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35화 (135/522)

# 135

모드레드 (1)

“이런 놈이 은둔 고수라고?”

“사, 살려만 주십시오……!”

“꺼져라, 네놈은 죽일 가치도 없으니까! 하지만 한 번만 더 이따위 소문이 나돈다면 그때는 혓바닥을 뽑아 버리겠다.”

“히이이익!”

독설을 한껏 내뱉은 반은 도망치는 ‘폭창의 게류나크’를 보며 그제야 후련한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 어떻게 저런 놈을 은둔 고수라고 착각한 건지, 원…….”

헤글러가 각성함으로써 반은 더 이상 헤글러를 데리고 다닐 이유가 사라졌다.

애초에 헨리에게 부탁받은 것은 헤글러가 가진 과거의 청산이었지, 헤글러와 함께 새로운 단원들을 영입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반은 헤글러가 소드 마스터로 각성하자마자 치료를 위해 가까운 마을로 보낸 뒤 예정대로 새로운 단원들의 영입에 나섰다.

그리고 방금 전, 반은 텐에게서 전달받은 명단 중에 ‘폭창의 게류나크’라는 무명의 창잡이를 쓰러뜨린 직후였다.

‘형편없는 놈들 같으니…….’

폭창의 게류나크.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땐 별명만큼이나 굉장한 실력을 가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직접 부딪쳐 보니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폭창’ 같은 무시무시한 위명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말인즉슨 모두 다 과장된 헛소문이라는 뜻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한 놈뿐인 건가?’

반은 명단에 기록된 마지막 줄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이제 기대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텐의 정보원들에게 큰 실망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 부탁받은 것, 확인은 해 봐야겠지.’

물론 기대만 하지 않을 뿐, 그렇다고 해서 임무까지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실망감에 넘겨짚었다가 진짜 보석을 놓치게 되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테니까.

‘다음은 어디 보자…… 폭풍의 야노스라고?’

그저 기가 찼다. 이번에는 폭풍이라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붙는지 이젠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후, 그래도 이번엔 진짜였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야노스인지 뭔지 하는 놈의 위치가 현재 있는 곳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얼른 해치우고 술이나 부어야겠어.’

마침내 반이 확인할 사람은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헨리가 아이젠에게 한 달의 휴가를 받았다는 건 자신에게도 한 달의 휴가가 생겼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게다가 성형술로 꽃미남이 된 이후로 반은 완전히 제2의 전성기를 맞아 매일매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금쪽같은 휴가를 얻은 지금, 최대한 빠르게 볼일을 마치고 휴가를 즐겨야 할 의무가 있었다.

* * *

“후, 이번엔 폭풍의 야노스라고?”

모드레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벌써 몇 명째인지 모르겠다.

아서스 공작의 명령에 사라진 베네딕을 추적한 지도 벌써 몇 주.

그러나 이 빌어먹을 배신자는 얼마나 꽁꽁 숨었는지 붙잡힐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모드레드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도망친 베네딕의 행적을 쫓아 지능적으로 추적하는 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녀석이라고 의심되는 녀석이 있다면 일일이 만나 털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 모드레드의 손에는 종이가 한 움큼 쥐여져 있었다.

최근에 악명이 높아진 수배범이나 급격히 유명해진 용병, 혹은 은거 고수들까지.

혹시라도 베네딕이 위장 신분을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지금.

모드레드는 방금 막 악성 수배범 하나를 단칼에 베어 넘긴 후, 다음 타깃으로 ‘폭풍의 야노스’라는 남자를 선택했다.

“폭풍이라……?”

왜 폭풍이라는 위명이 붙은 것일까?

모드레드는 이번에도 머리를 굴려서 논리적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베네딕 그놈도 ‘사막의 모래 폭풍’이라는 라의 권능을 사용했었지. 그렇다면 혹시 이 별명도?’

이런 식으로 다음 타깃을 정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야노스 같은 이름은 얼마든지 가명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가진 본연의 힘은 아무리 감추고 싶어도 결국엔 정체가 탄로 나는 법.

그래서 모드레드는 폭풍의 야노스를 다음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일단 얼굴부터 확인해 봐야겠어.’

모드레드 하이랜더.

분명히 어려운 임무였음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그는 아서스의 충성스러운 심복이었다.

* * *

“야.”

“예, 예?”

“하아…… 정말 네가 폭풍의 야노스라고?”

“그, 그렇습니다!”

“네가 폭풍인 이유는 저것들 때문이고?”

“그, 그렇습니다……!”

반은 한숨과 함께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절벽 위에 설치된 갖가지 ‘함정’들을 바라보았다.

폭풍의 야노스.

그의 정체는 귀족을 폭행하고 도망친 단순한 수배범이었다.

게다가 그는 검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남자였다.

그래서 지형이 험준한 협곡에 숨어 살며 언제든지 추격대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협곡 근처에 무수한 함정들을 설치해 두었다.

폭풍이라는 위명이 붙은 까닭은 간단했다.

