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급물살 (4)
“백작님, 이더웨더가의 시레드 님께서 저택을 방문하셨습니다.”
“뭐? 시레드가에서?”
한가로이 집무실에서 핑크 스왐프를 태우고 있던 오스카는 의외의 인물의 방문에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발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왕래 한번 없던 놈이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의 아버지인 알프레드 후작과는 업무 때문에라도 자주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프레드의 집안사람까지 오스카와 친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은 저택을 방문하였다고 하니, 직접 맞이해 주는 것이 예의.
이에 시레드를 맞이할 채비를 마친 오스카가 응접실의 문을 열며 웃는 얼굴로 시레드를 반겨 주었다.
“반갑습니다. 이거, 이더웨더가의 차남께서 우리 집을 다 방문해 주시고.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마중이라도 나가는 건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음에도 이렇게 반겨 주시니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대가문의 사람들이니 만큼 격식이 차려진, 쓸데없는 인사들이 오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시시콜콜한 근황을 주고받으며 소비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체면치레가 끝나 갈 때쯤, 오스카가 먼저 시레드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무슨 일 때문에 저를 찾아오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오스카의 직설적인 물음에, 시레드는 그제야 낮게 헛기침을 하며 오스카를 찾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실은 일전에 백작님께서 보내 주셨던 핑크 스왐프 때문에 백작님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핑크 스왐프요?”
“그렇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방문 목적에 오스카는 그제야 능청스러운 척,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아, 저번에 선물로 보내 드렸던 그것 말이로군요. 그렇잖아도 방금 전까지 저도 핑크 스왐프를 태우고 있었습니다만…… 후후, 이거 시레드 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선물로 드린 궐련이 벌써 다 떨어지신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궐련을 즐겨 태우지 않아 백작님께서 보내 주신 궐련의 대부분을 형님과 아버님께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맛만 보기 위해 태웠던 한 개비가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나서 그만…….”
부끄러움에 말끝을 흐리는 시레드.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것 때문에 벌써 위스키를 몇 병이나 비웠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는데 일단 한 개비 태우시겠습니까?”
이에 오스카가 눈치 빠른 처세술로 얼른 핑크 스왐프 한 개비를 시레드에게 내밀었다.
“물론입니다! 얼마든지요!”
그 덕분에 금단현상에 낯빛이 어두웠던 시레드의 얼굴에 화사함이 피어났다.
“후우…….”
이윽고 시레드의 입에서 분홍색 연기가 뿜어졌다.
달콤했다.
오랜 인내심 끝에 물게 된 핑크 스왐프의 맛은 그야말로 황홀함 그 자체였다.
‘이 맛이야……!’
혀끝에서 시작하여 두개골을 한 번 후려치고 발끝까지 퍼지는 핑크 스왐프 특유의 진한 맛.
그리고 동시에 머리까지 맑아지며 두통이 가시는 게, 핑크 스왐프는 그 어떤 기호 식품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야말로 ‘극강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하아아…….”
연기를 내뿜는 내내 시레드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러나 행복감이 지속될수록 짧아지는 궐련의 길이에 조급함 또한 밀려왔다.
‘반드시 여분을 확보해 간다!’
무서운 늦바람이었다.
어쩌면 시레드가 처음부터 궐련을 태웠다면 그 중독성이 덜할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시레드가 처음부터 흡연자였다면 평소에 피우던 궐련을 임시방편으로 삼았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핑크 스왐프로 맛을 들인 시레드는 더는 핑크 스왐프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내 방에 가서 같은 걸로 한 상자 가지고 와.”
이에 오스카는 시레드가 먼저 궐련을 달라고 하기도 전에 시종을 시켜 궐련 한 상자를 가지고 오게 했다.
그런 다음 한 상자분의 궐련을 시레드에게 내밀며 노련한 말재주로 미리 선을 그었다.
