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47화 (147/522)

# 147

도화선 (2)

“그럼 거래를 진행하기에 앞서, 우선 거래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대표자 한 분씩만 저택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뭐라고?”

웅성웅성.

텐의 저택은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를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소수의 인원만을 추린 이유는 귀족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소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갑질.

이에 주인을 모셔 온 하수인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주, 주인님…….”

“됐다. 내 직접 다녀오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결국 헨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그저 한시라도 빨리 헨리의 비위를 맞추어 핑크 스왐프를 손에 넣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미적거리며 마차에서 기어 나온 귀족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서 헨리의 앞에 줄을 섰다.

“가시죠.”

완벽한 기선제압이었다.

헨리는 이들을 데리고 저택에서 좀 떨어진 별채에 마련된 응접실로 귀족들을 안내했다.

그런데 별채에 들어선 귀족들은 응접실 내부의 인테리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상?’

응접실 특유의 기다란 테이블 대신, 극장에서나 쓰일 법한 커다란 단상이 응접실 중앙에 떡하니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단상을 기점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의자들이 놓여 있는 것이 정말로 조그마한 소극장을 연상케 했다.

이에 앞서 들어온 헨리가 자연스럽게 단상 위에 올라서며 귀족들에게 말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개개인이 아닌 많은 분들과 한꺼번에 거래를 진행해야 하니, 평범한 응접실보다는 이편이 나을 것 같아 이리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지정된 좌석은 딱히 없으니 각자 편한 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헨리가 말한 그대로였다.

이곳에선 곧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살가운 거래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피 튀기는 전쟁터가 될 예정이었으니까.

이에 귀족들은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순서대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물론 자리를 착석하는 것마저도 중앙귀족회 내의 서열 순서를 따져 앞자리부터 채워 나갔지만.

이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헨리가 혀를 차며 생각했다.

‘도토리 키 재는 꼴이구나.’

아이젠의 가신인 자신에게조차 설설 기는 놈들이, 이 와중에도 서열대로 자리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헨리는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이윽고 귀족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헨리는 목청을 한 번 가다듬은 뒤 다시금 상업적인 미소와 함께 인사말을 건넸다.

“다시 한 번 이곳까지 먼 걸음 하시느라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약소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

분명히 선물이라고 말했지만 귀족들은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

이에 헨리가 손뼉을 두 번 치며 말했다.

“시작해.”

그러자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저택의 시종들이 위스키가 가득 담긴 온더록스와 1인분의 핑크 스왐프를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핑크 스왐프와 위스키.

요 며칠간 그들이 미친 듯이 빠져 살았던 최고의 조합이었다.

이에 헨리가 더더욱 신뢰 짙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제 조그마한 성의입니다. 모쪼록 거래가 진행되는 동안 부족함 없이 편안히 즐겨 주십시오.”

깊은 뜻이 담긴 호의는 아니었다.

단지 채찍을 휘두르기 전에 당근 하나를 입에 물려 주는 정도의 호의였다.

그러나 손에 당근을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선뜻 핑크 스왐프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이런 제기랄……!’

의심.

그것은 본능적인 의심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핑크 스왐프의 판매를 들먹이며 롤링 백작을 쥐 잡듯이 잡던 놈이, 이제는 먼저 핑크 스왐프를 권하며 미소까지 지어 보이고 있었다.

헨리가 자신들을 쥐락펴락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저 악어의 눈물과도 같은 가증스러운 웃음 뒤에 어떠한 가시가 숨어 있을지 아무도 몰랐기에.

그러나 몸은 정직했다.

벌써 며칠째 궐련을 피우지 못한 이들은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위험을 부르짖으면서도 손으로는 핑크 스왐프를 만지작거렸기 때문이다.

덜덜덜덜…….

금단 현상에 의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림의 떡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심경이 복잡했다.

귀족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불을 댕기고 거하게 한 모금 빨아들인 뒤, 위스키를 입안 가득히 머금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귀족들이 아직까지 불을 댕기지 않았기에 선뜻 성냥을 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치이익!

“후우우우…….”

