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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137화 (137/522)

# 137

두 번째 단추 (1)

후우우우웅!

손끝을 벗어난 화살이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쏘아졌다.

화살은 순식간에 과녁에 도달했다.

하지만 과녁판은 나무로 만들어진 보통의 과녁판이 아닌, 커다란 바위를 깎아 만든 석조 과녁판이었다.

바위로 과녁판을 만든 이유는 간단했다.

콰직!

과녁판의 정중앙에 꽂힌 테리온 백작의 화살.

오러는 둘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테리온 백작의 화살은 일반적인 화살보다 그 크기가 좀 더 굵고 길었으며 화살촉의 소재가 더 무겁고 단단할 뿐이었다.

벌써 수백 발째였다.

오전부터 시작된 활쏘기 연습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적당한 지표가 되었다.

콰직!

이윽고 마지막 남은 한 발마저 쏘아졌을 때였다.

콰드득, 콰드드득! 쿠궁!

석조 과녁판은 마침내 테리온의 화살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다.

“후…….”

테리온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신에는 땀이 흘렀고 눈빛에는 여전히 맹금류와도 같은 날카로움이 발산되고 있었다.

이에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팔콘가의 집사가 테리온에게 말했다.

“백작님, 응접실에 손님 한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손님?”

“예, 쇼난가의 헨리 공이 방문하셨습니다.”

“헨리? 쇼난가의 가신이 여긴 어쩐 일이지?”

“드릴 말씀이 있으니 괜찮다면 백작님과 티타임을 가지고 싶다더군요.”

“왜 진즉에 알리지 않았나?”

“백작님의 수련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알겠다.”

의아했다.

다른 곳도 아닌 쇼난가에서 대체 무슨 볼일로 자신을 찾아온 것일까?

특히 헨리라면 최근의 승작전에서 아이젠을 후작으로 만들어 놓은 숨겨진 일등 공신이 아니었던가?

‘무슨 꿍꿍인 거냐, 이번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최소한 토벌에 참여했던 이들이라면 헨리의 활약상을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황궁 사교 파티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헨리가 자신에게로 이목이 집중되는 걸 꺼려 해서라고 들었다.

덕분에 호기심이 생겼다.

승작전에서 패한 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자신에게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 찾아온 건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테리온은 시녀들의 도움으로 금방 손님 맞을 채비를 마친 뒤 서둘러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테리온 백작님?”

응접실에 얼굴을 내비치자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던 헨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테리온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본 테리온이 의무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오래간만이군요.”

이제는 쇼난가의 지위가 한층 더 상승했으므로 전처럼 가볍게 하대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냥저냥 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쇼난가에서 저한테 개인적인 볼일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는데 말입니다.”

“하하, 개인적인 볼일은 맞지만 쇼난가의 심부름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못 본 새에 성격이 많이 급해지신 것 같군요. 일단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헨리의 권유에, 테리온은 그제야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눈앞에 놓인 냉수 한 잔을 들이켠 뒤에야 조금은 들뜬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냉수를 통해 진정을 되찾은 순간, 테리온은 그제야 헨리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음?’

정말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 조금의 차이로 발생하는 분위기는 토벌군 막사에서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무엇이 달라진 거지?’

백작가의 가신에서 후작가의 가신이 되었기에 생기는 그런 종류의 차이는 아니었다.

그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차이였다.

그러나 아크 메이지가 된 이후 작정하고 헨리가 기운을 숨긴다면, 제아무리 맹금류 같은 시각을 가진 테리온이라 할지라도 그 변화를 알아채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테리온 정도의 눈으로도 파악하지 못했다면 시간을 두고 좀 더 세세하게 관찰해 보는 수밖에 없다.

이윽고 테리온이 말했다.

“자, 이제 한번 들어나 봅시다. 후작님의 심부름이 아니라면 쇼난가의 가신이나 되는 사람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지 말입니다.”

“말씀에 가시가 잔뜩 돋쳐 있으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친절하게 맞아 줄 거라고는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테리온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작으로의 승작을 두고 쟁탈을 벌였던 경쟁자였으니까.

게다가 오스카 백작만큼은 아니었어도, 테리온 백작 또한 무리하게 개인 사병대를 확장했던 이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팔콘가의 재정 상태는 그리 풍요롭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족한 것도 아니지.’

