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33화 (133/522)

# 133

아크 메이지 (4)

광명이 사라지고 난 직후 다시 눈을 뜬 곳은 나선형 계단이 인상적인 어느 낯선 공간이었다.

갑작스러운 풍경의 변화에 깜짝 놀란 하울이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순식간에 박투술 자세를 취하는 하울.

이에 헨리가 헤라리온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전하께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의욕이 앞서고 말았습니다.”

“새삼스럽게 뭐, 이 정도야 흔한 일이니 저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텔레포트입니까? 저번에 저를 산맥으로 데려다 준 그?”

“그렇습니다.”

헤라리온은 이미 텔레포트를 경험해 본 터라 반응이 무덤덤했다.

하지만 이것이 텔레포트임을 모르는 하울에겐 그저 무례한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왕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묘한 힘’을 사용해 풍경을 바꿔 놓았으니까.

그래서 하울은 덤덤한 헤라리온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주먹을 들어 올린 채 눈알을 굴리기에 바빴다.

그것을 본 헨리가 말했다.

“눈치 볼 것 없다. 전하께서도 이미 허락하신 일이니까.”

“그래, 하울은 두 손을 내리고 예를 갖추도록 하라.”

헤라리온의 명령에 하울은 그제야 두 손을 내리고 다시금 예를 갖추었다.

이에 헤라리온은 여전히 바닥에 이마를 붙이고 있는 인재들에게도 말했다.

“그대들도 이제 그만 고개를 들라.”

그제야 고개를 드는 인재들. 그리고 그들 또한 하울처럼 놀란 눈동자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모두가 바뀐 풍경에 놀라고 있는 지금, 지금이 바로 헨리를 소개하기엔 딱 적격이었다.

이에 헨리가 스스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소개하도록 하지.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 전하께 그대들 같은 인재들을 소집해 달라고 한 장본인이다.”

충분히 놀랄 만했다. 그러나 놀라움에 웅성거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자리엔 샤하트라의 최고 통치자, 헤라리온 칸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그저 연속된 놀라움으로 인해 확장된 동공을 이리저리 굴릴 뿐이었다.

또한 개중에 일부는 헨리가 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뜻 모를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것을 본 헨리가 말했다.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한 번 보여 주는 게 더 낫겠지.”

딱!

불안한 얼굴들을 확인한 헨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설탑 내부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창문들이 동시에 개방되었다.

덜컹! 덜컹! 덜컹!

휘오오오오!

창문들이 모두 개방되면서 바깥에서 휘몰아치던 눈보라 소리가 생생하게 귓속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앗, 차가워!’

하울은 팔뚝에 닿은 차가움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 팔뚝을 확인했을 때, 그 자리엔 이미 약간의 물기만이 남아 있을 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하울은 눈앞에 떨어지는 하얗고 조그마한 깃털 같은 것을 보았다.

이에 하울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새하얀 꽃잎들이 자신들을 향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건…….”

하울은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그것을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 위로 반쯤 녹은 무언가가 요정의 날갯짓처럼 사뿐히 안착했다.

요정.

그것은 마치 요정을 닮아 있었다.

또한 그것은 마치 실력 있는 조각가가 조각해 놓은 솜씨 좋은 예술품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몹시 연약했다.

하울의 손 위에 안착한 요정은 잠깐이나마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하였지만 따뜻한 하울의 체온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물방울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

하울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울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런 걸 본 적이 없었지만, 물방울이 되어 사라진 이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눈?”

“그래, 눈이다.”

“……!”

깨달음이 섞인 혼잣말에, 뒤에서 잠자코 보고 있던 헨리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해 주었다.

그러자 하울은 다시 한 번 놀란 눈초리로 헨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딱!

덜컹!

이에 헨리는 손가락을 튕겨 설탑의 입구를 열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울의 시선이 문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샤하트라에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새하얀 세상이 문 밖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어, 어……!”

사람은 너무 놀라게 되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하울이 그랬다.

그러나 하울의 얼굴에는 환희와 전율,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파도가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에 하울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하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다름 아닌 헤라리온이 있었다.

하울의 표정에는 다급함과 절실함이 뒤섞여 눈동자가 떨리고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새하얀 세상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왕 앞에서 무례를 범할 수 없었기에 헤라리온을 쳐다본 것이었다.

하울의 마음을 짐작한 헤라리온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하노라.”

“감사합니다, 전하!”

하울은 허리를 꾸벅 숙여 예를 표한 뒤, 미친 사람처럼 문 밖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온 세상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살게라를 향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평생의 염원이자 꿈이었던 눈들의 품속으로 말이다.

* * *

“가, 감사합니다. 흐흐흐…….”

하울은 흐흐 웃으며 시녀가 건넨 따뜻한 차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하울을 포함한 마법사 인재 전부가 그랬다.

덜덜덜덜…….

차를 받아든 하울의 몸은 오한에 걸린 것처럼 달달달 떨고 있었다.

또한 콧잔등이 빨갛게 달아올랐으며 손등이나 팔뚝 등 맨살이 드러난 곳 또한 콧잔등과 마찬가지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방한용품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눈밭 속에서 뒹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는 하울이 완전히 만족할 때까지 그가 눈밭에서 뒹굴거리는 걸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기쁜 마음만으로는 추위를 버틸 수 없을 때쯤이 되어서야 하울과 인재들을 데리고 다시 왕궁의 별장으로 되돌아 왔다.

‘의젓한 척하지만 아직은 애로군.’

