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모드레드 (2)
대화는 필요 없었다.
제국 무력의 정점에 달하는 두 명의 최상급 소드 마스터들은 서로 뿜어내는 투기만으로도 상대의 강함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놀란 쪽은 모드레드였다.
‘상급? 아니, 저 정도 투기는 최소한이 최상급인데? 설마 내가 모르는 최상급 소드 마스터가 이 제국에 또 있었다고?’
중급이나 상급 소드 마스터들은 생각보다 그 수가 꽤 많았다.
왜냐하면 주특기와 결전기는 어떻게든 수련을 통해 익힐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상급의 경지를 가르는 ‘궁극기’의 경우엔 상급 소드 마스터가 한평생을 노력해도 터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기를 익힌 최상급 소드 마스터부터는 마탑의 ‘아크 메이지’들과 동등하게 그 능력을 인정해 주었다.
두 사람의 푸른 오러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동시에 두 사람의 투기가 맹수처럼 격돌했고 그런 현상에 따라 협곡 사이에는 때아닌 광풍이 불어닥쳤다.
휘오오오!
‘확실하다, 저놈은 나와 같은 최상급이야!’
모드레드가 비록 귀족 검사이긴 했지만 신분에 관계없이 상대의 뛰어남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의 경우엔…….
“언제까지 노려보기만 할 참이지? 설마 겁이라도 집어먹은 거냐?”
“……반드시 죽여 주마.”
너무나도 건방졌다.
가진 힘을 인정해 주고 싶었지만, 반의 태도는 무뢰한을 넘어서 마치 상놈을 연상케 할 만큼 몹시 천박했다.
콰직!
분노한 모드레드가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러자 방출되던 오러가 더욱더 맹렬하게 불타오르며 디딘 발아래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것을 본 반이 피식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고작?”
콰지직!
“……!”
똑같은 방법으로 응수해 주는 반.
하지만 반이 일으킨 균열이 더욱 컸고 지면 또한 더 깊게 움푹 파였다.
“네, 네놈……!”
더 이상은 한계였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무시나 조롱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반의 조롱은 모드레드에게 자극적이다 못해 인내심을 박살 내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후웅!
분노에 찬 모드레드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대각선으로 그어지는 검.
그러자 모드레드의 검날로부터 푸른 초승달 같은 오러가 파공음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쏘아졌다.
“여전히 느려 터졌군.”
파캉!
그러나 반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자신의 눈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모드레드의 오러를 말이다.
그래서 가볍게 검을 휘둘러 그의 오러를 저 멀리 빗겨 쳐 냈다.
쿠구구구구!
빗겨 나간 모드레드의 오러는 궤도를 달리하여 뒤편에 솟은 협곡을 길게 베어 냈다.
‘저 망할 놈이……!’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 낸 것 자체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반의 실력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러나 실력이 증명되었을 뿐, 눈앞의 사내가 자신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제국의 위대한 여섯 번째 검이자 하이랜더가의 뛰어난 검사였으니까.
“흥!”
짧게 콧방귀를 뀐 모드레드는 이어서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폭풍처럼 칼을 휘둘렀다.
모드레드의 시그니처 기술들 중 하나인 ‘사파이어 로즈’라는 기술이었다.
촤자자자자작!
검날이 고속으로 그어지면서 짧은 간격으로 오러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뭉친 오러의 선들은 마치 한 송이의 푸른 장미를 연상케 하여 ‘사파이어 로즈’라는 이름이 붙었다.
‘식상한 놈 같으니.’
그러나 사파이어 로즈를 본 반의 반응은 냉담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드레드의 검술에는 별다른 발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좀 전의 공격으로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면 지금이라도 공격의 방법을 바꾸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을 얕잡아 보고 있는 것일까?
모드레드의 공격은 양만 늘어났을 뿐,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네놈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똑똑히 가르쳐 주마.’
모드레드 하이랜더.
녀석이 비록 제국 육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저놈이 자신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은 일부러 제국 십검의 자리를 승낙하지 않았으니까.