공성탑 스크롤까지 준비했던 오스카 백작은 그 피해가 막심했다.

하지만 테리온 백작은 그래도 가문에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벌였다.

물론 감당할 수만 있을 뿐이었지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팔콘가는 현재 팔콘가 역사상 가장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가장 빈약한 사병대를 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백작님, 최근 저희 쇼난가와 샤하트라 왕국이 교류를 맺게 되었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십니까?”

“……쇼난가와 그 샤하트라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허어, 쇄국정책으로 유명한 샤하트라가 어떻게 그런 선택을…….”

매우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대륙이 통일된 직후, 제아무리 샤하트라가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공적인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제국을 상대로 사막을 개방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수십 년의 쇄국정책을 쇼난가가 이번에 처음으로 깨뜨린 것이었다.

“그래서 저희 쇼난가는 이번 교류를 계기로 상단을 하나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쇼난가가 상단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상단의 운영을 제가 전적으로 일임하게 되었으며 저는 저희 쇼난 상단의 첫 번째 교역품으로 샤하트라 왕국의 ‘특산품’을 유통시킬 예정입니다.”

“샤하트라 왕국의 특산품이라면 설마 샤하트라 비단과 향신료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매년 제국 황실의 공물로 들여 오는 그것들 말입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 샤하트라 왕국의 특산품들이라 하면 귀족들 사이에선 명품 중에서도 명품으로 통했다.

거기에 더해 매년 공물로 보내오는 양조차도 그 수가 몹시 적어서 제국에 공을 세워 하사품으로 받지 않는 한 절대로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런 진상품을 교역품으로 유통시킬 생각을 하다니……. 역시 저자는……!’

테리온은 헨리의 능력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탄했다.

또한 그랬기에 더더욱 탐나는 인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만한 능력을 가진 작자가 대체 무슨 이유로 뒷방 늙은이 신세였던 아이젠 밑으로 들어간 것일까?

테리온은 속으로 헨리에 대한 욕심을 꾹 집어삼키며 다시금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일단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셨으니 축하의 말부터 전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그래서 말인데, 첫 교역을 성공적으로 마친 의미에서 제가 자그마한 선물을 몇 가지 준비해 왔습니다.”

“선물…… 말입니까?”

선물이라는 말에 테리온은 자기도 모르게 기대감이 치솟았다.

그렇잖아도 가문의 재정이 악화되어 사치는커녕 연회도 못 열고 있던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테리온의 반문에 헨리는 협탁에 아공간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재함 하나를 꺼내 보였다.

딸깍.

고급함을 열자 그 안에는 정갈하게 정돈된 핑크 스왐프 스무 개비가 들어 있었다.

헨리는 궐련이 보이게끔 함의 방향을 틀어 테리온에게로 내밀었다.

그러자 핑크 스왐프를 본 테리온이 본능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궐련이 아닙니까?”

“백작님은 혹시 궐련을 즐겨 태우십니까?”

“없어서 못 태울 정도입니다.”

“하하,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준비해 보았습니다.”

“……설마 이 궐련, 샤하트라의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녀석의 이름은 핑크 스왐프로 이번에 샤하트라에서 시험적으로 만들어진 샤하트라 왕실의 두 번째 궐련입니다.”

꿀꺽.

샤하트라의 것이라는 말에 테리온은 다시 한 번 침을 꿀꺽 삼켰다.

샤하트라 왕실의 특제 궐련.

애연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법한 꿈의 궐련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궐련 또한 샤하트라의 진상품들 중에 하나였기에, 황제가 직접 하사하지 않는 이상 평생을 가도 맛 한 번 보기가 힘든 녀석이기도 했다.

그런데 궐련을 만든 샤하트라 왕실에서 새로운 궐련을 만들었다니?

지독한 애연가인 테리온으로선 귀가 번뜩일 만한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헨리는 입맛을 다시는 테리온을 보며 미소와 함께 궐련을 권했다.

“참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은 제가 백작님께 드리는 선물이니 지금 당장 피워 보셔도 좋습니다.”

“지, 지금 말이오?”

“그렇습니다.”