자신을 잡기 위해 추격대가 이곳까지 찾아오는 순간, 준비해 두었던 함정들을 일시에 풀어 폭풍처럼 함정들을 쏟아 내었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이번에도 허탕이라는 사실에 허무함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래도 반은 숨은 진주가 한 명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단에 적힌 모두가 과장된 소문이라는 사실에 허탈한 분노가 밀려 왔다.

‘겨우 이딴 놈이나 확인해 보자고 내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다니!’

이에 반은 칼을 뽑았다.

단순히 이 남자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야노스는 귀족을 폭행한 범죄자였고, 이대로 모른 척하고 살려 두면 언젠간 또 다른 추격대가 피해를 입을 게 뻔했으니 미리 화근을 뽑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야노스가 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목숨을 구걸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부, 부탁입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평생을 속죄하면서 살겠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처절하게 매달리는 야노스를 보며 반은 순간, 하필이면 디알로에게 도망만 다니던 헤글러가 떠올랐다.

‘귀족 폭행죄라…….’

이에 반이 물었다.

“왜 그런 것이냐?”

“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제국에서 귀족을 폭행한 것은 중죄에 해당하는 일! 나는 지금 네가 왜 귀족에게 상해를 입혔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 그것이…… 차,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경작세가 조금 밀렸다는 이유로 옐로 남작이 제 가족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그만…….”

딱한 사연이었다. 결국 야노스 또한 권력에 굴복당할 수밖에 없는 하층민에 불과했던 것이다.

“쯧.”

기분이 더러웠다.

제국의 법이 이 남자를 범죄자로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원초적인 죄는 얼굴도 모르는 옐로 남작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은 검을 거두었다.

철걱!

검집에 검을 집어넣은 반은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야노스를 떨쳐 내며 말했다.

“가라.”

“……예?”

“가라고,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애초에 나는 현상금 사냥꾼도 아니고, 옐로 남작의 추격대도 아니다. 그냥 인재를 찾고 있었을 뿐이지. 그러니 너는 더 멀리 도망쳐서 살아라.”

“가,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애초에 자신의 목숨을 반이 쥐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야노스는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해 보였다.

이에 반은 고개를 내저으며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군. 이렇게 된 이상, 한동안 그냥 질펀하게 술이나 퍼마셔야겠어.’

맡은 일을 끝마쳤으니 일단은 해방이었다.

그러므로 반에게는 이제부터가 진짜 휴가인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반은 야노스를 등지고 하산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서걱!

콰과과광!!

막 등을 돌린 반의 등 뒤에서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반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먼지가 자욱했다.

곧 산머리에서 불어온 바람에 먼지가 옅어졌다.

그곳에는 거대한 크기의 검흔이 야노스의 거처를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였다.

꿈틀.

움푹 파인 크레이터 사이로 곤죽이 된 야노스가 보였다.

검흔.

그것은 검흔이 확실했다.

그리고 야노스는 절명한 듯했다. 절명한 야노스의 시체는 근육이 경직되어 가며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반은 곧바로 고개를 들고 검기를 날린 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번에도 아니야?”

타닥.

검기를 날린 이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이어서 그는 허탈한 말투와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린 후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

이에 반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어렸다.

‘모드레드? 저놈이 왜 여기에?’

제국 육검, 모드레드 하이랜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조우하자, 반은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모드레드는 자신이 언젠간 제거해야 할 아서스의 사람이 아니던가?

그때였다.

놀란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는 반과 모드레드의 눈이 마주쳤다.

“음? 넌 또 뭐야?”

마치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한 말투.

분명히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반이 야노스와 함께 있었음을 알았을 텐데 말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귀족 특유의 거만한 말투가 이토록 화를 돋우게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좀 전에 야노스의 목숨을 살려 주었건만 자신의 자비가 무색해지게, 허무하게 야노스를 죽여 버렸다.

“흐음.”

그러나 모드레드는 금세 반에게 흥미를 잃어버렸다.

대신 곤죽이 된 야노스의 시체를 발끝으로 뒤적이며 야노스의 얼굴을 살폈다.

“대체 뭐가 폭풍이라는 거야? 이거 또 헛걸음만 했잖아.”

모드레드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그의 투정을 듣고 판단컨대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모드레드가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었다.

“모드레드.”

“음?”

낯선 이에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모드레드는 시체를 뒤적이던 발을 멈추었다.

그런 다음 반쯤은 굳은 얼굴을 하고서 반과 시선을 맞추었다.

자욱했던 먼지가 가라앉고 그 자리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햇볕이 제법 따스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이윽고 모드레드가 말했다.

“이름.”

귀족 검사답게 고고하고 차가운 태도로 반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심기가 불편해진 반은 별로 고고하지 못했다.

척.

모드레드의 물음에 반은 조용히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림으로써 그의 물음에 화답해 주었다.

“하?”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제국 사람이라면 분명히 자신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자신의 이름까지 알면서 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간 수많은 가설들이 모드레드의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공작가의 일원인 자신에게 저런 무례함을 보일 수 있는 검사는 적어도 이 제국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철걱!

검을 뽑아 드는 모드레드.

무례함에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이에 반 또한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츠즈즈즈즛.

두 명의 최상급 소드 마스터.

협곡에 서슬 퍼런 폭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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