이에 반은 빼 든 검에 오러를 응축시켰다. 그런 다음 발바닥 전체에 오러를 실어 투석기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쾅!
“……!”
피하거나 빗겨 쳐도 모자랄 판에 반은 장미의 정중앙으로 돌진했다.
그 모습을 본 모드레드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설마!’
콰자자작!
전신의 본능이 위협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모드레드의 본능보다 반의 움직임이 한층 더 재빨랐다.
장미의 정중앙으로 돌진한 반은, 모드레드가 그랬던 것처럼 고속으로 검을 휘둘러 장미의 꽃잎을 와해시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속도는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콰과광! 콰과과!
반의 검날에 궤도를 달리한 꽃잎들이 저 멀리 날아가 자욱한 흙먼지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장미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던 마지막 오러를 횡축으로 그어 내며 뒤늦게 반응하기 시작한 모드레드에게 검날을 들이밀었다.
챙캉!
피할 여유도 없었다. 송곳처럼 들어오는 검날을 향해, 모드레드는 황급히 검을 들어 검면으로 겨우 저지해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크윽! 무슨 힘이 이렇게……!’
순수한 완력만으로 놓고 보자면 황궁 내에서도 손에 꼽혔던 이가 바로 반이었다.
모드레드는 이를 악물고 반의 완력을 견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입 밖으로는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신음을 낸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모드레드의 속사정을 눈치챈 반이 피식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힘드냐?”
“뭐, 뭐라고?”
“쯧쯧, 배부른 돼지 같은 놈.”
“그게 무슨…… 커헉!”
그때였다.
맞부딪힌 검날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반은 자신의 주특기인 ‘검신 늘리기’를 통해 검날에 두른 오러를 길쭉하게 내뻗었다.
예상 밖의 공격이었다.
창날처럼 뻗친 오러는 왼쪽 어깨와 가슴 사이를 관통시켰고 정확히 왼쪽 날갯죽지로 튀어나왔다.
오러끼리의 힘겨루기는 없었다.
둘 다 비슷한 경도의 최상급 오러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요한 것은 기법의 차이이지, 경도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빠악!
검날을 꽂은 채, 반은 그대로 모드레드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위쪽으로 빼 내며 왼쪽 어깨에 기다란 검흔을 그려 냈다.
“크아아악!”
뽑힌 검날로부터 핏물이 기다랗게 튀었다.
콰직!
하지만 모드레드는 지면에 검날을 박아 간신히 몸을 지탱시켰다.
그러나 절반으로 갈라진 왼쪽 어깨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입술이 떨릴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방심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붕붕붕 착!
반은 검신을 몇 바퀴 돌려 검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그런 다음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호흡하고 있는 모드레드에게 경멸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동안 얼마나 놀고먹었으면 겨우 이 정도 공격도 예측하지 못하는 거지?”
“그동안이라고……?”
“겨우 이런 놈들을 피해 다니려고 숨어 지냈다니, 내 과거가 다 한심하고 부끄럽구나.”
반의 후회는 진심이었다.
대륙이 통일된 직후부터 헨리가 처형당하는 날까지, 단 하루도 단련을 게을리해 본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더더욱 모드레드의 나약함이 경멸스러웠다.
“이제 그만 죽어라.”
검신을 늘릴 필요도 없었다.
반은 여전히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오러가 응축된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종축으로 검을 내질렀다.
서걱!
검이 내질러진 순간, 모드레드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뚱이를 비틀었다.
덕분에 몸이 두 동강 나는 참사는 면할 수 있었지만 대신 반쯤 너덜거리던 어깨가 완전히 잘려 나가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쯧쯧, 그냥 편하게 죽으면 될 것을…….”
반의 공격에 모드레드의 어깨부터 왼팔까지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잘린 어깨로부터 폭포수 같은 핏물들이 쏟아졌다.
모드레드는 몸서리치게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큰 상처를 입은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허, 허어억……!”
하지만 모드레드는 끝끝내 무릎 꿇지 않았다.
