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40화 (140/522)

# 140

두 번째 단추 (4)

‘이셀란?’

왜 여기서 이셀란이 나와?

헨리의 표정이 딱 그러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셀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셀란은 헨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헨리는 지금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는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헨리의 시선이 이셀란의 얼굴에서 그의 손 쪽으로 옮겨졌다.

멱살.

그의 손은 멱살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멱살을 쥐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3급 구역부터 출몰한다는 고위 언데드, ‘듀라한’이었다.

‘듀라한?’

머리와 몸뚱어리가 분리되어 있지만 한 몸처럼 행동하는 언데드가 바로 듀라한이었다.

물론 본체는 머리였다.

그러나 지금 듀라한의 머리는 이셀란의 발아래에 깔려 있었고 이셀란의 손에는 듀라한의 몸뚱어리가 쇠줄에 묶인 채 붙잡혀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듀라한을 포박해서 멱살을 쥐고 있다니? 도저히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헨리의 시선이 상황을 훑고 난 후 다시 얼굴로 돌아왔을 때, 이셀란은 어느새인가 미소 짓고 있었다.

‘웃어?’

그리고 그때였다.

화르륵!

미소 짓던 이셀란은 전신에 두르고 있던 오러를 더더욱 화려하게 피워 올렸다.

“……!”

그리고 그 안에는 지독한 양의 살기가 담겨 있었다.

헨리는 그 살기가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콰직!

이셀란은 짓밟고 있던 듀라한의 머리를 단숨에 으깨 버렸다.

그런 다음 등에 이고 있던 자신의 검을 휘둘러 손에 쥐고 있던 듀라한의 몸뚱어리를 세로로 두 동강 내었다.

털썩!

듀라한이 쓰러졌다.

그리고 이셀란은 헨리가 있는 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예고도 없이 거친 도움닫기를 시전했다.

쾅!

지축을 뒤흔드는 도움닫기.

그 무지막지한 도움닫기 덕분에 이셀란은 맹수와 같은 속도로 순식간에 헨리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런 젠장……!”

저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무언가 오해가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투구를 벗어 얼굴을 내보이기엔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답은 간단했다.

그래서 헨리는 그가 검을 휘두르기 전에 훨씬 더 빨리 마법 무장을 시전했다.

쿵!

지면을 박차자 콜아머의 영향을 받은 한층 더 강화된 마법 무장이 순식간에 전신을 휘감았다.

츠즈즈즛!

그리고 동시에 헨리는 온몸에 최대 출력치의 오러를 뿜어냈다.

그러지 않으면 저 성난 괴물을 상대로 단 1초도 버텨 낼 수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꽈아앙!

헨리의 콜소드와 이셀란의 검이 격돌하는 순간, 엄청난 양의 굉음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고막이 터질 듯한 충돌이었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죽을 것같이 두 팔이 후들거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학학! 그래도 대가리는 다르다는 건가?”

부쩍 거리가 가까워진 이셀란이 맞댄 검 너머로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것은 칭찬이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내리는 칭찬이 아닌 괴물의 재주를 칭찬하는, 비웃음이 가득한 그런 종류의 칭찬이었다.

그러나 투구를 벗어 보일 수가 없었기에 헨리는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이셀란이 말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정체를 드러내라, 리치 나이트!”

‘리치 나이트?’

부웅!

그때였다.

리치 나이트에 대한 단어에 대해 고민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이셀란의 연속기가 이어졌다.

후웅!

뻗어진 검을 회피하자 곧바로 검이 궤도를 꺾어 내며 횡축으로 그어졌다.

이에 헨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공격 범위를 벗어나려던 찰나, 이셀란의 검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참격!’

단순한 베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참격이었다.

헨리는 그제야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잘못을 깨닫고 오러를 중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다.

그래서 헨리는 오러의 출력보다 훨씬 더 익숙한 방어 수단인 ‘매직 실드’를 본능적으로 산개했다.

카가가강!

여러 겹의 유리가 박살 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여러 겹으로 중첩된 매직 실드 덕분에 간신히 그의 참격을 막아 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이셀란의 두 눈엔 확신에 찬 희열감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역시!”

‘역시는 무슨!’