“시레드 님,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게 마지막 분량입니다. 사실 저도 핑크 스왐프를 선물받은 입장이라 그다지 여분이 많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예? 그럼 백작님께선 누구에게 선물을 받으신 겁니까?”
“이번에 쇼난가의 새로운 가신으로 들어온 헨리라는 남자가 주었습니다.”
‘헨리?’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에 시레드는 남은 궐련을 마저 태우며 묵묵히 오스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들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쇼난가에서 토벌을 계기로 샤하트라 왕국과 정식으로 교류를 맺게 되었다는군요. 그리고 이 궐련이 바로 곧 이루어질 교역의 주력 상품들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쇼난가에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쇼난가에서 상단을 하나 출범시킨 모양인데, 그 상단의 총책임자가 바로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헨리라는 남자입니다.”
“그럼 핑크 스왐프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 헨리라는 남자를 만나야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렇잖아도 혹시라도 궐련이 부족하면 자신을 찾으라고 하더군요. 제가 주소를 적어 드릴 테니 시레드 님께서 직접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작님!”
오스카가 헨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자 시레드의 얼굴에 다시금 희망의 빛이 샘솟았다.
이에 시레드는 몇 번이나 오스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하, 그러시면 아버님께 제 안부나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잖아도 아버님과 형님께서도 핑크 스왐프에 흠뻑 빠지셨으니 분명히 이 소식을 기뻐하실 겁니다.”
이에 작별 인사를 마친 시레드는 서둘러 마차에 몸을 실은 뒤, 주소지에 적혀 있는 ‘비발디 타운’으로 향했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시레드의 마차를 본 오스카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로군. 이거…… 아무래도 나도 몇 상자 정도 더 구비해 놓을 필요가 있겠어.”
핑크 스왐프.
충분히 매력이 넘치는 궐련이었다.
하지만 오스카는 평소에도 궐련을 자주 태웠던 터라 아직은 시레드에 비해 금단현상이 늦게 찾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오스카는 이때까지만 해도 시레드의 방문이 다른 중독자들의 연이은 방문에 대한 예고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 * *
“작은 주인님, 이더웨더가에서 손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이더웨더가? 이더웨더가의 누군데?”
“시레드라고 합니다.”
“시레드?”
시종의 안내에 헨리는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레드라면 알프레드의 둘째 아들인데, 이번 생에선 안면도 없는 그 녀석이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궐련 때문에?’
떠오르는 가능성은 오스카와 테리온밖에 없었다.
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곳의 위치를 알려 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응접실에서 맞이한 시레드는, 아니나 다를까 헨리의 예상대로 핑크 스왐프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이 맞았다.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줄이야……!’
언젠간 핑크 스왐프 때문에 낯선 손님이 찾아올 거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삼대가문 중 하나인 이더웨더가의 사람일 줄은 몰랐다.
이에 헨리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덕분에 수고를 덜게 됐군.’
그렇잖아도 다음 타깃으로 알프레드 후작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이더웨더가의 사람이 제 발로 나타났으니 헨리로선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시레드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이더웨더가의 차남, 시레드 이더웨더라고 합니다.”
점잖게 자신을 소개하는 시레드.
이에 헨리 또한 자신을 소개하며 시레드에게 방문 목적을 물었다.
“쇼난가의 외부 가신, 헨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체 높은 이더웨더가의 차남께서 어찌 이런 누추한 곳을 다 찾아 주셨습니까?”
물론 시치미를 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에 용무가 급한 시레드는 서론을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을 끄집어냈다.
“듣기로는 헨리 공께서 이번에 샤하트라와 교역을 맺으면서 쇼난 상단의 총책임자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실은 헨리 공께서 이번에 유통하실 상품들 중에 핑크 스왐프라는 이름을 가진 궐련을 구매하고 싶어 이렇게 헨리 공을 찾게 되었습니다.”
