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34화 (134/522)

# 134

아크 메이지 (5)

“……앞으로 여러분들을 가르칠 마탑 소속 순수학파 마도사, 벼락의 케일입니다.”

짝짝짝짝!

인재들은 학생으로 신분이 전환되었고, 케일은 제국 몰래 학생들을 가르치는 샤하트라 최초의 마법 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왕궁의 별장은 전문적인 교육기관으로 지정됨에 따라 헨리의 손을 거쳐 그럴 듯한 학교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학생은 총 쉰 명.

일개 중대로 쓰기엔 딱 좋은 숫자였다.

헨리는 교실의 뒤편에 서서 헤라리온과 함께 강단에 선 케일을 바라보았다.

케일은 이미 마음 한편의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에 헨리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헤라리온과 함께 교실 밖으로 향했다.

이윽고 헤라리온이 말했다.

“헨리 공에게 친분 있는 마도사가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대가를 받지 않겠다니, 저렇게까지 교육열이 넘치는 마법사는 처음 보는군요.”

“본디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 의견엔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샤하트라에서의 볼일은 대부분 끝마치신 겁니까?”

“한동안 교육은 케일이 맡아 줄 거고, 헥터 건도 잘 해결됐고, 궐련이나 공물에 대한 상품화도 잘 진행됐으니……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사실 아직 사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남아 있기는 합니다.”

“사적인 부분이라……. 하하, 설마 이번에도 헥터 경의 부활 같은 그런 건은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선 충분한 배려를 받았습니다. 다시 한 번 전하께 감사드립니다.”

“하하, 감사 인사나 받자고 언급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럼 어떤 일이 남으신 겁니까?”

“사실 이건 제 개인적인 호기심이기도 한데……. 전하, 혹시 지금 비람 대제사장님과 함께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와 비람이 함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음, 지금쯤이면 기도 시간도 끝났을 테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시죠.”

“감사합니다, 전하.”

헤라리온의 예상대로 마침 비람은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 덕분에 곧 헤라리온의 주선으로 헨리, 비람, 헤라리온 세 사람은 원탁에 둥글게 모여 앉을 수 있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비람 대제사장이었다.

“허허, 헨리 공께서 저에게도 볼일이 있으신 줄을 몰랐군요. 대체 무슨 볼일이 있기에 전하와 함께 모이자고 하신 겁니까?”

비람에게 겉치레는 없었다.

그는 비록 늙은 노인이긴 하였으나 오랫동안 대제사장을 지내 온 만큼 여러모로 냉철하고 날카로운 인물이었다.

이에 헨리가 조금은 진중해진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드릴 이야기는 종교인으로서 조금 껄끄럽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법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두 분에게 양해를 먼저 구하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헨리 공께서 종교적인 이야기라……. 오히려 어떤 이야기를 꺼내실지 기대가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부담 갖지 않고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헤라리온의 배려에 헨리는 그제야 본론을 꺼내 들 수 있었다.

“두 분께선 혹시 ‘흑마술’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흑마술……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문헌으로는 접해 본 적이 있습니다만, 제가 아는 흑마술은 제국에서 금기시하는 마법을 지칭하는 단어로 알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했다.

제국에서 금기시하는 마법 전체를 아울러 흑마술이라고 칭하니까.

하지만 확실히 폐쇄적인 왕국이라 그런지 보통의 제국인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보통은 흑마술이라고 하면 스켈레톤이나 좀비 같은 언데드, 저주를 부리는 네크로멘서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에 헤라리온이 되물었다.

“아무튼 흑마술은 갑자기 왜 물으시는 겁니까?”

“흑마술은 기본적으로 보통의 마법과는 다른 문자들을 취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마법과는 달리 ‘마력’ 대신 ‘생명력’을 대체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요?”