허공으로 흩어지는 아름다운 분홍빛 연기.

제일 먼저 성냥을 당긴 사람은 다름 아닌 헨리였다.

“더, 더 이상은 못 참아!”

치이익!

치이익!

그리고 그 순간, 헨리를 시발점으로 앞자리에 앉은 귀족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서둘러 성냥불을 댕기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응접실 가득히 피어나는 분홍빛 구름들.

한평생을 인내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귀족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절제력을 무너뜨리는 것은 어린아이를 울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분홍빛 구름 아래에서 궐련을 입에 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몹시 행복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후후, 네놈들이 버텨 봤자지.’

어설픈 인내심은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헨리는 이번에도 여느 때와 같이 저들 스스로가 인내심을 깨부술 수 있도록 아주 약간의 행동만을 취하였을 뿐이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앞자리에서부터 시작된 성냥불은 곧 좌석 전체를 뜨겁게 불태우는 발화점이 되었고, 본격적인 거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윽고 헨리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에게 턱짓했다.

돌돌돌돌…….

헨리의 턱짓을 본 시종은 커다란 천막으로 덮어 놓은 손수레 두 개를 끌어다가 헨리 곁에 세웠다.

손수레가 도착하자, 헨리는 다시금 손가락을 튕겨 귀족들의 시선을 모았다.

“여러분, 궐련과 술을 즐기면서 주목해 주십시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핑크 스왐프에 대한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뭣? 경매라고?”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헨리는 분명히 거래가 아닌 경매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헨리는 경매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첫 번째 손수레의 천막을 벗겨 냈다.

펄럭!

“오오오……!”

그러나 당혹스러움도 잠시, 천막을 벗겨 낸 첫 번째 손수레에는 막대한 양의 핑크 스왐프가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었다.

이에 불평불만을 내뱉던 귀족들은 빨아들이던 궐련도 잊은 채 진심 어린 감탄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준비된 핑크 스왐프는 모두 백 갑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한 갑 속에는 총 열 개비의 궐련들이 들어 있습니다.”

무려 천 개비의 핑크 스왐프.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샤하트라에서 핑크 스왐프의 생산에 차질이 생겨, 한동안은 더 이상 핑크 스왐프를 입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점을 기억해 주시고 경매에 임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라고?”

웅성웅성.

가득 쌓인 궐련들을 보며 안도했던 것도 잠시.

헨리가 덧붙인 말 한마디로 인해 안도감은 순식간에 불안감으로 뒤바뀌었다.

이른바 ‘저만큼이나 있네.’가 아닌 ‘저것밖에 없다고?’의 상황이 된 것이다.

꿀꺽.

잠깐의 침묵.

회장 안에는 궐련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누구 하나 섣불리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러나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아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모두가 일치했다.

‘무조건 확보해야만 한다!’

핑크 스왐프의 유일한 거래소가 바로 쇼난가의 상단이었다.

그러니 다음 궐련이 언제 입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 맛있는 핑크 스왐프를 충분히 확보해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미래의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귀족들은 요 며칠간 지옥 같은 금단 현상을 통해 핑크 스왐프가 없는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깨달았다.

회장 안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물량은 한정되어 있고 머릿수는 많았다.

그러니 같은 모임의 회원들이라 할지라도 지금부턴 모두가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귀족들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본 헨리는 흡족한 표정으로 두 번째 천막을 벗겨 냈다.

펄럭!

큼지막한 칠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시선들이 일제히 칠판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몰려든 시선들을 향해 헨리가 말했다.

“지금 보고 계신 칠판에는 현재 저희 상단이 ‘샤하트라에서 수입해 온 교역품’들에 대한 목록들이 적혀 있습니다.”

헨리의 말대로 칠판에는 샤하트라에서 들여온 향신료나 비단, 그리고 사막 소금을 비롯한 각종 사치품들의 이름이 수량과 함께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경매 방식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여기 있는 백 갑의 핑크 스왐프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기에 적힌 교역품들을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교역품들을 가장 적게 구매하신 다섯 분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에게 핑크 스왐프를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많이 구매한 자가 아닌 가장 적게 구매한 자들을 제외시키는 방식.

