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42화 (142/522)

# 142

급물살 (1)

과거, 권력의 상징이었던 중앙귀족파의 명맥을 이어 새롭게 탄생한 귀족 사교 모임 ‘중앙귀족회’.

중앙귀족회는 과거의 중앙귀족파의 명맥을 이은 만큼 제국 최고의 귀족 사교 모임이었다.

그렇기에 중앙귀족회는 아무나 가입할 수 없을뿐더러 모임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멤버 두 명 이상에게 추천을 받아야 할 만큼 멤버 관리가 엄격했다.

그리고 그 중앙귀족회의 최고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삼대가문’에 속하지 못한 나머지 대가문주들이었다.

그러나 오베르가 역적이 되고 아이젠이 대후작이 되면서, 이젠 테리온과 오스카가 모임의 최고 실세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 두 사람이 토벌전에서 승작에 실패한 이후 그 둘은 모임 참석에 부쩍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극심한 재정난으로 두 대백작의 사병대가 해산되면서, 두 가문의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망조였지만 누군가에겐 길조였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런 소문이 나돈다는 것 자체가 중앙귀족회 멤버들에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 두 사람은 중앙귀족회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중앙귀족회의 정기 모임일이었다.

먼저 도착한 멤버들이 미처 도착하지 않은 멤버들을 기다리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흐음, 설마 오늘도 불참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롤링 백작이었다.

그는 이름만큼이나 얄밉게 말려 올라간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호호,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까지 참석하시지 않으면 벌써 다섯 번이나 모임에 나오시지 않는 건데…….”

주어를 붙이진 않았지만 그 대상이 두 대백작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또한 말꼬리를 흘리긴 했지만 뒤에 따라올 말은 여기에 있는 모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정기 모임 시작까지 앞으로 10분.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차 몸뚱이를 불려 나갔다. 마치 눈덩이처럼 말이다.

이윽고 대백작 두 사람을 제외한 중앙귀족회 멤버 전원이 모임에 참석했다.

이에 셜리번 부인이 이번에도 비어 있는 두 자리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로 중얼거렸다.

“흐음, 오늘로 다섯 번째라…….”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씩이나, 그것도 모임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들이 벌써 다섯 번이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는 명백한 룰 위반이었다.

두 사람이 모임의 최고 실세라고는 하지만 다섯 번이나 모임에 빠진 이상, 더 이상 그만한 대우를 해 주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모임의 권력에 야욕을 품고 있던 롤링 백작이 기세를 몰아 의견을 제시했다.

“흠흠, 이거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다섯 번이나 모임에 빠지셨는데 이 정도면 슬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조치 말입니까?”

그때였다.

롤링 백작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차가운 시선으로 롤링 백작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스카 대백작이 눈에 들어왔다.

“배, 백작님, 오셨습니까?”

그의 등장에 자리에 앉아 있던 회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오스카의 차가운 눈동자가 중앙귀족회 멤버 전원을 훑었다.

그동안 재정난의 이유로 모임에 참석을 좀 하지 않았다지만,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자신을 중앙귀족회에서 축출할 야욕을 드러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특히 좀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롤링 백작은 더더욱 괘씸했다.

물론 그 혼자서 그런 뜻을 품고 있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이에 오스카가 여전히 냉소적인 말투로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어떤 조치 말입니까, 롤링 백작?”

“저, 그, 그게…….”

오스카의 질문에 롤링 백작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가 아무리 가세가 기울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대가문주들 중 하나이자 모임의 최고 실세이기 때문이다.

이에 롤링 백작이 도움을 바라는 눈길로 다른 멤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의견에 동조하던 이들은 모두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 이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쿠데타의 성공은 최초로 반기를 든 자가 가장 큰 명예를 차지한다. 하지만 반대로 쿠데타에 실패할 경우, 대표로 처벌되어야만 하는 자가 바로 주동자였다.

그리고 지금.

롤링 백작의 꼴이 딱 그랬다.

“오스카, 틀린 말은 아니잖아?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네 번이나 모임에 빠졌으니 이건 명백한 우리 책임이라고.”

그때였다.

오스카 백작의 뒤로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콘가의 테리온 백작이었다.

롤링 백작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변호해 주는 테리온이 마치 지상에 강림한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처럼 보였다.

“흥.”

같은 대가문주의 핀잔에 오스카는 그제야 콧방귀를 뀌며 다과실로 입장했다.

이윽고 다섯 번째 모임 만에 모임 최고의 실세들이 자리에 참석했다.

가장 상석에 앉은 두 사람.

딱딱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테리온 백작이었다.

“한동안 승작전 이후로 개인적인 사정이 좀 생겨 오랫동안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사정이 있으신데 불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한결 가볍군요. 하지만 사교회의 회칙을 어긴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회칙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긴 서문을 늘어놓는 것일까?

팔콘가와 에이지가의 가세가 기울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인데 말이다.

그렇기에 롤링 백작은 테리온 백작이 아무리 점잖을 떨어도, 좀 전의 복수를 하기 위해 어떻게든 트집을 잡을 생각이었다.

이윽고 테리온 백작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성난 회원님들의 마음을 진정시켜 드릴 만한 자그마한 선물을 한번 준비해 보았습니다.”