“흠흠, 그럼 거절 않고 하나만 피워 보겠소.”

점잖은 척 너스레를 떨었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헨리의 권유에 테리온은 냉큼 핑크 스왐프 한 개비를 집어 들어 불을 붙였다.

“스읍…….”

폐부 깊숙이 궐련의 연기가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후우우……!”

분홍빛 연기가 내뿜어지는 순간, 테리온은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생각지도 못한 맛.

그리고 기대 이상의 맛.

핑크 스왐프는 지독한 애연가인 테리온의 두 눈을 번뜩이게 하기에는 충분한 제품이었다.

한동안 응접실에는 분홍빛 연기가 안개처럼 분사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궐련 한 개비를 모두 피우고 나서 재떨이에 그것을 비벼 끌 때쯤, 헨리는 이번에도 가볍게 미소 지으며 질문했다.

“어떻습니까, 백작님? 샤하트라의 궐련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두 번째 작품입니다.”

“흠흠…….”

대답하기에 앞서, 테리온은 미세하게 남아 있는 입안의 궐련 맛을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혀를 굴렸다.

그리고 입안의 궐련 맛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아쉬운 마음으로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최고입니다!”

“평은 그뿐이십니까?”

“그럴 리가요? 이렇게 좋은 궐련을 맛보고 겨우 최고라는 수식어만 내놓는다면 그것은 이 핑크 스왐프에 대한 모독이겠지요!”

조금은 퉁명스럽고 까칠했던 테리온의 태도가 궐련 한 개비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덕분에 헨리는 한동안 테리온의 따분한 궐련 예찬에 대해 들어야만 했다.

“일전에 우연찮은 기회로 황제 폐하께 진상되는 궐련을 맛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맛입니다.”

“그 정도입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한 모금 삼켰을 때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내가 여러 궐련을 맛보았지만 여태껏 이런 종류의 궐련이 있다는 것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좋아해 주시니 다행일 따름입니다. 덧붙여 한 가지 희소식을 전해 드리자면 이번에 샤하트라 왕국과의 교역에서 핑크 스왐프 또한 주력 상품으로 취급할 예정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백작님을 만나 뵙고 싶었던 이유도 실은 이 핑크 스왐프 때문이었습니다.”

“궐련…… 때문에 말입니까?”

테리온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그렇습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번에 만들어진 핑크 스왐프는 기존의 진상품으로 올리던 궐련과는 달리 상단의 상품으로써 취급될 예정입니다.”

“그런데요?”

“애연가이신 백작님께서도 인정해 주신 물건이니 상품성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만…… 문제는 궐련의 수가 한정적이라는 겁니다.”

한정적.

수량이 적다는 말에 테리온의 눈빛에 애연가 특유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즉시 머릿속의 계산을 마친 뒤 서둘러 대답을 내놓았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물건만 확보해 주신다면 제가 있는 힘껏 힘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백작님이십니다. 그럼 백작님만 믿고 가지고 온 여분의 일부를 백작님께 더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헨리는 목재함을 세 개 정도 더 꺼내서 테리온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테리온에게 주는 뇌물임과 동시에,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주는 샘플이기도 했다.

그러자 헨리가 본 것 중에 가장 큰 미소가 테리온의 입가에 걸리기 시작했다.

‘됐어!’

똑똑한 놈일수록 오히려 이런 단순한 미끼에 잘 걸려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승작에 실패하고 가세가 주춤하고 있는 지금, 백작에게 샤하트라제 궐련만큼 사교계의 이목을 끌기에 좋은 무기는 없었다.

여분의 궐련을 받아 든 테리온은 한껏 솟은 광대와 함께 다시 한 번 헨리를 칭찬했다.

‘영특한 놈 같으니.’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테리온은 헨리의 의도를 완벽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테리온은 헨리가 상단의 권한을 완전히 일임받았다는 말을 통해 아이젠 몰래 비자금을 형성하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도와 해석이 무엇이 됐든 간에 헨리에겐 그저 호재일 뿐이었다.

‘다음은 오스카인가?’

테리온을 완벽하게 구워삶은 헨리는 다음 타깃으로 오스카를 삼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걱정은 없었다.

지난번의 토벌전에서 오스카는 테리온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고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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