헨리의 설명이 끝나는 순간, 귀족들은 다시 한 번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다섯 명! 다섯 명 안에만 안 들면 된다!’

다시금 전의가 불타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놓이기도 했다.

교역품들을 가장 많이 구매한 다섯 명이 아닌 가장 적게 구매한 다섯 명을 제외시키는 방식이라 생각보다 생존률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헨리가 파 놓은 교묘한 함정이었다.

최상위 다섯 명을 뽑는 것보다 최하위 다섯 명을 제외시키는 것.

얼핏 보면 후자가 더 여유 있어 보였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임에는 항상 서열이 존재해서 이러한 일이 생길 경우 눈치껏 빠지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상위권자가 아닌 최하위권자들을 가리는 싸움이라면 윗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 말인즉슨 아랫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이에 일부 귀족들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라면 어떻게든 돈을 뿌려 그 안에 포함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자고로 싸움은 말단 찌끄레기들 싸움이 더 재밌는 법이지.’

손에 닿을 법한 거리에 있기에 희망은 더더욱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핑크 스왐프의 경매 자격을 얻기 위한 샤하트라 특산품에 대한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빙긋.

악마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 * *

마침내 마지막 남은 특산품이 최고치를 기록하며 판매되었다.

“아, 안 돼……!”

그리고 희비가 엇갈렸다.

방금 전에 판매된 상품으로 인해 마지막 남은 최하위권자의 한 자리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처참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탈락자로 선택된 다섯 명은 중앙귀족회 내에서도 재력이 가장 부족하기로 소문난 이들이었다.

허망한 표정의 탈락자들.

그들은 어떻게든 탈락자 다섯 명이 아닌, 턱걸이라도 여섯 번째 행운아가 되기 위해 마지막 경매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쓸데없이 비싸게 구매한 샤하트라의 사치품들이 전부였다.

이에 헨리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경매는 이것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번 경매에서 자격을 얻지 못한 분들을 위해 위로의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짝!

치욕적인 박수 갈채였다.

저것은 자격을 얻지 못한 비루한 패배자들을 향한 조롱이나 마찬가지였던 탓이다.

그러나 홧김에 함부로 분노를 표출할 수도 없었다.

현재 자신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더 앞자리에 앉아 있는 ‘더 높은 권력자’들이었던 것이다.

‘역시 가장자리부터 털어 내야 뒤끝이 없어.’

최하위 탈락자 경매.

헨리는 이 경매 방식을 일컬어 ‘최하위 탈락자 경매’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최하위 탈락자 경매는 핑크 스왐프에 대한 욕구를 이용해 중앙귀족회의 끄트머리부터 철저하게 짓밟는 데 성공했다.

이윽고 탈락자들이 회장을 벗어나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치열한 경매였다.

앞자리에 앉은 이들은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서라도 무리하게 돈을 쏟아부었고, 중간쯤에 자리한 이들은 자신보다 뒷자리에 앉은 이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돈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 나자, 남은 것은 시세보다 몇십 배는 비싸게 주고 구매한 사치품들과 두둑해진 헨리의 주머니뿐이었다.

이윽고 헨리는 살아남은 승리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핑크 스왐프 몇 개비와 위스키 몇 잔을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참자, 참아야 한다. 조금만 더 참으면 핑크 스왐프를 잔뜩 손에 넣을 수 있어……!’

회원들 중 몇몇은 이미 이 경매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진즉에 눈치챘다.

하지만 알아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이 불합리한 거래를 분하게 여기면서도, 헨리가 축배랍시고 나누어 준 핑크 스왐프를 입에 물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의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발을 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을 때, 헨리가 다시금 손뼉을 치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핑크 스왐프를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고 물건은 적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턴 ‘핑크 스왐프를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놓고 다시 한 번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뭐라고!”

“아, 물론 경매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지금이라도 빠지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번 경매에서 살아남으신 분들에겐 다음번에 입고될 핑크 스왐프를 우선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우선권’을 배부할 예정이오니 그 점을 각별히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빙긋.

그렇게 악마의 경매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