“핑크 스왐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곧 시판될 샤하트라 교역품들 중 하나가 핑크 스왐프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헨리 공께서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 핑크 스왐프 전부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시레드는 핑크 스왐프를 전부 구매하겠다며 헨리 앞에서 약소한 재력을 과시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절박함을 감추기 위한 얕은 술수란 것을 헨리는 잘 알고 있었다.
‘건방진 놈, 꽤 귀여운 말을 하는구나.’
이에 헨리는 어떻게 하면 시레드를 이용해 알프레드를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에 즉석에서 계획을 세운 헨리는 계획을 위해 대번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안타깝지만 시레드 님에게 핑크 스왐프 전부를 팔 수는 없습니다.”
“뭐라고요?”
헨리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나오자 시레드의 얼굴에 당혹감이 일었다.
그리고 동시에 날이 선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시레드는 에이지 영지에서 비발디 타운으로 이동하는 동안 오스카에게서 받은 궐련을 모두 피운 뒤로 꽤 오랫동안 핑크 스왐프를 피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시레드는 몹시 예민한 상태였다.
그러나 시레드는 뒤늦게 자신의 태도가 무례하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눈에 힘을 풀며 헨리에게 되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현재 입고된 핑크 스왐프들은 이미 예약이 모두 끝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약된 궐련들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물건이 없습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오스카와 테리온에게 핑크 스왐프를 샘플로 넘겨준 직후, 사적으로 핑크 스왐프의 구매를 제안한 사람은 시레드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남는 수량이 없다는 헨리의 말에 시레드의 얼굴은 허탈감과 분노, 그리고 슬픔과 불안함이 한데 어우러져 일그러졌다.
멍한 표정으로 눈앞에 놓인 찻잔을 응시하는 시레드.
그 모습을 본 헨리는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하며 은근한 목소리로 시레드에게 희소식을 전했다.
“흠흠, 시레드 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혹시라도 남는 수량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퀭한 눈동자에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이에 헨리가 부담스럽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확인일 뿐입니다. 실은 저도 갑작스럽게 예약을 많이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장부 정리가 확실하게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개비라도 좋으니 남는 궐련이 있다면 반드시 저에게 팔아 주시겠습니까?”
절박한 외침이었다.
이에 헨리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응접실을 빠져나온 헨리가 향한 곳은 핑크 스왐프를 잔뜩 쌓아 둔 자신의 연구실이었다.
‘이걸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이야…….’
연구실에 도착한 헨리는 무더기로 쌓여 있는 보통의 핑크 스왐프가 아닌 특별하게 제작된 다른 종류의 핑크 스왐프를 한 상자 꺼내 들었다.
이것의 이름은 ‘핑크 스왐프2’.
혹시라도 집중적으로 공략할 대상이 생긴다면 그 대상을 빠른 속도로 중독시키기 위해 만들어 둔 특수한 궐련이었다.
핑크 스왐프2의 효과는 간단했다.
보통의 핑크 스왐프보다 두 배는 더 짙은 중독 증세를 보이게 하는 것.
물론 금단현상이 심해진 만큼 맛이나 만족감, 그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배가되었다.
헨리는 시레드에게 핑크 스왐프2를 건넨 다음, 한동안 핑크 스왐프에 대한 공급 자체를 전부 다 끊어 버릴 생각이었다.
‘길어도 일주일이다. 일주일 뒤면 금단현상에 잡아먹힌 시레드가 내 멱살을 잡으러 올 것이다.’
헨리의 계획은 간단했다.
금단현상이 절정에 다다른 시레드를 통해 아이젠과 알프레드 사이에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
그리고 그 갈등의 시발점은 시레드가 될 것이고, 도화선은 헨리가 될 것이었다.
이윽고 다시 응접실로 돌아온 헨리는 상업적인 미소와 함께 시레드에게 핑크 스왐프2 한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마침 한 상자가 남아 있더군요. 이건 시레드 님에게 그냥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레드 님과 저희 쇼난 상단과의 첫 거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말이죠.”
시레드에게 헨리가 내비친 웃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