별로 달갑잖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가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권력가들이었다. 그러니 웬만한 물건으로는 그들을 만족시키긴 힘들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테리온은 오스카와 합작한 선물들을 각 회원들 앞에 배부하기 시작했다.

“나누어 드려.”

“예.”

배부된 것은 조그마한 함이었다.

그리고 함 속에는 두 백작이 헨리로부터 전달받은 특제 샤하트라 궐련, ‘핑크 스왐프’가 각각 두 개비씩 들어 있었다.

“브랜드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번에 샤하트라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시리즈의 궐련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공수해 왔죠.”

‘샤하트라라고?’

웬만한 사치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테리온의 입에서 ‘샤하트라’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온 귀족들의 시선이 눈앞의 함으로 집중되었다.

궐련.

권력가의 상징이자 사치품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그것!

중앙귀족회의 회원들 중에 궐련을 태우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후우우우…….”

모두의 시선이 눈앞에 놓인 함 앞으로 몰린 그때, 오스카 백작이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분홍색 연기를 내뿜었다.

“오오오……!”

분홍색 연기.

핑크 스왐프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연기가 하얀색이 아닌 ‘분홍색’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핑크 스왐프는 충분히 회원들의 허영심을 자극시킬 수 있었다.

꿀꺽.

그렇잖아도 맛이 좋기로 유명한 샤하트라 궐련이었다.

그런데 그런 샤하트라 궐련의 신상품이라니?

회원 모두가 지독한 애연가로서 오스카 백작의 흡연은 도저히 점잖게 구경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행위였다.

“괘, 괜찮다면 저도 지금 한번 피워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친절하게 궐련을 권하는 테리온 백작.

두 사람은 헨리에게 약속했던 대로, 제국 최고의 권력가들 대부분에게 핑크 스왐프를 영업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교계에 실추되었던 자신의 이미지를 챙김으로써 헨리에 대한 신뢰 또한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 * *

헨리는 살게라를 떠나기 전에 토리안에게 맡긴 일들을 재차 당부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에겐 몹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실수가 없어야만 합니다.”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관리, 감독할 테니 마음 놓고 다녀오시지요.”

며칠 동안 헨리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여분의 블랙 티어 제작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블랙 티어 제작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헨리는 고심 끝에 살게라에 남아도는 노동력인 ‘아직 죽지 않은 오베르 일가’를 블랙 티어 제작에 투입하기로 했다.

보안 문제에 대해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헨리가 마법사라는 것은 이곳 사람들에겐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령 오베르 일가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들은 죽을 때까지 살게라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적당히 쓰다가 묻어 버리기엔 딱 좋은 인력이었다.

이에 마지막으로 신신당부를 마친 헨리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오베르 일가를 한번 쓱 훑어본 후 비릿한 미소와 함께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

헨리가 도착한 곳은 비발디 타운의 입구였다.

이곳에 방문한 까닭은 간단했다.

오늘이 바로 샤하트라에서 수입해 올 ‘교역품’들이 도착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비발디 타운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에게 물었다.

“오늘 도시를 방문한 자들 중 샤하트라에서 온 상인이 있었나?”

“예, 있었습니다.”

“그래?”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도착한 듯했다.

이에 헨리는 곧바로 텐의 저택으로 향했다.

“샤하트라에서 온 상인 말입니까? 아직 안 왔습니다. 상인은커녕, 오늘 하루 동안 저택을 방문한 손님조차 없었습니다.”

“방문자가 없었다고?”

저택에 도착한 헨리는 곧바로 텐에게 샤하트라에서 온 상인의 행방을 물었다.

그런데 텐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도시에는 왔는데 저택에는 안 왔다고? 설마 길을 잃은 건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샤하트라를 대표하여 도시를 방문한 상인은 다름 아닌, ‘헥터’였으니까.

‘헥터 그놈이 그럴 리가 없는데? 길도 미리 알려 준 데다가 텐의 저택에서 며칠이나 보냈으면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이에 헨리는 시청을 포함하여 비발디 타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헥터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는 허리춤에 아공간 주머니를 차고서 꼬치집에서 꼬치를 먹고 있는 헥터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헥터.”

“음?”

우물우물.

입안 가득히 꼬치를 밀어 넣고 있는 헥터.

헨리와 눈이 마주친 헥터는 입가에 양념을 잔뜩 묻힌 채 반쯤 먹은 꼬챙이를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여어!”

“‘여어’는 개뿔……. 타운에 왔으면 재깍재깍 저택으로 와야 할 거 아니야?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해? 전부터 이 집 꼬치 맛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알아?”

뻔뻔하게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헥터.

이에 헨리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얼굴 다시 바꿔 버리기 전에 순순히 따라오는 게 어때?”

“……알겠어.”

“계산은?”

“제자 놈한테 받은 돈으로 해결했지.”

“이젠 제자한테 삥도 뜯나?”

“삥이라니? 네놈이 데리러 오지 않아서 샤하트라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내 수고를 생각하지 그래?”

“살려 줬으면 그 정도 밥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들고?”

“거 더럽게 떽떽거리네, 참!”

마법사를 상대로 말싸움을 벌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헥터는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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