아무래도 ‘리치 나이트’라는 녀석과 헨리를 완전히 착각한 듯싶었다.

“드디어 네놈을 찾았다!”

부웅!

카가가강!

다시 한 번 이어지는 참격.

그리고 부서지는 매직 실드들.

두 사람 사이의 오해는 확실했고 이셀란의 공격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헨리는 이 무지막지한 괴물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셀란이 진심을 다한다면 헨리 역시 가진 힘을 다해 그를 제압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마친 헨리는 차라리 오해를 십분 활용키로 마음먹었다.

‘그라운드 스피어!’

딱!

쿠르르릉……!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두 사람이 디디고 있는 지면으로부터 거대한 떨림이 시작됐다.

그리고 떨림은 곧 무수한 양의 대지의 창을 가시처럼 쏟아 냈다.

퓨슈슈슉!

날카롭게 솟는 대지의 가시들.

그러나 급하게 시전한 주문으로는 폭주하는 이셀란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겨우 이 정도냐!”

콰지직!

그래도 마도사급은 되는 마법이었다. 그러나 이셀란은 그런 대지의 가시들을 갈대 자르듯이 손쉽게 베어 낸 후, 잘린 가시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런 미친놈!’

애초에 급하게 준비한 5서클 수준의 마법으로는 이셀란을 제압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채기 하나 없이 저렇게까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이셀란이 잘린 가시 사이를 헤쳐 나오며 말했다.

“설마 겨우 이 정도가 전부는 아니겠지? 리치 나이트, 나를 좀 더 즐겁게 해라!”

타닥!

높은 가시 사이를 헤쳐 나와 바닥에 착지하는 이셀란.

그의 얼굴에는 이미 승리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다.

그래서 헨리는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한낱 언데드 따위로 오해받는 것도 모자라, 이젠 죽을 고비를 넘겨 각성한 아크 메이지의 힘까지 무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이셀란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천천히 헨리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에 헨리는 잠깐이나마 벌어들인 시간을 활용해 다시금 마법을 캐스팅했다.

휘오오오!

공격법을 바꾸기로 했다.

마법으로 만든 가시를 베어 낸다면 애초에 베어 낼 수 없는 것으로 공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헨리는 이번에는 침착하게 바람 속성의 마법을 준비했다.

“그래, 어디 한번 보여 봐라. 최후에 최후까지 발악해서 이 나를 즐겁게 하란 말이다.”

‘……미친놈.’

그저 미친놈이라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셀란이 타고난 싸움꾼에 전투광이라는 소문은 이미 요새 내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마물의 입장에서 이셀란과 마주하게 되니, 그 명성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셀란의 콧대를 꺾어 주고 싶었다.

그가 아무리 타고난 싸움꾼이라지만 그래도 제국 최고의 힘은 바로 헨리 본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쿠오오오오……!

이셀란이 느긋하게 거리를 좁혀 오는 동안, 헨리는 그사이에 6서클 바람 마법의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 봐라.’

손아귀에 엄청난 양의 마력들이 에메랄드 빛을 띠고서 요동쳤다.

준비한 마법의 이름은 ‘매드 사이클론’.

통일 전쟁 시절에 수천수만의 적군들을 학살하던 대살상용 마법들 중 하나였다.

헨리는 그런 위험천만한 마법을 오직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형태로 변형시켰다.

“와라!”

미친 싸움꾼의 눈동자에 기대가 가득했다. 동시에 그의 오러가 더욱더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헨리는 두 손 가득히 포개 놓았던 매드 사이클론을 이셀란을 향해 펼쳤다.

슈아아앙!

날카로운 파공음이 사위를 가로질렀다.

쏟아진 매드 사이클론은 당장이라도 세상을 씹어 먹을 것처럼 거칠게 폭주하며 뻗어졌다.

그리고 폭풍과 싸움꾼이 격돌하는 그 순간.

콰드드드드득!

이셀란의 푸른 불꽃이 매드 사이클론과 사정없이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마음껏 즐거워해라. 미련한 놈 같으니.”

이에 헨리는 매드 사이클론과 격돌하는 이셀란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아무리 최상급 소드 마스터가 아크 메이지와 동일하게 인정받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상대는 무려 헨리였다.

격돌은 계속되었다.

