는 이윽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볼품없는 변명.
왈레드의 눈에는 이젠 분노를 넘어 진한 살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슬슬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나 보군.’
그럭저럭 괜찮은 살기였다.
물론 헨리에겐 하찮은 수준이었지만.
하지만 헨리는 왈레드가 내뿜는 살기에 지레 겁먹은 척, 더욱더 볼품없는 이유를 대며 변명을 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상단을 운영하게 된 이상, 저는 제가 맡은 바에 대한 책임을 다하여야만 했습니다.”
“책임이라니!”
쾅!
거칠게 책상을 내려치는 왈레드.
그러자 책상에 쌓여 있던 갑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에 헨리는 더더욱 겁먹은 것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와, 왈레드 님! 현재의 저는 아이젠 후작님의 가신이 아닌 상단의 총책임자의 자격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저는 장사꾼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레드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선의의 거짓말이었습니다.”
“네놈!”
후우우웅!
고함과 함께 다시 한 번 책상을 내려치자 왈레드를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바람이 내뿜어졌다.
이더웨더가 특유의 바람의 정령술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정령술이 뿜어질 거란 것을 미리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방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난 풍압에 몸을 맡겨 저만치 나가떨어짐과 동시에 벽에 부딪치는 등 과장된 쇼맨십을 선보였다.
이에 나가떨어진 헨리에게 왈레드가 다가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같은 대후작가의 가신이 되었다고 해서 네놈이 감히 우리와 동등하다고 생각한 것이더냐?”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저, 저는 단지……!”
“닥쳐라!”
쾅!!
왈레드 이더웨더.
그는 바람의 상급 정령을 다루는 상급의 정령술사로, 이미 그 재능을 인정받은 수준급의 실력자였다.
그런 실력자가 머리끝까지 분노하자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더 날뛰어라, 더!’
이까짓 풍압쯤은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일로 인해 알프레드 후작과 엮일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후우우웅!
바람은 더더욱 거세게 변해 갔다.
그리고 바람이 거세짐과 동시에 왈레드의 어깨 위로 상급 바람의 정령, ‘실라이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됐다!’
남의 집에 와서 다짜고짜 무례를 보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이젠이 가장 아끼는 가신인 헨리를 상대로 바람의 상급 정령까지 꺼내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무례를 넘어선 명백한 살의였다.
이윽고 갈기가 풍성한 바람의 사자, 실라이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허어어엉!
매서운 강풍을 일으키는 실라이온의 하울링.
그 덕분에 명분은 충분히 확보되었다.
이에 헨리는 콜소드를 소환하여 왈레드를 제압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짹짹!
참새 소리.
그것은 참새 소리였다.
그리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온몸에 오러를 두른 참새가 응접실 대들보 위에서 왈레드와 헨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헥터?’
참새의 정체는 헥터였다.
그리고 헨리와 눈을 마주친 참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뒤, 허공으로 비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슈아아아아!
사람조차 버티기 힘든 엄청난 풍압 속에서, 전신에 오러를 두른 최강의 참새가 돌풍을 가르고 실라이온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크아아아!”
최상급 마스터의 오러를 두른 참새는 순식간에 실라이온의 미관을 관통했다.
그런 뒤 실라이온의 미간을 뚫고 나오자마자 왈레드의 왼쪽 어깨를 향해 사정없이 날개를 휘둘렀다.
서걱!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헥터는 자신의 날개에 오러를 주입해 검처럼 휘둘렀다.
그 결과, 왈레드의 왼쪽 어깨와 팔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엄청난 기염을 토해 낼 수 있었다.
털썩.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한 왈레드는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