하울이 비록 약관의 나이이긴 하였으나 여든을 살아온 헨리에겐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어린아이일수록 마음을 빼앗기 쉽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에 헨리는 여전히 달달 떠는 모습으로 차를 홀짝이는 하울에게 다가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물었다.

“하울.”

“네, 마법사님!”

“아직도 환술사가 하고 싶으냐?”

“아닙니다, 마법사님! 제가 감히 마법사님의 위대함을 몰라 뵙고 실언을 하였습니다, 흐흐흐.”

하울은 여전히 살게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흐흐 웃으며 헨리의 물음에 답하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꽤나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처음의 퉁명스러웠던 태도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데다가 이제는 완전히 마법 쪽으로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덩달아 다른 인재들의 경계심 또한 하울을 기점으로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하울의 대답에 헨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헤라리온 쪽으로 시선을 돌려 물었다.

“전하께서는 좀 어떠셨습니까?”

“에, 엣취이! 흠흠, 하울 덕분에 저도 진귀한 경험을 다 했습니다.”

헤라리온이라고 별다를 건 없었다.

처음에는 왕의 체통에 대해 고심하는 듯하더니 산책을 핑계로 바깥에 나가 혼자서 눈을 만지며 살게라를 즐겼기 때문이다.

‘그럼 대충 해결된 것 같군.’

앞으로 양성할 마법사들을 위해 새로운 마탑인 설탑을 지었고 미래를 위한 인재들도 확보했다.

물론 전쟁을 위해선 이보다 더 많은 인재들을 확보해야 할 테지만 하울이라는 천재를 손에 넣었으니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이윽고 헨리가 물었다.

“전하, 혹시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 별장을 학생들을 위한 임시 교육기관으로 삼아도 되겠습니까?”

“임시 교육기관이라니요? 그런 거창한 일을 하는데 고작해야 이 정도 별장으로 되겠습니까? 내 사람을 시켜 금방 제대로 된 건물을 준비해 주겠습니다.”

“아닙니다. 교육기관이 왕궁 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크기도 딱 좋은 것 같고 말입니다.”

“정말 이 정도 별장으로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전하.”

“끄응…… 그대의 뜻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그럼 지금부터 이곳을 샤하트라의 첫 번째 마법 교육기관으로 삼도록 하고, 기관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설탑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텔레포트 게이트? 그럼 설마 언제든지 눈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전하.”

“허허허,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찬성입니다. 헨리 공이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전하.”

설치는 금방 이루어졌다.

헨리는 샤하트라 왕궁의 별장에 두 번째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게이트의 이름을 ‘샤하트라 게이트’라 지었고 이번엔 햇볕을 통해 마력을 수급하는 ‘샤이널의 귀걸이’를 동력으로 삼았다.

샤하트라 게이트의 좌표는 오직 설탑과 연결되어 있었다.

편의를 위해 다른 지역과도 연결할 수도 있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게이트가 설치된 직후, 샤하트라 게이트의 화려한 외관을 구경하던 헤라리온이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헨리 공께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모두 가르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는 몸이 하나뿐이고 시간 또한 부족하니, 저를 대신해 기초를 가르쳐 줄 훌륭한 선생님을 초빙해 올 생각입니다.”

“초빙이라니요? 헨리 공의 비밀을 알고 있는 마법사가 또 있단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보안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입을 가졌습니다.”

“헨리 공께서 호언장담하신다면야 믿어도 되겠지요.”

헤라리온과 학생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헨리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음?”

떨림의 정체는 헨리가 벤트에게 준 호출권이었다. 그것을 본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잠시만 기다리고 계시면 방금 말씀드렸던 ‘그 선생님’을 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딱!

헨리는 헤라리온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겼고 번쩍인 광명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벤트가 헨리를 호출하는 이유는 딱 세 가지 뿐이었다.

첫째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강력한 체스 도전자가 나타났을 때.

둘째는 비발디 타워에 숨겨 둔 체스 상금이 사라졌다는 걸 누군가에게 들켰을 때.

셋째는 언제부턴가 찾아오기 시작한 어떠한 남자 때문이었다.

“……그를 불러 주시오.”

“알겠습니다.”

어떠한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케일이었다.

그는 헨리가 자신에게 주입한 나르웜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비발디 타운의 시청으로 와서 헨리를 만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 속에 둥지를 튼 나르웜이 미쳐 날뛸 테니까.

물론 신변이 알려지면 안 되었기에 벤트에겐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다.

그리고 케일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은 벤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헨리 모리스’라는 이름하에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의 용건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텔레포트를 사용한 헨리는 비발디 타워 인근에 지정해 둔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마음 같아선 시청의 응접실에서 일거리를 해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벤트에겐 아직 마법사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항상 근처에 지정해 둔 약속 장소에서 케일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오셨습니까?”

약속 장소는 헨리가 일부러 구입해 둔 작고 허름한 집이었다.

헨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먼저 도착해 있던 케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그것을 본 헨리가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잘도 찾아오는구나.”

“……안 찾아오면 죽는데 당연히 찾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미행은 없겠지?”

“전 별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게 죽고 싶지 않으면 일 하나만 더 하자.”

“……예?”

“네가 지금 5서클 마스터였나?”

“그렇긴 합니다만…… 또 무슨 명령을 내리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케일은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꼈다.

헨리는 이런 식으로 벌써 몇 번이나 자질구레한 심부름부터, 심하게는 샤하트라 토벌전까지 자신을 투입시켰기 때문이다.

“너, 애들 좀 가르쳐라.”

“예?”

입이 무겁고 성실한, 그리고 실력 있는 선생님이 초빙되는 순간이었다.

0