“과거에 저는 흑마술에 흥미를 갖고 관련 문헌들을 찾아보며 흑마술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저는 흑마술이 어떠한 종류의 힘인지, 그리고 흑마술에 사용되는 언어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두 분께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헨리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컨대 눈썹을 치켜세우는 것 같은 행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인위적인 몸짓과 함께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두 분께서 사용하시는 라의 권능과 환술, 그리고 야누스의 권능까지…… 그 모든 것들이 놀랍도록 흑마술과 닮아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샤하트라에 있어 종교와 환술은 그 어떤 것보다도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헨리가 지금 그런 절대적인 것들을 향해 부정적인 언급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도리어 담담한 표정과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장고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얼마 뒤, 먼저 말문을 튼 쪽은 비람 대제사장이었다.

“헨리 공.”

“예.”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공부한 것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니 그저 놀랐을 따름입니다.”

“단순한 지적 호기심인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으음.”

다시금 이어지는 신음.

악의가 없는 순수한 호기심을 무턱대고 다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는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동맹 관계’였으니까.

이에 비람이 이어서 말했다.

“헨리 공께서 어떠한 악의도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것이 예민한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헨리 공께선 정확히 어떠한 점에서 흥미를 느끼신 것입니까?”

“언어입니다.”

“언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흑마술과 라의 권능뿐만이 아니라 저는 또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어딥니까?”

“바로 마계입니다.”

“……마계요?”

마계.

헨리는 이와 같은 언어를 칼리번 요새의 마물의 숲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지금은 권속이 된 클레버로부터 말이다.

‘클레버는 마물의 숲이 아닌 진짜 마계 출신이지. 게다가 과거에 만났던 마족도 클레버와 똑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그러니 어쩌면 흑마술과 환술, 그리고 라나 야누스 같은 신의 권능까지 전부 다 마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헨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일까, 헨리의 얼굴엔 확신이 가득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사실이란 말인가?’

흥미진진했다.

흑마술과 샤하트라의 종교, 그리고 마계.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언어’라는 흥미로운 교집합을 찾아냈으니까.

하지만 헨리는 그동안 이것들을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는 누설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었고, 설령 맞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이것은 자신이 발견한 위대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헨리는 샤하트라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두 사람과 함께 이 발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헨리는 거리낌 없이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헨리의 발언에 헤라리온과 비람의 얼굴은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

흑마술과 마계.

어느 쪽을 선택하든 신성함 그 자체인 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군요…….”

뜨거운 한숨과 함께 헤라리온이 대답했다.

이에 헨리는 헤라리온의 부정적인 기운을 감지하고 서둘러 뒷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하. 하지만 전하! 제가 감히 신성한 라의 신의 권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하께선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무슨 연유로 이 관련 없어 보이는 세 가지로부터 ‘언어’라는 공통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건…….”

마법사의 지적 호기심에 대한 욕구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 마법사가 인류 최고의 마법사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법사의 호기심만큼이나 신을 믿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라의 대리인들, 즉 헤라리온과 비람이었다.

지식인과 종교인.

지식인은 순수한 지식의 탐구를 원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종교인은 섣불리 지식인의 말에 맞장구칠 수가 없었다.

헤라리온이 대답 대신 뜸을 들였다. 그리고 뜸을 들일수록 헨리의 마음에 조바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잠시 뒤, 헤라리온이 어렵게 대답을 내놓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감히 위대한 태양신, 라에 대해 단 한 번도 의구심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전하! 의구심이 아닙니다. 어쩌면 저의 호기심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만 싸여 있던 ‘신의 권능’에 대한 정체를 밝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헨리 공.”

“전하!”

“그만하십시오, 헨리 공!”

헤라리온의 거절에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조바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가 높아지고 동공이 확장되는 등, 평소라면 절대로 보여 주지 않았을 모습들을 선보이고 말았다.

이에 비람이 헨리를 저지했다.

그리고 그런 비람의 저지 덕분에 헨리는 그제야 자신이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무례를 깨달은 헨리는 곧바로 머리를 숙여 사과를 표했다.

하지만 헨리가 흥분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이번 건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젠장…….’

사과는 했지만 아쉬운 마음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 깊은 샤하트라 신의 권능을 통해 흑마술의 비밀을 파헤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자신이 우연찮게 되살아날 수 있었던 비밀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한층 더 가라앉았다.