대규모 살상용 마법을 고도로 압축하였으니, 크고 짧게 휘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범위에 그 위력이 길게 지속되었다.

그렇게 이셀란이 매드 사이클론에 잠시 발목이 묶여 있는 동안, 헨리는 그사이에 두 번째 마법을 준비했다.

휘오오오!

이번에 준비한 마법은 혹한의 눈보라였다.

하지만 헨리는 이번에도 그것을 고도로 압축시켰다.

그런 다음.

“어스퀘이크.”

쿵!

지진을 일으키는 5서클의 마법.

이셀란에게 큰 피해를 줄 수는 없었지만, 그의 균형 감각을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헨리가 어스퀘이크를 시전함과 동시에 지면을 박차자, 녹색 빛 마력이 지하로 스며들며 전방으로 쏘아졌다.

쿠과광!

전략적으로 쏘아진 어스퀘이크가 이셀란에게 닿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이셀란의 균형 감각을 방해하는 것이 목표였으니, 일대 전체를 뒤집어 놓을 필요가 없다는 게 헨리의 판단이었다.

땅이 꺼졌고 공기가 일그러졌다.

지진과 태풍이 동시에 일어났으니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이에 헨리는 압축해 둔 혹한의 눈보라를 공을 집어 던지듯이 이셀란을 향해 집어 던졌다.

쩌적! 쩌저저적!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일어났다.

공처럼 뭉쳐진 혹한의 눈보라가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는 매드 사이클론에게 닿는 순간, 자욱했던 흙먼지 전체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

본인이 시전한 마법들이었기에 이셀란이 확실하게 얼어붙었는지 정도는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그가 스스로 얼음을 깨고 다시 검을 휘두를 확률은 제로.

결국 이셀란은 멋대로 헨리를 리치 나이트로 착각해 버리는 바람에, 산 채로 얼어 버리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이에 헨리는 콜소드에 오러를 띄워 이셀란 주위에 얼어붙은 쓸데없는 덩어리들을 순차적으로 잘라 냈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직전에 얼어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이셀란과 마주할 수 있었다.

‘리치 나이트라…….’

상황이 대충 정리되었으니 이제는 차분하게 생각할 수가 있었다.

리치 나이트.

데스 나이트가 리치를 쓰러뜨리고 그 힘을 흡수하는 순간, 리치 나이트라는 최하급 마족으로 각성할 수 있었다.

헨리는 리치 나이트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과거에 쓰러뜨렸던 최상급 마족들 중 하나인 ‘블룸’을 떠올렸다.

블룸은 막강한 마족이었다.

그 또한 리치 나이트로 갓 진화했을 때에는 최하급 마족에 불과했지만, 리치 나이트 특유의 빠른 발전 속도와 무한한 잠재력 덕분에 금방 최상급 마족이 될 수 있었다.

‘나한테 비밀로 부치고 있었던 게 리치 나이트를 잡는 일이었나 보군.’

헨리는 그제야 이셀란이 왜 자신의 술자리까지 거절해 가며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책임감이 강한 군인이었다.

그는 아마도, 최근에 각성한 리치 나이트의 싹을 미리 자르기 위해 부하들 몰래 밤마다 3급 구역을 휘젓고 다닌 모양이었다.

최상급 소드 마스터인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분명히 리치 나이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하들이 다칠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그러나 그는 분명히 훌륭한 상관이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날을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헨리가 3급 구역에 볼일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우선 텔레포트를 이용해 그를 먼저 요새에 데려다 놓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크크, 네놈이냐? 나를 찾아다닌다는 놈이?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헨리는 음침한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이셀란이 그토록 찾아 헤매고 다니던 ‘리치 나이트’가 수십의 데스 나이트들과 듀라한들을 이끌고 헨리를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음?”

리치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 들을 발견한 헨리.

이에 리치 나이트와 눈이 마주친 헨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주문을 외웠다.

“매드 사이클론.”

쿠구구! 쿠구구!

마법이 시전되자 하늘이 울었다.

그리고 거대한 칼바람의 폭풍이 다시 한 번 전방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성난 칼바람 폭풍이 잦아들었을 때쯤, 그 자리에는 넝마처럼 찢어진 걸레 조각들이 꽃잎처럼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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