단지 처음 느껴 보는 엄청난 고통에 실핏줄이 터진 눈을 하고서 매섭게 반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드레드의 눈빛을 본 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돼지도 죽을 때가 되면 그런 눈빛을 하고서 백정을 노려보는 법이지.”
평화에 찌들어 스스로의 단련을 게을리한 검사.
반에게 있어 그런 검사는 개돼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 그 상대가 자신이 증오하던 아서스의 개라면 더더욱 말이다.
“두 번의 행운은 없다.”
야노스의 죽음은 실로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반의 검이 횡축으로 그어졌다.
이번에는 절대로 회피하지 못하게끔 휘둘리는 검의 각도를 좁히며 검을 휘둘렀다.
푸슈슉!
바다가 갈라지듯이 핏물이 튀었다.
모드레드는 뒤늦게 전신에 강기를 둘러보았지만, 꾸준하게 단련해 온 반의 검기를 막아 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흉갑이 찢어지고 속살이 드러나며 살갗이 길게 찢어졌다.
그러자 가슴팍으로부터 어깨만큼이나 많은 양의 핏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털썩!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마는 모드레드.
더 이상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드레드를 보며 반은 다시 한 번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개돼지만도 못한 놈이 제국 육검이라니, 쯧쯧쯧!”
현재의 제국 십검 중에는 순수한 실력이 아닌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로 제국 십검의 자리를 차지한 놈들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실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치적 외압이 작용했기에 공정하게 십검의 자리를 따낸 것은 아니었다.
반은 모드레드도 그런 부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철걱!
검날의 핏물을 털어 낸 반은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천천히 죽어가는 모드레드의 최후를 구경하기 위해 근처의 바윗덩이에 걸터앉았다.
이에 모드레드가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갔다.
“네, 놈……은, 대체, 누구……냐?”
원수를 반쯤 죽인 뒤, 죽어 가는 모습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
그건 그것대로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이에 반이 톡 쏘듯이 대꾸했다.
“둔탱이 같은 놈. 제국 육검씩이나 되는 놈이 얼굴이 좀 바뀌었다고 해서 이 나를 못 알아본다고?”
“그, 그게…… 무슨…….”
“황궁에서 이런 식으로 오러를 다루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었을 텐데, 이런데도 모른다고?”
“서, 설……마?”
반의 힌트에, 그제야 모드레드의 눈동자가 큼지막하게 확장되었다.
“바, 반……?”
“쯧쯧, 그동안 어지간히도 놀고먹은 모양이로군. 이런 놈이 제국 육검이라니, 확실히 제국도 끝물인 모양이야.”
“크…… 크크, 큭, 고……맙다.”
털썩!
짤막한 감사 인사와 함께, 결국 생명력을 다한 모드레드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쯧쯧!”
이에 반은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그런 다음 녀석의 시체를 전리품으로 가져가기 위해 품속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헨리가 기뻐하겠어.’
쓸 만한 인재는 건지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귀한 성과를 올렸다.
이로써 남은 휴가는 죄책감 없이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아공간 주머니를 벌린 뒤, 쓰러진 모드레드의 머리채를 잡는 반.
그런데 그때였다.
푸욱!
“큭, 이게 무슨!”
그때였다.
모드레드를 아공간 주머니로 집어넣기 위해 머리채를 붙잡은 순간, 녀석의 정수리로부터 뾰족한 뿔이 튀어나와 반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구륵구륵.
재빨리 손을 거두었지만 손바닥에는 이미 큼지막한 구멍이 뚫린 뒤였다.
그리고 쓰러진 모드레드로부터 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무슨!’
거리를 벌리는 반.
그리고 반은 본능적으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절대로 손바닥에 관통상이 생겨서 생긴 소름이 아니었다.
-구륵구륵, 구르륵!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쓰러진 모드레드의 몸뚱이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촉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솟은 촉수에 의해 다시 모드레드의 몸뚱이가 들어 올려졌을 때, 반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