공기가 무겁게 흘러가자, 연륜 있는 비람 대제사장이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헨리 공.”

“죄송합니다, 전하. 흥분한 나머지 제가 감히 해선 안 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아닙니다. 그대는 제국인이니 충분히 그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혼란스럽군요. 단 한 번도 위대하신 라의 권능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신을 의심한다는 것은 종교인의 건드려선 안 될 역린을 건드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만약 헤라리온이 아닌 다른 종교인이었다면 충분히 헨리의 따귀를 올려붙이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이에 헤라리온은 비람과 함께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나누도록 하지요.”

방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

두 사람의 안색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방을 빠져나간 직후, 헨리의 표정은 약간이나마 밝아졌다.

‘다음에 다시라…….’

헤라리온은 화를 내지 않았다.

안색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대신 ‘다음에 다시’라는 여운을 남겼다.

그것만으로도 헨리는 오늘의 대화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언젠가는 반드시 그 세 가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알아내도록 하겠다.’

지식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신의 부활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

복수만을 꿈꾸던 헨리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 * *

“그럼 이번에도 저는 먼저 떠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튿날.

샤하트라에서의 잡무를 모두 마친 헨리는 다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이번에도 먼저 사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 처리는 완벽했다.

유통시킬 물품들에 대한 교역 준비라든가 마법사 양성에 대한 초석도 완벽하게 다져 놓았으니까.

헨리는 샤하트라를 떠나기 전,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에게 차례대로 인사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이젠 마법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내는 하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헨리가 하울에게 말했다.

“하울.”

“예, 스승님.”

케일에 대한 호칭은 선생님, 헨리에 대한 호칭은 스승님이 되었다.

케일은 마법에 대한 기초적인 것들을 가르치니 선생님이 된 것이고, 헨리는 기초 교육을 끝낸 이후 마법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가르칠 예정이었으니 스승이라 불리게 되었다.

“열심히 하여라.”

“예, 스승님!”

헨리는 하울에게 어떠한 부담감도 기대감도 심어 주지 않았다.

또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사랑과 관심을 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하울이 독보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라고 해서 편파적으로 애정을 주었다가는 나머지 마흔아홉 명의 가능성을 잃어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천재는 언젠간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헨리는 알고 있었다.

하울은 ‘눈’이라는 오랜 꿈을 이룬 직후, 마법에 대한 어마어마한 열망감이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하울의 미래는 굳이 예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눈부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헨리는 그저, 욕심 넘치는 하울이 어서 빨리 헨리의 가르침이 필요한 경지, 예컨대 스스로의 벽에 부딪히는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헨리의 역할은 그런 순간마다 시원스레 길을 터 주는 것이었으니까.

이어서 헨리는 나머지 마흔아홉 명의 제자들의 이름 또한 차례대로 읊어 주며 일일이 손수 격려해 주었다.

그런 다음 헨리는 한동안 학생들의 기초를 가르쳐 줄 케일에게 조그마한 자루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받아라.”

“이게 뭡니까?”

“그래도 명색이 선생인데, 맨입으로 학생들을 부탁할 순 없잖아.”

찌잉.

헨리에게 처음으로 받아 보는 호의.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케일은 자기도 모르게 목 언저리가 시큰해졌다.

“풀어 봐.”

유치하게 나중에 풀어 보란 말은 하지 않았다.

헨리의 제안에, 케일은 서둘러 자루를 풀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러자 그 안에는 녹색 빛으로 찰랑이는 몇 병의 액체들이 담겨 있었다.

“……이게 뭡니까?”

“내 마력들을 액화시킨 것이다. 한동안 내가 좀 바쁠 거야. 그래서 말인데, 한동안은 그것들로 버티도록 해. 한 병당 열흘은 충분할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그럼 설마 보상이란 게……?”

“그래, 얼마간의 자유. 그게 내가 주는 보상이다.”

인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윽고 헨리는 손가락을 튕겼고, 광명과 함께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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